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160
– 161화 –
베트남 일정을 모두 마치고 귀국한 후.
큰 건이 끝났기에 오래간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기도 잠시. 영업팀장이 난처한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도토루 일본 본사의 오치아이 팀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급히 대표님을 찾는데…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준성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오치아이라? 그 양반이 나는 왜?’
아마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게 쟈르뎅의 계략으로 인한 원두 공격 때였던가? 이후 네스트는 쟈르뎅을 인수하며 더 이상 원두 공급이 필요 없었기에, 도토루와는 딱히 별다른 문제나 앙금 없이 계약을 해지했다.
‘뭐, 어찌 됐든 용건이야 전화 받아보면 알겠지.’
“전화 연결하세요.”
얼마 후 전화를 건네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도토루 해외영업팀 우 마츠노 차장입니다. 오치아이 호시지로 팀장님께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이렇게 전화를 걸게 됐습니다. 통역을 시작해도 될까요?
바로 도토루 코리아 구매 당시에 있던 재일교포로 추정되는 직원이었다. 이에 흔쾌히 그러라고 하자, 우 마츠노의 통역을 통해 오치아이의 대화가 시작됐다.
– 오래간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요. 저야 잘 지내고 있죠. 오치아이 팀장님도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거의 2년 만인가요?”
– 실제로 본 건 3년 만이죠. 참으로 놀랍습니다. 겨우 8점포로 시작한 네스트가 벌써 해외 진출을 하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 베트남 농장 건 역시 축하드립니다.
준성은 어째 말에 뼈가 있음을 느꼈지만,
일단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이야…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정보가 빠르시군요.”
– 베트남 농장은 저희도 조금 탐내고 있었거든요. 달랏에서 재배한 원두는 비록 최고급은 아니지만, 가격 경쟁력이 극한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뛰어나니까요.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축하해주시려고 전화를 건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준성은 일본 경영문화 특유의 ‘돌려 까기’와 ‘과하게 긴 서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에, 바로 본론을 물었다. 그러자 오치아이는 잠시 침묵했다가 대답했다.
– 네스트 일본 진출, 포기하십시오.
밑도 끝도 매너도 없는 돌직구.
이에 준성은 조금 어이가 없어 실소를 흘렸다.
“지금 네스트는 일본에 진출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 했습니다. RO(연락사무소)만 세워져 있거든요. 법인이나 지사가 없는데 뭘 어떻게 포기하라는 말입니까?”
– 이준성 대표,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이미 법인이나 지사가 아닌 개인 사업자 명의를 사용한 편법으로 후쿠오카에 네스트 1호점을 오픈한 것을 압니다. 아마 일본의 시장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서겠죠.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준성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 도토루 내부 의사결정자들은 네스트 따윈 경쟁자로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지만, 나는 다릅니다. 저는 당신이 어떻게 한국 시장을 접수했고… 얼마나 공격적인 사람인지 잘 알아요. 그러니 경고하겠습니다. 일본에서 나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도토루는 온 힘을 다해 네스트 저펜을 파괴할 겁니다. 장담하죠.
전화기 너머로 강렬한 기운이 풍겨 왔으나,
준성은 전혀 지지 않은 기세로 대답해줬다.
“할 수 있다면 해보시죠. 행운을 빕니다.”
– 도토루 본사는 이 시점 부로 네스트와 적대하겠습니다. 그 결정 후회하게 만들어 드리죠.
“어째 많이 들어본 말이네요. 어쩜 그리 레퍼토리들이 다 똑같은지. 어디 그런 거 가르쳐주는 학교라도 있습니까?”
– 도토루는 다를 겁니다.
“예. 그 말도 하더군요. 네스트와 싸웠던 많은 기업들 역시 제 나름대로 좋은 전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컷 깨지기 전 까지는. 도토루도 똑같을 겁니다.”
– … 네스트 공식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뚝- 뚜우- 뚜우- 뚜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도토루와의 협상(?)은,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장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에 영업팀장의 말을 듣고 급히 찾아온 재민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 오치아이 지사장입니까?”
“예. 지금은 해외영업팀장이 됐더군요.”
그 말에 재민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오치아이는 과거 재민이 도토루 시절 같이 일했던 상사다. 제아무리 재민이 네스트의 부사장으로서 일에 공과 사를 구분한다지만, 그럼에도 혼란스러운 건 어쩔 수 없으랴.
비록 오치아이는 한국에서 패주한 경영자였지만, 그건 그저 타이밍이 좋지 않았을 뿐. 그가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경영에는 본디 환경이 크게 작용하기에.
