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334
– 335화 –
2004년 12월 중순.
태국 남부 끄라비 인근과 스리랑카 동부에 자그마한 지진이 일어났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서부에는 자잘한 지진들이 몰아쳤다.
이에 기상학자와 지질학자들은 매우 위험한 상태라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였고, 자칫 잘못하면 초대형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인도네시아 정부의 대응을 촉구했지만…
– 많은 학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걱정은 감사합니다만, 저희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북부. 특히 아체(Ache) 지역은 현재 분리독립 요구로 저항군이 득세하는 상황입니다.
– 자칫 잘못하면 내전이 일어날 수도 있어 저희 정부 측은 접근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희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대한 재난재해에 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 돌아온 답은 위와 같았다.
사실상 대처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저 대답이 아예 이해하지 못할 것은 또 아닌 게, 인도네시아 역시 역사적 상처를 앓던 국가였기 때문이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에 의해 식민 지배를 받게 되고, 1942년부터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일본 패망 이후 인도네시아 정부가 독립을 선언.
이에 반발한 네덜란드 측은 식민 지배 유지를 위해 강력히 반발하며 침략 전쟁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1949년에서야 완벽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인도네시아의 매우 간략한 역사였다.
하지만 저건 어디까지나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본 거고, 저기에는 외국인이 잘 알 수 없는 문제가 끼어 있는데…
바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 자체가 1600년대에 네덜란드가 말레이 제도 주변에 있는 여러 자잘한 섬 국가 들을 식민지로 병합하면서 만들어졌다는 거였다.
이후 300년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하다가, 세계 2차 대전과 독립 전쟁을 겪으며 독립이 인정되는데…
문제는 저 독립이 지역 국가 단위가 아닌,
큼지막한 나라 통째로 독립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문제는 당장 언어에서부터 나타났다.
공용어인 [인도네시아어]부터가 그러한데, 이 언어는 세계에서 역사가 제일 짧은 편에 속했다.
1600년대. 네덜란드는 식민 지배에 성공하긴 했지만, 인도네시아의 영토가 워낙 넓고 섬나라가 많아 지역 간의 의사소통 자체가 불가능했다. 까놓고 얘기해서, 식민 지배도 말이 좀 통해야 뭘 어떻게 좀 뜯어낼 수 있는데… 너무 넓고 땅에 너무 많은 소수민족들이 퍼져있던 탓이다.
이에 몇몇 상인들이 소위 [교역어]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이게 굳어져 인도네시아어가 된 거였다.
이렇듯 인도네시아는 1600년대가 돼서야 하나의 지역으로 여겨졌고, 그 전까지만 해도 서로 수도 없이 많은 국가로 나뉘어 치고받던 상황이다.
근데 그 와중에 식민지배하던 그대로 뭉텅째로 독립을 시켜버리니 소수민족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기 시작.
그런 영토 중 하나가 바로…
지진 취약군인 아체(Ache) 지역이었다는 거였다.
당장 반군들이 정부 인사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폭탄으로 테러를 날려대는 판에 자연재해 대비는 개뿔. 거의 반쯤 내전 상태였기에 재해 대비 자체가 불가능했다.
여담으로 이러한 상황은 특히 아프리카에서 특히 더 자주 관찰되는데… 아프리카 여러 국가가 최빈국을 벗어나지 못한 채 끝없는 내전의 늪에 빠진 것 역시 인도네시아의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 세계지도를 펼쳐보자.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에만 직선이 유독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유? 간단했다.
소위 유럽의 열강이라는 양반들이,
그냥 지도에 자 대고 직-직- 그어서,
민족이고 나발이고 그냥 독립시켰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로 나라 개판 만들어 놓고는 ‘독립시켜 드렸으니까 알아서 잘하세요~ 우린 이제 몰라요~’한 거다. 물론, 식민 지배 더 안 하고 독립을 시켜준 게 어디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마는… 참으로 씁쓸한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도네시아 정부 측은 여러 학자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그 어떠한 재해 대비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할 수 없었다.
외환 위기로 작살이 난 경제 상황,
1998년에 민주화에 성공해 아직은 서툰 정부,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일부 반군들과의 국지전까지.
처리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제로도 인도네시아에선 지진이 매우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정작 사람들은 ‘그냥 또 지나가는 지진 가지고 저러네’ 하고 말아버린 것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씁쓸한 정치, 외교, 경제적 상황 속에서…
재앙은 느리지만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
2004년 12월 18일.
