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3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컴퓨터를 구입하는 거였다.
당시의 준성은 취직도 하지 않은 상태라 97년 기준으로 꽤 고가품에 속하는 고급 PC를 사기는 빠듯해야 정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통장 잔고가 400만 원 정도 찍혀 있었다.
‘… 내가 이렇게 돈이 많았었나?’
기억하기로 회귀 전 27살의 준성은 그렇게까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게으른 사람에 가까웠다.
근데 저 돈이 다 뭔가 하니…
바로 면접비와 과외비 되시겠다.
97년까지의 한국은 말 그대로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래프만 봐도 거의 미친 수준으로 오르지 않았던가?
60년에 겨우 [79달러]였던 1인당 국민 소득이,
70년에는 [255달러]로 껑충 뛰더니,
80년에는 [1,660달러]로 확 오르고,
90년에는 [6,303달러]로 미친것처럼 상승했으며,
96년에는 [12,518달러]로 정점을 찍어 버린다.
거의 10년에 적게는 3배에서 6배씩 널뛰기를 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고,
이 시기의 기업들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특히 정부가 아예 대놓고 대기업을 밀어주던 시기였던지라, 급격히 팽창하던 대기업에는 사람이 항상 부족했었다.
까닭에 이 무렵 대학생들은 학점이 개판이 나든 말든 졸업만 하면 무조건 취업을 할 수 있었고, 기업들이 취준생들을 거의 말 그대로 ‘모셔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그때 나온 게 바로 면접비 알바였다.
저게 뭔고 하니… 굳이 일하지 않고,
기업에 면접만 다니며 그 돈을 모아서 노는 거였다.
‘취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놀아보자는 심보였지. 여태 공부만 했으니 마지막으로 탈선을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어차피 서울대 상경계 출신이었기에, 원하는 기업을 골라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1997년에 IMF가 터지면서 개고생을 했다.
‘인생 마지막으로 노는 게 아니라 평생 놀뻔했었지.’
지금 돌아보니 참 철이 없었구나 싶었지만 어쨌거나 그건 과거. 중요한 건 지금 수중에 400만 원이 있다는 거였다.
준성은 용산에서 컴퓨터를 하나 구입해서 돌아왔다.
‘이야, 얼마 만에 보냐.’
2018년 기준, 거의 골동품에 가까운 물건.
굳이 이 물건을 지금 구입한 이유를 간단했다.
바로 인터넷. 아니, PC 통신을 하기 위해서였다.
‘97년이면 한국 IT산업의 태동기다.’
당시의 인터넷은 아직 얼리어답터(혁신수용자)들 말고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유저는 하이텔이나 천리안에 있어.’
PC를 켜고 윈도우 95 배경의 그리움을 느끼고 있기도 잠시. 하이텔 프로그램을 실행하자 특유의 팩스 비스무리한 접속음과 함께… 원하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기업, 경제 관련 게시판이었다.
‘찾았다.’
준성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현재 가진 자산으로는 사업을 하거나 투자를 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혹시를 대비해 비상금도 확보해야 했거니와, 조금씩 쪼개서 투자해 봐야 그 수익 역시 미미할 터.
‘차라리 그럴 바엔 내가 직접 뛰는 게 더 낫다.’
어차피 첫술에 배부를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첫술로 만족하려면 배가 터져 죽을 정도로 목표가 큰 상태. 차근차근 접근하는 게 옳으리라.
‘일단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경영 컨설팅이다.’
준성은 대영의 전략기획팀장이었다. 사실상 지금 이 시점의 한국에서는 준성보다 더 좋은 수완가가 없으리라.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그저 27살의 사회 초년생일 뿐.
나이가 중요한 한국에서 사회 경험도 해보지 않은 녀석에게 컨설팅을 맡길 바보 천치는 없다고 봐야 옳다.
어디 한 번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여기. 여기. 여기. 문제입니다. 바꾸세요.’ 라고 한다?
멱살 안 잡히면 다행이다.
까닭에 준성이 결정한 길은 간단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자산도 인맥도 배경도 없다면…
‘그깟 배경과 명성. 직접 만들면 그만이야.’
