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241
– 242화 –
2003년 9월이 됐다.
반짝하던 무더위가 사라지고,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 역시 잠잠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초가을이 시나브로 찾아왔다. 비록 아직 해가 중천일 때에는 너무나도 더워 사람들이 구슬땀을 흘렸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차곡차곡 잘 흘러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복수 역시 계속 진행됐다.
김우현 부사장은 오낙우 변호사와 함께 어떻게 해야 곽상혁을 조질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을 계속 얘기해 나갔다. 오태희 또한 준성이 건네준 전략대로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었다.
이미 모든 판은 잘 짜인 덫처럼 굴러가고 있었지만, 정작 어진넷은 제 목에 올무가 조여오는 것도 모른 채 어진넷은 열심히 일했다.
과거 그들이 착취했던 개발사들처럼.
정당한 보상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서 일했다.
덤으로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장민우는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준성이 알려주지도 않았거니와, 그에게는 피날레를 장식할 제일 중요한 역할이 주어질 것이었기에…
…
투자를 결정하기 위한 미팅 당일.
어진넷에 준성이 보낸 집행자,
오태희가 도착했다.
원래 정상적인 절차대로였다면 디움 재무팀장과 유니드어스의 경영지원팀장 그리고 게임을 선별하기 위한 개발자들이 동행했겠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투자가 아닌 기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오태희는 그 역할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의 주인이 그걸 지시했기에.
“오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진넷 사장 김…”
“아, 예. 오늘 미팅 결과에 따라 다음에 안 보게 될 수도 있으니까, 피차 예의상 하는 인사는 생략합시다. 이름 같은 거 들으면 의사 결정할 때 신경 쓰이거든요. 생선 머리 따는 데 눈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태희는 90도로 폴더 인사를 하는 어진넷 사장의 말을 끊어버리곤, 마치 빈민촌에 도착한 중세 귀족처럼 얼굴을 팍 찌푸린 채 고압적인 태도로 주변을 훑어봤다.
“회사가 작네요. 구멍가게도 아니고.”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태도.
어진넷 사장은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느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그들은 [고]를 외쳤고, 일은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멈추는 게 가능할 리가.
덤으로 실제 어진넷은 디움에 비하면 구멍가게에 불과한 회사가 맞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미팅을 시작하기 전부터 분위기가 냉각되어 봐야 좋을 게 없었기에, 곽상혁 부사장은 영업직원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글거렸다.
“하하, 저희 어진넷은 전문 퍼블리셔고, 따로 협력 중인 개발사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내실은 튼튼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태희는 그런 상혁을 눈만 움직여 내려다봤다.
‘… 꼬라지 보니 쟤가 곽상혁이겠네. 미안한데, 당신 지금 *됐어. 불쌍한 새*. 사기를 칠 거면 상대라도 잘 골라서 치던가… 골라도 하필… 앞으로 당신 인생길 오지게 꼬일 거야.’
하지만 그런 비아냥거리는 생각도 잠시.
태희는 사적인 감정을 털어내곤 본인이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해 별다른 반응 없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규모 퍼블리셔답게 작디작은 회의실 안. 비교적 영업능력이 뛰어난 곽상혁 부사장이 PT를 시작했다.
– 안녕하십니까, 해당 게임은 현재 저희 협력 개발사인 레드-콰트로에서 개발한 MMORPG 게임입니다.
설명과 함께 공을 잔뜩 들인 아트워크가 나타났다.
마치 동화 속 세계인 것처럼 큼지막한 식물들이 가득하고, 그 안에 꼭 나무로 만든 형이상학적 건물들이 보였으며, 활을 든 여자 엘프의 등이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 표적 고객은 10대 초중반~20대 초반 고객이며,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를 바탕으로 비단 남성뿐만이 아닌 여성 역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합니다.
– 또한, 천편일률적인 [전투]와 [레벨업]만 반복되는 게임이 아닌, NPC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시작으로 [아르바이트], [생산 활동], [공연], [탐험] 등의 컨텐츠를 통해 유저가 세계 속에 녹아들게끔 하는 게 목표입니다.
– 해당 게임의 최종 목표는 완벽한 판타지 라이프의 구현이며, 높은 몰입도를 통해 유저들의 이탈률을 최대한 방어하고자 합니다.
제아무리 사기꾼이지만 기본 능력이 됐던 걸까?
딱히 나쁜 PT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디움이라는 투자자를 끌어안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리라. 이후에도 상혁은 게임에 대한 얘기를 이어나갔다.
