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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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23 – 오너 셰프, 셰프테이너 (1)
“영 셰프를요?”
“그래.”
짤막하게 답해 보인 장 조니 셰프가 냅킨 끄트머리로 제 입 끝을 가볍게 살살 문질러 닦아냈다.
물론,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영 셰프의 기량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파우스트에 존재하는 여러 코스 메뉴 중 고작 하나.
그조차도 심지어 짧고 간소하게 구성된 런치 코스 메뉴에 불과했고, 아직 디저트 메뉴가 서비스되지 않은 상황이니 완벽히 경험했다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글쎄?
그래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열일곱의 영 셰프가 지닌 재능이, 로맹 가리의 독설에 흔들리고 주방을 떠나고자 결심했던. 또 모두가 천재라 극찬해주었던 30대 무렵의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
잠시간 깊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장 조니 셰프가 제 턱 끝을 살살 어루만져가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조금만 바로 잡아준다면 영 셰프가 앞으로 걷게 될 길이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싶군.”
“흠, 어떤 방식의 가르침을 주고자 하시는 거죠?”
한차례 “가르침?” 하고 되물어 보인 장 조니가, 코웃음을 쳐 보이고는 재차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다빈, 그는 이미 훌륭한 셰프야. 내가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네. 설령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더라도 함부로 내 사고를 주입하고 싶지는 않아. 그의 레시피나 요리를 해석하는 방식에 손을 생각은 더더욱 없고.”
“그럼요?”
“동료 셰프로서 ‘피드백’(Feedback)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또 선배 셰프로서 시행착오를 줄여 줄 수도 있을 테고.”
그때, 코스의 대미를 장식할 디저트 메뉴가 서비스되었다.
“디저트 메뉴, ‘바바오 럼’(baba ou rhum)입니다. 버터 향이 일품인 브리오슈 빵 위에 럼과 크림을 곁들인 프랑스 전통 디저트입니다. 럼에 절인 건포도와 함께 서비스된 아이스크림을 곁들이시면 더욱 깊은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접시의 중앙 부에 둥그스름한 브리오슈 위로, 반듯한 *구(*球)의 형체를 한 새하얀 크림, 강판에 갈아낸 듯 보이는 초콜릿, 그리고 금박이 순서대로 흩뿌려져 있는 상태였다.
이내 셰프가 아무런 대화도 오가지 않았던 것 마냥, 자그마한 스푼으로 브리슈오를 작게 떠서는 푸짐하게 얹어진 마스카르포네 크림과 함께 맛을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그시 감고 있던 두 눈을 스르르 떠 보이며 나직이 평을 덧붙였다.
“마무리까지 황홀하군.”
혀 위에 끈적하게 감기며 녹아내리는 크림의 식감과 더불어, 포슬포슬 보드랍게 흩어지는 브리슈오의 식감. 잘게 갈린 채 흩뿌려진 초콜릿의 미미한 달콤함과 럼에서 묻어나는 씁쓸함에 이르기까지.
이윽고, 그가 후끈한 콧김을 천천히 내쉬어 보인 뒤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다빈 역시 한차례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자그마한 스푼 끄트머리로 브로슈오를 작게 잘라냈다. 크림을 살짝 묻히고는, 접시 밑바닥에 고여있는 럼을 살짝 끼얹은 뒤 곧장 맛을 보았다.
맛은 완벽했고, 그 저변에서 느껴지는 영 셰프의 재능은 욕심을 불러왔다. 이런 재능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경쟁자들로 하여금 시기와 질투, 더불어 패배감까지 선사하는 이 압도적인 재능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훌륭하지?”
셰프가 건네 온 물음 덕에 비열한 망상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예, 셰프.”
그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장 조니 셰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투로 덧붙였다.
“다빈, 필상의 존재를 감사히 받아들이게. 경쟁심은 아주 중요한 성장 동력이야. 만약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동시대의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두 사람 모두 지금만큼 훌륭한 음악가로 기록되지 않았을 지도 모를 노릇이지.”
“경쟁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는 재능이 뛰어난 편은 아니야. 평범하기 그지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자네가 지금 장 조니의 클로징 수 셰프까지 오를 수 있던 건,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해온 덕일 테고 말이야.”
“셰프···.”
“사실이지 않나? 여태껏 도제(徒弟)로 들인 제자만 스무 명이야. 그중 내 더러운 성질머리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건 자네뿐이지. 자네의 끈기와 근성은 인정하네. 하지만 혼자 하는 싸움은 금방 지치는 법이야. 그러니, 영 셰프의 재능을 마음껏 질투하고 시기하며 경쟁하게.”
