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87
87
Chapter22 – Three Star (2)
셰프 장 조니는 가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미슐랭 쓰리 스타라는 영광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파인다이닝의 오너 셰프인 동시에, 파인다이닝의 정석내지는 교과서라 불릴 만큼 명망이 드높은 미국 요리계의 살아있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런 그의 위용과 명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그의 이름을 그대로 내건 채 영업 중인 그의 파인다이닝 ‘장 조니’는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센트럴 파크에 위치한 그의 파인다이닝은 일년 365일 내내 예약이 꽉 차 있는 지라, 최소 3개월 이상의 웨이팅 타임(Waiting Time)을 가져야만 간신히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인물이 대체 어째서?
맨해튼 외곽 허드슨 스트리트(Hudson St)에 위치한 새파랗게 어린 신인 셰프의 레스토랑에까지 걸음하겠다는 결심을 내리게 된 것일까?
그것도 심지어 적지 않은 수고까지 감내해가며, 영업 첫째 날의 몹시 이른 아침 시간대에 말이다.
심장 박동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종지에는 세상이 자신을 기점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회귀 이전의 삶은 물론이고, 이번 생까지 통틀어서 미슐랭 쓰리 스타에게 자신의 요리를 대접하고 평가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없다.
회귀 이전의 삶 속에서 메종 드 조엘의 수 셰프로 일하던 때, 몇 번 가량 미슐랭 쓰리 스타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쥔 거물 급 셰프들이 종종 방문한 적이 있기야 했었다.
하지만, 글쎄? 조리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부담이나 압박을 느끼진 않았다. 어차피 셰프 조엘의 이름으로 기억될 요리들이었으니까.
한차례 심호흡을 해보인 필상이 곧장 홀 매니져 베니를 호출했다. 이윽고, 베니가 주방 인근에 다다르던 찰나.
“베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 잘 들어요.”
“예, 셰프. 말씀하세요.”
“지금 7번 테이블에 셰프 장 조니가 앉아있어요.”
그 말에 베니가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필상이 잽싸게 덧붙였다.
“돌아보지 마세요.”
이내 그녀가 미간을 살짝 좁힌 채 되물었다.
“셰프, 잠시만요. 제가 아는 장 조니요? 센트럴 파크에 위치한 미슐랭 쓰리 스타 파인다이닝, 장 조니의 오너 셰프 장 조니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만 그런 상황이네요. 바로 그 장 조니가 지금 파우스트의 홀 테이블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있는 중이라고요.”
그 말에 베니가 “맙소사···.”하고 낮게 중얼거려가며, 지끈거려오는 이마를 한 손으로 꼭 감싸쥐었다.
“일행은 어떤 분이시죠?”
필상이 제 어깨를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답했다.
“글쎄요? 여기서는 등 밖에 보이질 않아서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어쨌든, 딱히 복잡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기회에요.”
“그렇죠. 장 조니 셰프가 방문했다는 사실만 알려지더라도 화제가 될 텐데, 만약 호평을 이끌어내기까지 한다면···.”
말끝을 한 번 흐려 보인 그녀가, 제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 적셔보였다. 장 조니에게 호평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뒤의 광경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정신없이 펼쳐지고 있던 탓이었다.
“셰프, 그럼 7번 테이블은 제가 담당하도록 할게요. 그러니까, 장 조니 셰프와 그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떠날 때 까지만요.”
“아뇨.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요. 장 조니 셰프 역시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을 썩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테니까요. 더군다나 어떤 손님이든, 베니가 홀 관리자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걸요?”
“만약 복장 때문이라면 걱정 않으셔도 되요. 락커룸에 남는 유니폼이 있을 거예요. 지금 바로···.”
“아뇨, 단순히 복장의 문제가 아닐꺼에요. 베니에게서 느껴지는 일련의 분위기같은 게 있거든요.”
한차례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인 필상이 애써 덤덤한 투로 덧붙였다.
“더군다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야 정확한 ‘피드백’(Feedback)을 들을 수 있지 않겠어요?”
그 말에 잠시 “아···.” 하고 낮은 탄성을 흘려 보인 베니가, 끝내 멋쩍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장 조니 셰프의 방문을 기회라고 판단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자체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네요.”
