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335
– 336화 –
2004년 12월 26일, 오전 8시.
인도네시아 서부, 대도시 반다 아체. 간호사인 로즈는 출근을 준비하던 중 문득 기이한 진동을 느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 !
분명 인도네시아라는 나라가 지진이 잦긴 했지만, 로즈는 미친 듯이 흔들리는 시야를 보여 내심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강타한 이 지진은 일반적인 규모가 아니라고 말이다.
쾅 – !
그녀는 순간 균형을 잃고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순간적으로나마 눈앞이 암전되며 짙은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잠시.
‘아, 안돼. 피해야 돼…’
그녀는 피가 흘러나오는 제 이마를 부여잡은 채 침대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는 어마어마한 진동 속에서 쩍- 쩌적- 하는 소리를 시작으로, 뭔가 무너지는 듯한 효과음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이 울리다가 뚝 끊기는 섬뜩한 소리까지.
로즈는 이에 눈을 꽉 감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자, 자비롭고 자애로운 알라시여… 심판의 날을 주관하시는 알라이시여… 우리는 당신만을 경배하며, 구원을 비나이다… 저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고… 당신께서 축복하신 길을 걷사오니… 부디 노여움을 거둬 주십시오…”
로즈는 겁에 질려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신에게 빌었다. 이 참상을 멈춰 달라고. 아직 그녀에겐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아직 당신 곁에 가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이다.
그렇게 간절한 기도가 한참이나 이어졌지만,
신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진동만 계속됐을 뿐이고, 누군가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음과 비명만 이어졌다. 마치 이슬람의 지옥인 자한남(Jahannam, جهنم)의 절규가 이러할까?
그런 상황 속에서 로즈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침대 밑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게끔 기도를 반복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이 약 15분.
드디어 진동이 멈췄다.
로즈는 간신히 침대 밖으로 기어나갔다.
온갖 집기가 떨어져 부서져 있고, 천장에 박혀있던 전등과 타일들이 무너져 있는 게 보였다. 애써 파편들을 피해서 얼마나 걸었을까? 이내 창문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절망적인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쓰러진 전신주에 맞아 사망한 사람.
미쳐 날뛰는 전류에 감전돼 죽은 사람.
인근 가게 진열장에 처박혀 있는 자동차.
마치 가뭄이 난 땅처럼 여기저기 균열이 난 도로.
외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린 건물.
제 자식을 찾아 거리를 헤매는 어머니.
부상당한 부모를 등에 업고 뛰어가는 청년.
박살 난 채 미친 듯이 물을 토해내는 소화전.
로즈는 그걸 보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분명 암울하고 끔찍한 상황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간호사다. 간호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나이팅게일 선서(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으며, 그녀가 배운 의술로 사람들을 이롭게 하리라고 다짐했다.
“이봐요! 거기! 무슨 일이에요! 나는 간호사예요!”
그 말에 얼마나 급했는지 신발도 짝짝이로 신고 뛰던 청년이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그녀를 발견했고, 커다랗게 외쳤다.
– 어, 어머니께서 머리를 부딪치셨어요! 일어나질 않아요! 수, 숨은 쉬시는데… 118에 전화해도 현재 전화가 폭주 중이라 받을 수 없다고만…
다급한 상황이었다.
일단 멀리서 얼핏 보기에 함몰과 출혈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뇌진탕이나 쇼크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려요! 금방 내려갈 테니까!”
이후 로즈는 창가 인근 빨래건조대에 있는 수건으로 제 발을 감싸서 보호한 뒤. 난장판이 된 방을 돌아다니며 구급상자와 간단한 의료기기를 챙겼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쿵 – ! 쿠쿵! 그그그극 – !
문이 열리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천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았지만, 그뿐. 그녀는 건축에 관해서는 무지했기에 이유 따윈 알 수 없었다.
결국, 로즈는 재빨리 로프와 이불을 엮어 창밖으로 집어 던졌다. 이후 그 줄을 꽉 잡고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내가 안 가면 사람이 죽는다… 정신 차려 로즈…’라고 중얼거리며 그 줄을 타고 내려왔다.
