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432
– 433화 –
마치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걷는 연인은 헤어진다’라는 미신을 온몸으로 부정하듯, 크리스마스 이브의 덕수궁은 연인들로 넘쳐났다.
꼭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듯한 느낌이 이러할까?
고즈넉한 자태로 오랜 세월을 버텨온 돌담길 너머로, 현대의 상징인 콘크리트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 성희는 그게 참 마음에 드는지 연신 미소를 지었다.
“있잖아, 오빠. 그 미신 알아?”
“뭐?”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그 연인은 헤어지게 된다는 거.”
흔한 미신이었기에 준성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응, 알아. 예전에 들었던 것 같아.”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알아?”
물론, 알고 있긴 했었다마는…
준성은 기대에 가득 찬 성희에게 실망감을 주고 싶진 않았기에, 괜히 모르는 척 ‘그러게. 여기서 유명한 사람이 헤어지기라도 했나?’라고 되물어줬다. 그러자 성희는 입안 한가득 미소를 지은 채 신이 나서 조잘댔다.
“바로 요 옆에 시립미술관 있잖아? 원래는 그 자리에 미술관이 아니라 서울가정법원이 있었대. 이혼하기 위한 부부가 자주 걸었던 길이라서 그렇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그런 소문이 났나 봐. 이혼하고 다들 한숨 푹-푹- 쉬어서.”
성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우리는 행복할 거니까, 어차피 상관없는 얘기지만. 그치?’라며 히히- 하고 웃었다.
그게 꼭 소녀 같아 보였기에, 준성은 따스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전에 비해 머리가 많이 길어 이제는 단발이 아닌 장발이 됐지만… 여전히 부드러웠다.
“나는 이런 분위기 참 좋더라. 침략당한 역사가 적은 유럽 국가들은 보통 오래된 건축물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식민시절 겪으면서 많이 무너졌잖아. 그래서 이런 건물들 보면 꼭 역사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서 참 좋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한국은 일본이 제국주의를 펼치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며, 농담 안 하고 골수까지 파먹을 기세로 수탈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요 문화재들이 문화 탄압이라는 이름 아래 불타올랐고, 금속으로 된 건 죄다 녹여 전쟁 물자에 동원됐다.
그 까닭인지 한국은 유독 문화재가 많이 남지 않은 국가가 됐다. 게다가 고속 성장의 상황에서 앞만 보고 달렸기에, 문화재 보존에 큰 신경을 못 쓰기도 했었고 말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기업가이자 경영자인 준성에게는 딱히 직접 영향을 주는 요인이 아니긴 했지만… 마침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김에 전략을 넓혀보기로 했다.
‘… 비록 ND 그룹의 한국 점유율은 사실상 반쯤 독점에 가까울 정도지만, 어차피 슬슬 법인세 때문에라도 활발한 기부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러니 순위를 굳힌다는 생각으로 문화재 쪽에 기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그에 더해 이 무렵은 아직 ‘애국 마케팅’이 유효했다.
97년 외환 위기를 이겨내고, 02년 축구 4강 신화를 이룩하고,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의 망언 및 미군의 장갑차 사건 등 같은 외교 갈등으로 국민의 애국심이 높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만 이용하면 이미지에 도움이 되리라.
준성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돌담길이 끝이 났고…
“아! 오빠! 우리 저기 가자!”
성희는 어느 허름한 국숫집을 보며 가리켰다. 꽤 유명한 맛집으로, 최소 30년 정도는 되어 보이는 가게였다. 그걸 증명하듯 유리 너머로 연예인들의 사인이 가득했고 말이다.
특히 성희는 유독 저런 허름하고 사람 냄새 가득 나는 장소를 좋아했다. 아무래도 재벌이라는 이름 때문에 혼자서는 저런 가게를 자주 못 갔기 때문이리라.
‘하긴. 대학생 때 꿈이 친구 자취방에서 라면 끓여 먹는 거라고 했었으니까, 그럴 법도 하지.’
반면 준성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저런 분위기보다는 넒고 조용한 곳을 선호했지만… 그런 곳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자주 갈 수 있었기에, 이번에는 성희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다.
이후 조금만 움직여도 옆 사람과 팔꿈치가 닿을 정도로 좁은 가게에 들어간 뒤.
성희는 가볍게 만두와 국수를 주문.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사진을 찍어준 뒤… 소박하기 그지없는 음식을 꼭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활짝 웃으며 먹기 시작했다.
후릅- 후르릅-
꼭 먹는 걸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느낌이 이럴까?
준성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성희는 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응? 왜?’라고 물었고, 이에 준성은 편안한 얼굴로 ‘그냥, 좋아서.’라고 대답해줬다.