타닥- 탁- 타닥-
빠르게 타이핑을 해 나갔다.
그 내용은 앞으로 일어나야 할 일을 경영적인 측면에서 풀어낸 일종의 예측이었다. 아니. 사실상 분명 일어날 일이었기에 예언이라고 해야 옳았지만…
‘굳이 센 어조로 주의를 끌 필요는 없겠지.’
그 외에도 준성은 지식인들과 경제인들을 낚아내기 위해 97년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으로 보일 법한 경영전략들을 몇 개를 PC 통신에 익명으로 올렸다.
물론, 공개된다고 한들 준성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수준의 전략들로만 골라서 말이다.
*
준성이 하이텔 PC 통신으로 올린 정보들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준성이 PC 통신에 경영 관련 정보를 올리기 시작한 게 2월 7일이었다.
사실상 외환 위기(IMF)의 사실상 신호탄 격인 재계 순위 14위 한부그룹이 부도 처리된 게 1월 30일.
준성은 이후 현재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기형적이라는 얘기를 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외환 위기를 예언했다.
– 한부는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최근 기업들의 재무 상태로 예측하자면, 머지않아 3월쯤 사미 그룹이 부도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다음으로 팔립과 한산 역시 불안합니다. 제가 이러한 판단을 한 근거는 … … …
물론, 그 이야기가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 너무 성급한 추측이 아닐까요?
– 겨우 재벌 하나 엎어졌는데 죽는소리는 좀…
– 다들 잘 나가는 중인데 무슨 헛소리를 합니까?
–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저 세 기업이 어떤 곳인지는 알고서 글을 쓰는 겁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런 글 올릴 시간에 건설적인 일을 하란 말입니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있었고, 위기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저 모두 잘 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었다.
몇몇 깨어있는 지식인들이 기업들의 이러한 기형적인 재무구조는 자칫 잘못하면 도미노식 줄도산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모두 총대를 메지 못하고 쉬쉬했을 뿐.
그 가운데 준성이 소리 높여 위기를 외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성은 외환 위기를 예언함과 동시에 당시로써는 매우 혁신적인 경영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를 본 소수의 경영학자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 3월.
점차 1997년의 세계와 젊어진 제 몸에 익숙해질 찰나.
준성이 꺼내놓은 외환 위기의 첫 번째 예언이 실현됐다.
– 사미 그룹이 쓰러졌습니다. 이들은 제3자 인수의 길을 걷게 됐고, 사미라는 이름은 역사 속에 사라졌습니다.
바로 그 누구도 망할 거라 생각지 못했던 재계서열 27위 사미 그룹의 부도였다. 당시 재벌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당연히 하이텔의 기업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이를 예언한 이준성.
아니, 닉네임 [오라클]의 예언 글은 화제가 됐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확인하며 입을 쩌-억 벌렸다.
특히 삼미 그룹의 주식을 가지고 있던 주주들은 왜 저 글을 일찍 보지 못했을까 땅을 치며 후회했고, 준성을 보며 이목을 끌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미친놈이라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언론 역시 준성의 예언을 주목했다.
– PC 통신의 예언자, 삼미 그룹의 붕괴를 예언해 화제.
– 익명성을 빌린 경영의 귀재? 아니면 단순히 파멸을 부르짖는 종말론자? 학자들은 이에 의견이 분분!
물론, 그게 TV 뉴스나 메이저 신문사 조중동은 아니었다.
그저 경기권 지역 뉴스에 자그맣게 실렸을 뿐이었다.
90년대 후반은 세기말이었던지라, 온갖 멸망 예언이 그럴싸하게 먹히던 시대였다. 그러니 PC 통신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예언가는 시시콜콜한 화제로 다루기 좋았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준성이 겨우 회귀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아 매스컴에 제 발자취를 올렸다는 거였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다.’
비록 당장은 준성에게 아무런 이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단계는 미래를 위한 준비. 그저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
같은 시각.
서울대 경영학과의 한 교수 연구실.
두 교수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기도 잠시. 이내 준성에 대한 화제가 슬쩍 흘러나왔다.
“박 교수님, 이번에 하이텔 경제 게시판 보셨어요?
