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109
– 110화 –
보통 외국에 가면 일반적으로는 비행기 내리자마자부터 자신이 살던 곳과는 뭔가 다른 점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하늘, 사람들의 생김새와 옷차림, 공항 인테리어 등등. 그 종류도 여러 가지겠지만… 준성이 느낀 베트남의 첫인상은 바로 [딱딱하다]였다.
– 서류. 체류 목적. 기간. 이유.
바늘로 콕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는 말이 딱 이런 느낌일까? 공산주의 특유의 강력한 공권력을 바탕으로 묻어나오는 매우 무뚝뚝한 입국 심사였다.
아마 개방이 덜 이루어졌기에 그런 것이리라.
이에 용건만 짧게 대답하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아직 자본주의 맛을 덜 본 티가 나는군.’
비록 시방 개방과 동시에 년에 10%씩 무섭게 성장하는 베트남었지만, 그럼에도 돈맛을 덜 본 것이리라. 이런 무뚝뚝함 역시 지금 아니면 못 겪을 것이었기에, 즐기기로 했다.
…
매우 힘든 입국 심사를 지난 뒤. 권영은 30분 정도 붙들려 있었던 게 영 끔찍했는지 부르르 떨었다.
“어후, 엄청 딱딱하네요.”
“그나마 우린 짧은 겁니다. 만약에 사울이 왔으면 지금 이 상황이 우스울 정도로 엄청 길어졌을걸요?”
권영이 그 말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기도 잠시.
옆에 있던 재민이 대신 대답했다.
“베트남은 미국이랑 전쟁을 한 곳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한 나라에요. 프랑스, 미국, 중국이랑 전쟁해서 모조리 이긴 국가잖아요? 전투민족이라고 해야 하나?”
맞는 말이었다.
1954년 프랑스, 1973년 미국, 1976년 중국.
세계구급 깡패라 불리는 세 국가가 유독 베트남에서만 연이어 패전을 당했다. 심지어 미국은 나라가 생기고 나서 처음으로 겪은 패전이었고 말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
바로 [제국의 무덤]이었다.
“예, 하지만 그 화제는 꺼내지 말죠. 한국도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예민할 수 있는 사안이에요. 그러니 역사적 아픔은 뒤로하고, 현재에 집중하죠..”
분명 베트남 전쟁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다.
하지만 총과 폭탄으로 하는 게 아닌 자본과 경영 전략으로 하는 직장인들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을 터.
이미 베트남에는 개방과 동시에 수없이 많은 외자계가 진입. 수없이 많은 회사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우리 역시 뼈아픈 패배를 맛보게 되리라.
“잊지 마세요. 여기는 저희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그러니 실수 한 번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세요.”
그렇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자…
165cm쯤 될법한 작은 키에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사내가 어수룩한 솜씨로 적은 [디움, 네스트]라 적힌 종이를 든 채 흔들고 있었다.
미리 공수해 둔 통역 겸 잔심부름꾼, 로켓이었다. 참고로 저 녀석 역시 준성이 회귀 전에 다루던 사람이었는데…
‘고등학생 무렵에 공장 잔심부름꾼으로 시작해서 대영 전자 호치민 공장 기장까지 올라간 녀석. 오래간만이군.’
기장(技長).
공장의 우두머리인 공장장 바로 아래 있는 직급으로,
사무직으로 따지면 부장급 직책으로 보면 편했다.
하지만 외국 생산 공장 같은 경우 보통 책임 문제로 인해 공장장은 본사 사람을 앉힌다는 것과 더불어 코드 인사(사내 정치)로 결정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현지인으로 앉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직급이다.’
개천에서 난 용이 있다면 아마 저런 모습을 했으리라.
그를 처음 만난 건 준성이 잠시 베트남 생산 공장 관련 일을 처리해야 했을 때였다.
당시 그는 심부름꾼으로 시작해서 운 좋게 입사 후.
생산직으로 계속 근무하던 중, 파견 온 대영 직원이 현지인 여자를 잘못 건드려 회사에 찾아온 가족들에게 보복을 당해 품위 유지 위반으로 송환되며 그 자리를 땜빵하기 위해 사무직으로 전환한 상태였다.
이후 그는 상사들의 잔심부름과 더불어 이런저런 일-예상컨대 여자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을 해주며 한국 직원들 등 너머로 일을 배워 나가던 녀석이었다.
