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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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2 – 화려한 데뷔 (2)
입안에 머금고 있던 브루스케타를 삼켜낸 안톤 쉬거 셰프가,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흘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정말이지 완전히 속아버렸군요···.”
첫 번째 에피타이져 메뉴로 서비스된 브루스케타는 여느 레스토랑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법한 고루한 요리였으며, 손님이 자그마한 스푼을 손에 쥔 채 직접 토핑을 겹겹이 쌓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꽤 불친절한 요리’이기도 했다.
둥그스름한 원형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바게트, 그리고 접시 한 귀퉁이에 올려져 있는 아기자기한 형태와 고급스러운 재질의 종지 안에 담겨있는 절인 연어와 소량의 캐비어에 이르기까지.
비록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하여 플레이팅에 신경을 쓴 느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브루스케타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는 영 못마땅하게 여겨지던 요소들을 모두 잊을 수밖에 없었다.
절인 연어가 뿜어내는 딜의 은은한 향과, 비트의 달짝지근한 향이 입안을 확 감싸주었다.
질 좋은 연어는 진눈깨비처럼 뭉근하게 녹아내리는 것 같은 희한한 식감을 과시했으며, 군데군데 숨어있던 잣과 비트는 상반되는 식감을 연출해주는 것은 물론 특유의 고소함과 달콤함으로 균형을 맞춰주기도 했다.
이는 애초에 ‘기본’부터가 확실히 다 잡혀 있는 견고한 요리였다. 직접 구운 듯 보이는 바게트는 앞서 서비스된 식전 빵과 마찬가지로, 제빵사가 오븐 앞에서 거쳤을 고뇌와 좌절의 시간이 느껴지는 훌륭한 퀄리티를 자랑했다.
적당한 수분율 덕에 완성된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속살에서는 치즈 특유의 꼬릿하고 고소한 향을 머금고 있었으며, 척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딱딱한 겉면은 가파른 절벽을 상상하게끔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대목은 이 모든 향과 맛을 징검다리처럼 연결해주는, 가짜 캐비어랄 수 있었고 말이다.
영락없는 캐비어의 외형을 한 자그마한 크기의 검은색 알갱이들은, 이와 가볍게 맞닿기 무섭게 ‘톡!’하고 터지며 그제야 정체를 드러냈다.
이는 ‘*젤리피케이션’(*Jellification:겔화 기법) 기법을 이용해 만들어 낸 알갱이 형태의 트러플 발사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얇은 막이 벗겨지며 안에 갇혀있던 발사믹 오일이 혀를 촉촉이 적시던 순간. 트러플 특유의 깊고 미세한 풍미와 더불어, 발사믹 식초가 지닌 산미가 은근한 정도로 휘몰아쳤다.
안톤 쉬거 셰프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혀끝에 남아있는 여운을 만끽하고 있던 찰나. 냅킨으로 제 입매를 스윽 닦아내 보인 스테판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제 의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맛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해야 기교를 과시할 수 있을지만 고민한 요리인 것 같군요.”
말을 마친 그가, 다시금 제 몫의 바게트 위에 토핑을 얹어내기 시작하던 찰나. 안톤 쉬거 셰프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나직이 되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예···?”
“방금 한 말 말일세.”
여태껏 마냥 온화한 기색만 감돌고 있던 안톤 쉬거 셰프의 눈빛이 사뭇 날카로워진 듯 보였다. 스테판이 선뜻 무어라 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옴짝달싹 대고 있던 찰나, 안톤 쉬거 셰프가 손에 쥔 스푼 끄트머리로 접시를 ‘톡, 톡.’ 두드려가며 말을이었다.
“만약 조화를 이루지 못했더라면 한낱 ‘기교’에 불과했겠지.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모든 재료의 맛과 향이 얇지만 아주 튼튼한 끈으로 촘촘히 이어져 있는 것만 같더군. 심지어 그런 와중에 여러 가지 속임수까지 가미하여, 반전 미를 잔뜩 살려내기도 했고 말일세.”
응대 메뉴얼을 완벽히 숙지한 홀 직원이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루한 메뉴이니만큼, 굳이 별도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은 것이라 예상했으나 애초에 이 시점부터 셰프의 속임수가 시작된 셈이었다.
빵 위에 직접 토핑을 쌓아올리는 내내, 단점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직접 토핑을 쌓아올린 브루스케타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그제야 시야를 차단하고 있던 안대를 벗어 던진 기분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아주 기발하고 현대적인 요리였네. 심지어 브루스케타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봤을 때도 마찬가지일세. 이 브루스케타는 내가 여태껏 맛본 수천, 수백 개의 브루스케타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것 같군. 단순히 창의성이나 독창성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맛’만 놓고 평가했을 때 말일세.”