‘자이언트’라는 별명을 가진 씨름 선수가 일본 격투기인 K-1에 진출한다는 뉴스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
서울시 중구 을지로 인근 로테 그룹 본사. 더욱 정확하게는 그룹 본사 옆에 있는 5성급 호텔인 로테호텔의 객실 안. 준성은 오래간만에 성희와의 시간을 가졌다.
사실 원래대로였다면 오늘은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보기로 했었지만, 성희가 컨디션 난조로 피곤하다는 얘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까닭에 둘은 스테이케이션(Stay + vacation)하는 심정으로 말 그대로 푸-욱 쉬었다.
성희의 권유로 객실 내에서 500피스 짜리 퍼즐을 맞추기도 하고, 비치된 잡지를 읽으며 패션이나 경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로맨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사치를 즐기며 슬슬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을 때쯤.
준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성희야.”
“응~ 왜?”
그녀는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 잡지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제 이름이 호명되자 턱을 괴고는 헤죽 웃으며 이쪽을 쳐다봤다. 그 모습이 꼭 화보집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아 현실감이 옅어지기도 잠시.
“다음 주면 크리스마스네.”
그 말에 성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동시에 신이 났는지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라며 성탄절 캐롤의 한 구절을 중얼거렸다.
“응. 기억나? 우리 그때 처음 만났잖아.”
아마 정 마담을 통한 맞선 자리를 말하는 것이리라.
당시 준성은 호텔 커피숍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었다.
첫날 1시간이나 늦어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어본 결과. 당시 급하게 잡힌 대기업 행사 진행이 늘어져 어쩔 수 없었던 듯했다.
“그랬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한 건 좀 더 나중이지만… 그래도 특별한 날이잖아~ 근데 왜?”
“흐음-”
준성은 꽤 복잡한 얼굴로 날숨을 내뱉었다.
사실 미래가 변하지 않는 이상에야, 올해 크리스마스는 정말 농담 안 하고 하루에 2시간도 못 잘 강행군이 이어질 예정인지라 못 볼 것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거늘… 성희가 제 눈을 반짝이는 걸 보니 차마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준성은 회귀 전 일에만 몰두하다가 소중한 사람을 잃어 본 기억이 있어, 관계에 대한 부분에서는 살짝 조심스러운 측면이 없잖아 있었는데…
어째 공교롭게도 이번에 그게 딱 부딪쳐 버렸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고 30초 정도 침묵했을까?
성희 역시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챘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있는 준성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등 뒤로 포근한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온기가 느껴지기도 잠시.
“우리 준성 오빠,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이야? 보니까 무슨 어려운 말을 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못하는 거구나?”
“…”
“있잖아, 오빠도 사실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는데… 우리 아버지가 사실 꽤 큰 회사를 운영하셔. 근데 크리스마스는 대목이라 아버지는 항상 크리스마스에 일을 하러 가셨었거든.”
준성은 슬쩍 몸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려 했지만, 그녀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오히려 착 달라붙으며 말을 이었다.
“나 어렸을 땐 그런 아빠가 미웠다? 매일 크리스마스가 다 지나고 나서야 미안한 얼굴로 선물만 건네주셨으니까. 근데 크고 나니까 알겠더라. 아버지께선 가족을, 회사를, 직원을 위해서 일을 하셨던 거라고.”
그때 이후로 그녀는 아버지가 밉지 않았다.
오히려 대목마다 바쁘게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등이 참 든든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사실 유니섹스 시대에 어울리는 말은 아닌 거 아는데, 남자한테는 가끔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게 있잖아.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러더라? 기업인이랑 만나려면 마음이 넓어야 한다고. 경주마 같은 남자들이라, 가끔은 신경 써 주지 못해도 이해하라고. 워낙 지옥 같은 경쟁을 견뎌야 해서 참 힘들고 피곤한 사람들이니까, 적어도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게끔 질척거리지 말고 따뜻한 안식처 같은 사람이 되어 주라고.”
성희는 이후 어딘가 살짝 슬퍼 보이는 웃음을 잠시 머금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보니까 지금이 딱 그런 순간 같네?”
“… 어, 크리스마스 좀 바쁠 것 같아.”
“응- 이제야 말해줬네. 기쁘다.”