“에이, 뭐야~”
…
그렇게 가볍고 소박한 식사가 끝난 뒤.
둘은 가볍게 인근에 있는 시립미술관에 들어가 간단히 전시회를 관람했고, 그다음으로는 시청 앞에 있는 스케이트 장에서 가볍게 아이스 스케이트를 즐겼다.
덤으로 그 과정에서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
“푸하하- 의외다. 오빠도 못하는 게 있었네?”
바로 성희는 스케이트가 익숙했는지 마치 빙판 위의 요정처럼 이리-저리- 잘 돌아다녔지만… 정작 준성이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 엉거주춤하게 있다는 거였다.
“… 어렸을 때 잠깐 타본 게 전부거든.”
대충 회귀 전부터 따진다면 근 40년 만에 타는 스케이트다. 준성이 무슨 문무겸비의 최강 인재도 아니고, 스케이트까지 잘 타긴 어려웠다. 골프나 수영이면 모를까.
하지만 성희는 오히려 철옹성처럼 든든한 준성이 가진 의외의 허점이 좋았는지,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가 싶더니 이내 준성의 손을 잡고는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에구구- 우리 준성이 스케이트 못 타는구나? 누나가 가르쳐 줄까요? 자- 누나 손잡아 봐요-”
“아주 재미 들렸네. 놀리니까 좋냐!”
“응. 좋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려. 그러니까 우리 준성이, 누나 손잡고 좋은 데 같이 가자~ 기분 좋게 해줄게.”
“말이 좀 이상하다? 왜 단어를 생략해?”
“아닌데-? 어머, 이상한 생각 했나 봐. 나랑 같이 스케이트 타면 좋은 거 아니었어? 나는 좋은데.”
“아니, 좋긴 좋지. 근데 말이 좀 이상하게 생…”
딱 거기까지 얘기하자,
성희는 마치 놀리듯이 톡- 밀며 ‘왁!’ 했고,
이에 준성은 화들짝 놀라며 성희의 팔을 붙잡았다.
“이제야 잡았네? 자, 그럼- 넘어지는 거 무서워하지 말고. 대각선으로 왼발- 그리고 대각선으로 오른발-”
그렇게 성희는 준성의 양손을 붙잡은 채, 마치 어린아이에게 걷는 것을 가르쳐 주듯 준성을 마주 보며 조심스럽게 뒤로 이동했다. 그렇게 약 5분 정도 배웠을까?
준성이 실수로 성희 다리 사이로 왼발을 밀어 넣게 됐고, 그와 동시에 자세가 무너지며 부딪치려는 찰나-
꾸욱- 꾹-
성희가 준성의 가슴을 살짝 미는 동시에,
꼭 불의의 사고라도 난 것처럼,
제 입을 준성의 입에 포갰다.
그리고는 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살짝 얼굴을 떼고는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스케이트 어때? 재밌지?”
“… 재미없었는데, 방금 재밌어졌어.”
“흐응- 그으래? 왜 그럴까?”
“한 번 더 해보면 알 것 같아.”
준성이 슬쩍 고개를 앞으로 내밀자, 성희는 그걸 보곤 풉 웃으며 ‘아, 진짜~! 엉큼하다니까.’ 하고는 못 이기는 척 준성의 입에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 사이 준성은 앞으로도 겨울 스포츠도 나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았을 달콤한 시간을 즐기고 있자니, 노을과 함께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서울 시청 앞에 차 한 대와 함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바로 신창호 회장의 절친이자,
보교그룹의 비서실장,
김우현이었다.
여담으로 특이하게 유니드어스의 부사장이자, [로드 오브 레전드] 개발팀장이며, 장민우의 절친한 친구인 ‘김우현 부사장’과는 동명이인이었고 말이다.
‘아무래도 흔한 이름이니까. 당장 네스트 안에 김재민 사장만 하더라도 디움에 동명이인이 한 명 더 있고 말이야.’
그는 성희와 준성을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는데, 동시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회색 롱코트와 목도리가 우아하게 흔들렸다.
아무래도 보교그룹 자체가 워낙 깔끔한 기업이었던 탓인지, 그룹 내에서 더러운 일을 하는 일이 비교적 잦은 비서실장조차도 매우 청결해 보인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성희 아가씨, 이준성 대표님. 두 분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약속 장소로 모셔다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이준성 대표님의 차량은 저희 측 비서가 함께 약속 장소로 옮겨 놓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비서실장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성희와 준성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비서실장은 난처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저는 한낱 비서일 뿐입니다.”
