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74
74
Chapter19 – 각자의 준비 (3)
보는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낄 정도로 자신의 발전이나 성취에 대해 강렬한 집착을 품고 있는, 과한 열정을 품고 있는 어린 요리사일 뿐이다. 나이에 비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의 양이 상당할 뿐이지, 절대 재능이 출중한 부류의 요리사는 아닌 것이다.
필상이 “계속 말씀하세요.” 하고 덧붙이자, 이정준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사실 요리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주변사람들께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이요. 셰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을 뿐더러,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도 별로 없어요. 그 권태가 극에 달했던 시기가, 셰프님을 처음 뵀던 서울시 요리대회 때였고요.”
“아, 그때···.”
“사실 셰프님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원래 지난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출전할 생각도 없었고 진득하게 요리를 배울 생각도 없었거든요. 요리 대회 관련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명분으로 학교를 그만둔 상황이었던지라, 대회가 끝나고 나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천천히 시간을 두고 가게 일을 배우려고 했죠. 그런데 셰프님한테 졌다는 생각이 들고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요?”
“강훈 셰프님의 레스토랑에 취직했죠. 그러다가 셰프님이 강훈 셰프님께 *콜아웃(*Callout) 요청을 하게 되면서, 파미유에 며칠간 일하게 됐고 그 뒤로는 자연스레 정착하게 됐고요.”
말을 마친 이정준이 쓴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돌체 모멘트에서 일하는 것도 극도로 반대하셨어요. 그러다가 파미유로 이직하게 되면서 문제가 더욱 불거졌죠. 그간 들인 돈이 얼마인데 대체 뭐가 아쉬워서 더 어린 셰프 밑에서, 그것도 테이블도 한 개밖에 없는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냐면서요. 그냥 이제 다 그만두고, 가게 업무를 배우라고 하셨죠.”
“음, 아버님 입장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아니네요.”
“그 날 집에서 쫓겨나서, 여태껏 파미유 인근 학원가에 위치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이에요. 간간히 어머니하고만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요. 사실 매번 파미유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의 대화만 반복되는 터라 어머니와도 연락을 하지 않은지 몇 주쯤 됐고요.”
이내 필상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감싸쥔 채 “그런 일이 있으셨으면, 말씀을 해주시지···.”하고 중얼거리던 찰나.
이정준이 애써 덤덤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내저어 보이고는 답했다.
“파미유에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차마 말씀을 못드렸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셰프님의 입장에서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원만한 해결법은, 저를 해고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말씀을 못하셨다고요?”
“네. 사실 처음에는 1년만 지켜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대체 어떤 차이가 있기에, 실력에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었는지. 재능 때문인지, 아니면 노력의 양이 다른 것인지 한 1년 정도만 지켜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했었죠.”
“그런데요?”
“셰프님을 곁에서 지켜보다보니까 저도 꿈이 생겨버렸어요.”
짧게 답해 보인 이정준이, 애써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셰프가 되고 싶어졌어요.”
이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려 보인 필상이 조심스레 물음을 건넸다.
“꾸게 된지 얼마 안 된 꿈과, 부모님이 기대감. 둘 중, 어떤 것을 저버려야 할 것인지 모르겠다는 거죠?”
“네, 그런 것 같아요.”
“애초에 제가 끼어들어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도 아닌 데다가, 명확한 정답은 없을 거예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셔도 후회하실 테고요.”
“네, 아마 그렇겠죠.”
필상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설득하길 바랬던 것일까? 이정준의 표정이 일순 어두워졌다가, 금세 본래의 빛을 되찼았다.
“그런데, 있잖아요? 언제, 어디서들은 말인지는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본래 모든 사람들의 삶이 선택과 후회의 연속이래요.”
“선택과 후회의 연속이요?”
“우리에겐 매순간 선택지가 주어지잖아요? 지금 정준 씨에게는 저를 따라 파우스트로 갈지, 말지. 또 저에게는 지금 정준 씨를 설득할지, 말지에 대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으니까요.”
“아···.”
“결국 훌륭한 삶을 사는 방법은, 그런 선택의 순간마다 그나마 덜 후회하게 될 것 같은 선택지를 고르며 나아가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좋은 말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나마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을 해요.”
다시금 장내에 침묵이 드리우기를 잠시, 이정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답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에 뵐게요.”
“그래요.”
이윽고, 이정준이 가게 문 앞에 다다르던 찰나. 필상이 돌연 “잠시만요.” 하고 말해보이는 것으로, 이정준을 불러세운 뒤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지금 정준 씨를 설득하겠다는 선택지를 고르려고요. 아무래도 설득하는 쪽이, 설득하지 않는 쪽에 비해 덜 후회할 것 같아서요.”
“네···?”
“세상에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꿈같은 건 없어요. 중요한 건 그 꿈을 얼마나 오랫동안 꿨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원하는가 아닐까요?”