“네?”
“사실 저는 그의 명성을 이용한다면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효과를 톡톡히 거두어들일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을 뿐이거든요.”
자조적인 어투로 말해 보인 그녀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반면, 필상은 그의 피드백을 통해 파우스트를 한 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하신 것 같고요. 셰프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이따금씩 제가 너무 속물같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 것 같네요.”
“아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호평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동네방네 알려야죠. 손에 들어온 카드가 있는데 써먹지 않고 쥐고만 있는다면, 그게 바보가 아니고 뭐겠어요? 다만.”
잠시 말을 끊어 보였던 필상이 깊은 고민에 빠진듯, 잠시간 제 턱끝만 어루만져대다가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최선을 다 하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자는 거죠. 그동안 다들 충분히 노력했잖아요? 굳이 까치발을 들지 않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렇게 얻어 낸 긍정적인 평가를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는 말씀이신 거죠?”
“네, 바로 그거죠. 그래서 말인데, 제 생각에는 서버들에게 7번 테이블을 꿰차고 앉은 손님이 ‘장 조니’라는 사실을 숨기는 게 좋겠어요.”
“흠, 그래도 자잘한 실수들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미리 가볍게나마 언질을 해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한차례 “아뇨.” 하고 단호하게 답해 보인 필상이 재차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나면 서버들은 자연스레 그를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게 분명하니까요. 그 누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심정으로 식사하고 싶어 하겠어요? 물론, 같은 이유로 주방 직원들에게도 알리지 않을 생각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말씀하신대로 처리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번거로우시겠지만, 7번 테이블에서 나온 접시들은 제게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다름 아니라, 어떤 음식을 전부 다 드셨는지. 또 어떤 음식을 남기셨는지를 체크해보고 싶어서요.”
“예, 셰프. 알겠습니다.”
만족스럽다는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시선을 옮겨서는, 자신의 일행과 대화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는 ‘장 조니’ 셰프를 바라보며 다시금 덧붙였다.
“베니, 궁금하지 않아요?”
“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필상이 베니의 두눈을 바라보며 답했다.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께서는 과연 현재의 파우스트를 어떻게 평가하실지 말이에요.”
* * *
베니와의 대화를 마치고 주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브래들리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우리가 만든 요리를 먹기 위해 걸음한 손님들이 한 가득인 거 보이지? 홀은 물론이고, 가게 바깥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고!”
주방 안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어 있는 상태였다. 모든 직원들이 스토브가 뿜어대고 있는 후끈한 열기 앞에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이었고, 브래들리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잔뜩 심취한 지휘자라도 된 것 마냥 격정적인 지휘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런 브래들리의 모습이 한없이 믿음직스러워 보일 따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그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르고 꽤 영악한 청년이었다.
주방 내에 *악역(*惡役)이 한 명 쯤은 있어야 한다는 섭리를 꿰뚫고 있었으며, 필상 스스로가 그 역할을 마다하고 있다고 느낀 것인지 그 거북한 자리를 꿰차고 앉아버리는 대범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내 필상이 브래들리에게 다가서서는,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브레들리, 제가 감독할 테니 섹션을 돌면서 점검해주실래요?”
“예, 셰프.”
군기가 바짝 든 군인처럼 우렁찬 투로 답해 보인 브래들리가, 급한 걸음으로 주방 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각 섹션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지를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홀과 이어지는 선반 앞을 지키고 선 채로, 지금 주방 안에 울려퍼지고 있는 ‘소음’(騷音)을 만끽해보기 시작했다.
챙, 챙, 채앵. 스테인레스 재질의 조리도구가 맞닿을 때마다 하이톤의 쇳소리가 울렸다. 프린터기는 단 한 시도 멈추지 않고 기계음을 내보이며 주문서를 끊임없이 토해내는 중이었고, 팬 위에서는 먹음직스럽기 그지없는 기름 끓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완벽한 협연이었으며, 그동안 수도 없이 상상해왔던 풍경이었다.
