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342
– 343화 –
꼭 안 풀리던 수학 문제의 해답지가 도착한 기분이 이러할까? 준성이 육로와 해로가 막혀 수단적 한계에 부딪혔을 때. 에어 아시아의 토니 페르난데스가 나타났다.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준성은 즉시 에어 아시아와 화상 회의를 연결했고,
얼마 후 토니 페르난데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 반갑습니다, 토니 페르난데스입니다. 전화와 메일은 몇 번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죠?
“예, 그렇지요.”
그랬다. 분명 네스트, 디움과의 삼자 협업 중인 에어 아시아였지만, 그 업무는 모두 일남과 권영이 처리한 것뿐. 실제로 토니 페르난데스를 본 건 처음이었다.
준성은 사진으로만 보던 [가성비의 경영자], [말레이시아의 초신성], [풀 서비스 항공사의 재앙]이라 불리던 토니 페르난데스를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04년 통신 기술의 한계로 중간중간 버벅대는 영상이었음에도, 확실히 실물은 실물이었던 걸까? 토니의 눈은 지울 수 없는 열망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 이거 영광입니다. 무려 비상장 글로벌 기업을 두 개나 가진 전설의 경영자를 볼 수 있게 되다니 말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보다 훨씬 젊으셔서 놀랍기도 하네요.
“하하. 인도차이나 반도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인께서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토니 페르난데스 대표님도 아직 30대지 않습니까?”
– 예, 뭐. 그렇긴 하죠. 하하!
그렇게 가벼운 인사말을 주고받기도 잠시.
피차 이번 자연재해 건으로 인해 바쁘게 움직이던 찰나였기에, 토니 페르난데스는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 피차 알 거 아는 사람들이니까 짧게 갑시다. 이번에 재밌는 일 준비하시던데요. 거기에 우릴 끼워주십시오.
“짧게 가는 것은 좋습니다만, 너무 줄이셨네요. 정확히 어떤 사업에 뭘 어떻게 끼워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 이번에 구호물품으로 생수 준비하셨죠? 근데 아시다시피 이번 쓰나미로 인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가장 피해가 극심한 지역의 항구들이 모두 파손됐습니다. 그러니 선박으로는 진입하기는 어려울 테고요.
솔직히 놀라웠다.
현재 에어 아시아는 한국에 취항(就航, 배나 비행기가 오감)만 했을 뿐. 법인이나 지사는 진입조차 하지 않은 상태. 그럼에도 토니는 네스트의 정보와 전략을 꿰고 있었다.
“예, 정확합니다. 근데 정보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 제가 이래 봬도 운송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희 사업은 매우 좁고 폐쇄적이라,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에 어떤 물건과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죠.
추측건대 로안 코퍼레이션 쪽을 쑤셨으리라. 덤으로 베트남의 로켓은 거의 광신에 가까울 충성도를 보이니 굳이 본인이 정보를 유출했을 리는 없었을 테고 말이다.
“저희 뒷조사를 하신 게 유쾌하진 않습니다만, 상황이 상황이니 넘어가죠. 예. 토니 대표님의 말씀대로 현재 네스트는 운송에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이 뭡니까?
– 항공기와 헬기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헬기라는 말에 준성이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어 아시아가 항공기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하다지만, 갑자기 헬기라니? 그런 준성의 표정을 읽었는지 토니 페르난데스가 바로 덧붙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 아, 최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등지에 고급 민영 병원이 들어서고 있는 분위기거든요. 그래서 [응급 의료 헬기 서비스]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현재 에어버스 사의 헬리콥터를 받아 놨었는데, 마침 쓸 일이 생겼네요.
항공기만 대여해 줘도 고마운 상황인데 재난 현장을 직접 오갈 수 있는 헬기까지? 말 그대로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상황이었으나, 준성은 그럼에도 일단 침착하게 대답했다.
“좋은 소식이네요. 그래서 가격은요?”
당연한 얘기겠지만, 공짜는 아니리라.
참고로 토니 페르난데스가 [가성비의 경영자]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에어 아시아의 수익률이 그닥 좋지 않았기 때문도 있다. 애초에 돈이 많았으면 가성비고 나발이고 최대한 효과 좋게 자본을 뻥-뻥- 때려 박으면 그만이니까.
