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58
– 58화 –
“될 겁니다. 아뇨, 될 수밖에 없습니다.”
준성의 말에 권영이 묘한 침묵을 유지했다.
비록 월급 사장으로서 시키면 하긴 하겠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냄새가 짙게 풍겨 나왔다.
‘어찌 보면 저게 당연한 반응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본디 경영이라는 건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경영자와 소비자 둘 다 사람이기에 환경에 따라 변수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었다.
당장 1999년을 떠올려 보자.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인터넷 보급 초창기였다.
심지어 몇몇 음반은 CD가 아닌 테이프로 나올 정도로 기술 발달이 덜 된 시기 아니던가?
이는 인터넷을 다루는 기업들 역시 똑같았다. 비단 디움뿐만이 아니라, 구글, 야후 역시 어디까지나 조금 더 먼저 그 기술을 접했을 뿐. 그 기술 자체가 낯선 것 동일했다.
‘비슷한 이치로 [소프트웨어 서비스 경영 전략] 역시 아직 탄생기에 지나지 않았던 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기존의 상식처럼 여겨지던 [제조업 경영 전략]을 따라가려 했을 테고, 그 상식에서는 오픈베타 서비스가 이상해 보였겠지.’
권영의 저 반발이 바로 증거였다. 그는 분명 오픈베타 서비스 전략을 일반적인 제조업 시점에서 생각했으리라.
‘일반적인 제조 기업에서 미완성 제품이 시장에 나간다는 것은 곧 불량이 난 걸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불량품은 회사에 재앙을 몰고 올 씨앗이지.’
당장 살면서 ‘미완성’이라고 적힌 제품을 소비한 적도 없을 테니, 권영에게는 저 제안이 미친 짓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원래 전략이라는 건 쓰기 나름이었다.
당장 미래의 게임 시장만 봐도 그랬다.
사실 많은 게임사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해서 그렇지, 까놓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한 전략들이었다.
모두가 아는 스타 크래프트를 떠올려 보자. 눈보라 사에서 만든 이 게임의 최초 발매일은 98년 3월이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브루드 워’라는 확장팩을 연달아 출시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자면, [스타 크래프트] 다음에는 당연히 [스타 크래프트 2]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눈보라 사는 확장팩이라는 개념으로 게임 한 장을 더 냈다.
어디 그뿐이랴? 2000년에 발매해서 많은 학생들을 폐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디아블로 2] 역시 확장팩을 내놓았다.
이렇듯 눈보라 사는 확장팩 전략을 사용.
기존에 발매했던 게임의 매출을 토대로 소위 ‘안전빵’ 제품을 출시했고,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토대로 새로운 게임을 개발해 나갔다.
웃긴 건 저게 전부가 아니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터넷의 발달로 확장팩보다 더 세분된 개념인 DLC(DownLoadable Contents)라는 것이 등장했고, 심지어 본판보다 DLC가 더 커지는 경우까지 심심찮게 발생.
이러한 일에 게이머들은 ‘왜 한 게임을 여러 개로 쪼개서 파냐, 이 양심 없는 자식들아!’라며 반기를 들기도 했다.
심지어 이런 전략이 최근에 어디까지 갔냐면…
나오지도 않은 게임을 돈 주고 사는 경우까지 생겼다.
저게 뭔 개소린가 싶지만,
실제로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온라인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에는 얼리 엑세스(Early Access)라는 제도가 바로 그것인데, 아직 개발 중인 미완성 제품을 무려 돈을 받고 파는 제도였다.
물론, 저 제도가 무조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본이 부족한 중소 개발사를 위해 열어 놓은 일종의 ‘후원 기능’으로 봐야 옳았고, 실제로 이 기능을 토대로 작지만 알찬 게임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요는 이거다.
‘애초에 IT 시장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태생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전략도 다를 수밖에 없어.’
자, 이제 위에 언급된 전략들을 제조업에 대입해 보자.
– [새우 과자] 발매.
– [새우 과자 확장맛] 발매.
– [새우 과자 확장맛 추가 케첩소스] 별도 판매.