“그래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잖아. 서운하지 않아?”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 근데 진짜 괜찮아. 어차피 난 오빠랑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한걸? 분명 그때도 추억하는 것도 행복하겠지만, 지금도 행복하고, 미래에도 행복할 거니까.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조금 양보하지 뭐.”
그 말에 준성은 퍽 미안한 감정이 스쳤다.
하지만 성희는 준성이 그런 감정을 갖게 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을 생각인지, 쉬지 않고 말했다.
“대신 약속! 다음에 더 오래 같이 있기!”
“그래. 약속할게.”
“응~ 그래.”
그렇게 준성과 성희는 제 새끼손가락을 걸었고,
이후 성희는 준성을 빤-히 쳐다보는가 싶더니…
“에구구, 우리 준성이. 신경 썼어요?”
“… 안 쓰면 그게 이상하지.”
“고맙네~ 신경 써 줘서~”
이후 그녀는 이마, 코, 볼 순서로 짧게 입맞춤을 하고는 활짝 웃었다. 준성은 그걸 보며…
작년 크리스마스에 떠나지 않고 기다린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2004년 12월 23일. 재앙 D-3.
과거 준성은 재민에게 이런 지시를 내린 적이 있었다.
– 곧 스타벅스와의 세계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 전에 직원들의 교육 겸 사기 고취가 필요합니다. 12월 23일 인도네시아 법인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직원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귀환시키세요.
스타벅스와의 전쟁은 명분이었을 뿐.
사실상 재앙을 피하기 위한 대피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걸 알지 못하는 직원들은 교육을 듣기 위해 인천 공항을 통해 입국했고, 머지않아 네스트 본사로 귀환했다.
이에 준성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만 준비한 국제 경영에 대한 자료를 배부. 인사팀장의 관리하에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사이…
준성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상황을 점검했고,
이중 삼중으로 해놓은 안전장치 역시 확인했다.
‘… 모든 카드가 준비됐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리라.
…
물론, 기다리는 건 준성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역대급 전략이 될 만큼 여기저기 뿌려놓은 씨앗이 많았기에.
…
12월 23일 오후, 천안. 라이프 사이클.
사장은 공장장을 불러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거 어떻게 됐어? 잘 돼가?”
“아, 네스트 추가…”
“어허! 쓰읍!”
마치 금기어라도 입에 올린 듯 사장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지자, 공장장이 슬쩍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대답했다.
“예. 지시대로 처리했습니다.”
“물량 다 채웠고?”
“예. 재고들 전부 인천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문제없고?”
“예. 없습니다. 두 번, 세 번 확인했습니다.”
그 말에 사장은 그제야 가슴을 쓸었다.
“… 그래. 됐다. 하던 거 마저 하고, 차질 없게 해.”
“저기, 사장님.”
“왜.”
“도대체 뭔데 그러세요? 라벨링 이상하던데. 나중에 문제 생기는 거 아니죠?”
“아, 좀! 알 거 없어. 그리고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러니까 그냥 일이나 해. 가끔 세상엔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게 있는 법이고, 모르면 그거대로 좋은 일도 있는 법이야.”
“… 예, 알겠습니다.”
사장은 그렇게 공장장을 내보내고는,
달력을 쳐다보며 제 입술을 깨물었다.
…
12월 23일, 심야.
네스트 대형 선박 2대가 인천항에 정박했다.
그리고 한때 일본 도토루 정벌 당시 준성과 잠시 마주쳤던, 전직 해군 출신 베트남 선장은 시큰둥하게 갸웃거렸다.
“… 뭐야, 운행 일정 왜 이래? 정확해?”
그 말에 사무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 맞는데요.”
“… 대기하라고? 그것도 우리 배 말고 4호도?”
“예, 정확합니다. 대기하래요.”
“커뮤니케이션 오류 아니야? 네스트 얘네 아주 1초라도 안 쉬게 냅두던 애들이 갑자기 대기 명령을 내렸다고?”
“예. 이상하죠?”
“야, 전화 가져와.”
“해봤어요. 세 번이나. 정확해요.”
“하. 그래서 언제까지 대기하라는데?”
“일단 그냥 무작정 기다리래요. 보니까 네스트 본사에서 재고관리하다가 문제 터졌나 봐요. 뭐, 덕분에 우리는 꽁돈 받으면서 쉬는 거죠. 선장님, 오래간만에 한잔 하러 가실래요? 이번에 보니까 러시아 애들이 보드카랑 게 가져왔던데.”
