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88
88
Chapter22 – Three Star (3)
* * *
한 편, 그런 지금. 필상은 주방 업무와 한바탕 씨름을 벌이는 중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14번 테이블, 런치 A코스. 알라꺄르뜨(*개별 주문 요리)는 랑구스틴 라비올리와 푸아그라! 핫 섹션, 버린 접시만 다섯 개 째인 거 아시죠? 분주히 움직이되, 조리 완성도에도 더 신경 쓰셔야 할 겁니다.”
프린터가 토해낸 주문서에 쓰인 내용을 큰 소리로 일러주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눈에 보이는 미흡한 부분들을 짚어주기까지 해야 했다.
이내 필상이 귀에 꽂아둔 연필로 주문서 위에 몇 줄짜리 글귀를 휘갈겨 적어넣은 뒤, 곧장 주방 선반 위의 홈 부분에 잘 끼워 넣었다.
주문이 어찌나 많이 밀려있는 것인지, 주문서가 선반 좌측 끝에서 우측 끝까지 빽빽이 꽂혀있는 상태였다.
그때, 콜드 섹션에 배정된 요리사 한 명이 접시 두 개를 들고서는 다가왔다.
“셰프, 7번 테이블에 서비스될 런치 B코스 에피타이져 메뉴입니다.”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이내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방금 막 받아든 접시에 담긴 요리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레시피와 다르게 조리된 것은 아닌지, 맛에 변형이 생길만한 실수가 있었거나, 오버 쿡(Over cook) 되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흠···.’
은은한 민트색 빛이 감도는 원형 접시 위로 ‘*비프 타르타르’(*독일식 육회)가 낮은 원통 모양으로 쌓여있는 상태였다.
언뜻 보기에는 일반적인 육회와 다를 바 없어 보였으나, 꽤나 많은 정성을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요리랄 수 있었다.
우선 육질이 몹시 뛰어난 편에 속하는 치마살을 부드럽게 펴낸 뒤 소금과 후추로 한차례 밑간을 하고, 토치로 살짝 열을 가해 스모키한 향을 입혀내야 한다.
그대로 당장 먹는다더라도 꽤나 훌륭한 에피타이져가 될 수 있겠으나, 그렇게 초벌을 마친 치마살을 작은 주사위 모양. 즉, 스몰 다이스(Small Dice)의 형태로 썰어낸 뒤 도합 6가지 종류의 허브. 또 위스키를 이용해 만들어낸 젤리와 더불어, 한국식 육회의 레시피를 따라 잘게 다진 배를 소량 섞어주어야 지금의 비프 타르타르가 절반쯤 완성되는 셈인 것이다.
“완벽하네요. 제가 직접 플레이팅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예, 셰프.”
이내 수 셰프 브래들리가 플레이팅에 필요한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차례로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우선 낮은 원통 형태의 비프 타르타르의 상단 부에 우유가 아닌 산양의 젖을 이용해 만든 브레비 타입의 치즈를 곱게 갈아서는 흩뿌려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그 위로 산딸기 모양으로 곱게 뭉쳐 둔 크리스탈 캐비어를 일정한 간격에 맞춰 올려냈고, 사이에 존재하는 남는 공간에 레몬즙과 시금치를 곱게 갈아낸 뒤 ‘*휩 시폰’(거품 제조기)으로 만들어 낸 ‘*그린 레몬 폼’(Green Lemon Foam)을 올려주는 것으로 산미와 쌉싸름한 맛까지 추가했다.
“후우.”
한차례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곧장 자그마한 핀셋을 집어 들며, 제 코끝에 맺혀있는 땀방울을 한 번 훔쳐냈다.
이제 플레이팅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내 필상이 세차게 떨리는 핀셋 끄트머리로 상쾌함을 더해줄 애플민트 잎사귀를 집어 들어서는, 몹시 느릿한 속도로 레몬 폼 위에 얹어내기 시작했다.
