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595
– 596화 –
그날 점심 무렵.
장인이 연락했던 것처럼,
ND 빌딩 앞에 김우현 비서실장이 나타났다.
언제 봐도 올곧은 대나무처럼 생긴 사람이자, 조선 시대 선비가 양장(洋裝)을 차려입은 것 같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보교그룹 자체가 워낙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 역시 비슷해지는 것이리라.
“모시겠습니다.”
“음… 제 차로 가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장인의 회사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준성은 살짝 어려운 태도로 대답했다.
게다가 김우현은 말만 비서실장이지, 신창호 총수의 절친으로서 사실상 보교그룹의 이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걸 증명하듯 성희 역시 사석에서는 그를 친근하게 부르는 편이었고 말이다. 그러니 어렵지 않은 게 이상할 수밖에.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김우현 비서실장은 공과 사의 구분이 완벽한 사람이었고, 업무적으로 만났을 땐 매우 깍듯하게 준성을 대해줬다.
“아닙니다. 회장님의 손님은 그룹 전체의 귀빈이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저희가 모셔야지요. 그리고 목적지도 모르시잖습니까? 혹여 길이라도 잃어 대표님의 귀한 시간을 길에 버리게 될까 봐 염려되어 그렇습니다.”
준성과의 거리감을 캐치했던 걸까?
김우현은 준성이 무안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재치 있게 자신을 슬쩍 낮추며 웃었다.
확실히 재벌가의 비서실장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쯤 오면 안 받아주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지므로, 준성 역시 못 이기는 척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덤으로 김우현 비서실장은 능숙한 솜씨로 운전석 뒤쪽에 착석했고 말이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
부으으응 –
차량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퍽 고요한 소음 사이로 얼마나 움직였을까? 준성이 탄 고급 세단이 바쁘게 지나가든 차들 사이를 헤엄쳐 머지않아 한 주택 앞에 도착했다.
간판 없이 오로지 예약제로만 진행되는 음식점으로, 준성 역시 예전에 접대 관련해서 한 번 와봤던 곳이었다.
기억하기로는 주인이 청와대 총조리장 출신이라고 했었던가? 까닭에 이런저런 정치인이나 거물급 기업인들이 자주 오다니는 곳이기도 했다. 준성 역시 회귀 전에 피승원을 따라다니며 거물들과 안면을 익힌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회귀 후에는 본인이 재벌 총수가 되어,
또 다른 재벌 총수와의 식사를 위해 찾아오게 됐다.
‘…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참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걷기도 잠시.
머지않아 준성은 창호가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서방 왔는가? 앉게.”
“식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초대는 무슨. 그냥 가족끼리 밥 한 끼 먹는 건데.”
그걸 증명하듯 신창호는 웃으며 찻주전자를 들었고, 준성은 그걸 마치 술이라도 받듯 공손히 받아냈다.
“사실 오늘 부른 건 다름이 아니고,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다네. 전화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지.”
아마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말하는 것이리라.
준성은 이 건을 실행하기 전에 보교그룹 측에 투자 정보를 공유했고, 믿기 힘든 이야기였음에도 신창호는 오로지 준성이라는 이름만 믿은 채 투자를 강행했다.
물론, 그로 인해 보교그룹의 금고가 잠시 확- 비어 경영권 공격 당시 애를 먹었다는 부작용이 있긴 했다마는… 결과적으로 보교그룹 역시 약 4조 원가량의 이익을 얻어냈다.
사실상 경영권 공격으로 받은 피해를 만회함은 물론이오, 무시 못 할 수준의 추가 이익을 창출해냈으며, 나아가 이번 사태로 인해 투자 신뢰도 역시 덩달아 높아지게 됐다.
그러니 금융회사를 운영하는 신창호 입장에서는 가히 황금 같은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준성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좋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위는 백년지객이라 하였는데,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구만. 하하하. 그나저나 디움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다고 들었는데?”