이내 그가 제 몫의 잔을 들어 올려서는, 가볍게 빙글빙글 돌려가며 재차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따금 요리는 절대 경쟁이 아니라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놈들이 있지. 틀렸어. 그렇게 말하는 놈들은 죄다 패배자들일 뿐이야. 애초에 이길 생각조차 없었으니까 그따위 속 편한 말이나 늘어놓을 수 있는 거겠지. 이건.”
잠시 뜸을 들여 보인 그가 평소에는 좀처럼 보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나직이 덧붙였다.
“경쟁이야. 그것도 아주 지독한 경쟁이지. 그러니, 멋지게 경쟁하되 절대 영 셰프에게 패배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예, 셰프.”
“왜냐하면, 자네는···.”
짙은 침묵이 흐르기를 잠시.
“내가 일생에 걸쳐 조리했던 그 어떤 요리보다도 훌륭한 ‘작품’이거든.”
이내 다빈이 낮지만, 무수히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것만 같은 결연한 투로 답했다.
“예, 셰프.”
* * *
필상은 마냥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 연신 곁눈질로 ‘문제의 7번 테이블’을 살펴볼 수 밖에 없었다.
메뉴가 서비스될 때마다 빈 접시가 돌아왔던 터라 내심 좋은 반응을 기대하는 중이었으나, 이따금 살펴본 장 조니 셰프의 표정이 지나치게 어두웠던 터라 동시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의 존재를 잊어가려 애써가며 일에 몰두하고 있던 찰나였다.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 7번 테이블 담당 서버가 조심스레 물음을 건네왔다.
“셰프, ‘7번 테이블’에서 셰프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직접 표하고 싶다시네요. 혹시 잠깐 괜찮으시면···.”
“물론입니다.”
다급한 투로 답해 보인 필상이 브래들리를 바라보며 조곤조곤한 투로 말했다.
“브래들리,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게요.”
“예, 셰프.”
이내 필상이 제 옷매무새를 한 번 살피고는 곧장 주방을 나선 뒤, 7번 테이블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테이블 앞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선한 인상을 한 동양인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악수를 청해왔다.
이윽고, 필상이 그의 손을 꽉 맞잡던 찰나. 그의 입에서 다소 어눌한 느낌의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셰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파인다이닝 ‘장 조니’의 클로징 수 셰프 직을 도맡고 있는 홍다빈이라고 합니다.”
잠시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던 필상이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는 답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나저나 한국 분이신 겁니까? 장 조니의 클로징 수 셰프가 한국 분이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여섯 살 무렵에 이민을 왔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재미 한국인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조금 더 옳을 것 같네요.”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던 찰나, 이번에는 장 조니 셰프가 악수를 청해오며 자신을 소개했다.
“셰프, 훌륭한 식사를 대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기분 좋은 식사를 한 것 같군요.”
이내 그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부심이 은은하게 묻어나는 투로 짤막한 말을 덧붙였다.
“장 조니입니다.”
그 말에 필상이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침음을 흘려 보이고는, 그의 손을 꼭 맞잡았다. 야위고 주름이 만개한 손끝에서 탄생했을 요리들이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영감을 선물했을 터였다.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의 손이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슐랭 스타 셰프에게 자신의 요리를 선보이는 것도, 또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강렬한 ‘*피네스’(*Finess:교묘한 솜씨)가 잔뜩 느껴지는 손을 꽉 붙잡아 보는 것도.
“걸음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 우상이나 마찬가지이신 분께 식사를 대접해드릴 수 있어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그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려 보인 장 조니 셰프가 고개를 몇 번 주억거려 보이고는, 차분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답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 없을 것 같군요. 우리는 영 셰프의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훌륭하더군요.”
“과찬이십니다.”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 영 셰프와 꾸준한 교류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말을 마친 그가 제 지갑을 꺼내 들어서는, 안에 꽂혀있던 명함 한 장을 건네주며 나직이 덧붙였다. 순금 재질로 이루어진 듯 보이는 명함 위로, ‘장 조니’라는 글귀가 반듯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또 지면과 코팅지 사이로는 곱게 갈아낸 상아 가루가 솔솔 뿌려져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필상이 떨리는 손으로 명함을 받아들던 찰나, 장 조니 셰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투로 말했다.
“사실 아쉬운 부분이 아예 느껴지지 않던 건 아닙니다. 군데군데 부족하다 여겨지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예, 말씀하시죠.”
“실력보다는 ‘요령’이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들이 더러 있을 것 같은데, 언제고 시간이 되신다면 연락 한 번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필상이 멍한 얼굴로 그런 장 조니 셰프의 얼굴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제 뒤통수를 대뜸 망치로 후려치기라도 한 것 마냥, 정신이 몽롱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가 자신에게 직접적인 교습 내지는 피드백을 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온 것이다.
모르긴 모르더라도, 다시 한 번 인생 곡선이 상승세를 그릴 준비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필상이 고개를 숙여가며 “감사합니다!”하고 답해 보이고는 재차 덧붙였다.