봉긋 솟아있는 거품의 형태가 망가지면 모든 작업이 수포가 될 터인지라, 짙은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정교함을 필요로 하는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핀셋을 쥔 필상의 손이 마치 임종을 코앞에 둔 화가의 붓처럼 파르르 떨리기를 잠시.
“와우···.”
필상이 레몬 폼 위에 애플민트 잎사귀를 무사히 안착시킴과 동시에, 브래들리가 저도 모르게 흘려 보인 탄성이었다. 이내 그가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가며 다시금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건 정말이지, 예술적이란 말 밖에는···.”
“그럼요. 셰프 역시 아티스트니까요.”
곧장 답해 보인 필상이 나직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는 거의 완성된 비프 타르타르 위에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잔뜩 살려줄 금가루를 보기 좋게끔 살살 흩뿌려주는 것으로 플레이팅을 마무리 지었다. 이윽고, 필상이 곧장 조리대 위에 놓여있는 벨을 울리며 외쳤다.
“7번 테이블, 서비스!”
이내 부리나케 달려온 7번 테이블 담당 서버가 접시 안에 담긴 에피타이져의 외형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느라 여념이 없던 찰나. 필상이 그런 그녀에게 나긋한 투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줄리, 바쁘시겠지만 플레이팅이 망가지지 않도록 천천히 움직여주시겠어요?”
“예, 셰프.”
“손님 앞에 접시를 내려놓을 때까지 절대 긴장을 풀어선 안 됩니다. 절대로요.”
“예, 셰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시선을 옮겨서는, 장 조니와 그의 일행이 앉아있는 7번 테이블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음만 같아서는 그들이 에피타이져 메뉴를 먹고, 그 맛을 음미하는 광경을 전부 지켜보고 싶을 따름이었으나 글쎄?
끼긱, 끼기긱, 끼익-.
주방 프린터기는 여전히 주문서를 토해내느라 여념이 없을 따름이었고, 여러 요리사들이 조리를 마친 뒤 자신에게 검수를 맡기 위해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이내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는 것으로 머릿속에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온갖 잡념들을 털어내 보인 필상이, 다시금 프린터기가 뱉어낸 주문서를 뽑아든 뒤 큰소리로 외쳤다.
“2번 테이블, 런치 A코스. 알라꺄르뜨는 호박 무스를 곁들인 랍스터와 바질 뇨끼! ”
“예, 셰프!”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급물살에 휩쓸린 것처럼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 조니가 중요한 손님인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다른 손님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까.
* * *
“25년산 라프로익 위스키 젤리와 배, 에어로케이션(Airocation:분자 요리학의 거품 제조 기법) 방식으로 제조한 그린 레몬 폼과 품질이 뛰어난 크리스탈 캐비어를 곁들인 비프 타르타르입니다.”
서버의 설명이 이어지던 찰나, 접시 위에 담긴 원형 비프 타르타르에 제 시선을 고정해두고 있던 다빈이 저도 모르게 중얼대듯 말을이었다.
“Holy shit···.”
그리고는 장 조니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셰프, 플레이팅 완전히 끝내주는 것 같지 않아요?”
이내 그윽한 눈으로 접시에 담긴 에피타이져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던 장 조니가, 몹시 느릿한 속도로 고개를 끄덕여가며 답했다.
“정말 아름답군.”
마치 생기(生氣)가 가득하다 못해 넘쳐 흐르는 나무 한 그루가, 접시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마냥 싱그러운 푸르스름한 빛의 애플민트 잎사귀와 한눈에 보기에도 보드라워 보이는 녹색 거품은 무성하게 자란 ‘잎’을, 또 그 바로 밑을 꿰차고 있는 산딸기 형태로 잘 응집시켜둔 캐비어는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린 ‘열매’를 묘사한 것만 같았다. 또 토치를 이용해 살짝 그을리는 정도로 가열한 품질 좋은 소고기는, 나무줄기를 상징하고 있는 듯 보였고 말이다.