“예. 총 28조 500억입니다. 하지만 기타 절차 및 부도로 인한 미수(未收, 대금을 받지 못함)와 더불어 미국 정부의 개입까지 생각하면 모두 받아내진 못할 것 같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이러한 시장 실패(市場失敗, 보이지 않는 손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시장의 움직임이 막혀버린 것)가 발생하게 될 때. 정부는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끼어든다.
그 과정에서 사회와 경제에 갈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간의 화해 내지는 협의를 반쯤 강요했고 말이다.
이러한 정부의 개입 사례를 하나 뽑자면,
한산맥증권의 팻핑거(Fat Finger, 입력 오류) 사태다.
이 사건을 간단히 얘기하면 대충 이렇다.
한산맥증권의 한 직원이 실수로 본인이 [코스피 200] 옵션을 잘못 체결하며 시장의 가격이 미친 듯이 상승. 이후 제 실수를 인지하고 그걸 수습하려고 했으나…
그 짧은 찰나 홍콩에 있던 금융회사 직원들이 얼쑤 좋다 본인이 가진 물건을 날름 팔아버리고 잠적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 결과 해당 증권사는 약 5분 사이에 500억이 증발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일에 당면하게 됐다.
보통 이러한 거금 거래의 경우 B2B인 경우가 잦다.
까닭에 같은 국내 기관끼리는…
– 실수할 수도 있죠. 취소해 드릴게요.
… 라며 그냥 웃으며 헤프닝으로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어차피 계속 얼굴을 보는 거래처기 때문에 굳이 얼굴 붉힐 것 없이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 역시 언제 저런 실수를 터트릴지 몰랐고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사건에서 돈을 따간 존재들이 국내 증권사가 아닌 홍콩의 투자사였다는 거였다. 심지어 이 팻핑거 한 방으로 한산맥 증권은 본인들이 가진 돈보다 많은 양을 잃었고, 이에 한국 거래소가 문제를 발견하고 개입한다.
– 야, 홍콩 친구들아. 이거 실수인데 취소하자.
– 너희가 돈 딴 건 인정하는데, 너무 많잖아. 응?
애초에 그도 그럴 게,
특정 증권사가 부도가 날 경우.
거래소가 대신 돈을 지불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저게 국내 금융업체라면 괜히 문제 일으키기 싫기 때문에 ‘예, 알겠습니다’ 하고 조정안을 받아들이지만… 저 사태에 있어 홍콩 투자회사 측의 입장은 매우 간단했다.
– 무슨 개소리냐. 이건 정당한 시장 행위다.
– 쟤네가 실수한 걸 우리가 왜 봐 주나?
– 인생은 실전이야, *만아. *까.
애초에 본인이 돈 굴려서 인센티브 받아먹는 사람들이 거래소가 부른다고 퍽이나 ‘네~ 지금 가요~’ 하고 꼬리 흔들면서 오겠다. 당연히 홍콩 측은 이를 무시. 신속히 법인을 버리고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잠적해 버린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거래소는 해당 금액을 본인이 모두 떠안았고, 한산맥 증권은 부도가 나게 된다.
자, 이제 입장 바꿔 보자.
준성은 외국인으로서 미국 시장에서 돈을 땄고,
그로 인해 은행과 증권사들에 괴멸적인 타격이 갔다.
과연 그 와중에 미국 정부가 가만히 있을까?
경제가 내려앉으려고 하는데? 글쎄올시다.
바보가 아닌 한 당연히 끼어들겠지.
준성 역시 그 정도는 감안했다.
그렇기에 저 돈을 다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고 말이다.
“… 하긴, 미국이란 국가와 척을 질 게 아니라면야 어느 정도 포기는 해야겠지. 저쪽에서 절충안을 들고나올 테니까. 그에 대한 대비책은 있나?”
“예, 있긴 하지만 딱히 싸우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그 말에 신창호 총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오? 어째서?”
“디움은 분명 한국 회사이지만, 동시에 글로벌기업입니다. 그러니 핵심 시장 중 하나가 미국임을 고려한다면, 괜히 정부를 자극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재앙으로 돈을 벌었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개평을 떼주겠다는 얘기다.