– 더 나아가 [새우과자 개발 버전] 유료 판매 서비스.
상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는 제품 기획이었다.
아마 저런 제품이 나온다면 소비자들이 거품 물며 고객 응대팀 전화에 불이 나는 것으로 시작. 제품팀 부장부터 팀장급까지 싸그리 줄초상이 나고, 처음 저 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말 그대로 사내에서 공개처형을 당할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가 바로 곽권영이 지금 [오픈 베타 서비스]를 보는 시각이었다. 심지어 그는 CEO 입장이니, 저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딱히 자세한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직접 보여주는 게 빨랐으니 말이다.
“못 믿으신다는 눈치군요.”
“네.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길게 설명해봐야 서로 갑론을박만 될 것 같으니 짧게 설명해 드리죠. 바다에는 등산 장비가 필요 없습니다. 새로운 시장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법입니다.”
아리송한 말에 권영은 입을 다물었다.
‘… 잘 모르겠다. 이준성 대표가 네스트로 불과 18개월 만에 커피 시장을 장악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커피 시장이야. IT가 아니잖아. 과연 저게 맞을까?’
하지만 딱히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날이 선 침묵이 약 10초.
툭- 툭- 툭-
문득 준성이 권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디움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완벽주의자가 신세를 망치는 법입니다. 가끔은 어깨에 힘 좀 푸세요.”
“… 하아, 알겠습니다.”
이후 권영은 한 번 준성을 믿어보기로 한 듯 물러났다.
…
베타 서비스 도입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일단 제일 먼저 기존에 만들어있던 베타 버전을 확인.
이미 블로그와 카페의 기본적인 기능이 가능했기에 별다른 기능 추가 없이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물론, 그대로 가지는 않았다.
‘다 좋은데 디자인이 좀…’
누가 공돌이 아니랄까 봐 디자인이 참 단순명료했기 때문이다. 흰색 배경에 디움의 메인 컬러인 주황색 박스를 박아 넣은 게 전부였다.
게다가 곡선은 어디 엿 바꿔 먹었는지, 죄다 직선투성이라 주황색의 부드러운 느낌과 어울리지 못했다.
‘확실히 지금은 산업 디자인이 천대받는 시기긴 했지.’
기업들이 타이포그래피(글꾸밈)이나 레이아웃 혹은 전체적인 이미지를 신경 쓰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이 무렵에는 다들 본연의 기능에 집중했기에, 디자인은 거의 뒷전이었다. 덤으로 디움에도 아트팀 자체가 없었으니 뭐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고 말이다.
스윽- 사가각- 사락- 사가각-
이에 준성은 네스트 메뉴판을 만들었을 때처럼 자기가 직접 블로그와 카페 시스템에 디자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물론, 1999년의 기술 수준을 생각해 과한 용량의 그림이나 과할 정도로 화려한 타이포그래피를 넣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오히려 페이지 로딩 때문에 악영향이 갈 테니까.
그저 글씨 폰트를 조금 수정하고,
직선 위주던 박스와 자잘한 선들을 정리,
전체적으로 모던-미니멀리즘 스타일로 개량했다.
그 외에도 기존의 블로그, 카페 튜토리얼이 복잡하다고 판단하여 직관적이게끔 수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블로그 서비스를 확인해본 결과 성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약간 보기에 불편한 감이 있더군요. 이런 식으로 수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권영은 갑자기 건넨 시안을 살펴보기도 잠시.
비록 그가 디자인적인 심미안은 없었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확 깔끔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권영 역시 베타 버전을 못마땅해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디자인이었다. 기능이야 개인용 BBS(게시판)와 비슷하므로 딱히 어렵진 않았었다. 하지만 정작 만들어 놓고 보니 영 어딘가 어설픈 티가 확 났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 어설펐던 느낌이,
준성이 연필 질 몇 번 하자,
전체적으로 싸-악 사라져 버렸다.
“오… 완전 괜찮은데요?”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 말에 권영은 잠시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원래 코딩이라는 게 ‘이거 바꿔주세요~’라고 한다고 휙-휙-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까닭에 이것저것 자잘한 기능을 빼고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한다.