“환자! 환자 어딨어요!”
“여기, 여기요! 저희 어머니 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일단 진정해요!”
로즈는 울먹거리는 청년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한 뒤 진찰을 시작했다. 일단 외상은 없어 보였고, 도구가 없었기에 확신할 순 없었지만, 내출혈의 위험 역시 적어 보였다.
아마 단순한 기절이리라.
“기절하신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로즈는 진찰이 끝난 다음 커다랗게 외쳤다.
“저는 간호사입니다! 다치신 분 계십니까!”
마치 지옥 속에 내려온 줄기 희망이 이러할까? 로즈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다친 사람들을 치료해주고 있기도 잠시. 문득 사람들의 아우성 사이로 기이한 소리를 들려왔다.
… … … 스아-
마치 파충류가 내는 위협음 같은 소리. 로즈는 이에 뭔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다시 앞에 있는 부상자에게 집중했다.
… … 스와아-
그렇게 얼마나 사람들을 돌봐주고 있었을까?
처음만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으면 듣지도 못할 정도로 작았던 소리는 계속해서 커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귀를 아른거릴 정도로 커져 버렸다.
… 스와아아아아아 – !
뭔가 이상했다.
분명 지금 로즈가 있는 곳은 해안가와 약 500M쯤 떨어져 있던 곳 아니던가? 근데도 지금 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궁금증은 길지 않았다.
– 해, 해, 해일! 해일이다! 도망쳐! 도망쳐요!
옆 건물 5층에 있던 사람이 안색이 파래진 채 소리쳤다. 이에 로즈 역시 사실 확인을 위해 고개를 들어 쳐다봤고, 그리곤 건물 사이로 살짝 보이는 해안가. 그리고 그 너머에…
있어선 안 될 게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해일이었다.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해일이 말이다.
마치 신의 분노가 형상화된 모습이 이러할까? 아니면 한 때 봤던 할리우드의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이러할까?
‘저, 저게 무슨…?’
로즈는 마치 뇌가 하얗게 녹기라도 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지만, 애써 정신을 차리곤 사람들에게 외쳤다.
“저 정도 파도면 도망쳐 봐야 늦어요! 저희 집으로 올라가세요! 아마 여기까지 오면 파도 높이가 많이 낮아질 겁니다! 잘하면 건물이 버텨줄지도 몰라요!”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몇몇 사람들이 로프와 벽을 이용해 로즈의 집으로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로즈는 다친 사람들에게 연고를 발라주거나 부목을 대줬다.
그렇게 다시 15분이 지났다. 건물이 버티지 못할 거라 판단한 사람들은 이미 모두 도망쳤고, 건물에 숨기로 한 사람들 역시 로즈의 집 안으로 피신이 끝났을 무렵.
로즈는 복잡한 표정으로 한 청년을 쳐다봤다.
제 부모가 기절해 업고 있던 그 청년이었다.
“드, 들것은 없나요…? 제발…”
로즈는 즉시 창문 위로 소리쳤다.
“안에 보면 식탁이 있을 텐데, 그거 집어 던져요! 잘하면 들것으로 쓸 수 있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창밖으로 날아온 건 식탁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
– 이봐, 간호사 아가씨! 파도가 거의 다 왔어! 그딴 거 만들 시간 없다고! 빨리 올라와! 그러다 당신도 뒈져!
이에 청년이 로즈의 손목을 붙잡았다.
“저,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요.”
로즈는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향해 외쳤다.
“테이블이랑 식탁보, 수건! 던져요! 빨리!”
– 씨발! 빨리 올라오라고! 당신도 뒈진다니까!
스와와아아아아 – !
말다툼하는 사이 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미 파도는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이쯤 오자 로즈도 알 수 있었다.
늦었다.
이미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무슨 수를 써도 둘을 구할 수 없었다.
분명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는데,
하지만 가슴이 그걸 거부했다.
–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일단 당신이라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이미 당신은 우릴 구했어! 그만하면 됐다고!
