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597
– 598화 –
보물 사냥하는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이 이러할까?
유라는 제 백팩을 꽉 동여맨 채 강남역 인근에 있는 디폰스토어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약속을 위해 나와 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가기도 잠시.
그녀는 머지않아 입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디폰 스토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자 재미있는 풍경이 펼쳐졌는데…
웅성- 웅성-
디폰 출시가 아직 이틀이나 남았음에도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선 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유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를 포근함을 느꼈다.
아마 동료를 발견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소위 ‘얼리어답터’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일반인에게 큰 공감을 받지 못 받는 게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까놓고 좋게 말해 얼리어답터지,
나쁘게 말하면 오타쿠였으니까.
특히 개중에서도 전자제품에 관련된 여자 얼리어답터는 화장품을 좋아하는 그루밍족(grooming-, 고양이가 제 털을 손질하듯 본인의 외모를 가꾸는 남자들을 뜻하는 용어)만큼 보기 드문 케이스지 않던가?
그걸 증명하듯 그녀는 친구들끼리 있을 때마다 취미에 관련해서는 얘기가 붕- 뜨는 것을 자주 느꼈었다.
특히 이번 디폰 건만 해도 그렇다.
– 응? 디폰? 난 좀… 그거 상술 같던데? 솔직히 집에 컴퓨터 있고, 들고 다닐 수 있는 MP3 있잖아. 디카도 집에 하나씩 다 있는 거고. 굳이 저렇게 비싼 핸드폰까지 필요할까? 편리해 봐야 얼마나 필요하다고… 그냥 다른 거 쓰면 되잖아.
– 아니야! 디폰은 진짜 다르다니까? 한 손에 착- 하고 감기는 사이즈에 저거 하나로 다 할 수 있잖아. 인류의 생활을 바꾼다는 말이 진짜 과장이 아니라니까?
– 아… 그래? 응… 뭐… 좋겠네. 그래.
유라는 아직도 제 친구들이 ‘퍽이나 그러시겠다’ 내지는 ‘얘 또 병이 도졌네’라는 듯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내오던 게 잊혀지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던가?
‘우와- 동료들이 한가득! 여기가 낙원인가…?’
그녀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활짝 웃는 표정으로, 벌써 대기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노숙자처럼 길바닥에 앉아야 했지만, 그깟 게 뭐 대수랴. 디폰을 얻을 수만 있다면 저런 수고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우와, 벌써 기다리시는 거예요?”
유라가 슬쩍 묻자, 먼저 기다리고 있던 남자가 PMP(Portable Multimedia Player)를 만지작거리다가 부스스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 예…”
“확실히 디폰이 매력적인 기기긴 해요, 그쵸?”
“… 네. 그렇죠.”
“이틀 전인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잖아요. 슬쩍 보니까 외국인도 있던데, 헤헤- 언제부터 기다리셨어요?”
“… 저는 한두 시간 전쯤에 왔어요. 물어보니까 맨 앞에서 텐트 치고 있는 사람은 나흘 전에 왔대요. 영국 사람이라던데, 전자제품 리뷰어래요. 진짜 대단하던데요.”
“와- 내구도 테스트하시는 분인가보다. 보통 이런 신제품 나오면 제일 먼저 사서 망치로 때리거나, 집어 던져 보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아니면 기자거나.”
“… 예, 그렇겠죠. 아마도.”
남자는 신이 나서 떠드는 유라를 보며 ‘참 넉살 좋은 사람이네’라며 낯설게 쳐다보기도 잠시. 이내 몇 번 더 유라의 말을 받아주는가 싶더니, 조용히 다시 PMP로 눈을 돌렸다.
이에 유라 역시 조용히 제 가방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꺼내 뽁-뽁- 눌러가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말이다.
…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슬슬 밤이 깊어가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훅 적어지고, 몇몇 취객이나 연인들만이 드문드문 보일 무렵. 유라는 문득 허기가 져오는 것을 느꼈다.
꼬르륵-
너무나도 솔직한 생리 현상.
이에 그녀는 혹여 다른 사람이 들었을까 슬쩍 눈치를 봤지만, 다행히 누가 들은 것 같지는 않았다.
‘… 배고프다. 밥 먹을까.’
하지만 그녀가 챙겨 온 식량은 대부분 칼로리 비스켓이나 초콜렛 같은 대체식품이 대다수다. 제대로 된 끼니라기보다는, 먹고 버티는 음식들 말이다.
이에 그녀는 ‘괜히 기분 낸다고 쓸데없는 음식만 가득 챙겼나?’ 싶어 가까운 편의점에라도 다녀올까 싶기도 잠시.
