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554
– 555화 –
시간은 부쩍부쩍 잘 흘러,
2007년 2월의 첫째 주가 왔다.
언제나 그렇듯 차가운 겨울의 끝이 도래하고, 쌓여 있던 눈이 사르르 녹으며 봄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무렵.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는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류충재 회장이 둔 파격적인 수는 분명 사회적인 파문을 빚었지만, 확실히 그만큼 효과적이었던 걸까? 사람들은 이제 더는 카제인나트륨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은 채 오히려 이번 사건을 [남영의 욕심이 빚은 헤프닝] 정도로만 인식했다.
덤으로 동남은 해당 광고가 나간 뒤 기자회견을 개최.
그 자리에서 다시금 카제인나트륨을 물에 타 전 직원이 함께 원샷(!)을 때리는 퍼포먼스를 보였고, 심지어는 기자들에게도 나눠주며 문제없으니 먹어보라고까지 했다.
– 카제인나트륨이 유해하다는 건 순 거짓말입니다!
– 애초에 이게 독약이라면 사람이 카제인이 주성분인 소젖(우유)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겠죠! 정 원하신다면 제 건강검진표까지 제출할 의사가 있습니다!
꼭 성난 맹수처럼 포효하는 류 회장의 모습에 기자들은 특종이라 생각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고… 그 와중에 어느 용감한 여기자 한 명이 당당히 질문을 던졌다.
– 일단 안전하다는 주장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과용할 경우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 위험성 또한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요.
– 위험이요? 예, 온종일 카제인나트륨이 가득 든 음식을 입에 달고 살면 그럴 수도 있겠죠. 저 역시 신제품을 개발하며 비슷한 일을 겪어 봤습니다.
그 말에 여기자는 건수 잡았다는 듯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을 준 채 뱀처럼 눈빛을 번들거리며 다시금 물었다.
– 방금 안전하다고 하셨던 말씀과는 상반되는 말씀이시네요. 그 위험성이 무엇입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밝혀 주십시오! 동남식품이 1976년에 [막심]을 세계 최초로 커피 믹스 형태로 출시한 후. 많은 국민이 해당 제품을 애용했습니다! 그러니 국민은 그 위험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습니다!
– 예! 위험성! 그거 아주 간단합니다! 많이 먹으면…
모든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도 잊은 채 긴장감에 짓눌리기도 잠시. 류충재 회장은 커다랗게 포효했다.
– 살이 찝니다!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되거든요! 그만큼 뛰어난 제품이고요! 그러니 저는 소비자와 국민 여러분께, 저희 막심 커피가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너무 많이 드시지는 마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너무 많이 드셔 주시면! 저희야 고맙지요. 네. 고맙습니다.
그 말에 질문을 던진 여기자는 벙-쪘는지 ‘어?’ 소리를 내며 바보처럼 입을 벌렸고, 기자회견장에는 푸흡- 하는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덤으로 류충재 회장의 발언에 류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었고, 그걸 지켜보던 류학재 회장 역시 ‘크하하하! 역시 형님이시군!’했고 말이다.
그렇게 진실을 위한 기자회견이 마무리됐다.
여담으로 해당 기자회견을 곡해해 라는 식의 기사 따위는 나지 않았다.
동남이 네스트와 밀접한 관계인 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었거니와, 당장 남영을 들이받은(?) 류 회장 아니던가?
그러니 일개 기자 따위를 조지는 거야 일도 아닐 게 분명했고… 이에 제 직장생활을 걸고 도박을 거는 멍청이 따위가 생길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
해당 사건이 있고 난 뒤.
간신히 찾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썩은 희망에 삯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었던 걸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남영 역시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 야 이 새*들아! 뭐하는 거야! 너희들은 생각이라는 게 없냐!? 너희 대신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앉혀놔도 이거보단 일을 잘하겠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 어떻게 된 게 이놈의 회사는 월급 도둑질이나 하는 무능한 놈들이 매년 두 배씩 늘어나! 지금 류충재 저 새끼 날뛰는 거 안 보여! 고소하든, 강제로 무릎을 꿇리든! 어떻게 해서라도 저 입 다물게 만들란 말이다! 으아아아아!
홍구영 사장은 노발대발하며 제 직원들에게 거센 말들을 내뱉었고, 이에 법무팀 직원들이 급히 움직여 동남과 류충재 회장을 [업무 방해]와 [허위사실 유포] 그리고 [기업 이미지 손상]을 이유로 고소 절차를 밟았다.
