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100
– 101화 –
참으로 묘한 그림이었다. 대영에게 보복을 받은 기자가 대영의 계열사 중 하나인 그린비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스읍- 하아-”
우동민 기자 역시 그걸 알았기에 본사 앞에 서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가 들은 건 어디까지나 대영이 아군이 되어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
자칫 잘못한다면 기존처럼 보도 자료가 안 오는 수준의 간접적인 보복이 아니라, 직접적인 보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떨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어차피 이미 대영한테 밉보였다. 여기서 더 나빠질 것도 없어. 그리고 남한테 좋은 말만 들으려고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 에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그는 즉시 그린비 본사로 향했다.
물론, 아무런 약속 없이 그린비의 대표를 만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특히 기업 관계자에게 있어서 기자는 매우 조심스러운 존재였다.
포섭된 기자야 매우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행동하기에 따라서는 언론을 등에 업은 협잡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동민은 대영의 ‘유의해야 할 기자’ 리스트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인물이 아니던가?
당연히 입구에서부터 제지당했다.
“아, 거 안 된다니까요! 약속도 없이 찾아오셔서 갑자기 대표님을 보시겠다니요. 이게 무슨 경우입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우동민은 막무가내였다.
“저한테 그린비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습니다. 저 안 들여보내 주면 정말 후회한다니까요!?”
그렇게 약 10분 정도 실랑이를 했을까?
우연히 지나가던 그린비 전무가 그 광경을 목격. 혹 쓸만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그를 이강건 대표 앞으로 데려갔다.
…
이강건의 사무실은 매우 심플했다.
IT를 다루는 사람답게 전체적으로 깔끔한 인테리어였고, 톤 역시 회색빛이 묻어나 살짝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무실의 가운데.
냉기를 가득 머금은 이강건이 우동민을 독대했다.
비록 준성과 야후에게 밀려 만년 3위에 있어서 그렇지, 강건 역시 한 회사의 사장임과 동시에 대영의 푸른 피 중 한 명. 꽤나 묵직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뵙기를 청하셨다고요.”
동민 역시 그에 지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었다.
경제계에서는 강건 역시 한 끗발 할지는 모르겠지만, 동민은 언론인이다. 분야가 다르기에 상-하를 나누는 것도 웃기거니와, 동민 역시 준성이라는 배경이 있지 않던가?
굳이 기싸움에서 밀려줄 생각은 없었다.
“예. 그린비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가 있거든요.”
“들어나 봅시다.”
강건은 그렇게 말하곤 담배 한 개비를 꺼내며 ‘피워도?’라고 물었다. 비즈니스 미팅임에도 차 한 잔 내오지 않는 것을 봤을 때, 딱 담배 한 대 태울 시간만 준다는 뜻이리라.
칙- 칙- 화르륵- 스읍- 하아-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동민 역시 경험으로 그걸 알았기에,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을 꺼내 놓았다.
“저한테 야후를 한 방 먹일 자료가 있습니다. 바로 내부고발자 증언입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전’ 야후 직원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그 말에 강건은 녹음 자료를 들어보지도 않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가소로웠기 때문이다.
“그런 자료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내부고발자면 모를까 퇴사자여야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료는 우리도 손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만.”
맞는 말이었다.
비록 그린비 내부에서는 저런 자료 수집이 불가능하지만, 모기업인 대영 SDS의 힘을 빌리면 그만이다.
그렇기에 강건에게 있어선 해당 자료 따윈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증언에 불과했다.
동민 역시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했다.
“예. 그러시겠죠. 대영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드릴 제안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아무리 총과 총알이 있다고 해도 사수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죠. 그 사수,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강건은 흥미어린 냉소를 머금었다.
“제게 그 총 쏴줄 사수가 없을 것 같습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총대 멜 사람은 많습니다. 오히려 서로 하겠다고 난리겠죠. 야후를 무너뜨린 기자. 얼마나 탐나는 수식어입니까?”
“예. 그 부분 또한 압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 한 발밖에 없는 총알을 언제 쏘느냐죠. 그 타이밍은 저만 압니다. 그리고 말씀드려야 할 게 있군요. 이 정보의 소스가 어딜 것 같습니까? 바로… 디움입니다.”
그 순간 강건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비릿한 냉소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 자리를 분노가 대신했다.
디움.
그 치 덕분에 지금 그린비가 대영의 전폭적인 투자를 받아 계열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무슨 수를 써도 무너지지 않는 애증의 존재.
‘… 디움. 도대체 이번엔 또 뭘 꾸미는 거냐?’
동시에 강건의 자세가 사뭇 진지해졌고,
동민은 주도권이 본인에게 넘어왔음을 느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이 자료로는 자그마한 불씨밖에 못 일으킵니다. 그건 저나, 디움이나, 그린비 모두가 원치 않는 결과죠. 불은 제가 지필 테니 장작과 기름을 넣어 주십시오.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린비는 대영의 계열사니까.”
그 말에 강건은 약 5분 정도 침묵하며,
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디움은 분명 그린비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짓눌러야 하는 강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야후가 만만하냐면, 그건 또 아니야.’
‘아무리 디움을 넘어봐야 야후가 건재하면 의미가 없다. 총수님은 1위가 아니면 인정해 주실 분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지금 야후를 무너뜨린다고 해서 그린비에게 마냥 호재는 아니다. 디움의 대표는 분명 다음 수까지 계산해 놨을 거야. 그럼 전략의 우선권이 저쪽으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내버려 뒀다간 둘 다 야후에게 밀려 각각 2등, 3등에서 멈춰버릴 수도 있다.’
딜레마였다.
적과 동침하는 기분이 꼭 이럴까?
야후라는 공공의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디움은 분명 그린비. 아니, 더 정확하게는 대영의 영향력이 필요할 터.