“혹시 그 [오라클]이란 아이디 쓰는 사람 말입니까?”
“예.”
“봤죠. 요즘 그 사람 때문에 시끌시끌하잖아요. 그리고 요즘 교수들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것 같던데요?”
“눈치를요? 왜요?”
박상진 교수는 그 물음에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김 교수님 아직 모르시나본데… 지금 하이텔에 올라온 그 이론, 한국에 아직 비슷한 논문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였냐면…
대박 제품이 나왔는데 특허가 안 찍혀 있다는 것과 똑같았다. 한 마디로 누구든 먼저 논문을 써다 올리면 저기다 제 이름을 박을 수도 있다는 것.
근데 차마 교수 된 입장에서 PC 통신에 올라온 이론을 그대로 쓸 수는 없었기에 다들 쉬쉬하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정말요? 그럼 저 내용으로 누가 논문이라도 쓰면 바로 자기 이론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들 눈치를 보죠. 다만 그대로 베끼자니 체면이 안 서서 조금씩 바꾸고 있는 눈치입니다. 분위기 보니까 고대 손 교수는 이미 작업 들어간 것 같고, 그 얘기 듣고 성대 우 교수도 학생들 이용해서 논문 쓰고 있습니다.”
그 얘기에 김 교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아니, 뭐 그런 파렴치한!”
“근데, 그 사람들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저 이론 처음 봤을 때 신세계라도 본 기분이었거든요. 동시에 저걸 내 이론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 말에 김 교수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차마 옳은 일이 아니었기에 하지 않았을 뿐.
그 역시 욕심이 났던 것은 사실이니까.
“지금 저 이론은 그 정도로 뛰어난 겁니다. 사실상 지금 한국은 일본과 미국의 경영학과 기업 전략을 쫓아가고만 있는데… 저 이론은 말 그대로 한국형 이론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허탈하다는 듯 허허 웃었다.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그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가 예언한 외환 위기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상진 교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글쎄요. 그 부분만큼은 틀렸기만을 바라야지요.”
짧은 휴식이 끝난 뒤.
박상진 교수는 조용히 컴퓨터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 안에는 준성이 올린 경영 전략이 적혀 있었다.
비록 학자의 언어로 쓰였거나 논문의 형태를 띠진 않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전략들은 그저 충격적이었다.
몇 번이나 읽어봐도 감탄이 자아졌다. 슬쩍 접한 것만으로도 본인이 가진 생각의 틀이 넓어질 정도였니 오죽하랴.
‘…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당장 저 전략에 관련된 논문이 없다는 것은 분명 학계 인물은 아니라는 얘기. 그렇다면 나머지 가능성은 셋이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천재,
이젠 늙어서 명성에는 관심이 없는 퇴직 교수,
아주 높은 수준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기업 실무자.
쉬이 짐작 가는 사람은 없었다.
박상진 교수는 한숨을 내뱉으며 모니터를 쳐다봤다.
모두가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고, 실제로 몇몇은 이미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위장 작업을 시작한 이 전략.
솔직히 갖고 싶었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 박상진은 다급했다.
교수 임용 당시만 하더라도 최연소네, 천재네 하며 따라붙던 수식어들 따윈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지금에 와선 그저 ‘반짝’했다가 침몰한 그저 그런 교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당장 본인보다 늦게 출발한 동기들이 잘 나가는데,
오히려 제일 빨리 시작한 본인은 뒤처졌다.
그래서 욕심이 났다.
이 주인 없는 보물 같은 전략을 제 것으로 취해, 비록 눈총을 받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고 싶었다.
‘… 하, 뭔 생각을 하는 거냐 박상진. 정신 차려.’
하지만 차마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과 양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만 벅벅 긁고 있기도 잠시.
똑똑 –
노크 소리와 함께 대학원생이 한 명이 들어왔다.
“교수님, 편지 왔습니다.”
박상진 교수는 가볍게 고개를 까닥이고는 그 편지를 슬쩍 훑어봤다. 수취인만 있고 발신인은 적혀 있지 않은 편지.
그는 이내 별다른 생각 없이 그 편지를 개봉했고…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 오라클입니다.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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