말을 마친 그가 덤덤한 투로 극찬을 덧붙였다.
“유명 필하모닉의 완벽한 협연을 한입에 맛본 기분이로군.”
그의 말이 끝맺어지던 찰나, 빅토르 위고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스테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리는군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비록 필상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 것까지는 아니라지만, 어쨌든 자신의 사업을 위해 밤낮없이 고군분투하는 필상의 노력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또 실제로 필상이 파우스트의 지휘권을 붙잡은 뒤, 마냥 긍정적인 변화를 잔뜩 겪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로서는 그런 필상을 비하하는 것 같은 뉘앙스의 말을 연신 늘어놓던 스테판을 좀처럼 곱게 볼 수가 없던 것이다.
이내 스테판이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얼버무리듯 답했다.
“으레 있는 일일 뿐입니다. 애초에 요리라는 게 절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항목이니까요.”
그 말에 안톤 쉬거 셰프가 뼈가 있는 말 몇 마디를 덧붙였다.
“옳은 말일세. 그런 성질 덕에 자질이 부족한 몇몇 평론가들이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며, 파인다이닝을 뒤흔들고 셰프의 가슴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거겠지. 이익에 눈이 멀고, 편협한 감정에 심취하여 쓴 글줄 따위로 말일세.”
이는 일련의 경고였다. 외부적인 요인은 모두 배제한 채, 맛으로만 파우스트를 평가하라는 내용의 경고 말이다.
그가 보기에 자신의 제자 스테판이. 혹은 여타 셰프들이 필상에게 보내고 있는 부정적인 시선은, 기형적인 감정에 불과해 보일 따름이었다.
마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요리사답게 말일세. 필상의 독주(獨走)가 끝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방에서 보낸 시간과 필상이 주방에서 보낸 시간의 양을 비교해가며 그의 성공이 시기상조라 목청껏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글쎄?
호기롭던 젊은 날에는 자신 역시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이라지만, 본래 세상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다.
자신과 같은 주방에서 똑같은 시간을 일했으나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종지에는 미슐랭 스타를 몇 개나 거머쥔 이들도 수두룩했으며, 어느 날 매거진을 통해 처음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애송이 요리사가 불과 수년이란 시간 만에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명성을 얻었음을 전해 듣고 좌절했던 적도 있다.
같은 하루를 살더라도, 이틀 치. 혹은 삼 일치의 결과를 만들어내곤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이 보기에 필상은 그런 이였다. 적어도 그의 요리를 단 한 종이라도 맛본 지금은,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천재라는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수식어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추악한 감정을 유발하는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곳 외식업계에는 영원한 영광도, 승자도 없다는 사실로 위안 삼아가며 묵묵히 인내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자신이 그러했듯, 주방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테니까.
자신조차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은 섭리를, 고작 몇 마디 말로 이해시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의 제자만큼은 추악한 감정에 사로잡혀있는 괴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던지기를 희망했을 뿐.
씁쓸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백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웨이트리스의 추천으로 주문받은 화이트와인 역시, 브루스케타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룰 따름이었다.
*
세 사람 모두 접시를 비워냈을 무렵, 곧장 다음 메뉴가 서비스되었다. 다시금 카트를 끌고 다가온 웨이트리스가 우선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접시를 모두 거두어들인 뒤, 세 사람 앞에 각각 한 개씩. 수프 형태의 요리가 담긴 컵 형태의 접시를 내려놓았다.
“에어로케이션(Airocatiom:거품 생성) 기법을 활용하여 조리한 머쉬룸 수프입니다. 기존의 수프와는 사뭇 대비되는 식감이 특징이며, 표고버섯과 트러플을 적절히 배합하여 요리한 메뉴입니다.”
이내 세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아기자기한 외형의 컵 안에 담긴 수프를 뚫어지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앞서 맛본 에피타이져 메뉴보다, 플레이팅에 조금 더 신경을 쓴 느낌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보드라워 보이는 밤색 거품 위로, 묽은 질감의 생크림과 올리브 오일을 일정한 간격에 맞춰 떨어트려 놓은 모양새였다.
중앙부에는 *크루통(*빵을 주사위 모양으로 썰어 굽거나 튀겨낸 것) 몇 조각이 놓여있었고, 그 위로는 얇게 슬라이스 해낸 트러플이 얹어져 있는 상태였다.
“흠, 카푸치노를 연상케 하는 외형이로군요.”
나직이 말해 보인 안톤 쉬거 셰프가 스푼을 집어 들어서는, 수프를 떠낸 뒤 곧장 그 맛을 음미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일반적인 수프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부드럽고 뭉근한 식감이었다.
“마치 구름을 떠서 먹은 것만 같은 기분이로군요. 놀랍도록 부드럽습니다.”