“이제 일본 도토루와 전면전이 펼쳐지겠군요. 초반부터 이런 출혈 경쟁을 원한 건 아닌데 말이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도토루가 과민반응을 하는 것도 이해는 가는 게… 도토루의 일본 내 포지셔닝은 ‘부담 없는 중저가 커피’였다. 비록 그들이 한국에 진입할 땐 커피 시장 자체가 열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부득이하게 사치스럽게 포지셔닝 했지만…
분명 본사는 중저가를 바탕으로 양으로 미는 회사다.
당장 그걸 증명하듯 도토루 역시 질보다는 가격에 경쟁 우위가 있는 베트남 커피 농장을 탐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공교롭게도…
네스트 역시 극단적인 중저가 브랜드다.
특히 다들 비싼 가격을 토대로 이익률을 높일 때,
박리다매를 바탕으로 시장을 침투하는 성향을 가졌다.
한 마디로 컨셉이 완벽하게 겹쳤기에…
도토루 입장에서는 싹을 밟고 싶을 수밖에.
물론,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경영의 세계에 있어 경쟁은 필수불가결이었기에.
“괜찮습니다. 어차피 예정된 경쟁이었어요. 그저 그 순간이 조금 더 빨라진 것뿐이죠. 그리고 이러한 경쟁은 네스트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기뻐해야죠.”
“… 알겠습니다. 일단 방어 전략 준비하되, 일본 RO에 연락해서 주의하라고 연락하겠습니다. 특히 트집잡힐 거리 만들지 말라고요.”
확실히 재민 역시 성장한 걸까?
그는 방향이 정해지자마자 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처음 의사결정자가 됐을 때만 해도 가끔 부족한 모습을 보여 영 아쉬웠는데, 지금은 완벽히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아. 맞다. 이참에 네스트도 해외영업팀 신설하죠. 이 건에 대해서는 김재민 팀장에게 일임하겠습니다.”
그 말에 재민은 살짝 놀란 듯 멈췄다.
현재 네스트가 해외 진출에 한창 열을 올리는 와중에 해외영업팀을 제 손으로 구성하라는 곧… 사실상 재민에게 해외영업에 관련된 큰 권한을 주겠다는 얘기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준성은 여태까지 ‘조직구조’나 ‘매뉴얼’ 그리고 ‘전략’을 만질 때는 대부분 혼자 처리하는 편이었다. 그저 협력한다고 한들 골자를 만들어 놓고 살을 붙일 뿐.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신뢰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일임했다.
이에 재민은 딱히 내색은 안 했지만, 가슴 속에서 ‘대표님께 인정받았다’는 쾌감을 가득 뿜어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도토루가 선전포고가 끝났을 무렵.
준성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머금었다.
‘오치아이 호시지로. 재밌는 사람이군.’
일반적으로 경영에서의 본격적인 전면전은 보통 다른 한 측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시작된다.
예를 들어 헛소문을 흘린다거나, 경찰이나 검찰에 익명을 가장한 투서를 보내거나, 도발성 경쟁 광고를 보내거나, 대놓고 악의적인 방법으로 시장에 침범하거나 등 말이다.
애초에 선전포고 없이 기습을 먼저 해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거니와, 오히려 그게 더 효율적이었기에 일반적인 기업들은 이러한 소위 ‘선빵’을 선호한다.
당장 준성 역시 경쟁자들에게 그 어떠한 선전포고나 경고 없이 펀치부터 전술핵까지 다양하게 꽂지 않았던가?
하지만 오치아이는 달랐다.
굳이 안 해줘도 될 경고를 해줬다.
지사장까지 올랐던 인물이 몰라서 저런 짓을 한 것은 아닐 터. 물론, 일을 쉽게 풀어가려고 위협을 가한 것일 수도 있겠다마는…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나쁘지 않은 상대네. 한 번 싸워보자고. 물론, 일본 원정이지만 딱히 질 것 같지는 않네.’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 같았다.
…
재민이 한창 제 손으로 해외영업팀을 꾸리고,
재무팀장은 네스트와 디움의 신-사옥을 찾아다니고,
일남은 베트남 원두 농장 관리 및 수-출입 건으로 네스트와 쟈르뎅을 거의 하루에 2번씩 왕복했고,
권영은 준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메신저와 SNS의 유지보수를 하며 한창 시장 확대 및 장악에 힘쓰고 있을 무렵.
여름이 끝나고 본격적인 가을이 시작된 어느 날.
TV에 [네스트 인스턴트 커피]의 광고가 방영됐다.
해당 광고는 동남과 네스트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표적 고객인 [10대 후반~30대 초반]의 젊은 층을 노린 톡톡 튀는 광고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류수연의 강력한 주장에 따라 조금 도전적인 양식을 사용했다.
바로 [드라마틱 광고]였다.
