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106
– 107화 –
퍽 시적인 이름이었기 때문일까?
조용히 듣고 있던 권영이 영화 얘기를 꺼냈다.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키아누 리브스와 알 파치노 주연의 영화 말씀하시는 건가요?”
“동명의 영화가 있긴 합니다만, 저는 인사관리 방법의 하나를 말하는 겁니다.”
과거 해외 진출에 대한 화두가 나왔을 당시. 준성은 해외에 파견 보낼 만한 직원들을 추려 놓으라는 지시를 했었다.
회사 내부 사정과 직원들 개개인에 대한 정보는 준성보다 각 회사의 의사결정자인 권영과 재민이 더 잘 알 터. 그렇기에 그들이 골라 놓은 사람 중 아무나 보내도 딱히 큰 문제는 없을 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첫 해외 진출이다. 누굴 보낼지 조금 더 공을 들이는 게 좋겠지.’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악마의 대변인 전략이었다.
원래는 이는 기독교에서 어떠한 성인(聖人)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해당 후보를 무조건 비판하는 역할의 사람을 뜻했지만… 경영학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였다.
바로 집단사고(군중심리)를 잡아내는 데 쓰이는,
조직 및 리스크 관리 전략이었다.
사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뭔가 거창한 일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별것 없었다. 그냥 회의 중에 의사결정자가 헛소리를 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전략이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느 회사에서 [A]라는 제품이 메가 히트.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며 시장의 문을 열었다고 치자. 상식적으로 이 회사는 [A]라는 제품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만약 의사결정자가 [A] 제품에 추가적인 투자 없이 지켜본다거나, 그 제품을 단종한다고 한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리더의 말에 따를 테고,
다른 누군가는 분명 잘못됐다며 지적을 할 터.
악마의 대변인은 바로 저 [틀린 거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직원을 찾아내기 위한 인사관리 방법이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 건강한 회사라면 누구나 다 잘못됐다고 할 텐데?’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은 편이다.
틀린 거 틀렸다고 목숨 걸고 말해 봐야 피해만 잔뜩 볼 가능성이 크지만, 모르는 척 침묵하면 적어도 절반은 가니까.
당장 야후만 해도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지 않았던가?
물론, 야후는 의사결정자의 역대급 삽질로 이미 블랙 기업이 됐던지라 극단적인 예시긴 했지만… 일반적인 기업에도 분명 저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기업 역시 집단이고 조직이기 때문에 관리를 위해선 ‘절차’와 ‘규칙이라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회사가 작을 땐 저 절차와 규칙에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아지지만, 회사가 커질 경우 그게 불가능해진다.
괜히 대기업이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결재 라인과 피라미드형 권력구조를 고수하는 게 아니었다.
‘디움과 네스트 역시 슬슬 덩치가 커지고 있어. 슬슬 중견기업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를 증명하듯 네스트와 디움의 사내 문화 역시 조금씩 딱딱해져 가고 있었다. 물론,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메뉴얼], [절차], [규칙]은 회사가 움직일 수 있는 최고의 효율을 상정해서 만들어지니까. 그렇기에 상명하복에 익숙한 직원은 어디에 둬도 제 몫을 해내는 인력이다.
하지만…
해외는 상황이 달랐다.
환경이 달라지기에 매뉴얼을 포함한 모든 절차나 규칙이 대부분 무의미해지고, 정보 역시 제 손으로 직접 뛰어다니며 찾아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약간 정성을 들여서 선별하리라 다짐,
권영과 재민에게 악마의 대변인에 대한 설명을 마쳤다.
개발자 출신 의사결정자인 권영은 언제나 신선한 전략을 가져올 때마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받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이야…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물론, 재민의 반응 역시 대동소이했다.
그는 나름대로 이름 있는 대학을 나왔고, 의사결정자가 된 후에도 틈틈이 경영학을 배웠지만… 준성이 이런 전략을 가져올 때마다 놀랍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직원들 사이에 말이 나올 수 있을 과격한 방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 충격요법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가끔’은요. 근데 도대체 이런 전략은 다 어디서 가져오시는 겁니까?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준성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저기다 대고 ‘미래에서요’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기에.
“그럼 이 사실은 두 분과 각 회사 인사팀장만 숙지하도록 하시고, 전사적 회의 소집하세요. 선별작업 시작해야죠.”
짝 – 짝 – !
준성의 박수 소리와 함께 권영과 재민이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은 채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덤으로 이 전략이 시작될 무렵은…
2000년 6월로 인사평가가 있기 직전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효과가 뛰어나리라.
…
이틀 후.
오래간만에 네스트 전사적 회의가 열렸다.