한 번의 시음만으로는 도저히 모든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는, ‘수수께끼’ 같은 맛이었다.
이내 안톤 쉬거가 아무런 말없이 연달아 몇 번 수프의 맛을 보기 시작했다. 녹진하게 스며들어 있는 트러플과 표고버섯의 향, 단맛이 아예 배제되어 있는 생크림 특유의 산미, 크루통 표면에 묻어있던 설탕이 지닌 노골적인 달착지근함.
여러 색의 물감이 도화지 위에 마구 흩뿌려져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단연 향과 맛 뿐 아니라, 식감 역시 그랬다. 사무치도록 보드라운 텍스쳐의 수프와, 크루통의 바삭한 질감, 심지어 얇겨 저며 썰어낸 트러플을 조심스레 깨물던 순간에는 마치 방뇨라도 한 것 마냥 몸을 부르르 떨어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스푼을 쥔 안톤 쉬거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던 찰나.
“아.”
그의 입술 틈새를 비집고 새어 나온 침음이 무겁게 툭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자신의 몫으로 서비스된 수프를 모두 먹어치워 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흘려 보인 침음이었다.
이내 그의 시선이 컵 안쪽으로 향했다. 컵의 표면을 따라 미량의 거품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정말 열심히 긁어모은다면, 반 스푼 정도 되는 양이 모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이었다.
놀랍게도 아주 잠깐, 기품이나 품위 따위의 고상한 단어를 잊은 채 ‘챙, 챙.’ 덧없는 소리가 울리게끔 스푼으로 컵을 긁어가며 남은 수프를 긁어모아 맛볼까 하는 충동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에어로케이션 기법으로 부풀린 요리의 단점이었다. 부피는 크지만, 밀도가 떨어지는지라 실질적인 양은 적다.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있었다지만, 이토록 빨리 바닥을 보이게 될 줄이야.
이번에도 완전히 당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그가 접시에 담아내고자 한 것은, 단순한 수프가 아닌 아쉬움과 미련이었을 터. 그의 전략에 완전히 휘둘리는 중이라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낮게 한숨을 내쉬어 보인 그가 시선을 옮겨서는 반쯤 공개된 주방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린 동양인 셰프가 한쪽 귀에 연필을 꽂아둔 채, 팔짱을 끼고 서서는 제 주방 직원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거리가 거리인지라 그 음성을 직접 들을 수는 없었으나 주방 내의 분위기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조리복과, 스토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온갖 주방기기가 뿜어대는 굉음, 스테인레스 재질이 맞닿으며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들, 후각을 자극하는 은은한 향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채로, 지휘봉을 휘두르고 있는 어린 셰프. 그의 등 뒤로, 거대하고 두꺼운 벽이 세워져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젊었을 적 몇 번이고 마주했던 바 있는, ‘천재’라는 타이틀과 한없이 잘 어울리는 동료 요리사들에게서 느껴지던 일련의 이질감을 그에게서 다시금 느끼고 있던 것이다.
심지어는 그의 재능과 젊음에 대한 부러움이 일었다. 그간 쌓아올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좋으니, 요리에 목숨을 걸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덧없는 상상을 펼치기에 이른 것이다.
‘필상···.’
비록 이제 겨우 코스의 윤곽을 확인했을 뿐인지라, 무어라 단언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만약 지금의 퀄리티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면? 그의 존재가 맨해튼에 존재하는 모든 파인다이닝에. 아니, 어쩌면 뉴욕 내 모든 파인다이닝에 꽤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의 모차르트가, 수십. 아니, 수백 명의 살리에리 들을 자극하는 그런 상황이 펼쳐질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이런저런 생각 탓에 깊은 상념에 젖어들어 있던 안톤 쉬거가, 돌연 “어···.”하고 낮게 중얼거려 보이기에 이르렀다. 다름 아니라,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앉아있던 두 사람. 빅토르 위고와, 제자 스테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손에는 스푼이 들려있었고, 스푼 위로는 컵 안에 남아있어야 할 수프가 한가득 긁어모아져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내려놓았던 스푼을 도로 집어 들고, 컵 안에 남아있던 수프를 벅벅 긁어모은 것인듯했다.
“큼, 흠.”
멋쩍은 마음에 헛기침을 해 보인 그가, 자신의 체면과 맞바꾼 마지막 한 술을 입에 떠넣고는 나직이 중얼댔다.
“음, 그러니까 저는 서버 분께 일종의 ‘시그널’을 보낸 겁니다. 이번 메뉴 시음이 끝났으니, 조속히 다음 코스를 전개해달라는···.”
물론, 절대 통할 리 없는 궁색한 변명이었다.
어쨌든, 코스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