말을 마친 필상이 이정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는 워낙 강렬했던 첫인상 탓에 마냥 별로라고만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해온 데다가, 또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수상 이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짙은 우월감에 젖어들어있는 애송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와 같은 인식이 뒤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회귀 이전과 이후의 삶을 통틀어 봐도 이정준처럼 요리에 대한 광적인 집착을 품고 있는 요리사를 만나본 기억은 손에 꼽았다.
동기야 어찌 됐든. 또 셰프라는 꿈을 품고 있든, 아니든. 이정준은 병적으로 자신의 성취와 발전에 집착하는 요리사였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르고 나면 분명 훌륭한 셰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무궁무진한 기대감을 품게 되는 그런 요리사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정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같이가요. 정준 씨를 최고의 셰프로 만들어 드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최고의 셰프를 동료로 둔 요리사로 만들어드릴 자신은 있거든요. 계속 제 곁에 계셔도 좋고, 먼 훗날 잘 되셔서 곁을 떠나셔도 좋아요. 일단 당장은 정준씨처럼, 열정적인 동료와 함께 주방을 이끌어나가고 싶어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기까지에요.”
“네, 셰프님. 감사합니다.”
“저는 그나마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지를 골랐으니까, 정준 씨도 부디 그나마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지를 고르셨으면 좋겠네요.”
짤막하게 말을 마친 이정준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출입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바깥으로 한발을 내딛더니, 다시금 시선을 옮겨서는 필상을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내일 제가 출국 전・후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좀 알려주시겠어요?”
필상이 아무런 답없이 이정준을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
“따라가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덜 후회할 수 있는 선택일 것 같아서요.”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한 투로 답했다.
“그래요, 잘 생각하셨어요. 잘 정리한 다음에, 인쇄해서 드릴게요.”
재차 묵례를 해보인 이정준이, 곧장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는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골목을 빠른 걸음으로 터벅터벅 거닐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그저 걷기만 하던 이정준이 멈춰선 곳은 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아버지의 가게 앞이었다.
이내 이정준이 유리문 너머로 테이블에 앉은 채, 또 안경을 코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두신 채 장부를 정리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정준이 한차례 숨을 내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영업 끝났습니다.”
출입문 쪽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씀해보이신 아버지께서, 잠시 틈을 두고는 고개를 들어올리셨다.
이내 이정준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고개를 한 번 숙여 인사를 해보인 뒤 애써 말문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들을 말 없다.”
“잠깐이면 되요.”
말을 마친 이정준이 낮은 한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골목을 지나오며 몇 번이고 되뇌었던 말을 유려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이고 싶은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네요. 이 달 내로, 맨해튼으로 갈 겁니다. 지금 요리를 배우고 있는 셰프님을 따라서요.”
“뭐? 너 이 자식, 지금 뭐라고···.”
“응원까지는 안 바랄게요. 그런데 저도 제 힘으로 뭔가 이뤄보고 싶어요. 다른 게 아니라, 그래서 그래요.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제 결정을 이해하실 수 있게 되시거나, 용서하실 수 있게 되시는 날이 온다면 언제고 편히 연락 주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정준이, 다시금 인사를 해 보이고는 덧붙였다.
“그냥 이 말씀 드리려고 왔어요. 몸 건강히 잘 다녀올게요.”
이윽고, 이정준이 가게를 나서려던 찰나. 막 주방 안에서 나오신 어머니가 이정준을 발견하고는, 황급한 걸음으로 따라나오기 시작했다.
“정준아! 정준아!”
이내 이정준의 아버지가 “쯧.” 하고 혀를 차보인 뒤, 그런 어머니를 질책하듯 이죽거리는 투로 말했다.
“뭐하러 나가? 제 풀에 지치면 돌아오겠지.”
“당신, 정말!”
격양된 투로 말해 보인 이정준의 어머니가, 엷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너무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대체 왜 그래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 지도 모르는 와중에···.”
“됐어, 그만해.”
짤막하게 말해 보인 이정준의 아버지가, 미간을 잔뜩 좁힌 채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 거지. 어디 한 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해봐. 마냥 곱게 오냐오냐 해주며 키웠더니,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말이야.”
“당신이야말로 그만하세요! 아직 스무살도 안 된 애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데, 왜 자꾸···.”
“정 신경 쓰이면 당신이 내일 만나 보든가. 타지 나가려면 준비 단단히 해둬야 할 텐데, 거처는 알아봐뒀는지. 쟁여둔 여윳돈은 있는지 물어보고. 어차피 얼마 안 지나고, 제 풀에 지쳐서 돌아올 텐데 뭘 그렇게 걱정해?”
말을 마친 이정준의 아버지가, 이죽대는투로 덧붙였다.
“그래도 제 할말은 똑부러지게 잘 하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장부를 챙겨들며, 신경질적인 투로 재차 말했다.
“거기 가만히 서서 뭐해? 정리 끝났으면 들어가서 자야 내일 또 장사하지.”
“네? 네, 그래요. 들어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