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31
– 31화 –
네스트의 CF가 TV에 송출되고 난 뒤.
시간은 무던히 흘러갔다.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듯이.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하지만 항상 부지런하게.
업화의 더위로 땀을 비 오듯이 쏟게끔 하던 여름도 금방 지나갔고, 어느덧 시원해지는가 싶더니 가을이 찾아왔다.
가을. 나무들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가고, 연인들은 사랑을 속삭이며, 적당한 기온에 모두가 행복한 계절.
하지만 1997년의 가을은 유독 차갑기만 했다.
외환위기는 이미 기정사실이었고,
뉴스는 연일 기업들의 부도 소식을 전했으며,
수없이 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너무나도 밝고 쾌활하기만 하던 단군 이래 최대 황금기는 그렇게 1997년 가을의 끝자락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경제의 기둥인 기업들이 줄도산하며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 심지어는 국가 단위의 대외채무 지급유예인 모라토리엄 직전까지 갔었다.
당연히 저게 터지는 순간 대외 신용도가 말 그대로 아작이 나고, 외국계 자본이 썰물처럼 쫘-악 빠져나갈 터.
이 경우 경제가 회생불능 수준까지 갈 게 뻔했기에…
11월 22일.
정부는 어쩔 수 없이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혼돈의 국면으로 돌입했다.
하지만…
그 혼돈 속에서도 누군가는 분명 성공하리라.
준성은 그게 본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IMF 구제금융 신청 당일. 네스트 사무실.
얼마 전 네스트의 첫 CF가 나왔을 때처럼 전 직원이 휴게실에 모여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 우리 이제 어떡하죠?
– 하… 큰일 났네… 큰일이야…
CF 때에는 환호와 웃음으로 가득 찼지만,
지금은 좌절과 한숨만 휴게실을 감돌았다.
저 좌절에는 한국이 힘들어졌다는 슬픔도 있긴 했었지만, 그와 별개로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네스트가 취급하는 커피가 아무리 중저가고 경쟁자에 비해 싼 가격을 유지했다지만… 문제는 아직도 대중들은 로스팅 커피를 사치품으로 인식한다는 거였다.
그 와중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특별 방송으로 내보냈다.
국가 경제에 재난 사태였기에 사치품 소비 역시 자연스럽게 감소할 터.
재민은 입술을 꽉 깨문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경제 동향을 볼 때 조만간 뭐가 터지겠거니 했는데, 설마 이 정도 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까닭에 현재 시점에서 뭘 해야 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지금 당장 뭘 해야 하지? 분명 외환위기의 여파로 문제가 터져 나올 거다.’
마치 암흑 속에서 헤매는 것 같은 기분도 잠시.
재민은 항상 위기 때마다 뛰어난 재치와 수완으로 헤쳐나간 준성을 쳐다봤다. 하지만…
준성은 이 위기에서도 별 감흥 없다는 듯,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TV만 시청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미 외환위기가 터질 것을 알고 그에 대한 전략과 경우의 수를 전부 마련해 놓은 상태였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게 더 이상했다.
“… 대표님. 분명 IMF 구제금융 건으로 소비자들이 사치 소비를 줄이기 시작할 겁니다. 대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미 그 건에 대해선 준비가 완벽합니다.”
그 말에 재민은 내심 ‘역시!’ 싶어 미소를 지었다.
“예! 지시를 내려주시면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몸이 달아올랐는지 바로 행동하길 원하는 재민이었지만… 정작 준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짧게 대답했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 예?”
“지금 하던 것 그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수요 충격에 대비하시고, 점장들 사이에 불안이 싹트지 않게 잘 관리하세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은.”
어찌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지시.
하지만 저 지시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섞여 있었다.
‘외환위기는 커피 산업에 분명 치명적인 악재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나한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당연한 얘기지만 외환위기는 절대 네스트만을 강타하는 소규모 사건이 아니었다. 당연히 한국에 있는 모든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경쟁자인 쟈르뎅과 로드-리저드에도 통용됐다.
하지만 조금 다를 게 있다면…
‘네스트는 중저가 포지셔닝으로 사치품의 껍질을 어느 정도 벗었지만, 쟈르뎅과 로드-리저드는 아니라는 거다.’
그들은 여전히 비싼 엔티크 가구에 최고급 원두를 이용한 매우 사치스러운 포지셔닝을 유지하는 상태. 당연히 쟈르뎅과 로드-리저드 측이 받을 데미지가 월등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는 왜 네스트가 그렇게까지 중저가와 저렴한 이미지를 고집했는지 몰랐을 거다. 오히려 네스트를 비웃으며 비싼 가격을 유지해 이익을 챙겼겠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 무지와 오만이,
본인의 목을 졸라오는 올가미가 되리라.
준성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건 쟈르뎅과 로드-리저드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제 살을 다 파먹어 쓰러지기 직전이 됐을 때…
‘그때 내가 직접 너희의 목을 쳐주마.’
지루하지만은 않은 기다림이 될 것 같았다.
수확의 순간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하리라.
*
준성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듯,
쟈르뎅 본사에는 난리가 나 있었다.
사실 쟈르뎅은 CF 방영 이후 날아오르는 네스트를 어떻게 압박할지에 대해 협회와 깊은 논의를 하고 있었으나…
그 와중에 외환위기가 터져버렸다.
머지않아 사치스러운 소비를 하는 사람이 주변에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심하게는 매출이 반 토막까지 나는 상황이 벌어질 터.
