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79
79
Chapter21 – 모두의 집착 (2)
파우스트의 직원들에게 전달사항을 간단히 전한 뒤, 브래들리와 함께 곧장 안쪽에 비치된 ‘집무실’로 돌아왔다.
“앉으시죠.”
필상의 말에 쭈뼛대고 서있던 브래들리가, 집무실 중앙에 비치된 쇼파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브래들리.
올해로 스물 아홉살에 접어든 이 어수룩한 인상의 청년은, 기존 파우스트의 수 셰프 직을 역임하던 이였다.
앞으로도 눈에 띄는 큰 실수를 하거나, 도무지 묵인할 수 없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게 될 터였고 말이다.
물론 구인공고를 게시한다면 브래들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실력과, 탄탄한 커리어를 갖춘 인재를 채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쪽이 파우스트의 미래에는 훨씬 더 보탬이 될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럼에도 브래들리를 수 셰프 직에서 내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매일 서너 알가량의 항우울제까지 복용해가면서까지 파우스트에 남아있고자 했던 모습 속에서. 그러니까, 어떻게든 주방에 남아있고자 안간힘을 쓰던 그의 모습이 꽤나 인상 깊었던 탓이었다.
그토록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버텨낼 근성과 독기라면, 언젠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재목이라 판단한 것이다.
“아직도 항울제를 복용 중입니까?”
필상이 넌지시 건넨 물음에, 브래들리가 수줍게 웃어 보이고는 답했다.
“아뇨. 처음에는 서서히 줄이다가 사흘 전쯤부터는 투약을 멈췄어요.”
“다행이네요.”
“여러모로 긍정적이에요. 정신도 맑아졌고, 말도 잘 더듬지 않게 됐죠.”
이내 필상이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실제로 상황이 많이 호전된 듯 보였던 탓이었다. 전보다 말을 잘 더듬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고, 반쯤 풀려있던 눈 역시 사뭇 또렷해진 듯 보였다.
“좋아요, 그럼 이제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해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셰프.”
“사실 당신에게 바라는 게 많아요.”
짧게 말해 보인 필상이, 두 사람 사이에 놓인 협탁 위로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류를 턱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제가 원하는 ‘*수 셰프’(*부주방장)는 레스토랑의 수저 개수까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수 셰프와 업무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공유하길 원합니다. 재고 목록, 주문안내서, 연회행사지시서(BEO), 표준운영절차(SOP), 그 밖에도 경영과 관련된 모든 서류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드릴 예정이죠.”
“맙소사, 에렌과 알폰스 형제가 파우스트를 이끌던 때에는 정말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로군요. 사실 저는 셰프 전용 집무실에 발을 들여본 경험도 손에 꼽을 지경이거든요. 거의 모든 업무는 에렌이 독자적으로 처리했고, 저는 직책만 수 셰프였을 뿐이죠. 이제야 비로소 진짜 수 셰프가 된 것 같은 기분이네요···.”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아마 당신은 파우스트의 직원들 중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될 겁니다. 때로는 저 대신 서류를 작성하거나, 미팅에 참석하거나, 파인다이닝을 지휘해야 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말을 마친 필상이 “하지만.”하고 힘을 주어 말해 보인 뒤, 특유의 진중한 어투로 뒷말을 덧붙였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죠. 아마 저는 당신에게만 유독 엄격해질 겁니다. 대부분의 셰프들이, 자신들의 수 셰프에게만 엄격한 것처럼요. 만약 자신이 없다면 미리 말씀하세요.”
“아닙니다, 자신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딱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그사이에 파우스트에 존재하는 포크와 나이프의 개수까지 전부 다 외워둬야 합니다.”
이내 필상이 기다란 손끝으로, 협탁 위에 쌓여있는 서류를 가볍게 ‘톡.’ 두드려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경영 관련 서류에 기재되어 있는 내용과 숫자들, 직원들의 근무 스케줄 표, 투자자와의 관계, 콜아웃이 가능한 주변 업체, 레스토랑의 현황과 향후 계획, 제 개인적인 외부 일정들까지 전부 다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 말에 입안 가득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 보인 브래들리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우렁차게 답했다.
“예, 셰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 번 주억거려 보인 필상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그럼 이제 이 빌어먹을 레스토랑의 엉터리 같은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은데···.”