야후를 무너뜨리기 위해 디움의 손을 잡는 것과,
우선권을 위해 디움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
강건은 두 경우의 수를 모두 생각해 봤지만 제 능력으로는 둘 중 어느 것이 옳다고 판단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료 두고 가보세요.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통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동민 기자에게 축객령을 내린 뒤…
“회장님, 그린비 이강건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뜨거운 감자를 제 윗선으로 넘겨버렸다.
…
이틀 후.
이태원동,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
광위는 준성이 관련됐다는 말에 바쁜 스케쥴을 쪼개서라도 시간을 냈고, 그 결과 묘-한 저녁 자리가 마련됐다. 바로 마광위와 마예라 그리고 이강건의 식사 자리였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일에 강건은 기가 질려 버렸다.
‘이준성… 도대체 그 새끼가 뭐길래…?’
일반적으로 광위는 스케쥴이 매우 바빠 아무리 급히 약속을 잡아도 최소 3주, 길면 2달 정도 후에야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데 ‘디움’과 ‘이준성’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즉시 약속이 잡혔다. 심지어 공주인 마예라까지 함께 말이다.
강건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예라가 준성에게 한 번 패한 경험이 있었기에 복기(復碁)를 위함일까 추측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일 때문에 15분 정도 늦었는데…
“일찍 일찍 다니라고 몇 번을 얘기해! 시간은 생명과도 같다! 어찌 그리 생각이 짧더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 죄송합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던지라 하던 일을 마무리하느라 늦었습니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마광위는 그런 예라가 못마땅했는지 ‘킁’ 소리를 내긴 했지만, 딱히 더 나무라지는 않았다.
“밥 먹자. 강건이 너는 할 얘기해라.”
강건은 꼭 송곳 위에 무릎을 꿇은 기분이었다.
언제든지 자신을 내칠 수 있는 마광위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한데, 앞에 밥까지 놓였다. 어찌 보면 그냥 저녁 식사로 보일 수도 있긴 했지만…
강건은 이게 자칫 잘못하면 사형수의 마지막 저녁 식사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먹는 게 밥인지 돌인지도 모를 정도로 기계적으로 먹으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시작했다.
“… … … 이준성이 기자를 한 명 보냈습니다. KBC 보도국 경제팀 우동민이라는 기자입니다. 야후의 실태에 대한 특집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하더군요.”
우동민이라는 말에 마예라의 눈썹이 잠시 꿈틀거렸다.
하긴. 준성이 핸썸 플레이스의 멱을 딸 암살자 중 한 명으로 쓴 사람이 우동민 기자다. 마예라 입장에선 위생 관련으로 한 방 크게 먹었으니 억하심정이 있을 만도 하리라.
“그래서?”
“정확히 언급은 안 했지만, 판을 크게 키워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IT 드라이브 걸어서 실업률 잡으려는 정부와 방향이 딱 맞는 기사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요.”
그 말에 광위는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이준성, 네놈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마광위는 이번 일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꼭 제 젊었을 적을 보는 기분이 이럴까?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두려움에 떨지 않는 강인한 심장과 더불어 견고해 보이는 요새의 약점을 찾는 날카로움. 그리고 상대가 쓰러지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까지.
만약 준성이 제 핏줄이었다면 당장에라고 차기 총수로 키우고 싶어지는 광위였지만, 아쉽게도 입맛만 다셨다. 어쨌든 준성은 마 씨가 아니었으니까.
‘외자계는 정말 까다로운 상대지. 본체가 외국에 있어서 아무리 걸레짝을 만들어도 다시 일어나. 그러니 완벽하게 죽이려면 공권력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근데 그걸 제 손으로 못 하니… 대영의 힘을 빌리겠다? 판 짜는 실력 하나는 내 인정해 주마.’
참으로 재밌었다.
제 적인 대영에게 손을 벌리는 상황.
어찌 보면 안면 몰수하다 볼 수도 있고,
또 달리 보면 자신감 넘치는 당돌함 또한 보였다.
“예라야, 너라면 어떻게 할 테냐?”
이미 속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광위는 딸에게 물었다. 테스트를 하기 위함이었다.
“저라면 협력하겠습니다.”
단 한 치의 고민도 없는 대답.
“어찌 그리 생각했느냐?”
“상황으로 볼 때 디움의 계략이 들어가 있음은 분명하나, 이로 인해 그린비가 얻을 이익 역시 확실하니까요.”
“적이 파놓은 함정으로 들어가는 꼴일 수도 있을 텐데?”
“대영의 계열사는 계략 따위에 쓰러질 약체가 아닙니다. 혹여 함정에 빠져 잠시 주춤했다고 한들 상관없습니다. 훌훌 털어내고 전면전이 가능한 전장으로 디움을 끌어낸다면, 승패는 뻔하니까요. 그러니 계략을 신경 쓰기보다는 지금의 이익을 취하는 게 옳습니다.”
마광위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예라를 이준성과 맞붙이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주 독기가 넘쳐 흐르는구나. 아주 만족스러워.’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해라, 그거. 내 괜찮은 사람 붙여주마.”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명심해라. 야후를 쫓기 위해 같잖은 수에 어울려주는 것일 뿐이다. 이후에도 계속 디움에게 휘둘린다면…”
광위는 아무런 말 없이 강건을 쳐다봤고,
강건은 꼭 침묵이 제 목을 조르는 기분을 느꼈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 그런 건 약자들이 실패를 대비해 파놓는 뒷구멍에 불과해. 그딴 거 필요 없으니 승리를 가져와라. 물론, 그 전에 야후부터 쓰러뜨려야 하겠지만.”
그렇게 마광위의 결재가 떨어졌고,
야후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에 치명적인 독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