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64
– 64화 –
시간이 훌쩍훌쩍 잘 흘러 99년 3월 말.
광고에 대한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세이버스와 디움 측의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디움 측은 [오너 이준성], [사장 곽권영], [사외이사 김국지]. 그 외에 [법무대리 박홍철 변호사]와 재무팀장이 참석.
세이버스 측은 [정 대표]를 시작으로 [전지혜], [매니지먼트 3팀장] 그리고 광고 제작사 측 2인을 대동했다.
제일 먼저 준성이 자신이 기획한 광고 컨셉을 광고 제작사 측에 전달.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컨셉에 실무자의 의견이 첨가되며 살이 붙었다.
– 흰색 세트장에서 촬영하고 싶다는 말씀이시군요. 일단 모던 미니멀리즘을 지향하신다는 건 알겠습니다만, 조금 많이 비어 보일 수도 있어요.
– 예. 그러한 여백은 오히려 IT 기업 특유의 깔끔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하지만 요구 사안에 실제 물품이 아니라 광고용 모조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고, 장면 전환을 CG가 아니라 매뉴얼(수동)로 옮기고 싶다고 하셨습니다만… 그러면 제작비에서 조금 타협을 보셔야 합니다.
그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재무팀장이 끼어들었다.
네스트에서 과장급으로 있다가 디움으로 발령 나며 팀장(부장급)으로 승진.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 가격 면은 신경 쓰지 말아 주십시오. 순수 제작비용만으로 7,500만 원까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질입니다. 최대한 전지혜 님과 김국지 이사님께 어울리는 광고를 제작해 주시길 바랍니다.
광고 대행사 측은 돈 문제가 사라졌다는 말에 흡족해했고, 세이버스의 정 대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라…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
이 무렵의 중견기업의 모델료를 제외한 순수 광고 제작 단가는 평균 3,000~4,000만 원. 하지만 네스트는 훨씬 더 많은 양을 제시했다.
그만큼 이번 광고에 힘을 싣는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근데 참 신기하단 말이지… 광고에 힘을 준다면 오히려 유명한 연예인을 쓸 텐데, 이해가 안 되네… 뭐 어때. 어차피 지혜도 우리 애야. 이 기회에 키우면 된다.’
정 대표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예, 알겠습니다. 일단 컨셉과 시나리오 콘티는 대표님께서 직접 건네주셨으니, 조만간 편집해서 찾아뵙겠습니다.
– 세이버스 기획팀 의견도 똑같습니다. 판단 결과 전지혜 씨 이미지에 무리도 없고, 광고 중 부적절한 내용도 없네요. 김국지님과 투샷으로 잡히는 시간이 2초 정도 더 길면 좋겠습니다만… 내용상 불가능해 보이는군요. 이대로 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 외에도 전지혜 본인과 김국지 역시 동의,
박 변호사 입회하에 광고 계약이 체결됐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 겨우 1시간 남짓이었다.
약 3~5시간 정도 마라톤 회의를 예상하고 왔던 세이버스 측 관계자들은 조금 김이 샌다는 느낌과 함께, 빠른 일처리에 만족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나고 모두 해산할 무렵.
전지혜가 준성에게 다가와 허리를 꾸벅 숙였다.
학교를 조퇴하고 왔는지, 교복 차림이었기 때문일까?
그 모습이 꼭 여자라기보다는 소녀처럼 보였다.
“저번에 실례되는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세게 인사했는지, 긴 생머리가 준성의 코앞으로 휙- 날아갔다. 아마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맞았으리라. 준성은 코끝에 아른거리는 샴푸 냄새를 맡으며 ‘허허’ 웃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원래 살다 보면 피곤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후 전지혜는 우물쭈물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광고주와 독대는 처음인지, 어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 그게 어째 임원 미팅을 하는 신입사원처럼 보였기에, 준성은 웃음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 정 대표님이 시켜서 왔죠?
조금만 떨어져도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
하지만 전지혜는 무슨 총이라도 맞은 양 깜짝 놀라곤, 급히 손부채질을 하며 ‘아니오! 아닌데요!’ 했다.
그 모습에서 평소의 청순한 이미지보다는 어째 왈가닥스러운 모습이 슬쩍 내비쳤다.
‘확실히 이쪽이 더 보기 좋네.’
아마 원래 성격은 이쪽이리라. 실제로 TV에서도 조금은 발랄한 이미지를 뿜어내기도 했었고 말이다.
– 나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까 편하게 대해도 돼요. 연예계 생활 많이 바쁘고 힘들죠?
그 말에 전지혜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도 잠시.
이내 눈에 생기발랄한 장난기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 하아~ 죽을 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나 저번에 대표님한테 완전 혼났어요. 후아…
그녀는 이후 양 주먹을 볼에 갖다 대며 부적 부적 거리며 우는 척을 했다. 그뿐인데도 마치 회색빛 오피스에 파스텔톤 핑크색 분위기가 퍼지는 것 같은 착각도 잠시.
광고 모델과 필요 이상 친해져 봐야 좋을 것도 없었기에, 준성은 가볍게 ‘힘내요, 그리고 너무 부담 갖지 마요.’ 라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떴다.
…
광고 계약이 체결된 후.
준성은 권영에게 지식인 서비스의 진척도를 물었다.
현재 김국지와 전지혜의 스케쥴 상 광고 완성은 아무리 빨라도 한 달, 길면 석 달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태.
