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236
– 237화 –
꽤 오래간만에 온 연락이었다.
비록 준성과 상진이 보통 사이는 아니었기에 드문드문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딱 그뿐. 둘 다 워낙 바쁜 사람이었기에 얼굴은 본 지는 오래된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서울대 기업설명회 때였나.’
그게 대강 디움을 설립하고 얼마 안 됐을 무렵이니,
아마 1999년 1월쯤이었으리라. 벌써 4년이나 지났다.
그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준성은 [네스트]와 [디움]을 해외 침투를 시작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그뿐만 아니라 [유니드어스] 게임사를 운영했으며, 오태희라는 맹견으로 회사들을 사냥할 정도의 강력한 경영자가 됐다.
물론, 그 사이에 박상진이 놀았다는 건 아니었다.
그는 준성에 제공해준 수익성 평가 모델을 바탕으로 재귀에 성공했고, 이후 슬럼프를 극복해 말 그대로 대한민국 경영학계에 떠오르는 신예가 되어 있었다.
특히 그는 본인의 선한 성품에 어울리듯 [상생 경영]에 대해 강조했는데, 이러한 그의 신념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서적화.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시작으로…
[새벽 마당], [지식 비타민], [알면 좋고 몰라도 되는 사회 철학], [물음표] 등의 교양 예능에 출현하며 본격적인 스타 지식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 압권은 물음표라는 예능에 나온 그의 연설이었다.
– 저는 최근 사회가 너무 차가워졌다고 느낍니다.
– 외환 위기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소위 ‘카드대란’이라 불리는 신용카드 대출 부실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통받게 됐죠. 그 때문일까요? 우리는 조금씩 [도덕], [윤리], [정의] 등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 살아남기 위해서, 혼란한 세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눈과 귀를 닫았으며, 끝내 마음의 문까지 닫아버리게 됐습니다.
– 그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저는 매우 충격적인 일을 겪었습니다. 어떤 학생이 제게 와서 상담을 청하더군요. “교수님, 요즘 세상에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요.
– 왜 그런 것을 묻냐고 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미쳤습니다. 이제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 왔어요. 이런 세상에서 저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저는 그 말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의 울분 섞인 말이 마냥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우리는 두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차가워졌습니다.
– 이제 더는 힘든 사람을 돌보지 않게 됐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에 급급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마음속 한켠에 불씨를 품어야 합니다.
– 이 세상에 이제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더는 없어진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섬뜩하고 무서운 일에 당면하게 될 것입니다.
– 기업은 본디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렇기에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들이죠.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각자도생에 익숙해지고, 남들의 불행과 비명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언제든지 악해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그러니 가슴 속에 자그마한 불씨를 품어 주세요. 부디 인간성을 버리지 말아 주세요. 이상, 박상진이었습니다.
‘… 명연설이었지.’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전에 기업들이 가진 탐욕의 역사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갔을 때 [노예], [아동 착취], [노조탄압] 등 기업들의 끔찍하고 잔악한 행태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만약 사회에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없어진다면?
기업들은 과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게 뻔했다. 그게 훨씬 효율적이고, 본인에게 이익이 될 테니까. 그렇기에 필요한 게 바로 [정의]. 다른 말로 표현해서 [규제]였다.
물론, 박상진이 규제를 왕창 늘려 기업들을 죄다 때려 부수자는 얘기를 하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선’을 추구했을 뿐. 그저 그게 다였다.
‘… 근데 그런 박상진이 나를 보길 청한다?’
피차 바쁘거니와, 상진 역시 준성이 바쁜 걸 알았기에 안부 인사나 주고받자고 부른 건 아니리라. 이에 준성은 슬쩍 흥미가 솟아 간단히 수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아는 미래에서는 박상진은 노련한 재벌 저격수가 된다. 하지만 이번 생에선 내 개입으로 인해 그의 삶이 조금 변했어. 그렇다고 그의 성품이 변한 것 같진 않다.’
‘일단 지금 그의 포지션은 스타 학자다. 대중들의 인기와 명성을 등에 얹고 활발한 강의활동과 저술 그리고 논문을 통해 한국 경영학의 위상을 높이고 있어.’
‘근데 그런 사람이 기업인인 나를 보자고 한다? 보나 마나 중요한 할 말이 있는 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준성은 나쁘지 않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고,
흡족한 미소를 지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어놓고 잊어버렸던 씨앗이 드디어 발아했다.
과연 어떤 싹이 피어났을까?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
박상진과의 약속 날. 서울대 인근 커피숍.