사실 보통 저런 종류의 사람들이 그렇듯, 문제를 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기에 준성은 로켓이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건수 하나 걸리면 바로 쳐내려고 했었는데…
그를 다시 보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때는 2011년 중순.
갑자기 HDD(하드디스크)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었다.
이웃 나라 태국에 역대급 홍수가 터졌는데 그 과정에서 HDD 공장이 밀집된 공장이 침수된 거였다.
이때 이 사건을 예고한 게 바로 로켓이었다.
그는 현지 파견된 대영 직원들이 모두 삽질을 하는 가운데 태국 상황이 영 심상치 않다는 얘기와 함께 HDD에 관련된 전략을 하나 제시했고… 준성이 그걸 가공해 대박을 쳤다.
사실상 공을 가로챈 행위였으나,
로켓은 그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았다. 대신…
– 난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에요. 어차피 내가 했어 봐야 누군가에겐 뺏길 공이죠. 그럴 바엔 당신처럼 내게 확실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 저는 제 공 같은 건 원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절 키워 주세요. 공장장도 당신 눈치를 보지 않나요? 당신한테는 그럴만한 힘이 있잖아요.
참고로 회귀 전의 준성은 남을 잘 믿지 않았다.
총수의 총애를 받았기에 다른 사내 세력들과 첨예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파워 게임이 발생. 사람을 선별해 내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켓은 달랐다.
그는 오로지 승진만 신경 쓰던 사람이었다.
게다가 필요하다는 적당한 수준의 ‘선’을 넘을 줄도 아는 융통성을 겸비. 그 결과 매우 큰 도움이 됐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이번에도 똑같겠지. 외국에 뚝 떨어진 직원들에게 랜턴 같은 역할도 해줄 테고 말이야.’
준성은 씨익 미소를 짓고는,
로켓 쪽으로 다가갔다.
“베트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앞으로 통역 및 현지 문화 자문을 드릴 로켓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준성의 왕국의 [베트남 전초기지]에,
큰 야망과 융통성을 가진 인물 [로켓]이 합류했다.
비록 아직은 바로 객장으로 써먹을 순 없지만,
정성 들여 키운다면 베트남의 여포가 되어 주리라.
…
로켓이 준비해 둔 차는 총 2대였다.
준성과 네스트 직원들이 탈 승합차 한 대, 디움 직원들이 탈 도요타 캠리 한 대였다. 그렇게 로켓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첫 목적지로 이동하던 중.
솨아아아아아 – !
창밖에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내리는 스콜 사이로 우비를 걸친 채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제야 베트남에 왔다는 현실감이 확 느껴졌다.
스쿠터.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잠시 짚어가자면,
참고로 당시 베트남 외국차 관세는 300%(!!!)였다.
한마디로 차값보다 세금이 훨씬 비싸단 얘기인데… 이런 정신 나간 세금이 매겨진 이유는 간단했다.
정부가 언젠가는 베트남 자체 기술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일반적인 한 국가의 경제 성장에 따른 주요 산업 변천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냐면…
현재 베트남의 주력 산업은 [농업]과 [경공업].
그렇다고 준비 없이 덜컥 개방했다간 온갖 외자계들이 쏟아지며 생태계를 교란해 놓을 게 뻔한 상황.
당장 옆 나라 태국의 자동차 시장이 일본에게 완벽히 잠식된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베트남이었다. 이에 정부는 몇몇 중요 산업을 관세로 어마어마한 장벽을 세우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중화학공업]의 꽃인 [자동차]였다.
참고로 자동차는 매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기에, 기술 수준이 낮은 개도국의 경우 자체 기술 생산이 힘든 편이었다.
경제 수준을 어림잡는 지표 중 하나가 [자체 기술로 생산하는 자동차가 있는가?]니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하지만 기술도 없는데 시장은 보존하고 싶으니 저 관세 300% 같은 정신 나간 세율이 나온 거야.’
동시에 정부의 힘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
그렇게 베트남의 스쿠터와 자동차에 관한 생각을 하는 사이, 차량이 호치민 1군 인근 한 호텔에 도착했다. 바로 직원용 기숙사를 구하기 전에 쓸 숙소였다.
