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560
– 561화 –
2007년 3월. 초봄이 왔다.
샛노란 개나리가 개화함과 함께 이제는 확 따뜻해진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코트를 장롱 속에 넣어두곤 퍽 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출근길에 올랐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는 신입생들이 새로운 학기를 맞이해 웃는 얼굴 혹은 피곤한 얼굴로 각자 학교로 향했으며…
직장인들은 언제나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드문드문 변하는 계절을 느끼며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꽃놀이를 갈 것을 생각하거나, 혹은 ‘이 염*할 벚꽃의 계절이 또 왔구나’하며 여전히 얼어붙어 있는 옆구리를 씁쓸하게 쓸어대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계절의 변화에 맞춰,
다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
ND 그룹 역시 새로운 시작을 하려 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는 [새로운 동맹을 제안]하려는 상대와 테이블을 둔 채 서로를 가늠하려 했다.
…
약속 당일.
ND 빌딩 5층, 디움 본사 내 대회의실. 준성-예라-권영-사울으로 이뤄진 협상 인력이 기다리고 있자니, 머지않아 구윤모가 [HG 텔레콤]의 핵심 인력들을 대동한 채 등장했다.
마치 붉은 군대의 행진이 이러할까?
비록 대영의 존재감에 가려 ‘2등’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HG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외 이미지였을 뿐. 엄연한 글로벌 기업이자 백색가전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도 옥석을 가려 만든 최강급 인재들과 더불어, 그 우두머리로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인 구윤모까지 합세하자…
뚜벅- 뚜벅- 뚜벅-
그저 붉은색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걸어 들어온 것뿐임에도, 마치 근위대들이 행진하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HG의 영향력이 그만큼 세다는 방증이리라.
하지만 이쪽 역시 굳이 꿀릴 것은 없다.
ND그룹 역시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오로지 제힘으로만 글로벌 기업을 2개나 세운 기적의 그룹이었으며, 이제는 IT 서비스 산업의 기틀을 바꾸려고까지 하는 게임 체인저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준성 역시 제 왕국을 찾아온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예를 갖추듯 제 인력들과 함께 구윤모에게 다가갔다.
스륵- 뚜벅- 뚜벅-
붉은색과 갈색이 서로 섞일 듯, 섞이지 않을 듯 아슬아슬한 간격을 사이로. 준성이 웃으며 반겼다.
“반갑습니다, 이준성 대표입니다.”
“경우 없는 제안이었음에도 흔쾌히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HG 전자 구윤모 전자통신사업 본부장입니다.”
으레 그렇듯 인사를 주고받은 뒤.
준성과 윤모가 서로의 손을 마주 잡아 악수했다.
꽈악 –
패기 넘치는 젊은 경영자의 적당한 악력과 더불어, 악수하는 도중에도 단 한 점의 흔들림 없이 올곧은 눈동자까지. 준성은 그런 구윤모를 보며 속으로 묘-한 미소를 지었다.
‘왕은 역시 씨앗부터 다르군. 호기로워. 하긴, 이런 성격이었으니 지금처럼 빠른 전략을 휘두를 수 있겠지. 확실히 FM 적으로 움직이는지라 돌다리도 두드리다 못해 연구해서 건너는 마창수와는 정반대의 경영자다. 외유내강형이야.’
물론, 상대를 평가한 건 준성뿐만이 아니었다.
‘… 이 사람이 이준성 총수인가. 재벌 지정 전까지는 극단적으로 제 정체를 숨기다가, 이후에는 딱 ND그룹에 도움이 될 정도로만 모습을 노출하며 제 영향력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군. 수 싸움이 빠듯하겠어.’
구윤모 역시 준성에 대한 짧은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 서로 첫인상을 확인한 뒤.
준성은 이후 제 인력들을 차례로 소개해줬다.
사실 그냥 지나가는 협상 자리였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일 없이 바로 일로 넘어가도 됐겠지마는. HG는 대영을 견제하기 위해 확보해두면 좋은 상대였거니와, 지금 ND그룹에 구윤모와 큰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오랜만이네요, 구 본부장님.”