“씨발, 이유? 사람 구하는 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구하는 거지! 그러니까 빨리 던지라고요!”
그렇게 말다툼을 하기도 잠시.
스와아아아아아아아 – !
눈앞까지 파도가 다가오자, 청년은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제 부모를 등에 업은 채 인근 건물 입구로 달려갔다.
결국, 로즈 역시 그 청년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잠시. 그녀는 제 손에 로프를 거의 묶듯이 감고는 벽을 타기 시작했고…
– 당겨! 저 아가씨 구해야 돼!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로즈를 당겨줬다.
하지만 파도가 다가오는 속도보단 늦었기 때문일까?
스와아아아- 퍼어어억!
벽을 타고 올라던 로즈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 씨발! 당겨! 당겨! 야! 당기라고! 빨리!
하지만 로즈가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았듯, 사람들 역시 로즈를 포기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로프를 당겼고, 그렇게 약 2분 정도 씨름하자…
“푸워어어억- 꺼억- 꺽… 흐어어어-”
물에 잔뜩 젖은 로즈가 마치 물고기 낚이듯 쑥- 올라와 창문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이나 물을 토해내기도 잠시.
… … … 가씨, 괜찮아!? 정신 차려!
로즈는 마치 웽웽거리는 소음처럼 들리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창밖을 쳐다봤다.
그곳엔 강이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강이 말이다.
방금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살던 도시였는데…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에 제 부모를 끝까지 지키던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옷을 벗어 어머니를 제 몸에 묶은 뒤, 허우적거리며 급류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로즈는 그를 보고 있기도 잠시.
이내 소리 없이 눈물을 토해내는가 싶더니…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제 얼굴을 무릎에 파묻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해줬다. 사람들을 구해줄 때만 하더라도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했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 여려 보였기에.
“괜찮아요, 괜찮아… 일단 우리라도 살았잖아…”
…
비슷한 시각.
대한민국 서울, ND빌딩 6층. 준성은 컴퓨터 앞에 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돌아다녔을까? 사무실에 임시로 비치해 놓은 브라운관 TV로 속보가 들어왔다.
–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쪽 30Km 해저 강진 발생. 규모 9.0 추정. 사망자 대량 발생. 현재 한국인 피해자 확인 중.
아무래도 국내 뉴스가 아니었기 때문일까? 앵커가 말을 끊고 속보를 전해주진 않은 채, 그저 뉴스 화면 하단에 파란색 배경에 노란색 글자로 된 자막이 슥- 지나갈 뿐이었다.
참으로 담백하기 그지없는 정보 전달.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준성에겐 충분했다.
‘… 예정된 재앙이 발생했다.’
2004년 12월 26일.
진도 9.3의 지진이 발생.
이후 쓰나미가 주변국을 강타.
5만 명이 실종했으며,
약 35만 명이 사망하고,
170만 명의 난민이 발생.
게다가 인구 5,000만 명에 면적 473,481km²(한반도 약 2배)를 자랑하는 거대한 수마트라 섬이 무려 30M나 동쪽으로 밀려나는 참혹한 결과가 나타난다.
여기까지가 준성이 아는 정보였다.
비록 준성이 이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이 참사를 예측한 지질학자와 잡지 그리고 기자들에게 후원을 통해 최대한 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려고 했지만… 경제, 정치, 외교적 상황을 고려할 때 딱히 효과를 본 것 같진 않았다.
준성은 입안 가득 씁쓸함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으로서의 슬픔과,
경영인으로서의 할 일은 별개였기에,
준성은 이제부터 해야 제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스타벅스. 선전포고를 날리고 리저브 로스터리를 통해 네스트를 짓누를 때만 하더라도 참 즐거웠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거다. 커피 전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
그 전쟁을 알리는 네스트의 선제 핵타격이자,
준성이 여태까지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한 전략은,
바로 [앵커링 이펙트]를 이용한 [세계구급 기부]였다.
‘스타벅스. 주둥이 벌려라, 전략 들어간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너도 주둥이 벌려라, 상상도 못 할 구호품 들어갈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