말끝을 흐려 보인 필상이, 수북이 쌓여있는 서류를 뒤적이기 시작하더니 세 개의 클립보드를 따로 분류해냈다.
재고 목록, 거래처 관련 사항이 기록된 서류, 거래 장부 등. 모두 하나같이 ‘식자재 매입’과 관련된 서류들이었다.
“누누이 말씀드렸듯, 이제 파우스트의 주방에서 어떻게 요리해도 도무지 맛을 낼 수 없는 냉동 식재료를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업체를 끼지 않으면 구매하기 힘든 희귀한 식재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다 당일 새벽에 직접 매입해 올 생각입니다.”
“예? 조금 비효율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들로부터도 충분히 질 좋은 식자재를 납품받을 수 있을뿐더러, 맨해튼 내에는 당일 새벽에 식재료를 매입해 올 만한 곳이 마땅치 않기도 하고···.”
“설마 그걸 핑계라고 대는 건 아니죠? 차로 한 시간 거리인 브롱스 내에 *헌츠포인트(*야채, 청과, 수산물, 육류를 고루 취급하는 대규모 시장)가 있잖아요? 아마 반경 10마일 내에 존재하는 모든 파인다이닝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식재료를 매입 한다고요.”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이내 필상이 재차 입을 뗐다.
“이제 다음 안건인데 주방 인력을 ‘*핫 섹션’(Hot Section:따뜻한 요리를 담당하는 파트), ‘*콜드 섹션’(*Cold Section:차가운 요리를 담당하는 파트), 부처(Butcher:육류, 생선, 해산물 등의 기본적인 손질을 담당하는 파트), ‘*베이커리’(*Bakery:제빵을 담당하는 파트)까지. 모두 네 가지로 분류할 계획입니다. 그 안에 다시 한 번 세분화를 거칠 예정이고요.”
“베이커리요? 빵까지 직접 굽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파네라 베이커리(*미국, 캐나다 각지에 분포된 대형 베이커리)에서 구입한 빵을 렌지에 데운 후 서비스하거나, ‘*지지스’(미국 내 컵 케이크 프렌차이즈)에서 구입한 케이크를 디저트 메뉴로 내놓겠다는 건가요?”
“아, 아뇨. 그건···.”
“브래들리, 우리가 파우스트를 당당히 ‘파인다이닝’이라 소개하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피클 한 조각까지도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요리사가 접시 위에 담아내야 하는 건 단순한 요리가 아니에요. 스스로의 자부심과 정체성까지 모두 담아내야 하죠. 파네라 베이커리에서 구입한 빵을 담아낸 접시 위에서, 파우스트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브래들리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 하고 말해 보인 뒤, 재차 우물쭈물 마냥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파우스트가 정말 엉망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간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실은 저도 기존의 방식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 터라, 여전히 게을러 빠진 생각만 하고 있거든요. 조금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셰프께서 제시하는 개선 방안을 들을 때마다 내심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도 했고요.”
“말씀 잘하셨습니다. 맞아요. 그 누구든 우리를 봤을 때, ‘저 사람들은 대체 어째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라는 생각을 품게끔 만들어야 해요. 파인다이닝이라는 거룩한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그런 생각이 절로 들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필요 이상의 노력을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을 때, 더 나은 질을 위해 병적으로 집착할 때, 비로소 파우스트는 파인다이닝이라 불리게 될 겁니다. 병적인 집착, 그게 파우스트의 콘셉트에요.”
말을 마친 필상이 싸늘한 투로 “아시겠습니까?” 하고 되묻자, 브래들리가 결연한 의지가 서린 눈을 한 채 답했다.
“예, 셰프!”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다큐멘터리 제작사 측 리포터, 토니가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레카···.”
자신의 눈앞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던 탓이었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어린 셰프가, 다 기울어져 가는 레스토랑을 꽤나 그럴싸한 곳으로 바꿔놓는 과정 속에서 은은하게 엿보이는 저력과 속에 감춰진 견고한 마음가짐.
만약 결과가 성공적이라면, 이번 다큐멘터리는 꽤나 기록적인 여파를 발생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필상이 재차 입을 뗐다.