마예라였다.
그녀는 제 신념을 확고히 한 뒤 개인적인 모임에서 구윤모를 포함한 여러 경영인들을 만나고 다녔고, 심지어 거기에 준성을 초대하려고까지 했던 사람이다.
그러니 둘이 사이가 무척 가까울 수밖에. 그걸 증명하듯 구윤모 역시 그런 그녀를 웃으며 맞이해줬지만, 그럼에도 공과 사는 칼같이 분리한 채 적당히 선을 그었다.
“그러게요. 잘 지내셨죠, 마예라 상무님?”
“예. 새로운 거처가 참 마음에 들거든요. 그나저나 구 본부장님께서 직접 오시다니, 참 그림이 묘하네요. 전자통신 기기를 제조하는 업무를 맡으신 분이, 텔레콤 사업을 이끌고 디움에 찾아오다니. 공교로워요. 그쵸?”
덤으로 이게 이 자리에 예라가 있던 이유였다.
현재 진택은 런칭 전에 생산 라인을 점검하느라 해외 로케이션을 돌며 바쁜 상황. 까닭에 준성은 [스마트폰 제조]에 관련된 얘기를 원천봉쇄할 겸. 구윤모를 견제 겸. 예라를 대신 데리고 온 거였다. 둘 다 핸드폰을 다뤘던 사람인지라 서로에 대해 잘 알 게 분명했기에.
이에 구윤모 역시 대충은 감을 잡았는지,
묘한 미소로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을 돌려줬다.
“세상은 원래 우연이 가득하죠. 그러니 아무리 공교로운 일이라도 우연이 되는 법이 있고요.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서서 얘기하기도 뭣하니, 남은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죠. 어차피 우리끼리 나눠 할 대화도 있으니.”
그렇게 간단한 인사가 끝난 후.
구윤모는 앉자마자 바로 본론부터 훅 던져 들어왔다.
거기서 파악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냄새가 살짝 났다.
아마 능력이나 전략 그리고 협상 면에서는 본인이 월등히 떨어질 테니, 괜히 끌려다닐 것 없이 속전속결 하려는 것이리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꾸밈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HG는 5월에 디움이 런칭할 [스마트폰의 한국 시장 독점 유통권]을 원합니다.”
후욱- 하고 들어오는 직구.
이에 준성은 피식 미소를 지었고,
사울은 보조 인력이라 그냥 대기했으며,
예라는 일단 더 지켜보겠다는 듯 침묵했고,
권영은 슬쩍 준성 쪽을 쳐다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이에 원래라면 스마트폰에 관련된 세부 전략은 모두 권영이 처리했던 상황. 하지만 준성은 처음부터 우두머리를 내민 HG에 맞춰 본인이 대신 대답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왜 귀사와 협업을 해야 합니까? HG는 이동통신사업 점유율 3위 일 텐데요. 그것도 SD, 코리아나와 꽤 격차가 있기까지 하고요. 게다가 품질 관련 이슈까지 종종 들려오니, 솔직히 저희가 열 혁신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흐음. 예. 그렇습니다.”
마지막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명백한 도발의 의도가 묻어났다.
덤으로 저 말을 경영의 언어가 아닌,
우리가 흔히들 하는 일상어로 번역하면…
– 느그 회사 구리잖아. 우리가 왜? 같이 일하고 싶으면 뭔가 매력적인 제안을 얹어 봐. 맨입에 부탁하지 말고.
… 정도 되시겠다.
이에 직원들의 애사심과 자부심이 재벌 중에서도 유독 높은 HG 그룹답게, 일순간 텔레콤 사장의 얼굴이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굳어졌다.
하지만 구윤모는 예상했다는 듯.
아무런 데미지도 받지 않은 채 응수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현재 저희 HG 텔레콤은 시장 점유율 3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실한 동반관계를 확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원하신다면 이익률 조정 등의 형태로 증명하겠습니다.”
이익률 조정.
출혈을 머금겠다는 강수다.
하지만 저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구윤모는 곧 본인과의 동맹이 주는 이점을 피력했다.
