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298
– 299화 –
얼마 후.
경기도 가평 인근 별장에 허진택이 도착했다.
이에 기다리고 있던 피승원이 나타났고, 옆으로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쟁반을 하나 내밀었다. 그 위에는 물티슈와 세니타이저(sanitizer, 손 소독제)가 놓여 있었다.
– 손 닦으시고, 소독하십시오. 그다음 휴대전화를 포함한 모든 전자자기와 브로치, 넥타이핀, 헹커칩 등 기타 악세서리를 쟁반 위에 올려 주시면 됩니다.
– 술은 상무님께서 권하실 때만 드시고, 눈은 3초 이상 마주치지 마십시오. 또한, 상무님의 술 역시 본인이 따라 드실 것이니 권하지 마십시오. 식사하실 때에도 되도록 식기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게끔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 식사 도중 필요하신 게 있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실 땐 조용히 왼손을 들어 주시면 됩니다.
허진택은 그 말에 조소를 머금었다.
사실 재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벌어지는 이 의전이 그냥 깐깐한 사람을 만나는 데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이겠거니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택은 달랐다.
그 역시 재벌 방계로서 배우지 않았던가?
지금 저들이 행하고 있는 건 바로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는 일종의 시위였다. 마치 왕 내지는 권력자를 만나기 전에 힘을 과시하듯 초장부터 기를 죽이는 것이다.
‘… 빌어먹을 새끼들. 너희들은 항상 그랬어. 마치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말이지. 구역질이 나는군.’
그럼에도 허진택은 조용히 따랐다.
본디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가도 늦지 않다고 했던가? 그 역시 제 복수를 이룰 힘을 기르기 위해 이 정도 푸대접은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었기에.
그렇게 입은 옷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지품을 경호원에게 맡기고 난 뒤, 금속 탐지 및 몸수색을 지나고 나서야 진택은 마창수를 만날 수 있었다.
“어, 왔어?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그럼. 나야 항상 잘 지내지.”
얼핏 보기엔 양복쟁이들이 나누는 진심이 거의 담기지 않은 사무적인 인사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는 진짜 반가움이 들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진택과 창수는 서로 구면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우리 하준이 돌 때였나?”
마하준. 마창수의 아들 이름이었다.
특이하게도 창수는 재벌치고 결혼을 엄청 일찍 한 편에 속했는데, 그렇기에 창수 나이가 현재 30대 중후반임에도, 그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랬었죠. 벌써 몇 년이나 지났네요.”
“그랬지. 그때 기억이 나. 급하게 뛰어오느라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거리던 네 모습이. 그때는 고마웠다.”
“… 됐어요. 이미 반쯤은 호적 파인 놈을 불러주신 게 어디입니까. 그러니 가야죠. 제가 받은 것도 있었고요.”
“… 너희 아버님 장례식 얘기하는 거니?”
“예, 뭐… 쯧. 그땐 고마웠습니다.”
허진택은 그렇게 말하며 그 날을 떠올렸다.
사람 하나 없는 썰렁한 장례식장.
아버지께서 잘나가실 땐 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충성을 맹세했던 부하들은 아버지가 실각하시자마자 모두 떨어져 나갔고, 로테와 관련된 사람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었다.
근데 그 와중에 마창수가 찾아왔다.
비서나 경호원 하나 대동하지 않은 채, 일본에서 있던 장례식임에도 비행기를 구하지 못해 이코노미석을 타고 말이다. 그리곤 사람이 없는 걸 보곤 그 자리에서 즉시 비서에게 연락해 장례까지 원만히 진행될 수 있게끔 도와줬다.
그렇기에 진택은 창수에게 부채감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공적으로가 아니라 사적으로써.
“… 아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 그런 거로 괜히 부채감 느끼지 마. 우리 그런 사이 아니잖아.”
“예, 뭐. 그러시다면야.”
“일단 술 한잔 할까?”
그 말에 둘은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고,
진택은 이후 묘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기다렸다.
비록 창수와 진택이 어렸을 적 재벌가의 자식들로서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입장. 둘은 엄연한 한 기업체의 의사결정자이자 동시에 경쟁자였다.
현재 타이밍을 보아 할 때.
갑자기 친분이나 다지자고 부른 건 아닐 터.
그렇기에 진택은 긴장감을 유지하되,
과거의 좋은 추억을 부수진 않도록 노력했다.
그나마도 없다면 악몽으로 점철된 어린 시절이었기에.