덕분에 IT 회사에선 실무진과 중간 관리자 사이에서 기싸움이 벌어지고, 심하게는 이게 사내 정치로 번져서 회사 전체에 비효율까지 낳는 경우도 있었지만… 권영은 달랐다.
‘… 사실상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지만, 바뀐 쪽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일을 더 하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바꿔서 더 좋아진다는 게 중요한 거야.’
그는 디움이 더 나아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군말 없이 바로 일을 진행했다.
“아. 대신 몇몇 버튼이랑 박스는 커버가 불가능합니다. 그림 파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저희로서는 아트팀이 없어서 직접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그 부분은 외주로 처리하죠. 이쪽으로 연락하시면 될 겁니다.”
…
1999년 2월 하순.
디움이 정신없는 가운데, 곽권영의 결혼식이 열렸다.
아무래도 속도위반이었던 만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준비한 결혼이었지만, 딱히 난잡하지는 않았다.
결혼식 장소는 인근 호텔이었다.
원래 권영은 남들처럼 평범한 예식장에서 하려고 했지만, 준성이 사내 복지(?) 차원에서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 곽 사장은 디움의 CEO입니다. 그에 맞는 격이 필요하죠. 그리고 평생 기억될 결혼식이지 않습니까?
권영은 그런 사소한 점을 챙겨주는 준성이 고마워하며, 디움을 최고로 만들어 이 은혜에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그는 디움과 네스트의 축복을 받는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을 마쳐 한 사람의 가장이 됐다.
딸그락- 따각-
그렇게 결혼식을 마치고 식사를 하던 중.
문득 함께 밥을 먹던 김재민이 슬쩍 물었다.
“근데 대표님은 결혼 생각 없으신가요? 지금도 조금 늦으셨는데, 빨리 가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딱히 부담을 주거나 하려고 물은 건 아닌 것 같았기에,
그냥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들려줬다.
“일하는 게 좋아서요. 지금은 신경 쓸 게 많아서 연애에 쏟을 시간이 없기도 하고요. 그러는 김재민 부사장은 언제 할 겁니까? 이미 노총각이잖아요?”
재민이 어딘가 씁쓸하게 웃었다.
꼭 괜히 물었다가 되로 받는구나 하는 것 같았다.
“저는 그냥 일이랑 결혼하겠습니다.”
“흐음… 아직 마음의 정리가 덜 된 건 아니고요?”
“아뇨, 아뇨. 그 사람은 이미 보내줬습니다. 이제 유부녀인데 그리워하면 안 되죠. 요즘에는 정말 바빠서 그래요. 부사장 자리가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니까요, 하하.”
“혹시 원하신다면 마담뚜 하나 소개시켜 드려요? 안 그래도 요즘 자꾸 연락 와서 피곤한데, 김재민 부사장 재물로 던지고 저는 빠지면 딱 좋겠네요.”
마담뚜라는 말에 재민이 손사래를 쳤다.
“에이~ 아닙니다, 대표님. 제가 무슨 마담뚜까지 갈 레벨입니까? 그냥 선이나 봐야죠. 그리고 정말 시간이 없어요.”
그렇게 잠시나마 매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남자들이 그렇듯 여자와 결혼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길 몇 분.
문득 준성이 흥미로운 얘기를 꺼냈다.
“아, 맞다. 우리 지금 이익잉여금 얼마나 쌓였습니까?”
“저번에 말씀하신 대로 디움을 위해 쌓아두고 있습니다만… 지금 바로 확인해볼까요?”
준성은 슬쩍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었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고, 그냥 5월쯤에 주주총회 소집하겠습니다.”
“주주총회요?”
비상장 회사에 주주총회가 웬 말인가 싶기도 잠시.
재민은 머지않아 김국지에게 광고 대금으로 소량의 주식을 줬던 것을 떠올렸다.
‘아… 배당을 명분으로 김국지를 볼 생각이시구나.’
재민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바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골프 협회에 채널 좀 뚫어 놓으시길 바랍니다. 이거 꽤 중요한 문제니까, 잘 처리해 주세요.”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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