‘많고 많은 품종의 캐비어들 중 하필이면 크리스탈 캐비어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조니 셰프의 입가 위로 은은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의심의 여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했다. 본래 최상품의 크리스탈 캐비어는 은은한 금색 내지는 호박색을 띠기 마련이다.
한데 가뜩이나 금색을 띤 캐비어 알갱이 위로, ‘골드 더스트’(Gold Dust:금가루)까지 살살 흩뿌려둔 상태였던지라 접시 위에 담긴 요리가 마치 따스한 석양빛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마치 석양 아래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는 것 같군. 하지만 파인다이닝은 식재료를 이용해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내는 곳이 아니지.”
“그렇죠. 어디 외형만큼이나 아름다운 맛을 내는 데 성공했는지 한 번 확인해볼까요?”
사뭇 밝은 투로 답해 보인 다빈이, 곧장 제 포크 끄트머리를 이용해 비프 타르타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내듯 덜어냈다. 육안으로 언뜻 살펴보기에도 절대 단순한 레시피에 의거하여 조리된 요리가 아닌 듯 보일 따름이었다.
‘눈으로 봐도 육질이 부드러워 보이는군.’
이내 그가 포크를 이용해 비프 타르타르를 뒤적여가며 안에 섞인 내용물들을 한 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을음이 생기다 만 고기 사이에 듬성듬성 섞여 있는 녹색 입자들의 크기나 질감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어림 짐작건대, 혼합된 허브의 종류만 하더라도 최소 서너 가지 이상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또 잘게 다져낸 배 알갱이, 라프로익 위스키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거무스름한 빛의 젤리에 이르기까지···.
정성이 잔뜩 녹아들어 있는 요리인 것은 파악할 수 있었으나, 글쎄?
사실 직접 맛을 음미해보기 전까지는, 선뜻 맛을 떠올려 볼 수가 없는 어렵고 난해한 요리인듯 했다. 이윽고, 제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 적셔 보인 그가 덜어낸 비프 타르타르에 보드라운 질감의 그린 레몬 거품을 살짝 묻혀서는 입안에 ‘쏘옥-.’ 집어넣던 찰나.
그의 옆으로 길게 쫙 찢어진 두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가 금세 본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와우.”
첫 느낌은 지나치게 강렬했다. 하이랜드 위스키 특유의 훈연한 것 같은 피트 향과 토치를 통해 덧씌운 스모키한 향이 입안에서 마냥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모르게 한쪽 눈을 살짝 찡그리게 될 정도로 강한 산미가 쇄도했으니 말이다.
녹색 빛을 띠고 있던 보드라운 느낌의 거품, ‘그린 레몬 폼’에 의한 맛이었다. 상큼한 맛과 향을 지닌 거품이 뭉근하고 보드랍게 녹아내리며 혀를 전체적으로 코팅하듯 감싸주었다.
이내 다빈이 천천히 이를 움직여가며, 머금고 있는 비프 타르타르를 천천히. 또 조심스레 씹어보기 시작했다.
완전히 익히지 않은 생고기만이 지닐 수 있는 사랑스러울 정도로 야들야들한 식감이 느껴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없는 삼중주가 펼쳐졌다. 톡, 톡, 토도독. 윗니와 아랫니가 맞닿을 때마다, 비프 타르타르 사이사이에 섞인 각기 다른 종류의 알갱이들이 터져대며 각기 다른 맛과 향을 내주기 시작한 것이다.
크리스탈 캐비어의 아몬드를 연상시키는 고소한 향, 위스키 젤리의 쌉싸름한 향, 또 잘게 다져 섞어낸 캘리포니아산 보스크 품종의 배 알갱이가 터질 때는 입안에 선선한 바람이 나부끼기라도 하는 것마냥 강렬한 상쾌함에 사로잡히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목 넘김마저 마냥 매끈했다.
꿀꺽-.