신창호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훌륭한 선택이네. 본디 돈이라는 것은 독기가 세서 사람을 광기로 몰아넣지. 그렇기에 정도를 잘 지키는 사람만이 장기적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법이고. 내 이 문제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지만… 기우였던 모양이야.”
아마 신창호 총수가 말했던, [나름 중요한 안건]이 저것이었으리라. 본인이 금융재벌인 만큼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장기적인 포지셔닝에 대한 조언 말이다.
하지만 준성이 이미 알고 있다는 투로 대답하자, 신창호는 깔끔하게 그걸 웃어넘겼다.
이후 얼마나 식사 자리가 이어졌을까?
회귀 전에는 상대방을 접대하랴 맛을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는 입이 즐거운 식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자리가 끝이 난 뒤.
문득 신창호 총수는 산책을 제안했다.
“이보게, 좀 걷지 않겠는가?”
“예, 그러시죠.”
…
가게 밖으로 나와 한동안 걷기도 몇 분.
문득 신창호 총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한남동. 참으로 좋은 터지. 가끔은 재벌 총수들과 빈곤층이 같이 사는 빈부 격차의 땅으로 묘사되긴 하지만, 그럼에도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야.”
꼭 배산임수를 보는 듯한 풍수지리학자 같은 말투.
준성 역시 미소를 머금고 ‘예’ 하고 대답하자니,
신창호 총수가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요즘 집을 알아보고 있다지?”
순간 준성은 아차 싶으며 그가 왜 한사코 약속장소를 안 알려주려 했는지 감이 살짝 왔지만, 아직은 혹시 몰라 최대한 제 추측을 배제한 채 대답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원래 제가 직접 알아봐야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제 아랫사람을 시켜놨습니다.”
“그래. 성희에게 얘기 들었네. 자네가 살던 예전 집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네만, 살기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 환경도 조금 좋지 않고. 좋은 선택일세.”
“… 근데 어째서 그 얘기를 지금…?”
그 말에 신창호는 기다렸다는 듯 피식 웃고는 이내 한남동 전원주택 단지에 있는 한 집으로 향해 마치 제집인 양 열쇠를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풍경이 펼쳐졌다.
약 100평쯤 되는 대지에,
서울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정원,
그 가운데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은 집 한 채.
정원을 향한 외벽은 모두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집안으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고… 넓고 아늑한 거실은 가족이 도란도란 얘기하기 좋아 보였다.
꼭 드라마 속에 나온 세트장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잠시. 신창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심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유명한 건축학자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더군. 원래 매물이 잘 안 나는데, 외국인이 급히 나가게 되며 운이 좋게 얻을 수 있었지. 참 멋진 집이지 않은가?”
“아… 예… 그렇습니다. 멋지군요.”
“이제부터 자네 집일세. 그리고 자네가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은 아네만, 가사의 부담을 덜어줄 가정부와 정원사. 그리고 운전기사까지 준비해 놨다네.”
그 말에 준성은 입을 다물었다. 너무 놀라운 상황이라 뭐라 쉬이 말을 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물론, 여태까지 자네가 답답하게 살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닐세. 그저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어. 우리 성희를 행복하게 해준 것을. 우리 보교 그룹의 위기를 지켜준 것을. 더 나아가 좋은 정보를 공유해준 것까지.”
신창호 총수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잠시 침묵했다가 준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자네가 이번 대영의 공격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요새를 찾는다고 생각했네. 그리고 나 역시 성희가 타겟이 된 뒤에 어느 정도의 안전 정도는 챙기고 싶었고. 그래서 바쁜 자네 대신 사소하게나마 이런 준비를 해봤지. 어떻게… 약소한 선물이다마는, 받아주겠는가?”
그 말에 준성은 복잡한 기분이 들기도 몇 초.
이내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장인어른. 최고의 선물인 것 같습니다.”
이에 신창호 역시 인자하게 웃으며 끄덕였고 말이다.
“그래. 만족했다니 다행이로구만.”
그렇게 준성에게 새로운 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