스륵 –
슬쩍 제 뒤쪽을 바라보자… 어느새 약 5명의 사람이 더 들러붙어 있었다. 보나 마나 유라가 일어서자마자 얼쑤 지화자 하며 앞으로 순번을 당기리라. 그렇다고 밥 먹고 온다며 자리를 맡아 달라고 말하기도 영 껄끄러웠고 말이다.
까닭에 유라는 배고픈 고양이처럼 무릎을 껴안고 있기도 잠시. 옆에 있던 남자가 제 배낭을 부스럭- 부스럭- 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뭔가를 꺼내 들었다. 라면이다. 유라가 그걸 생선가게 보는 고양이처럼 물끄러미 응시하기도 잠시.
“… 라면 드실래요?”
낯선 남자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네? 예? 저요? 어? 아?’ 하며 온몸으로 놀람을 표현하기도 잠시. 낯선 남자는 여전히 부스스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아까 꼬르륵 소리 나시는 것 같아서요. 저는 캠핑용 간이 버너랑 냄비 가져왔거든요. 끓여드릴까 해서요.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굶어가며 버티긴 좀 그렇잖아요.”
그 말에 유라는 부끄러움이 훅- 하고 본인을 덮치는 것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하기도 잠시. 남자가 대답을 기다리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어… 배고플 때 되긴 했죠? 가, 같이 드실래요?”
“그래요, 그럼. 같이 먹어요.”
틱 – 틱 – 스와아 –
턱 – 쪼르르르르- 보글보글-
마치 호모 사피엔스가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하루를 끝내며 고기를 굽는 것처럼. 유라와 낯선 남자 역시 밤거리에서 캠핑용 버너를 보며 멍- 하니 앉아 있었다.
어찌 보면 길바닥에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뿐이거늘.
괜스레 기분이 이상해지는 건 왤까.
유라는 괜히 물었다.
“… 음, 디폰은 왜 사려고 하시는 거예요?”
“사실 저는 1세대 제품은 내 돈 내고 테스트해주는 것 같아서 잘 안 사는데… 디폰은 괜찮아 보이더라구요. 제가 디움 선정 파워블로거거든요. 저거 있으면 블로그 반응 보기도 쉽고 자료 백업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어? 블로그요? 대박! 어느 거 하세요?”
“… 아, 말씀드리고 좀 부끄러운데.”
“뭐 어때요! 나는 꼬르륵 소리까지 들려줬는데!”
“[전자 미치광이의 달동산]이요… 아, 남들한테 말할 때마다 부끄러워 죽겠네요. 처음에 별다른 생각 없어 지은 이름인데, 유명해지고 나니까 영…”
“와! 나 그 블로그 보는데! 저번에 카메라 리뷰 하셨죠?”
“어? 그래요? 구독자분이셨구나… 감사합니다.”
남자는 제 블로그 얘기가 나오자 부끄러웠는지,
슬쩍 화제를 유라 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럼 그쪽은 왜 디폰 사려고 기다리세요?”
“그냥요. 세상이 바뀌는 걸 직접 겪어보고 싶어서요. 매번 살다 보면 알아서 바뀌던 세상인데, 이번에는 내가 제일 먼저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어요. SNS에 자랑도 하고 싶고요.”
참으로 소시민적인 이유였으나,
그만큼 솔직하고 직선적인 이유기도 했다.
서로 전자기기를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사이.
“아, 라면 익었다. 드시죠.”
“앗! 감사합니다!”
…
다음 날 오후.
유라는 침낭에 들어간 채 귀마개와 안대까지 하고 숙면을 하다가, 문득 부산스러운 소음에 잠에서 깨어났다.
“… 응?”
눈에 낀 토끼 그림 안대를 치워내자, 그녀의 눈에 기자로 추정되는 남자와 방송국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그뿐이랴? 그녀의 뒤로 약 1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 있기까지 했고, 방송국 카메라는 그 진풍경을 쉴 새 없이 담아내고 있었다.
– 여기는 디폰 스토어 강남점 앞입니다. 지금 보다시피 아직 디폰 런칭이 24시간도 더 남았음에도, 디폰을 구입하려는 시민들 백여 명이 기다리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디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뜨겁습니다!
유라는 그 모습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확실히 오길 잘했다. 재밌는 구경도 하네.’
그렇게 기자와 카메라를 보며 얼마나 웃고 있었을까? 그런 그녀에게 기자가 훅- 하고 다가와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 안녕하십니까! 잠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농담 안 하고 유라는 입으로 심장을 토해낼 뻔했다.
안 그래도 대기하려고 화장은 개뿔, 침낭에 애벌레처럼 들어간 채 토끼 그림 안대를 머리띠처럼 찬 상황 아니던가?
근데 그 모습이 뉴스로 TV에 나간다?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되리라.
“아, 아, 안 돼요!”