“주 중에 밀린 업무를 모두 마치는 대로 꼭 방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장 조니 셰프가 나직이 답해 보이고는 제 외투를 챙겨 들던 찰나, 이번에는 다빈이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덧붙였다.
“그때는 기필코 제가 식사를 대접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광경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던 토니가 저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쯤 되니 이번 다큐멘터리의 흥행에 대한 의심을 아예 거둘 수밖에 없을 듯했던 탓이었다.
* * *
그들 두 사람이 떠나간 뒤에도 파우스트의 시간은 마냥 매우 급하게 흘러가기만 할 따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차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매우 급하게 흘러가고 있는 듯했다.
모든 테이블이 몇 번이나 회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웨이팅 대기 줄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고, 덕분에 이렇다 할 ‘브레이크 타임’조차 갖지 못한 채로 계속해서 영업을 이어나가야만 했으니 말이다.
“오프닝 타임 직원분들, 정말 죄송합니다만 혹시 재료 밑 작업 좀 도와주시겠어요? 추가 근무수당은 제대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예, 셰프!”
“브래들리, 헌츠포인트 거래처에 전화해서 배송비 두 배로 지급할 테니까, 지금 당장 새벽에 매입한 양 만큼 가져다 달라고 하세요!”
“예, 셰프!”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프린터기는 계속해서 ‘끼긱, 기기긱-.’ 하고 굉음을 내가며 주문서를 뱉어내고 있었고, 직원들이 아무리 분주히 움직인다 한들 밀린 주문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는 사이, 가히 ‘VIP’라 칭하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손님들이 연달아 방문했다. 사전에 방문을 약속했던 유명 매거진 소속 평론가 및 칼럼니스트, 빌리 반 코퍼레이션에 소속되어 있는 디자이너, 또 따로 초대하지 않은 여타 파인다이닝의 셰프들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 필상은 몇 번이고 손님들의 호출 때문에 홀에 불려 나가야 했고, 덕분에 홀 서버들은 저마다 적지 않은 액수의 팁을 챙길 수 있었다. 다름 아니라, 셰프에게 감사인사를 표하기 위한 호출을 부탁할 때에는 담당 서버에게 팁을 주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자리 잡고 있던 탓이었다.
덕분에 정해진 마감 시간인 저녁 10시 무렵이 되어서야, 출입문에 걸려있는 푯말을 뒤집을 수 있었다. 심지어 그때조차, 출입문 앞으로 짧다고 할 수 없는 웨이팅 대기 줄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이윽고.
띵-!
종이 울리고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몰골을 한 서버 한 명이, 애써 급한 걸음으로 주방에 다가왔다. 조리대 위로는 마지막으로 받은 손님의 테이블로 향하게 될, 코스의 마지막 메뉴 ‘바바오 럼’이 놓여있는 상태였고 말이다.
“14번 테이블, 서비스-.”
말을 마친 필상이 곧장 제 목을 옥죄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내며, 긴 한숨을 토하듯 내쉬어 보였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느닷없이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내 필상이 홀을 천천히 한 번 둘러보기 시작했다. 홀은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기야 했으나, 그래도 이제 공석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주방 직원들의 상태를 한 번 점검해보았다. 다들 하나같이 기진맥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 몇몇은 실제로 타일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한 상태이기도 했고 말이다.
오직 딱 한 사람, 이정준만 제외하고 말이다. 애꿎은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로, 또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자신이 도맡은 핫 섹션을 정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잠깐만 쉬었다 하자는 다른 동료들의 만류에 ‘괜찮으니 쉬고 계세요.’라는 대답으로 일관해가며 말이다.
필상이 이정준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 브래들리가 다가와서는 나직이 말을 건네왔다.
“셰프께서 어째서 쁘띠 준을 차기 수 셰프 후보라 말씀하셨는지 알 것 같네요. 본래 체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바삐 돌아가는 주방에 적응되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끝을 흐려 보인 그가, 못 당하겠다는 듯 제 고개를 좌・우로 몇 번 내둘러 보이고는 덧붙였다.
“직원 중 가장 어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하네요. 지치지도 않는 건지, 정말 엄청난 독종이네요.”
짧게 “대단한 친구죠.” 하고 답해 보인 필상이, 브래들리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여 준 뒤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래들리,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감까지만 부탁할게요.”
“예, 셰프.”
이내 필상이 곧장 주방을 빠져나오자, 홀 한 편을 지키고 선 채 여전히 가득 차있다시피 한 테이블을 둘러보고 있던 멜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필상, 역시 해내실 줄 알았어요.”
“고마워요.”
“아까 정말 장관이었다면서요?”
