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78
78
Chapter21 – 모두의 집착 (1)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음 날 아침. 즉, 맨해튼으로 돌아가야 하는 출국일 아침이 밝았다.
아버지께서 직접 공항에 데려다주셨고, 어머니가 동행하셨다.
“지금 곧장 돌아가셔서 도착하시는 대로 곧장 오픈 준비 시작한다 치더라도, 꼬박 정오 지나서야 손님 받을 수 있겠는데요?”
“뭐, 어쩌겠어? 오늘은 느지막이 점심시간 지나고 나서 열든가 해야지.”
아버지께서 무심한 투로 건네 보인 말에, 어머니께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말씀하셨다.
“그래, 맞아. 앞으로 족히 몇 달은 우리 아들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볼 텐데 장사가 무슨 대수냐?”
딱딱하고 불편한 공항 의자에 나란히 앉은 채, 한참에 걸쳐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따금 필상의 얼굴을 알아본 이들이 다가와서는 사인이나 사진 촬영을 요구했고, 그럴 때면 부모님은 세상을 다 가지기라도 한 양 뿌듯해 하시기 일쑤였다. 웃음기 탓에 연신 씰룩대는 입매를 하신 채, ‘이야, 우리 아들이 확실히 유명하긴 한가보다.’ 하는 등의 너스레까지 떨어가시며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이 제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반사적으로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였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아무래도 이제 슬슬 들어가서 절차 마치고, 탑승대기 해야 할 것 같아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어머니께서 나직이 말씀하셨다.
“그래, 아들. 응원할게. 잘하고 와.”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아무리 바빠도 끼니 거르지 말고.”
하나같이 애정이 잔뜩 서려 있는 몽글몽글한 말들이었다. 이내 필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인 뒤, 곧장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행여나 떠나는 걸음이 무거워질까 싶은 마음에, 최대한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써가며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나갔다.
*
그로부터 장장 14시간가량이 더 흐른 뒤에야 비행기에서 내려설 수 있었다. 비로소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맨해튼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자정이 다 되었기 때문인지 바깥은 마냥 어두컴컴했고, 공항 내부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풍길 지경이었다.
이윽고, 출국장을 빠져나가기 직전. 필상이 잠시 제 자리에 선 채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단연 멜리를 비롯한 빌리 반 측의 직원들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제작사인 아메리칸 테이스트 측 카메라 역시 함께 대기하고 있을 게 불 보듯 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필상!”
출국장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말끔한 ‘*오피스 룩’(*Office Look) 차림의 멜리가 한껏 반가운 투로 맞아주었다. 그런 멜리의 바로 곁에는 담당 리포터인 토니가, 큼지막한 카메라를 제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고 말이다.
“멜리, 오랜만이네요.”
“그러니까요.”
한차례 가벼운 포옹을 나눈 뒤, 곧장 공항을 빠져나와서는 대기하고 있던 벤츠 사의 차량에 올라탔다.
“필상, 미안하지만 바로 일 이야기를 꺼내도 괜찮을까요?”
“얼마든지요.”
“오늘은 호텔 체크인을 마치신 뒤에 푹 쉬시는 게 좋겠네요.”
“반가운 이야기네요.”
이내 멜리가 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A4용지 한 장을 가볍게 살랑살랑 흔들어가며 답했다.
“하지만, 오늘 미리 각오를 다져두시는 편이 좋을 거예요. 내일부터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필상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 정도예요?”
“리모델링 공사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휴가를 떠났던 직원들도 전부 돌아왔어요. 말 그대로, 모든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일을 시작하시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죠.”
멜리가 늘어놓은 말과,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고 있는 뉴욕 시의 풍경이 조화를 이루며 기묘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뭐랄까? 마치 행복한 꿈속을 거닐다가, 잠에서 깨어나며 현실로 돌아온 것만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일순 잊고 있던 중압감이 해일처럼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지도 모를 만큼 엄청나게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이내 멜리가 차량 뒷좌석 한 편에 놓여있던 두툼한 서류봉투를 건네주며 덧붙였다.