다방과 카페 그 중간쯤에 있어 이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낡아 버린 공간으로… 준성이 회귀 후 처음으로 박상진을 만난 곳이었다.
그곳에서 가볍게 커피를 시킨 뒤 홀짝이며 옛 생각에 잠겨있기도 잠시.
딸랑-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며 박상진이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만 하더라도 올드한 취향의 양복에 둥근 금테안경 덕분에 나이에 비해 팍- 늙어 보이는 그였지만…
지금은 대중에게 노출이 잦았기 때문인지 퍽 말쑥해진 모습이었다. 특히 회색 뿔테안경이 인상적이었다.
“아! 여기입니다, 교수님. 이야… 완전 변하셨네요. TV로 볼 때만 해도 그냥 옛날이랑 느낌이 좀 다르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냥 다른 사람인데요?”
그 말에 박상진은 부끄럽다는 듯 웃음을 머금었다.
“어휴, 아닙니다. 꾸미고 다니니까 집사람은 좋다고 웃는데, 학자가 돼서 이러고 다니는 게 부끄럽네요.”
“학자라고 해서 딱딱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체면, 체통. 지키는 것도 좋은데 굳이 고집할 필욘 없잖아요?”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아무래도 겉모습이 주는 안도감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제게 있어서 낡은 양복과 둥근 안경은 의사 가운 같은 거였거든요. 신뢰의 상징? 뭐 그런 거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좀 덜 믿음직(?)스러워졌긴 했다.
비록 박상진의 나이가 40대 초중반이긴 했다마는, 동안이라 머-얼-리-서 보면 얼핏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그 덕에 살짝 분위기가 가벼워지긴 했다.
“뭐, 요즘 보면 그러고 다녀도 되실 것 같습니다. 최근 가장 핫한 지식인이시잖아요? 경영학계의 스타 학자고요.”
“어우, 스타라뇨. 제가요? 아닙니다.”
그 말에 박상진이 기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참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아마 겸손 반, 부끄러움이 반이었으라. 이에 박상진은 짓궂은 얼굴로 반격을 해왔다.
“에이, 그러는 이 대표님은 어떠십니까? 이미 전설 그 자체 아니십니까? 샤리를 시작으로 커피와 포털 이제는 게임에 투자까지. 못 하는 게 없으시잖아요? 일각에서는 잠은 주무시는지, ‘이준성’이 사람이 아니라 팀 이름 아니냐는 어이없는 얘기까지 나오는 거 있는 건 아세요?”
참고로 마지막 내용은 준성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하긴, 일반인이라면 잠도 안 자고 24시간 집중을 해도 해낼 수 없는 업적을 이뤘으니 저런 의심이 생기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마는…
‘… 아, 이런 기분이구만.’
기이할 정도로 고도가 높은 비행기를 타는 게 어떤 기분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에 준성 역시 손을 내저으며 ‘허허허’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덕담과 함께 인사를 주고받기도 잠시.
박상진은 이내 본론을 꺼내놓았다.
“… 사실 오늘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제게 중소기업청장 제안이 왔습니다.”
바로 본인의 정치권 진출 얘기였다.
이에 준성은 놀라서 잠시나마 굳어버렸다.
‘중기청장이라고?’
회귀 전 공정거래위원회의 우두머리로 [재벌 저격수]라는 별명답게 온갖 총수들에게 납탄을 날려대던 그였기에, 적당히 정치 쪽으로 발을 들일 것을 예상하긴 했다마는…
그럼에도 스케일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중소기업청. 솔직히 경영에 관련된 사람 아니고서야 딱히 들어볼 일 없는 한적한 곳처럼 보일 수 있는데… 생각보다 강력한 정부기관 중 하나였다.
특히 한국은 고도성장 시절 온갖 특혜를 대기업에 밀어주는 형태로 성장을 견인했기에, 소위 ‘선택받은 소수의 기업’이 국가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자라났다.
까닭에 대한민국 기업 중 99.9%가 중소기업이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청은 저 99.9%의 기업들을 책임지는 곳이었고 말이다. 적대로 작지 않고, 또한 작아서는 안 될 곳이다.
게다가 그뿐이랴?
공정거래위원회가 소위 [경제경찰]로 불리며 기업들의 부정행위를 적발하고 다니는 암행어사 같은 존재였다면, 중소기업청은 자그마한 기업들이 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비료를 뿌려주고 물을 듬뿍 주는 [보급관] 같은 존재.