자칫 잘못하면 지식인의 개발 속도가 지체돼 광고보다도 늦게 완성되는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뭐, 그래 봐야 광고 송출을 늦추면 되긴 했지만…
‘발목 잡히는 건 사양이다.’
이미 현재 경쟁자인 야후는 디움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가시를 곤두세우며 방어에 들어갔다. 비록 야후는 본사의 글로벌 스탠다드(표준 전략) 방침에 의해 [블로그]와 [카페] 제안이 반려되어 디움에게 시장 점유율을 뺏겼지만…
그럼에도 상대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그들은 카페와 블로그 서비스 도입이 늦어진 대신, 어마어마하게 많은 광고를 만들어 산탄처럼 쏴대고 있었다.
비용상 연예인은 사용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확실히 효과를 보며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기다려라, 야후. 묵직한 한 방을 먹여주마.’
거기에 필요한 게 바로 지식인 서비스였다.
“지식인 서비스 개발 상황은 어떻습니까?”
“… 일단 만들고는 있습니다만,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이해하지 못할 대답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비밀로 작업하기도 했거니와, 현재 준성이 알기로 TF팀에 배치된 인원은 사울과 권영 그리고 디움 초기부터 있던 개발자 한 명이 전부였다.
인력이 부족한 만큼 시간 역시 더 필요하리라.
“광고 완성에 방송국 뚫으려면 최소 45일에서 길게는 90일까지 걸릴 겁니다. 그 안에 가능하겠습니까?”
권영은 슬쩍 노트를 꺼내 일정을 확인했다.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아니. 가능하게 만들 겁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에 투지가 불타올랐다. 준성이 믿고 전폭적인 투자를 해준 만큼, 보답하려는 것이리라.
“필요하다면 인력을 충원해도 됩니다. 아직 회사 규모가 작으니 믿을 수 있는 외부 용병을 고용해도 되고요.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인수 전에도 이런 일은 많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은 천국이죠.”
준성은 그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아마 개발은 내버려 둬도 알아서 잘 굴러가리라.
…
지식인과 그에 필요한 광고를 마무리한 다음으로,
준성은 네스트의 김재민 부사장을 찾았다.
뭔가 지시를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네스트 투자 상황 좀 알고 싶습니다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 때문일까?
김재민은 설비투자와 재고자산에 대해 얘기를 꺼냈지만, 준성은 가볍게 ‘금융 투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뇨… 아직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번에 재무팀에서 잉여 현금에 대한 안건으로 투자 얘기가 나오긴 했었습니다만, 영 못 미더워서 거절했습니다. 디움에 추가적인 수혈이 필요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었고요.”
한 마디로 현재 네스트는 그 어떠한 금융 투자도 하지 않은 깔끔한 상태라는 얘기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투자라는 건 개인만 하는 게 아니었다.
국민건강보험 같은 국가 기관은 물론이오,
증권사와 은행을 포함한 금융회사는 당연했고,
심지어 일반적인 회사들 역시 투자를 하는 편이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투자 활동으로 나온 이익을 [영업외수익]이라 불렀고, 기업 본연의 활동을 통해 얻은 이익을 [영업이익]이라 불렀다.
어쨌든 네스트는 여태까지 투자를 전혀 하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한창 팽창 중이던지라 벌어들인 이익을 모조리 재투자했고, 디움이 생긴 다음에는 자회사에 수혈하느라 잉여 자본이 부족했으며, 잉여금 자체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갑자기 투자는 왜요?”
“왜긴요. 별 이유 있겠습니까? 이참에 하려고 합니다.”
“아뇨…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네스트는 근 2년간 그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았잖습니까?”
맞는 말이었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을 바에는,
그 자본으로 제 회사를 키우는 게 이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때 얘기고.’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다.
1999년 봄.
매서운 겨울바람이 사라지고 따스한 햇볕이 들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표정 역시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비록 여전히 기업들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고, 많은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리긴 했지만… 뭐든 익숙해지기 마련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였을까?
사람들 역시 희망의 불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불꽃이 조금 과한 곳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주식 시장. 정확하게는 코스닥 시장이다.’
코스닥. 1996년에 열린 주식거래 시장으로, 코스피의 문턱을 넘지 못한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들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이 코스닥이 처음 생겼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에게는 큰 신뢰를 받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게 태생부터가 코스피에 가지 못한 낙제생들을 위한 시장이었고, 그에 더해 신생 벤처 회사는 투자 리스크가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98년 하반기부터 얘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 새로운 미래는 IT? 정보화 물결!
– DJ정부 IT 사업 집중 육성 정책 시작!
– 외면받던 코스닥의 반란? 연일 상한가!
– 외환 위기 중에도 쏟아지는 벤처, 도전하는 청춘!
정부가 대놓고 IT 산업을 밀어주고, 무서운 속도로 브로드밴드가 깔리기 시작. 동시에 기업들의 무분별한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를 당한 퇴직자들 역시 많던 시기 아니던가?
기관, 개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코스닥 시장에 참전.
그렇게 [IT버블]이라 불리는 사회 현상이 시작됐다.
그리고 준성 역시 그 버블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돈 놓고 돈 먹기.
비록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지만, 뭐 어떠랴.
가끔 정도는 재미를 봐도 나쁘지 않으리라.
‘모두가 축제를 여는데 내가 빠질 순 없지.’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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