“이번에 파우스트 ‘홀 매니저’ 직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인적사항 및 이력이 기록되어 있는 서류들이에요. 되도록 오늘 밤 주무시기 전까지 검토를 끝내두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멜리,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분명 오늘은 호텔 체크인을 마친 뒤 푹 쉬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한차례 “이런···.” 하고 중얼거려 보인 멜리가, 손에 쥔 펜 끄트머리로 제 아랫입술을 지그시 눌러가며 능청스레 답했다.
“서류 검토 정도의 업무는 휴식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판단착오였던 것 같네요.”
이내 필상이 못 이기겠다는 듯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어쨌든 손에 쥔 봉투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일’이라는 이름의 토네이도가 일 년 365일 내내 휘몰아쳐 대고 있는. 또, 지옥 같은 스케줄이 기다리고 있는 스산한 도시 맨해튼으로 돌아왔음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을 듯했다.
*
그 날 필상은 해가 뜰 때까지 잠들지 못했다. 다름 아니라, 홀 매니저 직에 지원한 지원자들의 이력서 검토 작업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던 탓이었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또 몬스터 에너지 드링크를 쏟아붓다시피 들이켜가며 억지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몸은 깨어 있는데, 정신은 죽어있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어쨌든, 그런 노력 덕에 아침 해가 뉘엿뉘엿 떠오를 무렵에는 자그마치 스물 여덟 명에 달하던 지원자를 세 명으로 추려낼 수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검토 작업을 마친 뒤에는 쇼파에 앉은 채 쪽잠을 잤다. 아침 여덟 시에 접어들자 알람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또다시 삼십 분가량이 흘렀을 무렵에는 멜리가 호텔 룸 안에 발을 들였다. 한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모닝커피 한 잔을, 또 다른 한 손에는 토핑이 상당히 풍성해 보이는 샌드위치 한 개를 든 채로.
물론, 아메리칸 테이스트 측의 카메라 한 대 역시 그녀의 뒤를 들어왔고 말이다.
“필상, 시차 때문에 잠을 설치기라도 하신 거예요? 안색이 많이 초췌하신데요?”
“시차 때문은 아니고 서류 검토 덕분에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죠.”
힘없는 투로 답해 보인 필상이 걸러진 세 지원자의 서류를 멜리에게 건네주고는, 다시금 샌드위치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는 우적우적 씹어가며,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저녁 중으로 면접 스케줄을 픽스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이야기가 그리 길어질 것 같지는 않으니, 30분 간격으로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의자 등받이 부분에 걸쳐두었던 제 정장 외투를 챙겨 들며 재차 말문을 열었다.
“그럼 파우스트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해보러 갈까요?”
*
“필상, 어때요?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필상이 파우스트 안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크리스가 다가와서는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건네 온 물음이었다. 이내 멍한 얼굴을 한 채 파우스트 내부를 살펴보고 있던 필상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정말 미쳤군요.”
정말이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결과였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파우스트 내부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잠이 확 달아나버림과 동시에 귓가에 ‘*러브하우스’(*건축업계의 유명인사들이 일반인들의 집을 리모델링 해주던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이 잔잔히 울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 지경이었으니까.
삼류 ‘펍’(Pub)내지는 성인용품점을 연상시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일류 파인다이닝에 걸맞는. 말 그대로, 탄성을 절로 자아내는 훌륭한 인테리어가 완성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단순미(*單純美)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우선 미묘한 차이가 나는 세 가지 화이트 톤 색상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꾸민 벽면 위로, 여러 명화의 모작들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는 상태였다.
적당한 밝기로 세팅된 등이 전반적인 분위기와 고풍스러움을 한껏 배가시켜주었고,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된 테이블 덕에 통로가 훨씬 넓어진 터라 확 트여있는 공간으로 인해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테이블 위로는 새하얀 식탁보가 깔려있었고, 그 위로는 속이 전혀 비치지 않는 두꺼운 유리 재질로 이루어진 꽃병만 달랑 한 개씩 놓여있는 상태였다. 이는 여백의 미가 갖춘 예술적 우월함을 절절히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평평한 바닥은 에폭시 시공을 거친 덕에 반들반들 빛을 내보였으며, 가장 놀라운 대목은 천장이랄 수 있었다. 조잡한 패턴의 택스가 끼워져 있던 자리에, 미켈란젤로의 명화인 천지창조가 고스란히 옮겨져 있던 것이다.
“파인다이닝이 아니라,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바티칸시국에 위치한 성당으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그려져 있는 곳.)인 줄 알았네요.”