주방에 들어선지 불과 수 초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순식간에 주방의 분위기에 동화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슴은 터질듯 빠르게 두근대기 시작했고, 몸에 피 대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이 흐르고 있기라도 한 것 마냥 금세 후끈한 열기가 올라왔으니 말이다.
셰프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이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직접 라인(Line)에 선 채 요리를 하게 되는 일이 없을 터였다.
그때, 프린터가 “끼긱, 끼기긱-.”하는 굉음과 함께 다시금 주문서 한 장을 토해냈다. 이내 방금 막 나온 주문서의 내용을 확인한 필상이 귀에 꽂아둔 연필을 꺼내들어서는, 주문서 위에 특별사항을 메모해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12번 테이블, 런치 B코스. ‘*알라꺄르뜨’(*A le Carte:개별 주문 요리)는 살팀보카, 메인 디쉬는 세 종류의 관자 스테이크. 지금 주문 밀린 거 보이시죠? 다들 정신차리고 더 빨리 움직여야 할 겁니다!”
그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우레와 같은 우렁찬 답이 돌아왔다.
“예, 셰프!”
* * *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동양인 사내가 파우스트의 홀 내부를 두리번 거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홀은 딱히 흠 잡을 데가 없어 보이네요. 인테리어도 꽤 훌륭하고, 테이블 세팅은 실용적이면서도 분위기를 잘 살렸네요. 홀 직원들이 움직이는 매커니즘도 꽤 효율적인 것 같은데요?”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을 집어 들어서는 만지작거려가며, 다시금 뒷말을 덧붙였다.
“영업 첫 날에 이토록 많은 손님들이 몰렸는데도, 우왕좌왕하는 기색을 찾아 볼 수가 없잖아요? 셰프꼐서도 눈치 채셨겠지만, 직원들이 일정 범위 내의 테이블을 도맡아 관리하는 시스템인 것 같네요.”
“자네 말에 동감하는 바 일세. 홀은 확실히 견고한 느낌이 드는군. 주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말 말일세.”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려 보인 동양인 사내가, 제 턱을 살살 어루만져가며 되물었다.
“그나저나 어쩐 일로 주방 바깥으로 나오실 생각을 다 하신 겁니까? 셰프께서도 화제의 영 셰프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셨던 거예요? 뭐, 저야 간만에 셰프와 함께 식사를 즐길 수 있어서 좋지만요.”
“안톤 쉬거가 극찬을 하더군. 파우스트의 셰프, ‘필상’의 요리를 맛보며. 또 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내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면서 말일세.”
“흠, 글쎄요? 그럼 극찬이 아니지 않나요? 젊었을 적에는 몇 배나 더 까칠하고 예민하게 구셨다면서요? 얼굴 한 번 본적 없다지만, 이곳 셰프도 어지간히 까칠하고 예민한 사람인가 보네요.”
장 조니가 미간을 살짝 좁혀가며 “다빈-.” 하고 말해보이자, 동양인 사내가 손사래를 쳐가며 답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홍다빈.
그는 미슐랭 쓰리 스타 레스토랑 장 조니의 센트럴 파크 본점 주방의 클로징 수 셰프(*오후 시간대부터 영업 종료 이후 마감 업무까지 도맡아 처리하는 수 셰프, 대규모 레스토랑의 경우 두 명의 수 셰프를 두기도 한다.)였다.
필상과 같은 한국 태생이라지만, 어렸을적 미국 땅으로 넘어와 시민권을 취득한 미국 시민권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때였다.
그들이 꿰차고 앉아 있는 7번 테이블을 담당하는 서버가 카트를 끌며 다가와서는 조곤조곤한 투로 말을 건네왔다.
“식전 빵을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원하시는 빵을 지목해주시면, 제가 직접 접시에 덜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바구니 안에 한 가득 담겨있는 여러 종류의 빵으로 향했다.
대중적인 편에 속하는 포카치아와 치아바타를 시작으로, 브뢰첸, 폴콘 브로트, 로겐 브로트 등. 무려 여섯 종류에 달하는 빵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상태였다. 또 오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인지, 따뜻한 열기가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이내 장 조니 셰프가 서버를 바라보며 온화한 투로 물었다.