“뭐,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다마는… 그룹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니? 허 총수님께서 걱정하시던데.”
아마 로테 총수를 묻는 것이리라.
“그 양반이 저는 왜 걱정한답니까. 악어의 눈물, 뭐 그런 겁니까? 애초에 걱정이라는 걸 할 사람이면 저희 아버지를 그렇게 내치지는 않으셨을 텐데 말이죠. 본인 형제도 그렇게 내친 사람이 갑자기 제 조카가 고생하는 걸 보니 인류애라도 느끼셨댑니까? 쯧.”
“… 너도 알잖아. 사업을 하다 보면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라는 거. 그건 사고였어.”
“남 일이라고 말 쉽게 하시네요. 그 ‘어쩔 수 없는 일’로 남의 목을 쳐 보신 적은 있어도, 목이 날아가는 처지는 안 돼 보셔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그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피승원이 눈만 움직여 창수를 살펴봤고, 창수는 눈으로 승원을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너 변했구나. 옛날엔 안 이랬는데.”
“원래 사람은 모두 변합니다. 그저 저는 남들보다 극단적인 일을 겪었으니, 조금 더 많이 변했을 뿐이고요.”
“… 어쨌든 그룹에 복귀는 안 할 생각이니?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하고 돌아가면, 허 총수님께서도 용서해 주실 거야. 계열사 사장 정도는 할 수 있을 거고.”
“왜요, 우리 아버지 목숨 값이랩니까?”
“… 진택아.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나 너랑 싸우려고 부른 거 아니야. 그냥 아는 동생 보려고 부른 거라고.”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제가 디움과 손을 잡아서 그런 겁니까? 사업 접고 로테로, 일본으로 돌아가라고?”
그 말에 마창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널 보면 내 동생 생각이 나.”
“… 병수요?”
마병수.
대영의 아픈 손가락이자,
재벌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미친개,
언론의 슈퍼스타이자 트러블 메이커였다.
그리고 동시에 준성의 복수 대상이기도 한 존재.
“그래. 너랑 병수랑 닮았거든. 재능은 좋은데 겉도는 거.”
“… 됐어요.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하고 가죠. 저는 로테를 무너뜨릴 겁니다. 제 아버지를 욕보이고, 욕심에 눈이 멀어 우리가 받았어야 했을 정당한 유산을 강탈한… 그 빌어먹을 허 가 놈들을 제 손으로 씨를 말릴 겁니다.”
이후 허진택은 로테그룹의 상징인 붉은 색 안광을 뿜어내며 입을 열었다.
“… 그러니 그 얘기는 그만 하죠. 나는 형님께 좋은 동생으로 남고 싶으니까. 그러니 절 부른 이유를 말씀하세요.”
그 말에 마창수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제 동생이 생각나 그런 것인지, 어린 시절 추억의 동생이 변한 것 때문인지, 아니면 상황이 제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 중 하나일 수도,
아니면 셋 다 일 수도 있겠지.
“이제 우리 사이에 이유까지 필요할 정도구나.”
“사적인 정 얘기하기엔 우린 더러운 너무 꼴을 많이 봤어요. 알잖아요. 돈. 경영과 권력. 명예. 그거에 취하면 사람이 맛이 가요.”
“… 그래. 그렇지. 돈과 권력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가리니까. 하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은 안 그러길 바랬거든.”
창수는 술을 제 입에 털어놓고는 말을 이었다.
“널 보자고 한 이유는 세 개였어.”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안부 인사였고,
두 번째는 이준성과 일하지 말라는 회유였으며,
세 번째는 디움이 준비하는 혁신 정보의 탐문이었다.
“보아하니 마음이 굳은 것 같네. 그러니 내가 회유하려 하거나, 보상을 준다고 해도 듣지 않을 테고. 맞지?”
“예. 그렇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확답.
그리고 그 안에 피어난 충성심.
이에 마창수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창수는 살면서 제 부하직원에게서는 단 한 번도 저런 눈을 보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허진택은 상처 입은 맹수 같은 사람 아니었던가?
‘… 이준성. 뭘 했기에 사람들이 널 이렇게나 따르지? 도대체 어째서? 툭 치면 바스러질 것 같은 그 작은 회사로?’
사실 준성이 한 건 별것 없었다.
그저 직원들을 [사람]으로 대하고,
그들과 함께 제 [목표]를 공유했으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에 힘을 실어줬다.