그러한 존재의 우두머리가 중소기업청장이다.
절대로 만만하게 볼 자리가 아니다.
특히 40대 초반의 어린 학자에게는 더더욱.
‘… MH 정부의 영향인가.’
저번에 한 번 언급했듯, MH 정부는 굉장히 친-서민적 정부였다. 까닭에 자연스럽게 기업들에게 국민의 고통분담을 지시하는 편이었다. 아마 중기청장으로 박상진을 앉히려는 것 또한 그 강력한 의지 표명의 일환이리라.
특히 정부가 기업을 대하는 태도는 소위 정부 경제계 관련 인사들을 기용하는 데서 강하게 나타나는데…
소위 [비둘기 파]와 [매 파]로 나뉜다.
전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답게 기업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온건파였고, 후자는 맹금류답게 강경파를 뜻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경제 정책을 정하는데도 판이했다.
전자가 느슨하게 적용하는 편이라면,
후자는 공격적으로 적용하는 편이다.
그리고 박상진은 당연히 후자였고 말이다.
뭐, 그래 봐야 중기청 자체가 어딜 규제하는 곳보다는 챙겨주는 곳이었기에 벌써부터 대기업과 쌈박질을 하고 다니진 않으리라.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박상진이 중기청장에 앉게 된다면 나쁘지 않은 정책들과 중소기업들을 위한 비료가 듬뿍 뿌려질 거다. 특히 상생을 외치는 그였기에 더더욱. 좋은 커리어가 될 거야.’
아마 그는 중기청장 테크를 타고 정치권으로 더욱 깊숙이 진입. 이후 더욱 높은 곳으로 올라…
재벌들의 공포가 되어 주리라.
거기엔 당연히 [대영] 역시 포함되어 있을 터.
분명 추후 대영의 정치권 압력을 상쇄할 수 있는 좋은 카드가 되어 주리라. 최강의 씨앗이 아닐 수 없었다.
준성은 순수하게 웃으며 축하해줬다.
“이야, 축하드립니다! 중기청장이라니…”
“고민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계속 학자로 남고 싶어서 정치권에 발을 들이는 게 고민됐습니다만…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은 허울뿐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제부터 제 손으로 대한민국을 바꿔보고 싶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겠지만요.”
“처음이 중기청장이면 작은 것 같진 않습니다만?”
그 말에 박상진이 부끄럽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래서 국가의 부름에 응하기 전에 이준성 대표님께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 감사라뇨?”
“있잖습니까, 저는 이준성 대표님이라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반짝하고 사라져 가는 그저 그런 교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은 준성을 만나고 180도 달라졌다.
준성에게 건네받은 전략을 박상진만의 스타일로 개량해 발표했고, 이후 수없이 많은 기업들의 러브콜을 시작으로 그는 일약 경영학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는 중소기업청장이라는 엄청난 제안까지 받았고 말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그때 이준성 대표님이 보낸 편지를 무시했다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하고 말입니다. 뭐, 답은 정해져 있었겠죠. 허우적거리다 끝났을 겁니다. 그리고 반짝- 하고 사라진 수도 없이 많은 교수 중 한 명이 됐겠죠.”
“…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겸손이 과하신 것 같네요.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명성을 위해 박상진 교수님과 거래를 한 것뿐이죠. 실제로 발표하신 논문도 제 전략을 그대로 쓴 게 아니라 교수님이 재해석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박상진은 따스한 미소를 머금었다.
“뭐, 그럴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제가 대표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고, 그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상진은 고개를 숙이곤,
작게 ‘감사합니다’ 라고 읊듯이 말했다.
참 언제봐도 됨됨이가 된 사람이었다.
이에 준성 역시 고개를 함께 숙이며,
‘좋게 생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답했다.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박상진은 본인의 등을 밀어준 것에 고맙다며,
언젠가는 반드시 빚을 갚겠다는 맹약을 남기곤,
실천하는 지식인이 되고자 정치권으로 힘껏 향했다.
그렇게 준성에게 ‘정치권 줄’이자,
대영의 정치적 압박을 상쇄할 카드가 마련됐다.
비록 지금은 갓 싹이 튼 작은 씨앗에 불과했지만…
박상진은 제 혼자 알아서 무럭무럭 잘 자라나,
추후 중요한 순간에 큰 도움이 되어 주리라.
‘… 마광위, 마병수. 둘 다 기다려라. 너희 목에 칼을 박아 줄 카드가 또 하나 내 손에 들어왔다. 차근차근 다가가 주마.’
준성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