이내 다빈이 멍한 얼굴을 한 채, “허···.” 하고 침음을 흘려 보였다. 마치 폭풍이 입안에 들이닥쳐서는, 한바탕 휩쓸고 간 것만 같은 맛이었다. 머릿속이 마냥 멍했다. 적어도 몇 번은 더 맛을 보아야, 이 요리에 대한 맛이나 감상을 간신히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연 그만의 이야기가 아닌 듯 보일 따름이었다. 장 조니 셰프 역시 마냥 멍한 얼굴을 한 채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에피타이져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마치 평생 모은 재산을 사기로 탕진해버린 피해자나 지어 보일 법한 표정이었다.
“소름이 끼치는군. 자네 이 자그마한 비프 타르타르에 몇 가지 식재료와 몇 가지 조리기법이 동반되었는지 눈치챘나?”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간단히 마리네이드 한 치마살에 곱게 갈다시피 다져낸 케이퍼와, 샬롯, 바질, 파슬리, 제스트, 로즈마리, 그 밖에도 허브 몇 종이 더 들어간 것 같은데···.”
그 역시 뛰어난 요리사이자 미식가이며, 또 그간 미각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한 훈련을 반복해왔기에 읽어낼 수 있는 사실들이었다. 그렇게 말끝을 한 번 흐려 보인 다빈이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려 보이고는 덧붙였다.
“나머지는 맛이 너무 자연스레 뭉개지며 마구잡이로 뒤섞여 버리는 바람에 좀처럼 파악하기가 힘든 것 같네요. 하지만 마냥 조화롭게 뒤섞인 터라 이질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바로 그걸세. 고작 비프 타르타르 한 접시에 무수히 많은 식재료와 조리 기법이 동반되었는데, 모두 필요에 의해 투입된 느낌이더군. 오로지 플레이팅의 완벽도를 위해, 또 단순히 분자 요리학에 대한 지식을 과시하고자 끼얹었으리라고 생각한 ‘그린 레몬 폼’ 조차 마찬가지였던 것 같고 말일세.”
“동감하는 바 입니다. 레몬과 시금치, 궁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두 가지 식재료를 적절한 비율로 섞어냈더군요. 플레이팅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지만, 맛의 균형을 잡는데도 크게 이바지해준 것 같고요.”
이내 코스가 빠른 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수프 메뉴는 일전에 안톤 쉬거와 그의 제자가 방문했던 때 내놓았던 머쉬룸 수프, 그리고 분자요리 기법을 활용해 만들어 낸 토마토 베이스의 바닷가재 소스였다.
둥그스름하게 빚어낸 완자 위에 놓인 얇은 막 형태의 볼(Ball)을 깨트리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토마토 베이스의 양념 위에 *스톡(*육수)를 끼얹어 먹는 형식의 수프 말이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낸 완자와 수프를 동시에 맛본 장 조니 셰프가 고개를 코를 한 번 찡긋거려 보이고는 답했다.
“안톤 쉬거가 극찬했던 메뉴였지. 영 셰프의 코스는 전반적으로 프랑스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에는 차이니즈 풍의 조리 기법까지 섞여 있는 것 같군.”
“완자의 질감 말씀이시죠? 돼지비계를 섞어 부드러운 맛과 기름기를 살려낸 것 같은데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네요. 모르긴 모르더라도, 요리에 대한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은 편인 것 같네요.”
다음 메뉴는 양배추의 녹색 잎을 이용해 만든 ‘*라비올리’(*ravioli:밀가루 피에 속을 채워 만두처럼 만드는 파스타)와 푸아그라였다.
접시를 반쯤 채우고 있는 맑은 갈색 국물에, 묵직한 느낌의 밀가루 피 대신 부드러움과 아삭함을 동시에 갖춘 배춧잎을 이용해 라비올리가 국물에 반쯤 잠긴 상태로 놓여있는 상태였다. 또 라비올리의 위로 손톱 한 마디 만한 크기의 자그마한 푸아그라까지 놓여있었고 말이다.
이내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동시에 라비올리, 그리고 푸아그라를 차례로 맛보았다. 앞서 맛보았던 수프에 비해 약간은 짭조름한 맛이 나는 국물에 촉촉이 젖어있는 라비올리의 식감은 지극히 매력적이었다.