“구비되어 있는 식전 빵만 도합 여섯 종류라, 상당히 다양하군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것 같은데, 혹시 식전 빵도 주방 안에서 직접 구워내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주방 내에 ‘베이커리 섹션’(Bakery Section)이 따로 마련되어 있거든요. 영업 시작 전에 런치 타임에 내드릴 빵을 구워내고, 브레이크 타임에 디너 타임에 내드릴 빵을 구워내는 형식입니다. 중간에 물량이 부족할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구워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다빈이 “와우.” 하고 감탄을 흘려 보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필상 역시 셰프 못지 않은 ‘요리 변태’인 것 같은데요?”
“그만 떠들고 빵이나 고르지 그래?”
능글맞은 투로 “예, 셰프.” 하고 답해 보인 다빈이 포카치아를 지목했고, 장 조니 셰프는 독일 빵인 폴콘 브로트를 지목했다.
이내 서버가 빵과 곁들일 소스 몇 종이 담겨있는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 놓아주었다.
접시는 일전에 안톤 쉬거 셰프가 방문했을 때와 동일한 제품이었다. 자그마한 크기의 종기 네 개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모양의 접시, 그 위로 각 칸마다 각기 다른 종류의 소스가 담겨있는 상태였다.
첫 번째 칸에는 직접 만든 것인지 큼직한 과일 알갱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수제 잼이, 두 번째 칸에는 틀에 넣어 모양을 잡은 듯 보이는 동그란 크림치즈 조각이, 세번째 칸에는 발사믹을 곁들인 올리브유가 담겨있었다. 여기까지는 지난 번과 동일했다.
다만, 네 번째 칸에는 전과 달리 각설탕 만한 크기의 버터 세 조각이 담겨있었다.
이윽고, 장 조니 셰프의 시선이 자연스레 버터가 담긴 칸으로 향했다. 다름 아니라 세 조각의 버터가 각기 다른 색을 지니고 있었으며, ‘*텍스쳐’(*Texture:질감)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던 탓이었다.
“빵과 곁들일 수 있는 소스의 종류도 다양하네요. 도합 네 종류에, 버터만 자그마치 세 종류에 이르는군요.”
한차례 “네, 맞습니다.” 하고 답해 보인 서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는 일반적인 버터입니다. 프랑스 브랜드 ‘에쉬레’ 사의 가염버터로 맛도, 품질도 뛰어난 제품이죠. 초록색 입자가 촘촘히 박혀있는 버터는 파우스트의 주방에서 직접 만든 ‘허브갈릭 버터’ 입니다. 에쉬레 사의 버터를 녹인 뒤 조화를 이루는 여러 종류의 허브와 다진 마늘 등을 혼합하여 다시 응고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강렬한 맛이 특징이죠.”
“흠, 기대되는군요.”
“마지막은 ‘레몬타임 버터’입니다. 레몬 즙과 *제스트(Zest)*, 그리고 타임을 넣고 다시 응고시키는 방식으로 제작한 버터로 특유의 기름진 풍미와 더불어 잔잔하게 어우러지는 산미가 일품인 버터입니다. 되도록 모든 맛을 조금씩 경험해보시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모두 훌륭하거든요.”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네. 즐거운 식사 되시길.”
서버가 자리를 떠나간 뒤,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접시 위에 담긴 소스를 나이프 끝으로 조금씩 떠서 차례로 맛보기 시작했다. 잼, 크림치즈, 일반적인 가염버터, 직접 만들었다는 허브갈릭 버터와 레몬 라임 버터에 이르기까지.
그 다음에는 조금씩 빵에 발라내서 맛을 음미하기를 잠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인 다빈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포카치아 정말 끝내주는데요? 일단 수분율도 정확히 맞아 떨어지고, 반죽의 밀도며 농도며 모두 완벽하네요. 치밀한 계산에 의해 완성된 맛이에요. 이 포카치아를 탄생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반죽이 희생되었을지 느껴지기도 하고···.”