이에 동남 역시 기다렸다는 듯 [허위사실 유포] 그리고 [기업 이미지 손상]으로 반격을 위한 소송을 걸었음은 물론이오, 공정위 측에 남영이 [과대광고]를 했다며 조사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올리기까지 했다.
…
그렇게 사건이 법적 공방으로 흘러가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걸려야 일이 해결될 것 같은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됐을 때쯤. 준성은 ND 빌딩 인근 음식점에서 비밀스레 누군가를 호출하고는 조용히 식사를 하기도 잠시.
후우- 후르르릅- 우적우적-
드르르륵 –
입안 가득 닭고기 육수 베이스의 퍼(Pho, 쌀국수)를 씹고 있자니,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최근 격한 일을 여럿 겪어 살짝 예리해진 인상. 굵은 뿔테 안경 너머로 세상의 비리를 모두 찾아내리라는 듯 날카롭게 번들거리는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동 면발처럼 곱슬 거리는 머리. 바로 KBC 우동민 경제부 기자였다.
“오셨어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뇨. 항상 음식점에서 뵙자고 하시는지라, 혼자서 멀뚱멀뚱 있기도 뭣해서 항상 비우고 오거든요.”
그 말에 준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먹으라는 듯 퍼를 동민 쪽으로 밀어줬다.
“중국 음식인가요?”
“아뇨. 베트남 음식입니다. 쌀국수에요.”
“월남쌈은 먹어 봤는데, 쌀국수는 또 처음이네요.”
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한국과 베트남이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2000년대 후반, 넉넉하게 잡으면 2010년대 중반이다.
딱 저 때쯤. 본래 중국에 생산 공장을 가동하던 대영이, 국가 단위의 횡포와 산업 스파이 그리고 빠르게 오르는 임금을 회피해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그 투자를 엄청나게 확장해 미래에 가서는 베트남 GDP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져, 그 결과 대영이 베트남의 성장률을 견인하는 수준까지 된다.
까닭에 한국 노동자들 역시 베트남과 한국을 자주 오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교류가 이어지며 베트남 음식과 베트남 관광 등이 사람들의 관심사에 확 올라오게 되고…
거기에 소위 [쌀딩크]라 불리는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의 신화를 쌓으며 양국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하게 됐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10년대 후반 얘기고…
2007년 무렵의 베트남은 그냥 낯선 나라였다.
그저 파병 갔던 나라 정도로 기억될 정도로.
뭐, 그러거나 말거나.
준성은 슬쩍 안부를 물었다.
“요즘 자주 뵙네요. 잘 지내시죠?”
“예, 항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특종 거리를 던져주셔서, 따스한 밥 먹으며 따스한 집에서 잘 지내고 있죠. 근데 오늘 또 던져주실 것 같네요.”
이쯤 오자 휙 하면 척이었던 걸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것처럼,
동민 역시 이미 준비를 죄다 끝냈다는 듯.
매우 평온하면서도 무슨 얘기를 꺼내도 놀라지 않겠다는 덤덤한 투로 쌀국수를 흡입했다. 덤으로 ‘흐음- 베트남 음식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육수도 진하고. 맛있어요.’ 하며 여유도 부렸고 말이다. 그렇기에 준성 역시 부담 없이…
스윽 –
테이블 너머로 각봉투를 하나 꺼냈다.
“전후 사정은 다 아실 테니 생략하겠습니다. 카제인나트륨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돌입했지만, 그와 별개로 대영의 하수인을 자처한 남영에게 보복이 필요해 보여서요.”
한 마디로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뜻이다.
준성은 현재 본인이 세운 그룹의 방침이 기본적으로 선한 성향이었기에,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한 음지 전략을 제외하고는 웬만해선 과격한 전략은 잘 쓰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경향이 있었다는 것뿐이지…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참아 줄 생각은 없었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간 대영이 뿌리는 더러운 찌꺼기에 몰려드는 날파리를 끝도 없이 상대해야 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확실한 본보기를 만들어 일벌백계할 필요성이 있다.’
본디 존중의 기본은 공포에다.
때리고 욕해도 반항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레 막 대하고 만만하게 되듯. 기업 역시 같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일이 좋게 끝났으니 아무런 숙청 없이 넘어간다면…?
또 다른 대영의 졸개가 나타날 터.