“그 외에도 코리아나 텔레콤은 공기업입니다. 지금처럼 디움이 주도하는 파괴적 혁신 속에서 잘 따라올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군요. 오히려 발목이 잡혀 한국 시장의 혁신을 늦출 가능성이 큽니다. SD는 또 어떻습니까? 그들은 이미 대영전자에게 종속된 하수인에 가깝습니다. 배신의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공기업은 기본 바탕 자체가 독점을 통한 이익 실현이 가능한 부분에 국가가 참여함으로써, 국민에게 다수의 이익을 나눠주기 위해 설립된다.
물론, 최근 반쯤 철밥통 소리 들어가며 온갖 부패가 만연한 공기업들을 보면 저게 꼭 맞는 말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기본 비전 자체는 저렇다.
까닭에 공기업들은 좋든 싫든 간에 간접적으로 국가의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고, 그 덕에 의사결정 속도가 사기업에 비해 확연히 느릴 수밖에 없다.
SD 텔레콤 역시 구윤모의 말대로다.
현재 시장 2위이자 민간 1위로서, 호시탐탐 코리아나 텔레콤을 넘어서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저들은 목표를 위해 대영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큰 이익을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대영]과 [ND]의 전쟁이 발발(勃發)했고, 디움이 스마트폰을 발표하며 두 그룹 중 어디에 붙을지 계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HG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않고 적당히 고개를 숙인 채 상황을 관망하겠지.
그에 더해 ‘데이터’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등장은 기존 BM(사업 모델, 지금 같은 경우 요금 정책)을 바꿔야 하기에 커다란 간접비용 및 적응 기간이 필요할 터.
이런 이유로 SD는 그룹의 금고 역할을 하는 텔레콤 사업의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기까지 할 테니… 디움에게 고분고분 협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러니 디움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다줄 협력자는 바로 저희 HG일 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정도면 이유가 충분할 거라고 봅니다만.”
유려한 말솜씨와 빈틈없는 논리.
무엇보다 물러서지 않는 기세까지.
이에 준성 역시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보아하니 이미 전략 다 짜서 왔네. 구윤모 본인도 결국 디움이 선택할 협력사가 HG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괜히 시간 끌며 강짜 부릴 것 없이, 본인이 조금 양보할 테니 바로 계약해달라 이건가.’
상대가 짠 시나리오 위의 배우 역할이라.
참 오래간만이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남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는 게 유쾌하지는 않다지만, 그렇다고 겨우 감정 때문에 이익을 마다할 정도로 준성이 외골수는 아니었으니까.
‘구윤모, 좋다. 네 뜻대로 움직여 주마. 하지만 나를 부리는 값이 저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게야. 그러니 너 역시 내가 짠 판 위에서 움직여 줘야겠어.’
물론, 그렇다고 저 붉은 아룡의 장기 말 따위가 되어 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면 모를까.
“독점 유통권이라. 좋습니다, 드리죠. 하지만 저희 역시 제안이 있습니다.”
“예. 말씀하십시오.”
“첫 번째로 [독점 유통권 구입금]을 명목으로 그 혁신의 가치에 알맞은 값으로 지불해 주시고, 두 번째로 디움 측에 유리하게끔 [이익률 조정]을 해주신 다음, 세 번째로 모든 유통 전략은 [디움과 합의] 하에 결정합니다.”
그 말에 회의실 안에 놀라움이 찾아왔다.
권영은 엄청나게 강력한 조건들에 놀랐으며,
예라도 너무 세다 싶었는지 동공을 키웠고,
사울은 충격받은 듯 입을 쩍- 벌렸다.
물론, 이는 비단 네스트뿐만이 아니었다.
구윤모는 빠듯한 조건에 눈을 가늘게 떴으며,
HG 텔레콤 사장은 금방 폭발할 듯 부들거렸다.
그럼에도 조건은 저게 전부가 아니었는데,
준성은 마지막 내용을 폭탄처럼 입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HG 전자가 [스마트폰 개발]을 시작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이게 저희 조건입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일까?
그 말에 회의실 안에 고요한 폭풍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