– [전투]는 기본적으로 가위, 바위, 보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완벽한 하나의 스킬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카운터를 칠 수 있는 스킬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유저는 간단해서 쉽게 적응할 수 있되 숙련되기는 어렵게끔 디자인했습니다.
– [생활]은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캐릭터는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피곤하면 능력치가 떨어집니다. NPC들 또한 역시 특정 시간대에 맞춰 활동합니다.
– 저희는 이러한 컨셉에 맞춰 저희는 일직선 진행이 아닌, 오픈 월드를 구현해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끔 권장하려고 합니다.
– 그리고 해당 게임에는 자체적으로 만든 [레콰트로 엔진]을 이용함으로써, 그래픽 대비 최적화를 매우 높게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꽤 자세하고 공들인 설명.
하지만 오태희는 저 얘기를 들으며…
‘이번에 소개받는 승무원 예쁘려나. 그래도 승무원은 시차랑 일하는 시간 때문에 영 꺼려지는데. 역시 모델이나 만날까? 그쪽이 내 취향에 더 좋기도 하고…’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초반에 캐릭터 설명할 때 나온 여성 캐릭터 그림을 본 후 줄곧. 심지어 오태희는 해 본 게임이라고는 [스타 크래프트]와 ND 소프트의 [리즌]이 전부인 사람이다. 그러니 저 설명이 모조리 외계어로 들릴 수밖에.
그렇게 약 45분쯤 되는 정성 들인 PT가 끝났을 무렵.
오태희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어진넷의 사장과 부사장, 사기꾼 듀오의 얼굴에 긴장감이 차오르기도 잠시.
“재미없어 보이네요.”
오태희의 밑도 끝도 없는 혹평에 둘은 당황했다.
보통 게임사에서 투자를 받을 때, 서로 분야가 달라 [경영의 언어]와 [게임의 언어]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대놓고 돌직구를 날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미, 미친놈… 네가 재밌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네가 하라고 만든 게임이 아닌데. 저거 애들 하라고 만든 게임이야!’
그 덕에 곽상혁은 화가 뻗쳤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으며 되물었으나…
“어, 어떤 부분이 재미가 없으시다는 건지…?”
“게임이 섹시하지가 않아요. 매력이 없어.”
이후 달나라 같은 답변에 머리가 멍-해졌다.
마치 어이가 안드로메다까지 호롤로롤 날아가는 기분이 이럴까? 이에 상혁은 마치 광고 기획자가 광고주에게 컨셉 물어보듯 자세히 되묻기 시작했다.
“세, 섹시하지 않다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혹시 노출도 있는 의상을 넣거나 섹스어필을 넣으시라는 건가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저래서는 안 된다.
현재 그들이 개발 중인 게임은 아기자기한 그래픽으로 남녀 모두를 노린 게임이지 성비 90%의 아저씨 냄새 풀풀 나는 마초적인 게임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태희는 얼굴을 팍 찌푸리며 상대방 기분 나빠지기 딱 좋은 반-존댓말로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섹시하지가 않아요. 게임이 잘빠지지가 않았다고. 나는 저 게임 얘기를 들을 때, 딱 하고 싶다는 느낌이 안 왔어요. 무슨 말인지 몰라? 아, 답답하네요.”
말 그대로 상대방 빡치라는 듯 툭툭 던지는 말투.
본인이 직접 프리랜서 투자자로 뛰며 부하직원을 수도 없이 말로 담궈봤던 오태희였던 만큼, 가히 신랄한 말솜씨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본인보다 대여섯은 어려 보이는 태희의 만행에 곽상혁은 짜증이 팍 솟았으나 애써 참으며 되물었다.
“…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어떤 게임을 원하시는 건지 감이 잘 오질 않아서요. 해당 작품은 이미 엔젤 투자 당시에 출품했던 작품이라 이미 충분히 인정을 받은 줄 알았는데…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이에 태희는 대충 본인이 아는 것을 내뱉었다.
“ND 소프트의 리즌 안 해봤어요? 간단하잖아, 게임이. 클릭하면 움직이고. 누르면 때리고. 물약 빨고. 레벨업 하고. 돈 벌고. 얼마나 직관이야? 판타지 라이프? 아, 그딴 거 하고 싶으면 그냥 해외 나가면 되지 오락을 왜 합니까?”
