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8
8
Chapter3 – 스포트라이트 (2)
3.
엇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눈을 뜨면 곧장 학교에 갔고, 하교 후에는 식구백반으로 향해 부모님의 가게 일을 거들었다. 근무 중 잠깐이라도 틈이 날 때면 공부를 했으며, 또 영업이 끝난 뒤에는 주방에 홀로남아 감을 되찾기 위한 훈련에 매진했다.
그 사이, 시간은 마치 급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 마냥 빠르게 흘러갈 따름이었다. 하루, 다시 하루, 또 하루.
그리고, 어느덧···.
‘이제 앞으로 열두시간쯤 남은 건가?’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1차 현장예선까지, 고작 열두 시간 가량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접어들어 있는 상태였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돌려서는, 퇴근 전 마지막으로 주방상태를 점검해보고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흠, 이제 슬슬 말씀드려도 되겠지?’
필상은 아직 아버지께 대회 출전사실을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딱히 다른 이유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고, 미리 말씀드리면 가뜩이나 바쁘신 아버지께서 괜히 신경을 기울이시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탓이었다.
“아들, 이제 슬슬 들어가자.”
“저, 아버지.”
한차례 “응?”하고 되물어 보인 아버지께서,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녀석, 오늘도 연습하다가 들어오려는 거구나? 재미 붙이고 열심히 하는 건 좋다만 그래도 쉬엄쉬엄해.”
“아뇨, 그런게 아니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이내 필상이 괜히 헛기침을 몇 번 해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저 사실 내일 요리대회에 나가요.”
그렇게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가게 안으로 마냥 무거운 정적이 내리앉기를 잠시.
이내 얼어붙기라도 한 것 마냥, 선 자리에서 멍하니 두눈만 깜빡여대던 아버지께서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을 뗐다.
“내일···?”
짤막하게 “네.”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재차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네. 내일이 ‘1차 현장예선’이거든요. 오전 열시까지 한원대학교로 가야해요.”
“허허, 녀석··· 미리 언질이라도 한 번 해주지 그랬어? 도움 줄 만한 일이 있었으면, 어떻게든 도왔을 텐데.”
“네. 그럴 것 같아서 미처 말씀 못 드렸어요. 가뜩이나 식당일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잖아요? 미리 말씀드리면 괜히 이래저래 신경쓰실 것 같아서요.”
말을 마친 필상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재차 말했다.
“진즉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그 말에 정순오가 아무런 말없이 필상을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녀석···.’
일순 요 근래 들어 필상이 보여주었던 여러 모습들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식당에 나와, 앞치마를 둘러맨 채 주방에 들어서며 환히 웃던 모습이. 짬이 날 때면 주방 구석 식용유 통 위를 꿰차고 앉은 채로, 한껏 집중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겨대던 모습이. 또 영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때, 자신은 홀로 남아 이런저런 연습을 하다가 들어가겠노라 말하던 모습이···.
그런 아들을 보며 이따금씩은 ‘혹시 저러다 열정이 너무 빠르게 고갈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하나, 이제 그런 걱정은 고이 접어둬도 될 듯 싶었다.
이는 순간의 변덕 탓에 손바닥 뒤집 듯 쉽게 뒤집혀버릴 태도가 아니리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비록 직접 속내를 털어놓거나 하지는 않았다지만, 아들은 이미 요리를 꿈으로 삼은 듯 보였으니까.
이내 정순오의 얼굴 위로 서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녀석, 다 컸구나. 준비는 단단히 해뒀고?”
“그럼요, 물론이죠.”
필상이 제 가슴팍을 퍽퍽 두드려가며 의기양양한 투로 답하자, 아버지께서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그래, 잘 해봐. 응원할테니까.”
그리고는 재차 되물었다.
“아들, 오늘도 더 남아있다가 올 거지?”
“아뇨, 그냥 일찍 들어가서 쉬려고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다시금 덧붙였다.