뭐, 솔직히 성희는 사석에서 우현을 ‘삼촌’이라고 불렀고, 우현 역시 성희에게 말을 편하게 하긴 했다마는… 아무래도 공적으로 엮일 수도 있는 준성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닙니다. 저보다 연세도 훨씬 많으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회사 내에서도 모두에게 높임말을 쓰는지라… 혹여 제가 높임말을 쓰는 게 불편하거나 난처한 일이 될까요?”
준성이 슬쩍 조심스럽게 묻자,
우현은 못 이기는 척 뒤로 물러났다.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그러시다면, 그렇게 해주십시오. 대표님을 편히 모셔다드리는 게 제 업무니까요. 제가 거기에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타시죠.”
…
약속 장소로 향하는 차 안.
고요한 엔진음 사이로 성희는 준성의 손을 꽉 붙잡았다. 마치 놓고 싶지 않다는 듯. 이에 준성 역시 그런 성희에게 화답하듯 꾸-욱 그 손을 잡고 있기도 잠시.
얼마 후 광화문 인근에 있는 고급스러운 한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오래간만에 신창호 회장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신진사대부가 현대로 넘어온 것 같은 올곧고 강직한 인상에, 세월 대신 멋을 머금을 듯한 반백의 머리와 타협을 용인하지 않는 굳센 눈썹. 그리고 불의를 발견하면 언제든 응징하겠다는 정의감에 번뜩이는 눈동자까지.
기업을 운영하고 이익을 내야 하는 경영자는 본디 타협하기 쉬운 법이었거늘… 참으로 언제 봐도 독특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왔니? 앉아라.”
창호는 둘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고, 성희와 준성 역시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곤 앉았다.
“너희 둘에게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인지는 알고 있다만, 급히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다.”
“아닙니다, 아버님. 아무리 일이 바빠도 가족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꽤 힘이 들어간 듯한 대답에, 성희는 테이블 아래로 준성의 허벅지를 ‘좀 더 편하게 있어도 돼, 오빠’라는 듯 가볍게 쓸었지만… 어찌 사위가 장인어른 쉬울 수 있으랴.
게다가 가족으로 엮인 것도 엮인 것이지만, 신창호는 보교그룹의 총수자 회장이었으니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신창호 역시 이를 알았는지, 전채(前菜, 애피타이저)로 나온 죽을 술잔처럼 기울이듯 후루룩 마셨다.
굳이 복잡하게 따지고 들어가자면 소리가 나게끔 마시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마는… 아마 준성을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는 생각으로 괜한 무게를 잡지 않은 것이리라.
“그래서, 일은 요즘 좀 어떠니?”
“별다른 소음 없이 순항하고 있습니다. 전부 아버님께서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전부 자네 수완이 좋은 덕이지. 나는 그저 정도를 모르는 무뢰배들을 쳐냈을 뿐이다. 내가 한 건 없어.”
“아닙니다, 만약 아버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쯤 네스트와 디움 모두에게 큰 타격이 됐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신창호는 딱히 대답하지 않은 채 술을 권했다.
“한잔 받겠나? 보아하니 비서를 둔 것 같진 않고, 혹시 약속 끝나고 다른 곳에 가야 하면 안 받아도 상관은 없다만.”
“아닙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셔.”
딸깍- 쪼르르- 벌컥-
이후 술이 들어간 뒤, 가볍게 주-요리로 나온 갈비찜을 안주 삼아 마시기도 잠시. 신창호는 안부 인사는 이쯤 했으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너를 보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다. 최근 공정위 쪽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오더구나.”
그 말에 준성의 눈이 일순간이나마 날카로워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공정위는 소위 경제 경찰이라 불리는 기관이다.
그렇기에 [불공정 거래] 및 [독점]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 자체적으로 과징금까지 부과할 수 있는데… 그걸 한 대 맞는 순간 회사 전체에 적신호가 켜진다.
특히 음지전이 소강된 사이를 틈을 이용해 스타벅스와의 전쟁에 집중하고 있는 와중에, 대영이 기습 공격을 감행한다면 퍽 껄끄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 제가 그쪽에는 채널이 없는지라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외람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문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버님?”
이에 창호는 준성에게 술을 한 잔 더 권하고는,
가볍게 술잔을 기울이며 피식 웃었다.
“공정위에서 [네스트], [네프로], [쟈르뎅], [디움], [미니랩], [빅셀], [유니드어스] 등을 묶어 [ND 그룹]으로 칭하고… 자네를 ND그룹의 총수로 지정한다고 하더군. 곧. 자네도 이제 신흥 재벌이 된다는 얘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