“흠, 여섯 시 무렵이 절정이었죠.”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제 집무실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며 뒷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웨이팅 대기 줄이 다음 블록까지 이어질 기세였다니까요? 아마 오늘 허드슨 스트리트의 교통체증이 심각했다면, 파우스트 탓이었을 확률이 높을 거예요.”
“크큭,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대단하긴 하네요. 사실 이렇게까지 성공적인 결과가 있으리라곤 미처 예상치 못했거든요. 더군다나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께도 극찬을 받으셨다면서요?”
이내 필상이 집무실 문을 열며 답했다.
“네, 파우스트가 조금 안정되고 나면 주 중에 한 번 방문하기로 약속한 상황이에요.”
“잘됐네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멜리가 곧장 집무실 쇼파 한 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제 가방 속에 담겨있던 아이패드를 꺼내 들어서는 건네주었다. 잠금을 해제하기 무섭게, 화면 위로 웹 뉴스의 메인페이지가 나타났다. 놀랍게도, 연예면의 헤드라인을 파우스트가 차지하고 있는 중이었고 말이다.
[ 이브닝 스탠다드 소속 평론가 해리 보슈 曰, “파우스트는 신성처럼 나타난 신예 셰프의 완성도 높은 파인다이닝.” 극찬 화제. ] [ 파우스트를 찾은 유명인들 파파라치 컷. 미슐랭 스타 셰프 장 조니와, 유명 스탠딩 코미디언 딘&댄 형제, 디자이너 리(Lee) 등 사진 수록. ] [ 단독취재 – 장 조니 셰프, 화제의 영 셰프 필상의 파우스트 극찬 및 여타 셰프들에게 독설. “영 셰프, ‘필상’의 실력을 폄하할 자격이 있는 셰프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이 정도 반응에 다큐멘터리까지 상영되고 나면, 이제 실력에 대한 의심을 받으실 일은 없을 것 같네요.”
“흠, 확실히 그럴 것 같네요. 아무래도 일이 너무 순탄하게 풀리는 것 같은데요?”
필상이 멜리와 함께 보도된 기사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던 찰나,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이윽고 굳게 닫혀있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홀 매니져 베니와 수 셰프 브래들리가 함께 집무실 안에 들어섰다. 이내 필상이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 보이고는 브래들리에게 물었다.
“브래들리, 주방 마감은요?”
그때, 브래들리가 아닌 베니가 대신 답했다.
“다름 아니라, 금일 *Z리포트(*매출내역서) 작성이 완료되었는데 아무래도 수 셰프께서도 함께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렇군요.”
“네, 한 번 검토해 보시겠어요?”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막 건네받은 A4용지 위로 기재된 숫자들을 확인해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필상이 덤덤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던 찰나. 브래들리가 입 안 가득 고인 침을 한 번 삼켜내고는 마냥 조심스러운 투로 되물었다.
“셰프, 혹시 금일 매출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이내 필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류를 브래들리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브래들리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지더니, 종지에는 꽉 다물어진 그의 입술 틈새를 비집고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놀란 눈을 한 채, 그런 브래들리를 바라보고 있던 찰나. 브래들리가 한 손으로 제 눈을 가린 채, 낮은. 또 세차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셰프,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언제, 어디서든, 또 누구에게든,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겠어요···.”
말끝을 흐려 보인 그가 다시금 잔뜩 떨리는 투로 덧붙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내 필상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자부심을 가져요.”
“예, 셰프.”
“더 크게.”
“예, 셰프!”
만족스럽다는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나직이 되물었다.
“브래들리, 파우스트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거 알고 계시죠?”
“예. 알고 있습니다.”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인 필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브래들리를 향해 다가서기 시작하며 재차 말을이었다.
“빅토르 위고 씨께 물으니, 사실 큰 뜻을 두고 지은 이름은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그냥 사업을 준비하던 당시에 파우스트를 감명 깊게 읽으셨을 뿐이라고요. 그런데 괴테가 파우스트를 몇 살에 완성했는지 혹시 아세요?”
“아뇨, 모르겠습니다···.”
“무려 60년간 무수히 많은 수정과 편집을 해온 끝에, 여든두 살이 되어서야 완성했다더군요.”
말을 마친 필상이 작게 들썩이고 있는 브래들리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나직이 말했다.
“우리의 ‘파우스트’는 고작 오늘 첫 줄을 적어내리는데 성공했을 뿐이에요. 앞으로 수십 년에 걸쳐 몇 번이고 수정과 편집을 해가며 완성해야 하는데, 그때 흘릴 눈물을 벌써 보이시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는 브래들리를 꼭 안아주었다. 이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머금어 보이던 찰나, 멜리가 베니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물음을 건넸다.
“대체 얼마길래 그래요?”
잠시 그런 멜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홀 매니져 베니가, 능글맞은 어투로 답했다.
“영업 기밀입니다.”
파우스트의 재오픈 첫 날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