“이제와서 벼락치기 해봤자 크게 달라질 게 있겠어요? 최선을 다해 준비했으니 컨디션 관리 해둬야죠.”
“이야, 정말 준비 단단히 해뒀나 보네?”
나직이 되물어보인 아버지가, 필상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가며 재차 말했다.
“아침 열시까지, 한원대학교라고 했지? 데려다줄게.”
“예? 아녜요. 혼자 가도 괜찮아요.”
“차로 가면 금방인 걸, 지하철・버스로 가면 한참 돌아가야 되잖아? 데려다줄테니까 그냥 그렇게 해.”
4.
집으로 돌아온 정순오가 간단히 세안과 양치를 마친 뒤, 곧장 침실로 향했다. 행여나 잠든 아내가 자신 탓에 깨지는 않을까, 마냥 조심스레 침대 위에 몸을 뉘이고 있던 찰나였다.
“금방 정리하고 들어오실 줄 알았더니,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홀 마감을 마친 뒤, 먼저 집으로 돌아왔던 권순향이 나직이 건네온 물음이었다.
“깜짝이야, 잠든 거 아니었어? 그냥 필상이 녀석이랑 잠깐 얘기 좀 하다보니 좀 늦었어.”
“그래요? 갑자기 무슨 얘기?”
“필상이 녀석 말이야, 뜬금없이 내일 요리대회에 나간다네.”
이내 권순향이 침상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되물었다.
“예? 요리대회요? 갑자기 웬 요리대회···?”
“그러니까 말이야.”
한차례 피식 미소를 지어보인 정순오가,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괜히 신경쓸까봐 미리 말 안했다던데, 마냥 철부지인줄 알았더니 대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하여튼, 우리 아들. 속도 깊다니까? 이럴 때 보면 저를 빼다 박지 않았어요?”
고개를 몇 번 내저어 보인 정순오가, 아무런 말없이 뒤돌아 눕던 찰나. 권순향이 그런 정순오의 옆구리를 손끝으로 ‘쿡, 쿡.’ 찔러가며 재차 물었다.
“여보, 그런데 혹시 입상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아무리 그래도 입상은 힘들려나? 하긴. 아무래도 당신 어깨너머로 엿보다가, 근래 들어 잠깐 배운게 전부니까 입상까지는 힘들 것 같기도 하고···.”
“하이고, 이 사람아. 그걸 말이라고 해? 요리대회 나오는 애들은 숨바꼭질 할 때부터 칼 움켜쥐고, 화구앞에 섰던 애들일 텐데 어디 경쟁이나 되겠어?”
권순향이 자못 아쉬운 것인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흠, 역시 그렇죠?”하고 되묻던 찰나. 정순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사뭇 진중한 투로 말을이었다.
“입상까지 바라면 그게 괜한 욕심이지, 뭐야? 목표가 생겼다는데 의의를 둬야지.”
요리에 대한 흥미가 커지고 실력이 차츰 늘어갈수록, 자신의 요리와 다른 사람의 요리를 비교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홀로 요리대회 모집공고까지 찾아가며 참가접수를 했을 테고 말이다.
어쩌면 내일, 아들은 꽤 높고 두터운 ’현실의 벽’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행여나 그렇게 되더라도 너무 크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도록, 대회장으로 데려다주는 길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둬야겠다고 결심했다.
5.
다음 날, 아침. 필상은 아버지의 트럭을 얻어탄 채, 서울시 전국 요리대회의 1・2차 현장예선이 치러질 장소인 ‘한원대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한 ‘영 셰프’(Young Chef) 부문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일까? 모든 대회 일정이 토・일요일로 맞춰져 있는 상태였다. 이번 주말에는 1・2차 현장예선이, 다음주 주말에는 본선과 결선이 치러질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아들. 예선도 두 번에 걸쳐 치르고, 본선에, 결선까지 따로 있는 걸 보면 꽤 규모가 큰 대회인가봐?”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입상자는 후원단체로 선정된 대학교 조리학과 특채로 입학할 수도 있다던데요?”