물론, 재민의 주도하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보고회 형식으로 열리는 회의긴 했지만… 오늘은 얘기가 조금 달랐다.
준성이 직접 회의를 소집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준성은 네스트 보다는 자회사인 디움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는 상태. 그렇기에 준성이 직접 회의를 소집하는 경우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지각변동을 가져올 전략을 짤 때였다.
실제로 마지막 전사적 회의가 핸썸 플레이스와 스타벅스를 반신불수로 만들었던 때 아니던가? 네스트 직원들 역시 이를 알았기에 사뭇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매출 보고서입니다. 비성수기를 제외하고는 평균 2~3%씩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데에는 많은 요인이 있으나, 특히 … … …
– 경쟁 상태 역시 양호합니다. 핸썸 플레이스는 현재 50점포에서 멈춰 있으며, 스타벅스 역시 30점포 수준입니다. 반면 네스트의 점포는 현재 500개를 넘어갔으며 … … …
언제나 그렇듯 일반적인 현황 보고가 이어졌고,
본격적인 전략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다.
이에 각 팀장들은 이번에는 도대체 어떤 전략이 튀어나올까 기대 반, 긴장 반으로 기다리기도 잠시.
준성이 테이블 아래에서 주섬주섬하는가 싶더니, 이내 비치 웨어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각 직원이 잘 볼 수 있게끔 재민에게 들고 있으라 시켰다.
네스트의 심볼 컬러인 고동색 홀터탑(나시)에,
하의는 미니스커트인 노출도가 조금 있는 옷이었다.
일단 전체적인 디자인만 보면 그냥저냥 예쁜 수준.
하지만 문제는 네스트가 패션이 아닌 커피 기업이라는 거였고, 지금 이 시간은 앞으로 네스트가 행할 전략을 얘기할 회의자리라는 거였다.
회의실 안에 혼란을 가득 품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꼭 안장 대신 브로콜리가 꽂힌 자전거를 보는 기분이 이럴까?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번 여름 휴가철에 적용해 볼 유니폼입니다. 오래간만에 MR(Market Research, 시장조사) 나갔다가 봤는데 컬러가 괜찮더군요. 일괄 적용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준성이 안장 대신 브로콜리 꽂힌 자전거를 타 보라며 권했고, 이에 기다렸다는 듯…
“예쁘네요. 저는 찬성입니다.”
김재민이 아주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 브로콜리 꽂힌 자전거 위에 냅다 올라탔으며,
“가끔 파격적인 선택도 필요한 법이죠. 좋습니다.”
인사팀장이 그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자, 어디 반응 한번 볼까.’
준성은 일부러 이상한 곳에 수를 둔 뒤 상대방의 대응을 보는 승부사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그러자 팀장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 스읍- 하… 그러니까… 어…”
분명 미친 짓인데 차마 틀렸다고는 못하겠는 놈.
“가시죠! 사회를 선두하는 기업 네스트 아닙니까! 역시 대표님이십니다! 혜안이 그냥! 어우! 끝내줍니다!”
회사고 나발이고 비위 맞춰서 라인 타려는 놈.
“…”
이 미친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침묵하는 놈.
“… 대표님. 질문 있습니다.”
“하세요.”
“해안가 인근 점포 한정으로 말씀하신 거지요? 광안리, 해운대 같은 대형 점포들 말입니다.”
“아뇨. 전체 점포입니다.”
“… 예?”
“전체 점포라고요.”
“아… 예.. 알겠습니다.”
틀린 거 틀렸다고 하려다가 꼬리 마는 놈.
그렇게 가지각색의 반응들이 나오는 도중…
준성이 조금 더 상황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설득력 있는 사례를 들며 직원들을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영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눈치군요. 왜 다들 안 된다고만 생각하십니까? 시장은 계속 급변하고 있습니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가라앉는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 유니폼 전략은 어떤 항공사에서 큰 재미를 본 전략입니다. 심지어 그 항공사는 승무원들에게 비키니를 입혔습니다.”
미친 소리 같지만 사실이었다.
원래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았으니 말이다.
비록 2000년에는 존재하는 기업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베트남의 저가항공사 Viet-Jet Air가 행한 전략이 그것인데… 그들은 몇몇 항공기의 스튜어디스들에게 비키니를 입혔다.
심지어 전문 모델을 고용해 성층권에서 패션쇼마냥 워킹까지 했으며, 스튜어디스들이 직접 찍은 비키니 사진으로 달력까지 만들어서 뿌렸다.
참 미친 짓도 이런 창의적인 미친 짓이 없었다.
아무리 2010년도부터 항공사들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저가항공사들이 난립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항공사’다.