“폴콘 브로트도 훌륭하군. 어지간한 베이커리에서 구워낸 폴콘 브로트보다 현지의 맛에 가까워. 폴콘 브로트가 특유의 딱딱한 식감과 특유의 꼬릿한 향, 그리고 산미(酸味) 때문에 먹는 빵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군. 단점이랍시고 되도 않는 변형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다빈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셰프, 이 수제 버터들도 정말 놀랍지 않아요? 대체 어떻게 이런 섹시한 맛과 식감을 연출한 건지 모르겠네요. 미묘하고 오묘한 차이를 갖추고 있네요. 서버가 말해주지 않았다지만, 백후추도 조금 들어간 것 같고 치즈도 소량 섞어낸 것 같은데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식감이 정말 일품이에요.”
황홀한 표정으로 말해 보인 다빈이, 입맛을 한 번 다셔보이고는 덧붙였다.
“다음에는 모든 종류의 식전 빵을 조금씩 맛보게 해달라고 해야겠네요.”
“재방문 의사가 있다는 뜻인가?”
“만약 코스가 끝날 때까지 지금의 퀄리티가 유지된다면요. 셰프는요?”
“마찬가지일세.”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다빈이, 시선을 옮겨서는 주방 쪽을 바라보며 재차 말을이었다.
“안톤 쉬거 셰프께서 필상의 요리를 맛본 뒤, 어째서 셰프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네요. 홀을 잠깐 살펴보고, 식전 빵을 맛본 게 고작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지독한 고집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요.”
“어감이 조금 이상하군. 마치 젊은 시절의 내가 고집불통 외골수였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적어도 요리에 있어서 만큼은 고집불통 외골수가 맞으셨잖아요? 어쩌면 요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지 모르겠네요. 당장 왕래가 있는 ‘친구’라고 해봤자 안톤 쉬거 셰프님 밖에 안 계시잖아요?”
“아쉽군. 만약 자네가 조금만 더 일찍 내 주방에 들어왔더라면, 종종 흠씬 두드려 맞곤 했을 텐데. 고집불통에다가, 성질도 끝내주게 더러웠거든. 아마 계집애처럼 눈물을 질질 짜기 일쑤였을 텐데···.”
그 말에 “크큭.” 하고 웃음을 흘려 보인 다빈이, 파우스트의 홀 내부를 한 번 쭉 둘러본 뒤에 재차 제 의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셰프. 베이커리 섹션이 존재한다는 말인 즉, 파티쉐도 따로 뒀다는 뜻이겠죠? 정말 놀랍네요. 소믈리에도 따로 고용해둔 것 같고, 심지어 바리스타까지 보이네요. 티끌만한 결점도 용납치 않겠다는 고집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과연 뉴욕 전역의 모든 파인다이닝을 통틀어, 이렇게 철저한 원칙에 의거하여 운영되는 곳이 과연 몇 군데나 될까요?”
말을 마친 다빈이 다시금 포카치아 한 입을 크게 베어물고는, 오물오물 씹어가며 덧붙였다.
“이로써 필상도 셰프 못지않은 변태라는 게 확실해졌네요.”
“그렇군.”
짧게 답해 보인 그가 주방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연 절친한 친구사이인 안톤 쉬거 셰프가, 자신에게 필상의 칭찬을 잔뜩 늘어놓지 않았더라도 파우스트가 영업을 시작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들러서 식사를 해 볼 요량이었다.
이유는 자못 간단했다. 필상이 파인다이닝 학살자라는 섬뜩한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가차없는 평론가. ‘로맹 가리’로부터 한차례 호평을 들은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맹 가리.
오랜 시간이 지났다지만, 여전히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름이었다.
그의 칼럼 탓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결심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장 조니를 개업하기 이전에 운영했던 파인다이닝의 영업을 마무리하게 된 것도, 그의 칼럼의 영향 때문이었다.
궁금했다.
자신에게는 크나 큰 상처를 입혔던 악독한 평론가가, 대체 어째서 새파랗게 어린 영 셰프는 그토록 극찬을 했던 것인지. 또 왜 다들 그에게 이토록 크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인지.
“흠.”
짧은 침음을 흘려 보인 그가 폴콘 브로트를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아직 식전 빵을 한 입 맛본 게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코스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