물론,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행여나 이번 대회에서 원하는 결과 거두지 못하더라도 너무 크게 낙심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제대로 요리 배우기 시작한지 아직 두 달도 안 됐잖아?”
“그럼요. 당연하죠. 그렇지 않아도 만에 하나 좋은 결과 거두게 되면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하고, 설령 낙선하게 된다 해도 좋은 경험한 셈치고 더욱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한차례 “그래, 잘 생각했네.”하고 답해 보인 정순오가, 나긋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아들, 혹시 ‘인생은 자전거 타기를 닮았다.’는 말 알아?”
“아뇨, 처음들어 봐요.”
이내 정순오가 차창 너머를 응시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자전거를 타는 것도, 인생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페달을 밟아야 하니까. 그런데 또 너무 빨리 달리다보면 방향조절이 어려워지고, 금새 제 풀에 지치기 마련인 거지. 중요한 건 페이스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적당한 속력으로, 멈추지 않고 꾸준히 페달을 밟아나가는 거야.”
끼이익, 한원대학교 본관 앞에 다다른 트럭이 앓는 소리를 내가며 멈춰서던 찰나. 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려, 필상의 두눈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먼 훗날에는 목표했던 지점에 도착해 있지 않을까?”
문득, 전생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오로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미친듯 페달을 밟아댔으나, 결국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한 채 포기해야 했던 전생에서의 삶이···.
생각이 깊어진다.
“좋은 말이네요.”
“기지?”
짤막하게 되물어 보인 아버지께서 “잠깐만.”하고 말해보인 뒤, 트럭 조수석 뒤편의 수납공간에서 빳빳한 재질의 가죽가방 한 개를 꺼내서는 건네주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나이프 키트’(*Knife Kit:전문가용 조리도구 가방)야. 진즉에 한 세트 맞춰주려고 했었는데, 피일차일 미루다 이제야 선물하네.”
“예? 언제 사오신 거예요···?”
“그래도 명색이 요리대회 출전한 요리사인데, 개인 조리도구쯤은 가지고 있어야하지 않겠어? 오늘 새벽에 급하게 가서 사온 거야. 그러니까, 대회 출전한다고 진즉에 말해줬으면 좀 좋았겠냐?”
필상이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입술만 옴싹달싹대고 있던 찰나, 아버지께서 주먹을 내밀어 보이며 말씀하셨다.
“아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필상이 제 주먹을 맞대보이며 답했다.
“전부 다 베어 넘겨야죠, 슥! 샥! 쇽!”
“뭐, 그것도 나쁘진 않네···.”
“반응이 영 시원치않은 것 같은데, 그냥 무나 썰까요?”
필상이 장난스러운 투로 건넨 물음에, 이내 정순오가 한차례 휘휘 손짓을 해보이고는 덧붙였다.
“됐으니까, 얼른 들어가봐. 그렇게 늦장부리다 지각할라.”
“옙.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럭에서 내려선 필상이 꾸벅 인사를 해보이고는, 한원대학교 본관을 향해 터벅터벅 건물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 본관 건물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점점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떨린다.
누군가에게 제 요리를 평가받는 게 두려워 떨고 있는 게 아니었다.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는, 늘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해 음식을 만들곤 했으니까.
손님들에게, 셰프에게, 투자자들에게, 동료들에게, 평론가에게, 자신에게,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요리를 평가받는 게 그가 해야 할 일이었고 직업이었으니까.
만약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체질이었더라면, 파리 현지의 레스토랑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우습게도, 필상은 평가받는 것을 몹시 즐기는 특이체질이었다. 누군가가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또 승부욕이 끓어오르며, 피 대신 용암이 흐르는 것 같은 짜릿한 느낌에 휩싸이곤 하는 특이체질.
끼이익-.
이윽고, 필상이 1차 현장예선이 치러질 본관 건물 안에 첫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