그러니 이 산업 전체. 더 나아가 한국 전체에 [대영에게 매수되어 ND 그룹을 공격하는 자에게는 늦든 빠르든 간에 확실한 파멸이 주어진다]는 각인을 박을 필요가 있었다.
부스럭- 부욱- 사르락-
팔랑- 팔랑- 팔랑-
이에 동민은 그 자료를 읽어 내려가기도 잠시.
남영의 충격적인 부패 상황과 정도가 지나친 억압과 범죄 행위에 얼굴을 사정없이 일그러뜨렸다.
아마 ‘타협하지 않는 선’이 형태를 가진 것만 같은 정선 공인 노무사와 함께하며 그 성향이 조금 옮은 것이리라.
“… 하. 이 새*들 정도가 좀 심하네요.”
“예, 선을 넘은 기업입니다. 괴물로 변해버린 기업이기도 하고요. 그러니 ND 그룹이 시장 전체에 줄 메시지를 담고 폭발할 희생양으로서는 딱 맞는 상대죠.”
“이 정도면 저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겠네요. 시간은 얼마나 주실 건가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요즘 전쟁으로 많이 바빠서 신경 쓸 게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이에 우동민은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
남은 쌀국수를 그대로 한입에 털어 넣고는,
봉투를 챙긴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시게요? 식사는 마저 하시죠. 그 정도로까지 급한 일은 아니니까. 우동민 기자님께선 큰일을 하시는 분인데 속이 비어 힘이 빠지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 말에 동민은 피식 웃기도 잠시.
이내 굳은 의지가 나타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대표님께서 빨리하라고 하셔서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남영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일 할 때는 빈속이 더 편합니다. 더러운 괴물을 파헤치면 좋든 싫든 비위가 잔뜩 상하거든요.”
아마 최근 살이 빠진 이유가 저것이리라.
뭐,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기에.
준성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다음에 또 보시죠.”
“예,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
사흘 뒤. KBC 뉴스에서 우동민 기자의 단독 보도 특집을 통해 남영 그룹의 추악한 실태가 뉴스를 탔다.
– [단독] 남영유업의 추악한 실태?
– 불공정 계약을 통한 대리점 압박과 매출을 늘리기 위한 밀어내기까지! 심지어는 팔리지 않은 제품을 손해로 떠넘기기까지 21세기 노예 제도! [갑질]을 파헤치다!
– [속보] 남영유업 노동자 탄압 정황 포착?
– 최근 과대광고 및 불공정 계약 논란이 있는 남영 유업이 노동자를 탄압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결혼하거나 임신한 여직원에게 퇴직 압박이 진행된 것입니다. 심지어 임신한 여직원을 생산직으로 발령을 내기까지 했습니다.
– 남영, 분유 제조 공장에 곰팡이 파문?
– 최근 내부 고발에 따르면, 아이들이 먹어 위생에 철저해야 할 분유 제조 공정이 매우 지저분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소식이 밝혀져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마치 연쇄적으로 터지는 폭탄이 이러할까?
우동민이 직접 진행한 [TV 뉴스]를 시작으로 [신문] 그리고 [인터넷 뉴스]에 심지어는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에 떠돌아다니는 [카드 뉴스]까지. 마치 사회 전체가 남영을 오체분시라도 하는 양, 미친 듯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애초에 처음부터 기습에 실패한 남영에게는 승산이 없다고 밝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혹은 준성의 분노가 사회를 통해 나타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에 남영을 향한 국민의 분노는 계속 추가되는 폭로와 비리에 끝도 없이 높아지기 시작. 끝내 끓는 점을 넘어 어마어마한 보이콧으로 이어졌다.
– NO 남영! NO 블랙기업!
– 아, 남영 제품 안 먹는다고!
– 앞으로 내가 남영을 먹으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마치 공개 처형을 방불케 하는 폭풍 속.
남영의 홍구영 사장은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느끼고는 도와 달라며 대영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것이라고는…
– 무슨 말씀이신지?
… 라는 피승원의 기계적인 대답이 전부였다.
그는 그제야 본인이 탄환처럼 날려진 뒤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급히 네스트와 동남을 찾아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이미 분노한 두 총수를 만나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철저히 망가지는 그를 보며,
준성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었다.
‘미친개한테는 매가 약이지. 하지만 나는 널 매질 정도로 끝내줄 생각 따윈 없다, 남영. 너는 장렬히 산화해서 ND 그룹의 영향력을 증명해야 할 본보기가 돼야 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