그 말에 선장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너나 가서 마셔. 하지만 대기도 일의 연장이니까 적당히 마셔. 절대 얼큰하게 취하지 말고. 알겠어?”
“아, 거 참…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 봐…”
선장은 그 말에 사무장에게 공격적인 눈초리를 보냈지만, 사무장은 ‘뭐 어쩌라고요’라는 눈빛으로 응수한 뒤 사라졌다.
‘… 요번 크리스마스도 배에서 보내겠구만. 쯧.’
…
12월 24일, 오전.
베트남 호치민 인근 항구에 로안 코퍼레이션에게서 급하게 빌린 중형 선박 2대가 도착했다. 이에 로켓은 모든 업무를 처리한 뒤 조용히 달력을 쳐다봤다.
‘대표님께서는 무슨 이유에서든 크리스마스를 언급하셨다. 베트남 법인 직원들에게도 비밀로 한 거라면 분명 큰 건 일거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로켓.’
네스트 베트남의 로켓 상무 역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혼자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
12월 24일 정오.
디움은 플랫폼 비즈니스의 일환인 [해피 하트 기부 서비스] 서비스를 점검했다.
비록 아직은 SNS나 블로깅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해피 하트라는 인터넷 재화를 제공하고, 실험적으로나마 천주교 산하의 고아원에 약 100만 원 정도를 기부한 게 전부였다.
확실히 사울이라는 인재가 만들었기 때문일까?
아직 베타였음에도 기부 기능은 정확하게 작동했고, 이에 사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달력을 쳐다봤다.
‘… 내일이네.’
분명 준성은 사울에게 이 기부 시스템을 만들면서 유독 12월 25일, 크리스마스라는 데드라인을 잡아 놨었다.
게다가 때가 되면 알 수 있을 거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까지 남겼으니, 궁금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이상하리라.
‘대표님, 뭘 준비하고 계신 겁니까? 이번에도 또 세계를 바꾸실 건가요? 정말 이 기대감은 언제 느껴도 질리질 않네요.’
사울 역시 12월 25일을 기다렸다.
…
12월 24일 저녁.
동민은 반차까지 내가며 일찍 퇴근한 뒤, 마치 신성한 의식을 기다리듯 목욕재계한 뒤 책상 앞에 앉았다.
이후 집에 있는 4대의 TV를 동시에 켠 뒤,
공중파 3사와 케이블 뉴스 채널을 동시에 틀었고,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인터넷 뉴스까지 뒤적거렸다.
그가 이렇게까지 모니터링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디움의 두 번째 플랫폼 비즈니스인 [코워킹 스페이스]에 관련된 보도자료를 건네받던 중. 준성은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이런 쪽지를 건넸었다.
– 크리스마스 이후 일주일 정도 시간 비워두세요.
동민은 그간 겪었던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저 쪽지에서 코가 아릴 정도로 진동하는 특종 냄새를 맡았고… 이에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대기하고 있는 거였다.
‘… 이준성 대표가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다면, 분명 뭔가 커다란 사건이 터질 거다. 놓치지 말자. 어느 정도로 큰 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잘만 하면 인생 역전이다.’
그렇게 그 역시 밤을 새울 기세로 뉴스에 신경을 집중하며, 홀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
그리고 대망의 2004년 12월 25일.
서울에는 산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줬고, 커플들 역시 데이트를 즐겼으며, 교회와 성당에서는 성탄절을 맞아 보람찬 하루를 보냈다.
그저 그뿐.
아무런 일도 없었다.
세계는 고요했으며,
평화로운 시간만 계속됐다.
이에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던 네스트와 디움 관계자들은 ‘에이, 뭐야… 이게 끝이라고?’ 하며 한숨을 쉬었다.
…
그리고 그 다음 날.
2004년 12월 26일. 인도양 북서쪽.
더욱 정확하게는 인도네시아 서쪽 수마트라 섬에서 불과 4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이며, 인구가 밀집된 아체 지방에 가까운 해역의 지하에서…
쿠구구구구구구궁 – !
규모 M9.3의 해저 지진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저 지진은 곧…
스와아아아아아아아 – !
높이 100M짜리 쓰나미를 발생시켰고…
이 아파트 30층짜리만 한 해일은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 스리랑카 그리고 인도네시아로 향했다.
그렇게…
재앙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