하지만 휴식은 없었다. 애초에 아침에 도착하기도 했거니와, 지금 온 건 관광이 아니라 출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호텔에서 짐을 내린 뒤 다시 출발할 무렵…
디움 쪽에서 가벼운 문제가 생겼는지,
웅성거림이 들렸다.
– 진짜, 운전 하나 못해서! 나와, 임마!
– 아니 그게… 제가 하겠습니다.
– 하긴 뭘 해! 또 가다, 서다, 가다, 서다 하게? 운전 못 하면 못 한다고 미리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야!
– 아니… 정말… 저 운전 열심히 했었습니다. 군대 보직도 운전병이었다니까요? 근데 스쿠터들이 자꾸…
보아하니 운전 때문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네스트 쪽 차량이야 현지인인 로켓이 운전하니 딱히 큰 문제가 없었지만… 디움 쪽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도로에 선이 거의 없거니와, 스쿠터들이 무슨 대양을 헤엄치는 정어리떼마냥 우르르 몰려다니는 곳이었다.
게다가 스쿠터들이 깜빡이도 없이 훅-훅- 끼어드니 정말 참치떼 옆에서 운전하는 기분이었으리라.
재민은 머쓱하게 웃으며 ‘택시라도 잡아 올까요?’라고 제안했지만, 준성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기서 지내려면 익숙해져야 하니까요. 해외 진출은 회사만 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현지에 녹아들어야 해요. 그러니 그 성장통의 일환으로 보죠.”
준성은 그 말을 끝내곤 임형석 팀장을 슬쩍 훑었다.
그러자 그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스쿠터 떼를 보고는 작게 ‘하아…’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
짐을 내린 뒤 도착한 곳은 바로 [호치민 인민위원회 청사], 쉽게 말해 호치민 시청이었다. 이후 준성은 로켓의 도움을 받아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직원과 간단한 서류 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는 딱히 커다란 걸림돌은 없었다.
아무래도 최근 베트남 정부가 외자계를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는 만큼, 절차를 조금 축약했기 때문이었다.
– 약식 거주증 드리겠습니다. 추후 숙소 정하시고 난 뒤 반드시 정식 거주증을 발급받으시고, 또한 무단으로 2주 이상 거주지를 이탈하실 시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 그 외에도 공안 검문 시 해당 거주증 사본과 여권을 반드시 제시하셔야 하며 … … …
그다음으로는 약식 거주증을 통해 부동산 중개인을 방문, 앞으로 베이스캠프가 될 RO(Representative Office, 연락사무소)를 임대했다.
덤으로 임대인은 외국인 사무소가 들어온다는 것에 영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아무래도 공산주의 국가기 때문에 외국인이 들어오면 복잡한 서류 절차를 등록하고, 주기적으로 공안에게 보고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끈하게 때려 박는 임대료 덕에 웃음꽃이 폈다.
뭐, 아무리 공산주의 사회라고 해 봐야 사람 사는 곳이었다. 복잡한 절차고 나발이고 돈 더 준다는데 뭐가 문제랴.
그렇게 베트남 현지에 네스트와 디움이 공동으로 사용할 사무실이 생겼다.
사실 오랫동안 사업을 할 거였기에 되도록 본사 사옥은 구입을 하는 형태로 가고 싶었지만… 베트남 법적으로 인정받은 [법인]이 아니고서야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 잘난 대영도 베트남 첫 진출 당시 직원 4명짜리 RO로 시작했고, 세계적인 대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야.’
준성은 문득 네스트를 처음 인수했을 때가 생각났다.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던 도토루 직원들,
아직 일본어 명패조차 떼어지지 않은 사무실,
알맹이가 빠져 속 빈 강정 같았던 그곳.
하지만 지금은 어떻던가?
네스트는 한국 커피 시장의 과반을 점유한 어마어마한 기업으로 자라났고, 자회사로 대한민국 포털 점유율 1위를 달리는 디움을 뒀다.
그러니 베트남 역시 똑같으리라.
지금은 비록 작고 초라한 사무실이지만…
머지않아 베트남에 어마어마한 돌풍을 몰고 오리라.
스읍- 하아-
준성은 바쁘게 움직이며 사무실 집기를 세팅하는 직원들 사이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먼지와 사람 내음이 적당히 섞인 묘한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내 첫 해외 진출이다. 열심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