“어쨌든 지금의 근무 방식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에요. 모든 인원이 매일 12시간을 근무하고 있을뿐더러, 휴무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죠. 이래서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을 겁니다.”
“주방 인력을 충원하시겠단 말씀이신가요?”
“네, 맞아요. 주방 인원을 열 명 정도 더 충원할 예정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주방을 네 개의 섹션으로 분리하고, 각 섹션당 한 명씩. 풀 타임, 즉 하루 내내 근무하는 관리자 급 인원을 배치할 거예요.”
“나머지 직원들은요?”
“본인이 풀 타임 근무를 희망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그런 게 아니라면 오프닝・클로징 파트로 나눠 근무하게 될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오전・오후로 나누는 셈이죠. 스스로의 일을 사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보장된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주의거든요.”
말을 마친 필상이 제 손목시계를 힐끔 내려다보고는 덧붙였다.
“오늘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네요. 첫 번째 숙제입니다. 내일 오전까지 어떤 직원을, 어느 섹션에 배치하는 게 좋을지 서류를 작성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각 직원이 해당 섹션에 배치된 이유까지 함께 첨부해서요.”
“예, 셰프.”
“아, 그리고 다음 주에 한국에서 제 직원이 한 명 올 겁니다. 주방 직원들에게도 전달해 두는 게 좋을 거예요. 쿡 헬퍼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장 정식 쿡으로 시작할 예정이죠.”
이내 브래들리가 은근한 경계심이 서려 있는 투로 되물었다.
“미국까지 데려오실 정도라면, 실력이 상당히 뛰어난 요리사인가 보군요?”
“물론.”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답했다.
“저와 함께 단둘이서 매일 200불 이상의 일 매출을 기록하던 원 테이블 레스토랑의 주방을 이끌어나가던 친구죠. 비록 주방 근무 인원이라고 해봤자 저와 그 친구, 단 둘뿐이었지만 수 세프이기도 했고요.”
“흠, 그렇군요···.”
“숨 가쁜 주방에서 단련된 친구예요. 센스가 상당히 뛰어나고, 노력이 몸에 배어 있는 친구죠.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몇 달 내로는 브래들리의 자리를. 그러니까, 수 셰프라는 직책을 위협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니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적당한 경쟁심을 유발하고자 건넨 말에, 멍하니 두 눈을 끔벅여대고 있던 브래들리가 나직이 답했다.
“예, 셰프.”
“좋아요.”
말을 마친 필상이 집무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브래들리가 다급하게 “저, 셰프.”하고 말해 보이고는 재차 물음을 건넸다.
“혹시 그 요리사분의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네?”
“다름 아니라, 간단히 서칭이라도 해보려고요.”
말을 마친 그가 멋쩍은 투로 덧붙였다.
“경계심이라기보다는 새로 맞이하게 될 동료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흠, 글쎄요?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잠시 고민하던 필상이 나직이 답했다.
“뷰티풀 준(Beautiful June).”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재차 덧붙였다.
“사실 풀 네임은 ‘이정준’인데, 저는 그를 뷰티풀 준이라고 부릅니다. 다들 그렇게 부르시면 될 것 같네요.”
말을 마친 필상이 “크큭···.”하고 웃음을 흘려 보인 뒤, 곧장 집무실을 나섰다. 이내 필상이 열고 나선 집무실 문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던 브래들리가, 한 손으로 제 턱을 쓸어가며 중얼댔다.
“뷰티풀 준이라, 특이한 닉네임이네. 혹시 엄청난 미남인 건가···.”
*
그 뒤로 보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버렸고, 그 사이 파우스트는 꽤나 많은 변화를 거친 듯 보였다.
우선 몹시 유능한 홀 매니저를 채용했다. 베니라는 이름의 서른다섯 살 여성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장한 부유층 자제 특유의 우월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항상 자신감 넘치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했으며, 느릿한 말투에서는 일련의 우아함이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녀는 다년간 미국 내 유명 호텔 브랜드인 골든 팰리스에서 근무했던 바 있으며,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인다이닝 ‘*프레데릭’(*Prederick)에서도 이 년가량 근무했다고 했다.