그렇기에 토니의 기본 스탠스는 간단했다.
나갈 돈은 최대한 줄이고,
들어온 돈은 최대한 당긴다.
아니나 다를까 토니는 그 철학을 담아 얘기했다.
– 무료로는 안 됩니다. 이런 재난 상황이면 공항 이용이 어려울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고속도로를 비상 활주로 삼아 착륙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재난 상황을 이용해 욕심을 낼 생각은 없습니다. 저희 측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메일과 팩스 좀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준성이 함께 있던 경영지원본부장에게 눈짓하자, 그는 얼마 후 토니가 제시한 견적이 적힌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스륵- 팔랑- 사가각- 팔랑-
준성은 가볍게 펜을 움직이며 보기도 잠시.
‘…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사실 어느 정도 웃돈을 주고 빌릴 생각을 했었거늘, 예상외로 매우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렇게 준성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서류를 보고 있자니 토니가 입을 열었다.
– 급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저희가 기업을 운영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경영자라지만… 재난 피해자들이 고통받는 데 가격 가지고 갑론을박 하고 싶진 않군요. 그리고 네스트도 그런 스타일 아니잖아요? 처음부터 그런 기업이었다면 지금 같은 구호 물건을 준비하지도 않았을 테고.
준성은 그의 말에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재밌군. 저런 경영자, 싫지 않아. 확실히 그릇이 커.’
“좋습니다. 이 가격에 바로 계약합시다. 하지만 현재 네스트에 출혈이 심해, 현금으로는 못 드리고 채권(유가증권, 일종의 차용증)으로 드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은지요?”
– 이자 넉넉하게 주신다면야, 안 될 것도 없죠.
그렇게 서로 원만한 합의점을 찾았고,
준성과 토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예, 좋습니다. 조만간 네스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법인장이 그쪽으로 찾아갈 겁니다. 자세한 얘기는 그쪽하고 해주십시오.”
이후 준성은 경영지원본부장에게 이와 관련된 업무 처리를 지시했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 로켓에게 전화를 걸었다.
…
2004년 12월 29일. 재난 발생 4일 차.
인도네시아 아체 현지 시각 오후 4시 30분.
대한민국 서울 현지 시각 오후 6시 30분.
한창 준성이 로켓에게 에어 아시아와의 협력을 설명함과 동시에, 이제 공로 역시 이용하라고 지시하고 있을 무렵.
대한민국. 서울, 여의도.
KBC 보도국장실에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야, 이 새*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게 말이 왜 안 됩니까! 된다니까요!?”
“아니, 되긴 개 코가 돼? 네가 인도네시아를 왜 가 이 자식아! 현지에 상주 특파원 2명 있고, 지금 한창 국제부에서 누가 가냐고 사람 뽑는 중인 거 몰라? 근데 너 이미 콜드 워터 챌린지로 특종 때렸잖아. 근데 아직도 욕심이 나냐!?”
“아니, 욕심이 아니라 저밖에 못 한다니까요!?”
“야, 우동민이! 너 임마 양심이 있어야지! 저번에 대영 쑤셨다가 피똥 싼 기억 있어서 승진이랑 성과에 환장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남의 밥 뺏는 건 아니지! 국제부랑 사회부 내버려두고 네가 거길 왜 가냐고! 이번 지진이 경제 재난이냐? 엉!?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말에 동민이 머리를 벅-벅- 긁어댔고,
보도국장 역시 숨을 몰아쉬며 애써 진정하려 했다.
“야, 이유나 물어보자. 왜 네가 가야 하는데?”
“말씀 못 드립니다.”
“허허, 장난하냐? 미쳤어?”
“장난 아닙니다. 정상이고요.”
“지금 당장 1시간 30분 있다가 8시 뉴스에서 콜드 워터 챌린지로 특집 잡혀 있어서 한창 준비하고 있어도 모자란대, 네가 이런 헛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제정신이라고!?”
보도국장은 다시 열이 뻗쳤는지, 목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소리쳤지만… 동민은 그 어떠한 미동도 없이 굳건한 눈빛으로 국장을 쳐다봤다. 그렇게 약 3초쯤 흘렀을까?
국장이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물었다.
“너 뭐 숨기고 있냐. 뭐냐, 또.”