당장 내가 죽을 판이었기에 경쟁자 따윈 대수롭지 않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경쟁이 중요하다지만, 머리 위로 핵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땅따먹기를 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 대표님! 위기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이미 카르텔은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이미 담합은 불가능해졌고, 내부에서부터 균열이 발생할 겁니다! 로드-리자드 측에서 먼저 가격을 절감한다면 저희 측이 독박을 쓸 수도 있습니다!
– 타사 동의 없이 당장 가격을 깎아야 합니다. 지금은 네스트와의 출혈 경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생존이 더 우선시 되야합니다! 이대로 가격 차이로 인해 네스트에 고객이 몰리면 기세를 뺏긴단 말입니다!
– 헛소리! 쟈르뎅의 핵심은 고급스러운 분위기와 사치스러움입니다. 근데 그걸 버리다뇨! 우리 강점을 버리는 것 아닙니까? 여태까지 왔던 쟈르뎅의 길을 부정하자는 겁니까!?
– 뭐요? 당장 일주일 뒤부터 매출 반 토막 나게 생겼는데 그딴 말이 나옵니까!? 이러다 다 죽는단 말입니다!
쟈르뎅의 회의실은 이미 시장바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커다란 고함이 오가고 있었다. 윤일남 대표는 그저 그 모습을 보며 한숨만 내뱉었다.
‘… 외통수다.’
생존을 위해 가격을 극단적으로 깎는다면, 여태까지 쟈르뎅이 가졌던 핵심 우위를 제 손으로 박살 내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기존의 사치스러움을 유지했다간, 매출이 떨어지다 못해 관짝을 향해 들어갈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진퇴양난. 어느 쪽을 고르던 치명적이었다.
“다들 조용히 하게!”
회의실 안에 일남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튀었고,
동시에 고함을 지르던 직원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기존의 정책을 유지하게.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미리 대비하는 게 오히려 악수가 될 수 있어. 당장은 관망하는 게 현명해.”
그 말에 영업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럼 네스트는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내버려 두게. 지금은 그들이 문제가 아니니까. 그리고 로드-리자드 측에는 내가 직접 연락하겠네. 그러니 이제 다 나가보게.”
그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 회의실에서 사라졌고,
윤일남은 조용히 담배를 물었다.
‘… 네스트가 방어가 성공하고 난 뒤 불쾌할 정도로 조용했던 이유가 이거였나.’
사실 일남은 준성과의 만남 이후, 준성이 매우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이라고 지레 판단했다.
이런 이유로 조금 무리하더라도 원두 공급을 통해 강수를 놓으면 거품을 물고 반격을 해올 줄 알았다.
그 사이 일남은 네스트의 약점을 파악해 폐부에 칼을 꽂아 넣으려고 했으나… 완벽하게 실패했다.
후읍- 파스스- 후우-
한숨 섞인 담배 연기가 공허하게 흩어졌다.
‘도대체 왜 이익률을 낮추면서까지 중저가를 고집하는지 의아했거늘… 지금 보니 이 변수까지 모두 예측했던 거란 말인가. 이준성,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더냐…’
윤일남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그 소리에 공허감이 가득 묻어났다.
*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갑작스러운 악재에 모든 소비 시장이 위축됐고, 그중 사치재 시장이 특히 피해가 심했다. 특히 일반 대중들이 소비 그 자체를 좋지 않게 생각해 주머니를 닫았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네스트 역시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장 뉴스가 나가자마자 회사가 망할 정도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저 김국지 CF로 인해 연일 기록을 갱신하던 게 그저 하락세로 돌아섰을 뿐. 여전히 적자는커녕 오히려 꾸준히 이익을 내주고 있었다.
아무리 국가 경제 재난 사태라고 할지라도,
매일 생쌀만 씹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외환위기 직전에 김국지를 이용해 광고 효과를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것 역시 매출 방어에 한몫을 했다.
하지만 쟈르뎅을 포함한 기존 커피숍들은 얘기가 달랐다.
국가 경제 재난 사태에서 한 잔에 5,000원 이상 가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드물어졌고, 네스트가 받는 데미지보다 약 2~4배 정도 무거운 피해가 연일 묵직하게 쌓여갔다.
그 결과 원가 대비 압도적인 가격으로 정신 나간 수익률을 기록하던 두 기업은 역사상 최악의 하락을 기록했다.
윤일남 대표는 최대한 하락을 막아보려 가격을 4,000원으로 인하하겠다는 정책을 펼폈지만… 여전히 네스트의 2배라는 흉악한 가격에 딱히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흔들리는 시장 속에서, 네스트는 기존의 강자들에게서 시장 점유율을 야금야금 약탈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치 앞을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준성은 김재민 팀장에게 지시를 하나 내렸다.
“이제부터 2차 확장을 시작하겠습니다.”
비록 아직까진 이익이 난다고는 하지만 분명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재민은 슬쩍 의구심을 품었다.
“조금 섣부른 결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읽어 보시죠. 어차피 직접 하셔야 할 테니까.”
이에 준성은 딱히 별다른 설명 없이 전략을 담은 서류를 내밀었고… 그걸 읽은 재민은 눈동자를 커다랗게 부풀렸다.
“이, 이게 정말 가능합니까?”
이에 준성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가능합니다. 그러니 일단 방송국부터 가세요. 아마 한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겁니다.”
그 말에 재민은 발 빠르게 움직였고,
혼자가 된 준성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덤으로 재민이 놓고 간 서류에는 [네스트의 프랜차이즈화 및 가맹점 확보 전략] 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건은 완벽하다. 이제 네스트는 기존의 직영점 중심의 운영체제를 벗어나, 가맹사업 위주로 굴러가기 시작할 거다.’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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