그녀를 채용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베테랑답게 일 처리가 아주 능숙했으며, 맡은 바 업무에 있어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입사 첫날에는 기존의 조잡한 고객 응대 메뉴얼을 바로잡고 테이블 세팅 방식을 손봤으며, 둘째 날부터는 홀 직원들에게 파우스트 내에서 취급하는 와인의 품종과 유래. 또 조화를 이루는 음식 등에 대한 사항을 숙지시켰다.
출근 셋째 날에는 고객 응대 메뉴얼을 아예 새롭게 작성했으며, 심지어 넷째 날에는 전문 바리스타를 따로 채용해달라는 안건을 내놓기도 했다.
‘셰프께서 식사 후에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가치에 대해 알고 계신다면, 제 요구를 받아들여 주실 거라고 믿어요.’
덕분에 전문 바리스타 인력 두 명을 따로 채용한 것은 물론이고, 꽤 값이 나가는 편에 속하는 고가의 커피 머신을 홀 한 편에 들여놓기까지 했다.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홀의 분위기와, 서비스의 퀄리티가 점점 더 격상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물론, 변화를 거친 것은 단연 홀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주방 인원 역시 여덟 명가량이 충원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빈약한 베이커리 섹션을 담당할 전문 제빵사 두 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뿐 아니라, 모든 직원이 각자 도맡은 섹션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를 잔뜩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상태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파우스트가 지반을 다잡는 데 성공했을 무렵. 아니, 어느 정도 견고한 형태를 갖추는 데 성공했을 무렵.
이정준이 맨해튼에 도착했다.
– 우선 거처가 마련되기 전까지, 당분간은 셰프님이 묵고 계신 호텔에 투숙할 계획이에요. 체크인 마치고, 짐 다 풀어놓고, 지금 파우스트로 가는 중이에요.
“그래요. 마땅한 곳이 없으면 브루클린에 있는 직원 숙소로 들어가셔도 괜찮을 것 같고, 월세가 부담되면 제 객실에서 함께 지내셔도 돼요.”
–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직원 숙소는 영 불편할 것 같고, 셰프님께 더는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리고 월세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시기로 한 상황이기도 하거든요.
그때, 수화기 너머의 이정준이 돌연 “어?” 하고 중얼거려 보인 뒤 말을이었다.
– 어라? 보니까, 지금 막 도착한 것 같은데요?
“네, 마중 나갈 테니 바로 들어오시면 돼요.
이내 필상이 전화를 끊은 뒤, 곧장 집무실 바깥으로 나섰다. 복도를 따라 걷고, 모퉁이를 돌아 홀에 첫발을 내딛던 찰나.
쭈뼛쭈뼛 선 채로, 홀 매니저 베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정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타지에서의 재회이기 때문인지, 괜히 반가움이 배가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정준 씨!”
“셰프님!”
이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서는 한차례 가벼운 포옹을 나누었다.
“정준 씨,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아뇨, 불러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죠.”
한차례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베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주방 직원분들 좀 불러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 직원들이 하나둘씩, 경계심 어린 표정을 한 채 슬금슬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브래들리를 먼저 불러서는, 간단히 소개를 해주었다.
“이쪽은 수 셰프인 브래들리에요. 아주 유능한 친구죠. 그리고 이쪽은 저와 함께 파미유에서 일했던 정준. 전에 몇 번 말씀드렸죠?”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브래들리가 이정준에게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이윽고, 이정준이 브래들리의 손을 맞잡던 찰나. 브래들리가 꺼낸 말 탓에, 이정준의 두 눈이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이 ‘뷰티 준’(Beauty June)이로군요.”
“예? 뷰티 준···?”
이내 다른 주방 직원들 역시 이정준에게 다가와서는, 자신에 대한 소개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 역시 하나같이, 이정준을 ‘뷰티 준’이란 닉네임으로 불러댈 따름이었고 말이다.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정준이 고개를 슬쩍 돌려서는, 배신감이 역력히 드러나는 눈빛으로 필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면, 필상은 딴청을 피워대고 있을 따름이었고 말이다.
이로써, 파우스트의 주방을 함께 이끌어 갈 마지막 ‘어벤져스 멤버’가 도착한 셈이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보름이란 시간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흘렀다. 정말 겉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그렇게 어느덧, 예정되어 있던 실질적 오너 빅토르 위고와 그의 일행들이 방문하기로했던 예정일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