속을 꽉 메우고 있는 ‘*랑구스틴’(*작은 새우의 일종으로 살에서 달콤한 맛이 난다.)의 달콤한 맛이 배추 특유의 시원한 맛과 훌륭하게 어우러졌으며, 손톱만 한 크기의 푸아그라는 혀에 닿기 무섭게 마치 아스팔트 바닥과 맞닿은 진눈깨비라도 되는 것 마냥 부드럽게 뭉개지며 녹아내렸다.
그들이 전개되고 있는 코스의 맛을 음미하느라 미처 눈치채지 못한 와중에 장내에 설치된 카메라의 각도가 미묘한 변화를 맞이했다.
홀 내부를 촬영하고 있는 여덟 대의 카메라 중 무려 여섯 대가 그들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와중에 메인 디쉬가 서비스되었다.
메인 디쉬는 실처럼 가늘게 썰어낸 양파 튀김을 얹어낸 도미 스테이크였다. 아로제 기법으로 구워낸 듯 깊은 향을 지닌 부드러운 도미 살과 바삭하게 튀겨내듯 구워낸 껍질의 식감이 대조를 이루었다. 양파 튀김 역시 탁월하기 그지없는 선택이었다. 아삭한 식감에 한 번, 또 뒤따라 밀려오는 은은한 매콤함에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장 조니 셰프가 말문을 연 것은, 프로마쥬 메뉴. 즉, 치즈 메뉴가 서비스된 이후의 일이었다.
“흠, 그래. 이제야 알 것 같군. 이제야 영 셰프의 요리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릴 수 있겠어.”
그 말에 다빈이 미간을 살짝 좁힌 채로 마냥 조심스레 되물었다.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몇 번은 더 맛봐야 할 것 같아요. 확실히 견고하고 치밀한 느낌이지만, 우리 ‘장 조니’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해본다면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그야 당연한 일이겠지. 장 조니는 내 지난 40년의 노력과 고뇌가 오롯이 담겨있는 곳이니까. 애초에 비교 선상에 올릴 수 있다는 것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대단한 일이겠지.”
한차례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인 다빈이 마냥 조심스러운 투로 재차 물음을 건넸다.
“혹시 셰프께서는 영 셰프의 요리를 어떻게 정의내리셨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다빈의 물음에 장 조니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이제 고작 한 가지 코스를 맛본 게 고작이니 정확한 평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당장 받은 느낌을 말해보자면···.”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장 조니 셰프가 팔짱을 낀 채로, 그리고 한껏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영 셰프의 요리는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이야. 맛을 위해서라면 어느 국가든 침범하고 레시피를 약탈해서 제 것으로 만드는. 또 룰이나 격식 따위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기법이든 차용하는 느낌이 강하더군.”
한차례 “굳이 비유하자면···.” 하고 중얼거려 보인 그가 적절한 비유를 찾아낸 듯 손가락을 튕겨 보이고는 덧붙였다.
“나폴레옹 같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군. 프랑스 요리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그는 쓸데없는 프레임에 자신을 가두지 않아. 빼앗고 싶은 게 있으면 빼앗고, 어떻게든 제 것으로 만들어버리지.”
“아, 그래요.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니, 어떤 느낌인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히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닐세. 자네의 말대로 분명히 부족한 부분들이 더러 엿보이기도 하더군. 부족한 부분이 엿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 그는 고작 열일곱 살에 불과한 어린 셰프였고, 경력이라고 해봐야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채 십 년도 되지 않을 테니까. 또 그중 실무를 익힐 수 있었던 시간은 훨씬 더 짧을 테고.”
“이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갖추고 있는 셈이로군요. 어지간해서는 질투를 잘 하지 않는 편인데 이건 뭐···.”
말을 마친 장 조니가 한껏 조심스러운 투로 재차 입을 뗐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직접 영 셰프를 조금 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
결연한 각오와 더불어 진심이 잔뜩 묻어나는 어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