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235
– 236화 –
제이리버 인수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태원동,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 광위는 꼭 골동품처럼 생긴 전화기를 든 채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필수야. 얘기 들었다. 이번에 디움 때문에 골머리 좀 썩었다지? 네가 고생 많았다. 그래. 그래. 그렇지. 왜 도와줬느냐고? 별 이유 있겠느냐. 너 역시 대영에서 나온 사람이지 않더냐. 네 혈관에 흐르는 푸른 피가 아직 덜 빠졌으니까. 잊지 마라. 너는 대영의 사람이다. 비록 경쟁사긴 하지만, 사업을 떠나 ‘사람’을 잊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 수고하거라.”
광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자,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피승원 비서가 물었다.
“따로 양필수 사장과 자리 한 번 마련할까요?”
“아니. 됐다. 창수 녀석이 잘 해내긴 했다만, 마무리가 어설퍼서 내가 매듭을 지은 것뿐이다. 본디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면 반드시 그걸 기억하게끔 만들라고 몇 번을 얘기했거늘… 아직도 이리 어설프다니. 쯧.”
현재 대영전자는 디움을 견제하기 위해 인수전쟁에 끼어들었지만, 의도야 어찌 됐든 제이리버의 백기사를 자처한 꼴이 됐다.
그러니 추후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양필수 사장의 마음속에 부채감을 심어놓을 필요가 있었는데… 창수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펜대 굴리며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으니 사람의 마음을 모르는 게지. 지배자가 되기 위해 제일 중요한 덕목이 사람을 다루는 법이라 그렇게나 강조했는데도… 아직도 많이 부족해. 갈 길이 멀어.”
“아직 어리시니까요. 거꾸로 얘기하면 배울 시간이 더 많이 남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광위는 그 말에 언짢은 표정으로 피승원을 올려다봤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직 모자라니 더더욱 배워야지. 그러라고 이번에 이준성 녀석과 붙여 본 거기도 했고 말이다. 그나저나, 창수 이 녀석은 온다고 한 게 언젠데 이렇게 늦니?”
“지금 전화해 보…”
피승원에 핸드폰을 꺼내려는 찰나, 한지로 만든 미닫이문 너머로 듬직한 실루엣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마창수 상무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오너라.”
마창수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왔고, 이후 광위 앞에 놓인 방석에 앉았다. 솔직히 그는 좌식생활에 익숙지 않아 내심 의자라도 하나 놓여있길 원했으나…
애초에 이곳은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 그러니 본인이 총수가 된 이후에는 무조건 인테리어를 바꾸리라 다짐했다.
“제이리버 인수 건이 끝났다고 들었다.”
“예. 원만하게 마무리됐습니다.”
“그 얘기나 한번 해봐라.”
광위가 손을 내밀자 그 위로 피승원이 가죽으로 된 고급 서류 케이스를 올려줬다. 바로 얼마 전 있었던 디움과 대영의 인수전쟁에 대한 상세한 전략이 담긴 자료였다.
“아시다시피 디움은 MP3로의 사업 다각화를 위해 산업 2위인 제이리버 인수를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필수 사장이 인수를 거절했는지, 공격적 M&A를 시도했고… 이에 대영전자가 끼어들어 그 인수를 저지했습니다.”
광위는 귀로는 말을 들으며 눈으로는 서류를 훑었다.
“그래? 왜 끼어들었느냐?”
그 말에 창수는 잠시 고개를 들어 광위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 그러시길 원하셨으니까요’라는 말이 목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담았다.
“이준성이라는 경영자를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놈이 뭐라고?”
“아직 네스트와 디움 모두 대영에 비하면 작은 기업이지만, 그의 성향은 매우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이 MP3 사업으로 다각화를 한다면 분명 대영과 경쟁이 시작될 거고, 그 과정에서 출혈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인수를 방해했습니다.”
“하지만 대영이 인수에 참전한다는 의사를 밝히자마자 디움은 지분을 싹 털고 나가버렸다. 결과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더냐?”