“…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KBC에서 네가 네스트랑 디움에 커넥션 있는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내가 병*으로 보이냐?”
뭐, 솔직히 공공연한 비밀이 맞긴 했었다.
회사에서도 라인이 있고 파벌이 있듯, 기자 역시 몇몇 기업들과 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저 동민 역시 그게 네스트와 디움이었을 뿐.
“그래. 뭐, 보안 뭐 이런 것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치자. 그럼 다르게 물어보마. 이거 큰 거냐?”
“네. 큽니다. 대서특필할 정도로요.”
대서특필. 기자 일생에 단 한 번만 터트려도 인생 피는 황금 티켓이자, 방송사들 역시 본인이 제일 먼저 보도하고자 하는 최강의 기회 아니던가?
하지만 우동민은 이미 제 손으로 대서특필을 2번이나 해냈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세 번째를 장담했다.
이에 국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아마 거짓말은 아닐 거다.’
여태까지 일어났던 일을 고려하면, 보통 우동민이 이렇게 뭔가 강하게 밀어붙일 땐 아주 높은 확률로 좋은 기사가 나왔었다. 그렇기에 국장은 이번에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 야. 씨*, 해. 하라고, 이 새*야. 대신 너 이번에 큰 건 못 터트리면 가만 안 둔다. 아주 그냥 겁대가리 없이 국장한테 다이렉트로 말이야. 어? 내가 너 지켜본다, 이 새*야.”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특종이나 내, 이 자식아!”
국장은 동민이 고개를 숙이거나 말거나, 전화기를 들고는 ‘국제부장이랑 사회부장 그리고 경제부장 셋 다 내 방으로 오라고 해’라고 말하고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내려놨다.
약 30분 후.
국장은 절대 안 된다며 제 휘하 기자들을 챙기려는 사회부장과 국제부장을 어르고 달랜 뒤, 경제부장에게 이번 인도네시아 특파원으로 우동민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동민은 사회부장과 국제부장에게 아주 따가운 시선을 받았으나, 깔끔히 무시하곤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은 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곧 있을 특집을 준비하려는 찰나…!
덥썩 – !
“우 선배, 저랑 얘기 좀 해요.”
누군가 싶어 쳐다보니, 신성희 아나운서였다.
“어, 신 아나? 미안한데 내가 좀 바빠. 나중에 하자.”
“잠깐이면 돼요. 방금 국장실에서 무슨 얘기 했어요?”
“… 뭐, 그냥저냥. 아무것도.”
“국제부장님이랑 사회부장님 가셨잖아요. 선배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특파원으로 가시는 거죠?”
동민은 슬쩍 눈을 피하며 ‘아닌데?’ 했다.
사실 성희가 준성과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눈치챘기도 하거니와, 외모 자체가 워낙 파격적(?)이라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던 탓이었다.
“네스트랑 디움 관련으로 무슨 일 있는 거죠?”
“없어.”
“알려줘요. 나도 궁금하다고요.”
“직접 물어봐. 왜 나한테 그래.”
그 말에 성희는 고양이 같은 눈으로 동민을 쳐다봤다.
사실 성희는 준성의 연인이었기에 직접 물어보면 되긴 했다마는, 무슨 이유에서든 준성은 제 일을 성희에게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저번에 호텔에서 ‘크리스마스랑 그 이후에 좀 바쁠 것 같아, 미안해’라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고 말이다.
“그냥 말 좀 해주면 안 돼요?”
“어. 안 돼. 남자한텐 꼭 지켜야 할 비밀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리고 나 밥줄 끊기면 신 아나가 책임질 거야?”
그 말에 성희는 뭔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동민은 도망치듯 떠나 버렸다.
“야, 야. 나 바쁘다. 간다! 대표님께 안부 전해줘!”
마치 닭 쫓던 개가 이러할까?
성희는 멍- 하니 쳐다보고 있기도 잠시.
국장실로 향해 자기도 이번 재난 특파원에 신청할까 싶기도 했지만… 당장 주말 뉴스 앵커가 해외를 어떻게 가겠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기에 한숨과 함께 등을 돌렸다.
‘나도 오빠한테 도움이 되고 싶은데…’
속상했지만 뭐 어쩌랴.
하지만 성희가 하나 모르는 게 있었다면, 그녀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준성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