필상의 말에 크리스가 한껏 우쭐해진 투로 답했다.
“장담컨대, 파우스트는 조만간 맨해튼의 랜드마크가 될 겁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크리스가 덧붙였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오늘부로 파우스트는 제 포트폴리오의 맨 앞 장에 들어갈 겁니다. 제 손끝에서 파우스트를 넘어설 만한, 끝내주는 작업물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일단 인테리어 자체는 정말 완벽하네요. 일단 인테리어 덕에 손님이 두 배는 늘어날 겁니다. 설령 음식의 맛이 영 형편없더라도, 손님들께서 분위기에 취해 그러려니 넘겨주실지도 모르겠군요.”
필상이 마냥 만족스러운 기색을 한 채 건넨 말에, 크리스가 필상의 어깨 위에 가볍게 팔을 두르며 답했다.
“저희는 필상께서 건네주신 3D 도안을 그대로 옮겨냈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간을 맞추듯, 몇 가지 세세한 아이디어를 추가한 게 전부죠. 아, 그리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널찍한 주방 팬트리를 두 개로 분리한 뒤 자그마한 와인 셀러까지 완성했습니다.”
“맙소사···.”
“말씀드렸듯 훌륭한 초안이 있었기에, 또 넉넉한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뿐입니다. 어쨌든, 파우스트를 꼭 성공시키셔야 할 겁니다. 그래야 저한테도 파인다이닝 관련 오퍼들이 줄줄이 들어올 테니까요.”
말을 마친 그가 능청스레 윙크를 한 번 해보였다. 이내 필상이 다시금 파우스트 내부를 두리번거려가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토록 완벽한 공간이, 이제 자신의 소유가 될 터였다. 파미유라는 1막이 내려갔고, 파우스트라는 2막이 오를 차례다.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가 셰프 필상의 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한차례 심호흡을 해 보인 필상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르긴 모르더라도, 일단 시작은 완벽한 듯 보였다.
*
정오 무렵, 파우스트의 직원들이 유니폼을 갖춰 입은 채로 홀 중앙에 일렬로 서있는 상태였다. 오너 셰프, 필상과의 업무적으로 정식 대면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인지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실제로 몇몇은 필상이 보여주었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모습들에 약간 위축된 상태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 장내에 존재하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한 번에 가셨다. 다름 아니라, 셰프 집무실과 이어지는 홀 외곽 통로 쪽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의 필상이 모습을 드러냈던 탓이었다.
“다들 모이셨군요.”
꽤 근엄한 투로 나직이 말해 보인 필상이 제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본 뒤에 말을 이었다.
“우선 짤막하게 향후 일정 및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이 꽤 타이트합니다. 향후 한 달에 걸쳐 주방 및 홀 매커니즘에 대한 정비를 마친 뒤, 딱 한 달째에 접어드는 날. 빅토르 위고 씨와 그 지인분들을 초대한 뒤, 식사를 대접해드릴 겁니다. 만약 반응이 나쁘지 않다면 그대로 영업을 개시할 계획이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근처에 있는 홀 테이블 위에 반쯤 걸쳐 앉은 채로, 유려하게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또 영업을 다시 시작하는 날을 기점으로 일주일간, 여러 유명 매거진의 평론가들이 줄줄이 매장에 방문할 겁니다. 여러분들이 TV나, 인터넷, 매거진을 통해 보던 유명 인사들이죠. 쉽게 말하자면, 재 오픈 일주일 안에 파우스트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의 운명이 결정되리란 뜻이죠.”
그 말에 장내에 다시금 술렁임이 일었다. 이내 필상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만약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일단 기존의 파우스트는 완전히 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모든 매커니즘에 변화를 줄 거예요. 냉동 식재료를 쓰지도 않을 거고, 인근 베이커리에서 납품받은 질 떨어지는 빵을 쓰지도 않을 것이며, 오븐에 데우는 게 전부인 엉망진창인 요리를 내지도 않을 겁니다.”
이내 필상이 홀 직원들을 바라보며 재차 덧붙였다.
“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할 겁니다. 홀 직원 개개인에게 도맡아 관리하는 테이블 넘버를 부여하고, 자신의 구역에서 주문한 스페셜 오더 메뉴나 와인 판매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할 겁니다. 개인의 능력에 따라, 월급이 몇 배까지도 차이 날 수 있겠죠.”