“관점에 따라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대영이 피해를 본 건 없습니다. 오히려 경쟁사인 제이리버의 지분을 확보해 추후 MP3 사업 경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의 수가 늘어났으니까요.”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실제로도 대영은 디움의 언론 공격으로 인해 양자택일을 강요받았고, 이에 따라 함정에 걸어 들어간 꼴이었으나…
마창수는 제 수완으로 그 함정을 상쇄했다.
그 결과 디움의 MP3 기술 확보 및 다각화를 막았고, 동시에 다른 잠재적 신규 진입자들에게 수틀리면 제이리버를 인수해 공룡이 될 수 있다는 공포심까지 심어줄 수 있었다.
가히 최선의 수가 아닐 수 없었다.
마광위가 공들여 키운 자식다운 솜씨였다.
물론, 그래 봐야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말이다.
“그래. 잘했다. 확실히 예라보다 낫구나.”
“… 감사합니다. 하지만 마예라 팀장 역시 뛰어난 인재입니다. 과거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다시 이준성과 붙는다면 그때와는 분명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마예라 역시 준성에게 실컷 깨진 뒤 마음을 다잡고 배워나가기 시작했고, 시간이 다르게 성장했다. 그러니 지금 다시 붙었다면… 적어도 그때보다도 ‘덜’ 깨졌으리라.
뭐, 그래 봐야 깨지는 건 똑같았겠지만.
광위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고, 심지어 창수 역시 아직은 준성에게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이제 복기 및 교육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네 녀석은 이번에 뭘 느꼈느냐?”
“…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치 연기는 집어치우거라. 혹여 진짜 몰라서 묻는 거라면 실망스럽구나. 네가 안 가려는 걸 내가 이준성에게 들이밀지 않았더냐. 내가 왜 그랬다고 생각하느냐?”
그 말에 창수는 잠시 고민하기도 잠시.
이내 있는 그대로의 심정을 밝히기로 했다.
“이준성과의 싸움에서 뭔가를 배우길 원하셨으니까요.”
“정답이다. 그래서? 너는 뭘 배웠느냐?”
“그는 처음 보는 종류의 경영자였습니다. 얼핏 보기엔 광기에 휘둘리는 맹수 같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다르더군요. 필드를 직접 돌아다니는 행동력.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꿔서 적용하는 유동성. 그리고 전체적인 판을 꿰뚫는 총명함.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과감함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 그런 녀석과 직접 싸워보니 어떻더냐.”
“회사의 득실로만 따지자면 제가 보는 보고서까지 올라오지도 않을 미미한 사건이었습니다만… 제게는 나름 큰 사건이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뛰어난 경영자는 많더군요. 그러니 더욱 배우고, 모자란 점을 찾아 고쳐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광위는 판을 보고 분석하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자기 성찰을 해내는 제 아들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왕은 본디 저래야지. 본디 큰 나라의 임금일수록 본인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를 보고도 덮어버리는 암군(暗君, 어리석은 왕)이 되거든. 확실히 창수가 내 피를 제일 짙게 이어받았어.’
그렇기에 평소라면 호통을 쳤겠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미 제 혼자 복기까지 끝내 열심히 소화하고 있는 녀석을 다그칠 필요는 없었기에.
“그래. 그쯤이면 됐다. 가 보거라.”
“회장님. 한 가지 여쭐 게 있습니다.”
마광위는 흔쾌히 물어보라는 듯 침묵으로 긍정했다.
“이준성 그 사람은 무엇입니까. 네스트 설립 때부터 지켜보셨다고 들었습니다. 내부로 들이실 생각입니까?”
“그건 왜 묻느냐?”
“적인지 아군인지 알아둬야 할 것 같았습니다.”
“하. 그래서 피아식별을 한 후에는?”