해당 광고는 말 그대로 제품의 설명이나 어필보다는 드라마 적인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뜻했다. 이러한 형태의 광고는 2000년 초반부터 광풍을 불기 시작했는데…
특히 로테 음료의 [3% 부족할 때]에서 유명 배우를 등장시켜 낙엽을 집어 던지며…
– 가! 가라고! 내 앞에서 사라져!
– 너 만나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 라고 말하고는 [3% 부족할 때]라는 표어와 함께 음료가 등장하는 밑도 끝도 없는 광고였는데, 웃긴 건 저게 대박을 쳤다. 기존 광고와는 완벽하게 다른 형태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끈 것이었다.
그 덕에 해당 광고는 오히려 제품보다 더 유명해지는 일이 발생. 온갖 프로그램에서 [가! 가라고!]를 따라 하며 컬트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이러한 광고는 1990년대 가수들이 뮤직비디오에 드라마틱한 뮤비를 넣어 재미를 보면서 대중화됐고, 이러한 영향이 비슷한 업계인 광고에까지 끼치며 생긴 일이었다.
그 결과 네스트에서 어떤 광고가 나왔냐면…
– (추운 겨울 배경)
– (여대생 컨셉의 전지혜, 풋풋한 모습을 한 채 대학교 건물 기둥 뒤에서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한숨을 쉼)
– (전지혜) : 하아… 어떻게 얘기하지?
– (카메라 전환, 저 멀리서 멋진 남자가 걸어옴. 전지혜는 그걸 보고는 입술을 꽉 깨무는가 싶더니 달려감)
– (남자 배우, 달려온 전지혜를 보고 놀람) : 어? 지혜야.
– (전지혜, 부끄러워하는 표정으로 쳐다봄) : 오빠…
– (남자 배우) : 왜?
– (전지혜) : 조, 조, 좋… 하아…! 이거 드세요!
– (이후 전지혜는 도망치듯 사라짐)
– (남자 배우 전지혜가 건네준 것을 봄. 뭔가 하나 네스트 인스턴트 카페라떼에 포스트잇이 붙어있음. 예쁘고 둥글둥글한 글씨로 ‘오빠, 좋아해요!’ 라고 적혀 있음)
– (남자 배우는 푸하하하 웃음) : 이야, 기분 좋은데?
– (이후 남자 배우가 네스트 인스턴트 카페라떼를 마시는 배경으로 예쁜 연갈색 글자가 올라옴) : 스무 살의 사랑, 스무 살의 달콤함. 네스트 카페라떼.
요런 30초짜리 광고가 나왔다.
재민은 해당 컨셉을 받자마자 수연에게 너무 밑도 끝도 없는 것 아니냐며 큰 걱정을 했지만… 정작 결과를 까보니 이게 웬일?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로스팅 커피 기업인 네스트가 인스턴트 영역을 확장했기에 생길 심리적 장벽은 개뿔. 젊은 여성 소비자들은 카페에 들를 시간이 없을 땐 인스턴트 커피로 대신한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재민은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하, 하하하… 이게 먹힌다고? 진짜?”
그 말에 류수연은 손가락을 흔들며 우쭐거렸다.
“오빠도 참… 일은 잘하는데 시대의 흐름을 못 본다. 봐봐, 이런 제품은 보통 20대 여자애들이 제일 많이 사 먹는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히려 이런 게 먹혀. 봤지?”
“그래도 내용 전달이 좀… 이건 기성품이잖아. 어떤 맛인지, 어떤 디자인인지 이런 걸 알려줘야 하지 않았을까?”
“아저씨 같애. 마케팅엔 영 꽝이구나?”
“… 부정은 못 하겠네.”
“뭐, 그런 면도 좋지만.”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헝클어진 재민의 넥타이를 고쳐 매줬다. 처음에는 항상 툴툴거리던 그녀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재민의 열렬한 구애에 조금씩 마음을 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똑똑똑 – !
회의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오자 재민과 수연은 깜짝 놀라 떨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스릴있는 로맨스를 즐기는 20대 남녀처럼 보이는 건 왤까.
그렇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사랑의 싹을 틔워가는 재민과 수연 사이에서, 그렇게 네스트 인스턴트 커피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물론, 커피를 다루는 몇몇 유업들은 이러한 네스트의 진입에 경계를 하는 듯했지만… OEM 생산을 통해 동남을 등에 업었던지라 쉬이 전쟁이 벌어질 것 같진 않았다.
아마도.
…
2001년 12월이 왔다.
짧디짧았던 가을이 떠나고 겨울의 초입. 사옥을 알아보라고 보냈던 재무팀장이 그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했다.
“대표님, 내부 심사 결과 최종적으로 세 빌딩을 추렸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