“아… 핵 앤 슬래쉬 장르를 말씀하시는 거면, 그건 저희와 개발 방향이 맞지 않습니다… 이미 만들어 놨던 걸 모두 뒤집어야 하는 건데…”
오태희는 그 말에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지금 디움 내부에서 투자 예산으로 250억 정도 준비했습니다. 근데 나는 지금 이 게임이 마음에 들지가 않아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곽상혁 부사장? 당신 설마 그 정도로 일머리가 없는 사람은 아니죠?”
참고로 2003년의 게임 시장은 100억만 들어가도 블록버스터 소리를 듣던 곳이었다. 근데 그 와중에 250억? 받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타이틀이 생기거니와, 제대로 성공하면 일류 개발사로 알박기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액수였다.
근데 그 엄청난 액수가,
오태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디움의 특투실장이라는 배경이 그걸 더욱 그럴싸하게 포장했고 말이다. 곽상혁은 머리가 하얘졌다.
‘무, 무조건 받아야 한다…’
250억 준다는 데 게임 하나 작살 내고 새로 만드는 게 대수랴. 저 돈이면 까라면 무조건 까야 한다. 이에 곽상혁은 표정을 싹 고치곤 마치 태희의 발이라도 핥을 듯 웃었다.
“죄,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까 저희 방침이 조금 잘못된 것 같네요. 일단 수정을 그쪽으로 잡겠습니다.”
“어. 그래. 그렇게 진행해요.”
“예. 그럼 조만간 기획 다시 잡아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닷새 줄게. 그 안에 해서 가져와요. 시범 돌려볼 수 있게 체험판 포함해서.”
“… 예? 아니, 어떻게…”
“왜? 안 되나? 유니드어스는 그렇게 하던데?”
“아뇨! 됩니다! 바로 가져가겠습니다!”
태희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슬쩍 제 시계를 보는가 싶더니 킁 소리를 냈다.
“아… 근데 이걸 어쩌죠? 시간이 아쉽게 비네. 어진넷 게임이 괜찮을 줄 알고 딱 끝내고 본사 들어가면 괜찮게 시간 맞춰서 왔는데… 이거 결과물이 별로라 너무 일찍 끝났어. 지금 들어가면 영 그림이 안 좋을 텐데…”
태희는 이후 상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랑 술 한잔 할래요?”
그 말에 상혁은 0.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예! 그러시죠!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곽 부사장 사람 마음에 드네. 대화가 통해요.”
…
그 날. 태희는 어진넷 사장과 곽상혁을 데리고 말 그대로 마셔라 부어라를 진행했으며, 온갖 진상이란 진상은 다 부려댔다. 그 결과 나온 술값이….
480만 원 되시겠다.
사실 디움이나 네스트 쯤 되는 큰 회사에게는 저 정도 접대나 의전 비용이 코웃음 나는 돈이었으나… 어진넷 같은 소규모 퍼블리셔에겐 아니었다.
쓸만한 직원 2명의 월급 값.
그게 하룻밤 접대비로 오태희 주둥이로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곽상혁은 술에 잔뜩 취해 반쯤 꽐라가 되어 ‘줴발 좔 좀 부탁드리게쑴돠!’라며 90도로 인사했고, 태희는 그런 상혁의 머리를 거의 때리듯 두드리며 ‘하, 곽 부사장. 나만 믿어요. 나만’이라며 조소를 머금었다.
…
그리고 비슷한 시각.
준성이 고급스러운 러시아 식당에 앉아있기도 잠시.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전화가 울려 받아 보자,
살짝 취기가 오른 태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대표님, 오태희입니다. 지시하신 대로 처리했습니다. 어진넷 측은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 그래요. 오후부터 술 마시느라 수고했어요. 고생이 많습니다. 내가 항상 오 상무 덕을 많이 봐요.”
준성이 피식 웃으며 칭찬을 건네자,
태희는 이런 일은 오히려 환영이라는 듯 답했다.
– 아닙니다. 오래간만에 이런 일 해보니까 재밌네요. 앞으로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권력 휘두르는 건 언제나 환영이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준성은 다시금 오태희가 집행자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조용히 보드카를 홀짝이고 있기도 잠시.
“아이고, 제가 좀 많이 늦었죠!? 이거 차가 너무 막혀가지고….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굵은 뿔테안경,
약간 하이톤의 목소리,
우동 면발처럼 곱슬머리는 머리,
그리고 어진넷의 숨통을 끊어 줄 또 다른 암살자.
KBC 경제부 우동민 기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