안전과 신뢰를 줘야 할 항공사가 비키니 쇼?
경쟁사들은 해당 항공사를 미쳤다며 비웃었고,
많은 언론들이 거센 비판의 화살을 날렸지만…
웃긴 건 저 미친 전략이 먹혔다는 거다.
극단적인 노이즈 마케팅은 배낭 여행자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에 악명이든 나발이든 간에 해당 항공사는 명성을 얻어 매출이 상승했다.
“… 이러한 사례가 있는데도요? 왜 항상 일반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하십니까? 생각의 틀을 넓히지 않는다면 도태될 뿐입니다. 언제나 혁신을 해야죠.”
준성은 그렇게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이 노출도가 높은 유니폼 도입을 고수하자, 많은 직원들이 마지못해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곧 인사평가 시즌이기도 하거니와, 이전에 비슷한 방법으로 산업 스파이(쥐새끼)를 잡은 전적이 있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일단 다들 비위부터 맞출 생각이었으리라.
하긴, 솔직히 자본과 규모가 한정적인 중소기업에서 [김재민], [곽권영], [사울] 같은 A급 인재를 얻는 게 쉬운 게 아니긴 했다. 인재들도 되도록 대기업에 가려고 했으니까.
게다가 여태껏 준성이 워낙 제왕적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거의 전설과도 같은 전략들을 내놓았다. 그러니 조금 이해가 안 돼도 일단 따르려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리라.
지금껏 Yes 버튼만 눌러왔기에, 이런 위기의 순간에도 관성적으로 Yes-man이 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았나. 영 실망스러운데.’
여태까지 외부 확장에만 신경 쓰느라 내부 관리에 비교적 소홀했던 모양. 이에 앞으로는 외부가 아닌 내부도 신경 쓰리라 다짐하며 적당히 물러나려는 순간…!
회의 내내 침묵하고 있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바로 점포관리 2팀, 임형석 팀장이었다.
그 순간 준성이 미소를 머금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 순간 회의실에 있는 눈동자가 모두 그에게 모였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 의견을 피력했다.
“네스트는 커피 기업입니다. 게다가 직원들 역시 가맹점의 경우 대부분 파트 타이머가 대부분입니다. 근데 그런 직원들에게 비치 웨어를 입히다뇨?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왜죠?”
이유를 묻자 그는 속속들이 이유를 짚어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직원의 피로도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보수적인 국가입니다. 유니폼을 비치 웨어로 바꾸는 순간 직원은 극심한 정신적 피로감에 시달릴 겁니다. 게다가 보수적인 고객들 역시 불편함을 느껴 네스트에 거리감을 둘 거고요. 그러니 이 전략은 절대 해선 안 됩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이 전략을 지시한다면 어쩌실 겁니까?”
“그러신다고 해도 저희 팀에서 관리 중인 점포엔 그 전략을 배포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네스트를 위한 길이니까요.”
그 말에 준성이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다들 대표의 카리스마와 군중심리에 짓눌려 절벽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오로지 임형석 팀장만이 진실을 봤다.
아마 저런 사람이라면,
해외에 보내 놔도 분명 제 몫을 하리라.
‘만족스럽군.’
적당한 인재를 찾았기에, 더는 미친 짓을 할 필요도 없는 상황. 준성은 마치 여태까지 주장했던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 유니폼 교체 건은 폐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중한 직원을 잃을 순 없으니까요.”
너무나도 쉬운 포기.
그제야 각 팀장들 역시 내심 방금 그게 ‘테스트’였음을 깨달았고, 제각기 복잡한 감정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이쯤 되면 다들 아셨으리라 봅니다. 인사평가 시즌을 앞두고 가벼운 테스트를 진행해봤습니다. 물론, 평가에는 일절 반영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에 추태(?)를 보였던 팀장들은 다들 티는 안 냈지만, 다행이라는 듯 안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지만… 실망을 감출 수가 없군요. 다들 반성하세요. 기업에 있어 집단사고는 매우 위험한 현상입니다. 방금 다들 [모두가 찬성했으니까], [대표가 제안했으니까], [괜히 문제 될 말 하지 말자], [굳이 총대 내가 멜 필요 없다] 같은 이유로 입을 다물지 않았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각 팀장들이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숙이거나,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전사적 회의는 네스트라는 기업이 어디로 갈지 정하는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러니 계속 의심하고, 직언하십시오. 회사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는지. 아무리 옳아 보이는 길이라도 틀릴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런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준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점포관리 2팀장 임형석에게 손짓했다.
“회의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그리고 임 팀장님은 잠깐 나 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