– 괜찮습니다! 얼굴은 모자이크해드리고, 목소리도 변조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안 되겠습니까?
“어… 그럼 될 것 같아요.”
이후 그녀는 기자와 함께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왜 여기서 기다리고 있냐는 말에 ‘디폰 꼭 사세요! 기자님도 빨리 기다려요, 한정 수량이라 못 살 수도 있어요!’라며 기자를 대기열에 끌어드리려고까지 했다.
덤으로 그녀에게 라면을 대접했던 남자는 그 모습을 풉 하고 웃으며 지켜봤고 말이다.
…
다시 하루가 지나 대망의 5월 1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듦과 동시에 역대급 인파에 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중계가 진행되는 가운데… 유라와 낯선 남자는 끝끝내 디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비록 통신사를 끼지 않아 추가적인 할인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당장 핸드폰을 손에 넣었는데 그깟 게 대수랴?
유라는 마치 어렸을 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께 원하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산뜻한 웃음을 그렸다.
‘이틀 전부터 기다리길 잘했다. 완전 예뻐…’
그렇게 집에 가서 영접(?)하듯이 뜯어 볼 생각에 디폰 박스를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고 있기도 몇 초. 그녀보다 먼저 디폰을 샀던 낯선 남자가 나타났다.
유라와 달리 그는 이미 디폰 스토어에 함께 있던 HG 텔레콤 직원을 통해 개통을 완료한 상태였는지, 박스가 아닌 디폰을 들고 있었다.
“아! 개통하셨네요?”
“… 예. 저는 바로 써보고 싶었거든요.”
“힝- 저도 그렇게 하고 싶긴 했는데, 아직 예전 핸드폰 약정이 남아서요… 그래서 두 달 정도는 미개통으로 쓰려고요.”
“그럼 굳이 여기서 안 사고, 통신사 가셨으면 위약금 HG가 물어주고 바로 이동됐을 텐데…”
그 말에 유라는 전혀 몰랐다는 듯 ‘어? 진짜요?’하고 충격받은 듯 힝- 소리를 내고 있기도 잠시. 남자가 잠시 뭔가 말할까, 말까 머뭇거리기도 몇 초.
“… 저기요.”
“… 네-에. 왜요.”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뭔데요?”
“어… 음… 그러니까… 통화 음질 테스트를 해보고 싶… 거든요? 그쪽한테 전화 걸어 보려고요. 친구한테 걸자니… 다들 출근했을 시간이기도 하고. 여기에 저장된 번호도 없어서요.”
뭔가 살짝 우물쭈물하는 말투. 이에 유라는 뭔가를 느낀 듯,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지금 내 연락처 물어보는 거예요?”
“아, 아뇨? 으, 음질 테스트라니까요?”
“그럼 저 말고 다른 사람한테 해도 되잖아요~? 여기 지금 테스트해보려는 사람 많을 텐데. 안 그래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낯선 남자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눈앞에 나타난 거절 한 번에 침몰당해 내심 ‘…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는 찰나. 유라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했으면 그냥 줬을 텐데~”
“뭐, 뭐라고요?”
“아뇨. 그냥 혼잣말~”
“… 하. 됐어요.”
“있잖아요.”
“왜요.”
“전화번호 줄게요. 대신 나도 빚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다음에 우리 집에서 같이 라면 먹어요. 내가 끓여 줄게요. 대신 전자제품 얘기해주세요. 어때요?”
그 말. 특히 ‘라면 먹어요’처럼 뜻이 불분명한 대목에서 낯선 남자는 살짝 버벅댔으나, 이내 어찌 됐든 싫지 않은 듯 그녀에게 핸드폰을 내밀었고…
유라 역시 처음으로 디폰을 만져보며 꾸욱- 꾸욱- 터치스크린을 눌러 제 전화번호를 찍어줬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이후 그녀는 벨이 울리는 피처폰을 보여주며 ‘됐죠?’라고 확인시켜줬고, 이후 별다른 말 없이 등을 돌려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새로운 인연 역시 좋긴 했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화장이 없는 무장해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럼~ 다음에 봐요!”
“아… 넵. 다음에 봐요!”
그렇게 유라와 남자는.
길바닥에서 이틀을 보낸 뒤.
각자 손에 디폰을 들고 헤어졌다.
여담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유라는 내심 그 남자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디폰만 사 오려고 했는데, 괜찮은 남자가 딸려왔네.’
디폰을 샀기 때문일까?
아니면 새로운 남자를 만났기 때문일까?
뭐, 어느 쪽이든 뭐가 중요할까.
지금 그녀의 기분이 좋다는 게 중요하지.
그렇게 두 남녀 간의 사랑이 싹트는 가운데.
디폰이 한국을 시작으로 세계 전체에 런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