마치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서도 말하듯,
그들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가 없었지만…
준성이 직접 옆에서 함께하며 힘을 실어 줌으로써,
그들 역시 준성의 옆에 서서 그의 기둥이 되어 줬다.
반면 창수는 조금 달랐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준성과 달리, 창수에게 있어 부하직원은 그저 톱니바퀴에 불과했다.
손을 뻗지 않아도 언제나 주변에 최고급 인력이 널려 있었기에, 솔직히 가끔은 그들이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때조차 있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창수는 부하직원의 마음을 얻기 어려웠다.
수완과 전략으로 기업을 굴복시켜 흡수하는 것에는 능했지만, 정작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얻지 못했던 것이다.
굳이 삼국지에 비교하자면 창수는 조조, 준성은 유비와 같다고 보면 되리라. 그렇기에 궁금해졌다.
“… 그래. 어차피 정보는 못 빼 올 것 같으니까, 개인적인 질문을 하나 할게. 이준성이 네게 뭘 약속했니?”
“내게 제일 필요한 것. 복수요.”
허진택은 꼭 금방이라도 피눈물을 흘려낼 듯,
제 눈에 아주 짙은 붉은 색 안광을 흘리며 대답했다.
“과연 그 녀석이 복수를 이뤄줄 수 있을 것 같니?”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복수는 제가 합니다. 이준성은 그저 제가 복수할 만한 힘을 키울 때까지 도와주는 것뿐입니다. 저 역시 그 과정에서 그를 도울 뿐이고요.”
마치 아주 견고한 쇠사슬이 이러할까?
창수는 이에 두손 두발 다 들었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는 경영자 마창수로 돌아와 어딘가 조금 섬뜩해 보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응원할게. 하지만 지금 네 적수는 대영이야. 너희가 만드는 그 PDA가 우리를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이에 진택 역시 호승심 넘치는 미소로 응해줬다.
“당연하죠. 빅셀이 만들 PDA는 대영을 꺾고, 거기서 더 나아가 세계 최고가 될 겁니다.”
창수는 그 대답이 이유 없는 허세는 아닐 거라 생각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앞으로는 아는 형 동생이 아니라, 경쟁자가 되겠네. 만나서 즐거웠다, 진택아. 응원하마.”
“비꼬시는 겁니까, 아니면 도발하시는 겁니까?”
“둘 다 아냐. 어차피 이 싸움은 대영이 이길 텐데 뭐하러? 그저 헤어지기 전에 아는 동생을 배웅하는 것뿐이야.”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진택은 남은 술을 털어 마시고는,
쿵 – 소리가 나게끔 잔을 내려놓고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렸다.
이후 혼자 남은 창수는 웃음을 터트렸다.
‘… 이준성, 참 재미있는 녀석이야. 아버지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것도 이해가 간단 말이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수 역시 곧 다가올 전투가 기대됐는지,
대영의 심볼과도 같은 푸른 안광을 흩뿌렸다.
‘하지만 나도 만만치 않을 거다, 이준성. 저번 제이리버 건은 단순 인수였기에 무승부로 끝났지만… 이번 전장은 대영의 핵심인 전자다. 기교 따위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해주마.’
…
2004년 5월 말.
허진택은 괜한 오해를 남기지 않기 위해 창수를 만나고 왔음을 밝혔고, 이후 개인적인 친분으로 만났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마창수가 PDA라는 단어를 누누이 언급한 것을 봤을 때, 그는 우리의 전략을 전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내심 도움이 되고 싶었는지, 이중첩자(?)라도 된 것처럼 대영 측의 정보를 물어다 줬다. 이에 준성은 이미 마창수가 팜톱 쪽으로 삽질을 하는 것을 알았음에도…
– 고마워요. 큰 도움이 됐네요.
… 라며 괜히 모르는 척 공치사를 해줬다.
그렇게 자잘한 헤프닝이 끝난 뒤, 일산.
준성 역시 밀회(?)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렇게 약 15분 정도 기다렸을까?
준성의 차 바로 뒤에 웬 검은색 밴이 정차하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웬 여자가 휙 튀어나와 오도도도- 달려왔고…
덜컥 – !
이내 준성의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차 안이 마치 동화 속 세상이라도 된 것처럼 파스텔톤으로 물들었고, 살짝- 풍겨오는 향기를 맡자 세상에 온갖 핑크색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그런 그녀의 정체.
바로 전지혜였다.
“오빠, 우리 오늘 꽃구경 하는 거예요? 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