그 말에 한차례 큰 술렁임이 일었다. 손님으로 받은 팁조차 빼앗기던 때와 달리,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훨씬 더 높은 급여를 수령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크나큰 동기부여로 다가왔던 탓이었다.
그때, 수 셰프 직을 맡은 브래들리가 제 손을 살짝 들어 올려 보이고는 조심스레 되물었다.
“셰프, 혹시 주방에도 그런 시스템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앞으로는, 매 시즌마다 여러분께 신메뉴 투고를 받을 겁니다. 그중 메뉴로 등재될 요리가 몇 가지나 될지는 모르지만, 만약 메뉴가 등재된다면 투고한 직원에게 판매금액의 5% 가량의 금액을 로열티(Royalty) 형식으로 지급할 겁니다. 만약 투고한 메뉴가 파우스트의 기본 코스 구성으로 등재된다면, 월급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을 인센티브로 수령하실 수도 있겠죠.”
필상의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다시금 높고 낮은 술렁임이 일기를 잠시. 이내 코 위로 주근깨가 빼곡히 수놓아진, 꽤나 앳된 얼굴을 하고 있는 쿡 헬퍼 직원 한 명이 마냥 조심스러운 투로 물음을 건네왔다.
“셰프, 혹시 정식 쿡들만 말씀하신 ‘신메뉴 투고’에 참여할 수 있는 거겠죠?”
한차례 “아뇨.” 하고 무성의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제 어깨를 들썩여 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누구나 투고할 수 있습니다. 번뜩이는 영감은 정식 쿡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니까요. 물론, 쓰레기 같은 요리를 투고했다간 저한테 된통 깨질 수밖에 없겠지만요.”
그 말에 장내 곳곳에서 높고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멜리 역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도입하려는 제도들은 일부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그러니까, 홀・주방의 직원들의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 말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레스토랑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익보다는 명예에 초점을 두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들이 이끌고 있다는 공통점이죠.”
말을 마친 필상이 직원들과 한 명, 한 명씩 눈을 맞춘 뒤 재차 입을 뗐다.
“제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적어도 맨해튼 내에는, 이와 같은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레스토랑이 없을 겁니다. 사실 오너 입장에서는 가시적인 지출이 극대화되는 정책일 뿐이에요. 순이익이 눈에 띄게 줄어드니까요. 그런데도 이 제도를 시행하고자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이내 수 셰프, 브래들리가 제 손을 들어 올려 보이고는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변화를 위해서는 개인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병적인 집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셰프 조엘 르뷔숑의 타임지 인터뷰를 읽으셨군요?”
필상의 물음에 브래들리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겨 보인 필상이 재차 말을이었다.
“제 목표는 삼 개월 안에 파우스트의 적자를 극복하고, 반년 안에 맨해튼 내에서 손꼽히는 일류 파인다이닝으로, 또 일 년 안에 맨해튼 최고의 파인다이닝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병적인 집착이 필요하고, 그런 열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죠. 그래서 이와 같은 제도들이 도입된 겁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제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풀어 보이고는, 살짝 고무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오늘부로 이곳 ‘파우스트’는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의해 돌아가는 공간이 될 겁니다.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를 아예 없애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실력에 따라 대우가 확실히 달라질 것임을 미리 명시해드리는 것뿐이죠. 이제 모든 여건이 달라졌어요. 치졸하게 팁을 빼앗거나 폭언을 일삼는 멍청한 오너 형제도 해고되었고, 복지도 개선되었으며, 진가를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대우받을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한차례 말끝을 흐려 보였던 필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덧붙였다.
“여러분 스스로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마음껏 뽐내보세요.”
그때, 열려있는 창 너머에서 들어온 바람이 실크 재질로 된 커튼을 가볍게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커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수 셰프, 브래들리가 속으로 생각했다.
다 기울어져 가던 레스토랑 파우스트에 새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정말 꿈같은 일이지만, 저 사람과 함께라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파우스트가 맨해튼 내에서 최고라 추앙받는 파인다이닝으로 거듭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윽고, 홀 안으로 우렁차기 그지없는 함성이 울렸다.
“예, 셰프!”
파우스트에 불어닥친 변화의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