“아군이라면 우호적인 관계를 쌓아야 할 테고…”
이후 창수는 3초 정도 침묵했다가,
어딘가 섬뜩함이 묻어나오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 적이라면 더 크기 전에 싹을 밟을 겁니다.”
그 말에 광위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그 녀석을? 가능하리라 보느냐?”
“그건 이준성이 대영의 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그래서 대답은?”
“가불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이라면 더 위험해지기 전에 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굳이 경영적 측면이 아니라도 방법은 많고요. 정치권이라던가.”
“그래. 그럼 짓밟을 수는 있겠지. 이준성이라는 놈은 찍 밟으면 퍽 하고 터져버릴 테니까. 근데 그게 과연 진짜 승리라고 생각하더냐? 그건 네가 진 거다. 도망친 게지. 실력으로 이길 자신이 없으니 등 뒤로 칼을 박은 것 아니더냐?”
“아버지께서 왕이 되기 위해선 정적을 제거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도 하셨고요.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래. 하지만 동시에 경쟁이 없으면 회사가 썩는다고도 얘기했지. 이준성은 네게 좋은 경쟁상대가 될 게다. 그러니 허튼 생각 말고 일에나 집중하거라.”
“… 그 말은 이준성을 내부로 들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쯤 오자 마광위는 창수가 제 아들이지만,
참 끈질기고 피곤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냥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쯧. 끈질기기는. 그놈은 예라와 네 녀석의 선생이자, 동료이며, 차기 대영 총수의 참모진 중 한 명이 되어줄 녀석이다. 그러니 허튼 생각하지 말고 배우는 것에나 열중하거라.”
그 말에 창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야생마 같은 놈입니다. 길들일 수 없을 겁니다.”
“만약 네가 길들일 수 없다면 너는 대영 총수가 될 자격이 없는 게다. 말을 가려서 하거라. 못 한다거나 불가능하다는 건 네 재능과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으니까. 대답이 됐느냐? 이제 나가보거라. 나도 일을 봐야 하니.”
“… 알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끝났다.
창수가 떠난 뒤. 마광위는 제 아들의 경계하는 모습이 입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맘껏 기뻐했다.
‘그래. 경계하고, 두려워해라 창수야. 그 공포와 혹여라도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열등감이 너를 더욱 밀어붙일 거고, 끝내 너를 더더욱 강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그 날. 집무실에는 광위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반면 창수는 대영전자로 돌아가는 길에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제 아버지가 보인 낯선 모습 때문이었다.
‘… 여태까지 저 정도로 아꼈던 인재가 있었던가?’
적어도 창수가 알기엔 없었다.
당장 푸른 혈맹 중에서도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대영생명 사장의 아들 이강건조차 단칼에 내친 사람이다. 광위는 그만큼 사람을 다루는 데 날카로웠고, 본인이 제시하는 높디높은 조건을 채우지 못한 이들에게는 항상 철퇴를 날려댔다.
근데 그 대영의 절대적인 룰이,
오로지 이준성에게는 적용되고 있지 않다.
물론, 이준성이 외부 사람이라는 특이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마광위의 저런 모습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편애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애증이라고 해야 할까?
‘… 이준성이 그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마창수는 이준성이 영 껄끄러웠다.
하지만 뭐 어쩌랴.
대영의 총수인 마광위의 명이다.
그러니 지금은 다음 싸움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게 아니면 그와 친구가 되던가.
“김 비서.”
“예.”
“이준성에게 연락해서 술 한 잔…”
“약속 잡을까요?”
“… 아니야. 됐어. 잊어버려.”
“예.”
창수는 이후 대영전자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런 말 없이 창밖을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
마창수가 한창 경계심을 키우고 있을 무렵.
준성은 오래간만에 정겨운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다.
– 오랜만입니다 이준성 대표님. 드릴 말씀이 조금 있어서 그런데, 차 한 잔 어떠십니까?
바로 미래에 [재벌 저격수]가 될 존재이자,
준성의 무기 중 하나가 되어 줄 사람.
바로 박상진 서울대 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