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674
– 675화 –
마광위가 패배를 인정한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11월이 왔고,
그사이 굉장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제일 먼저 정치권에는 돌풍이 몰아쳤다.
야당 측에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MB가, 여당 측 역시나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DY가 곧 있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해 선거 유세와 TV 토론회에 한창이었다.
이에 더해 야당 측은 ‘집권 여당은 개혁이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명분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며 현 정권에 대한 매우 날 선 비판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MB를 ‘경제를 살릴 유일한 대통령’으로 밀었으며···
반면 여당 측은 이 개혁을 계속 이어나가 깨끗하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며 사람들에게 호소했다.
그렇게 정치인들은 언제나처럼 ‘민심확보’라는 이유 아래에 시장에 들러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상인들과 포옹을 하는 등의 모습을 비췄다.
그 과정에서 MB는 추후 ‘정치권 먹방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을 어마어마한 장면을 연출한다. 혹자는 저런 모습을 보며 풍자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기도 했다.
– MB는 정치가 아니라 개인방송을 했으면, 아주 별풍선으로 안드로메다에 버금가는 은하수를 놨을 거다.
··· 라고 말이다.
그 외에도 MH는 한창 마광위 게이트로 한국이 시끄러운 와중에 북한에 방문. 북한의 김정일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진행했으며···
연예계에는 원더풀 걸스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9인조 걸그룹인 [소녀시류]가 데뷔. 본격적인 걸그룹 전성시대이자 춘추전국시대를 열게 됐다.
물론, 정치권과 대중문화 외에,
재계에도 대단히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대영 인수 전쟁]에서 준성의 승기가 짙어졌다.
그도 그럴 게 마광위가 구치소 내에서 제 패배를 인정한 후, 대영은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방어적 스탠스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바보 같은 선택은 아니었다. 마광위와 피승원을 시작. 마예라의 내부고발로 인해 푸른 혈맹들이 자유를 박탈당하며 유동적인 대응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이미 대영은 머리 없는 몸통에 불과했고, 제아무리 마창수가 방어를 지휘한다고 한들 대가리 잘린 닭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정도일 뿐이었기에.
까닭에 대영은 목표를 ‘최대한 적게 잃기’로 수정.
이후 본인들에게 우호적인 대주주들을 모아 방어를 시도하긴 했지만, 파죽지세로 나아가는 ND 그룹을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결과···
너무나 굳건해,
영원히 쓰러지지 않을 것 같았던,
대영그룹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버렸다.
그 결과를 보기 쉽게 정리해 보자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대영전자] : ND와 백기사 세력 그리고 국민연금 합산으로 34.1% 확보. 최대 주주 등극.
[대영생명] : 보교와 동남이 참전하여 10.2% 확보. 경영권 확보에는 실패했으나, 대영에게 치명적인 불순물이 될 수 있을 지분을 확보. 사실상 공격 성공.
[대영카드] : CK와 동맹 세력 합산으로 18% 확보. 이후 마자환의 지도 아래에 CEO 대리직을 맡던 부사장을 포함해 임원진 대거 숙청. 반신불수 상태.
엄밀히 말해서 완벽한 승리는 아니다.
사실상 흡수에 성공한 것은 [전자]가 전부였거니와 나머지 둘인 [생명]과 [카드]는 경영권 확보에 실패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후자의 두 기업은 둘 다 금융업이라는 특성 탓에 현금 보유량이 많아 저항이 거셌던 탓도 있고, 모든 기업이 ND그룹처럼 자금을 많이 쌓아 뒀던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실패였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말 그대로 ‘완벽한’ 승리가 아니었을 뿐이다.
이를 증명하듯 당장 대영은 가장 큰 덩어리인 [전자]를 뺏겼거니와, 나머지 둘인 [생명]과 [카드] 역시 ND그룹이 대주주 권한을 획득하며 사실상 반쯤 함락된 상태 아니던가?
까닭에 순환출자 구조에 따른 완벽한 지배체제에 적신호가 켜졌음은 물론, CK그룹의 마자환 역시 계열사 발골쇼(?)를 시작해 치명타를 먹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준성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바스락 – 바스락 –
모니터링하던 신문을 내려놓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여담으로 해당 신문에는 [대영전자 디움에 인수 확정! 대영 공화국 몰락의 시초가 되나?]라 적혀 있었고 말이다.
‘···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완전히 끝장내진 못했지만, 이제부터 대영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내분을 시작할 거다. 마광위라는 구심점과 피승원을 필두로 한 푸른 혈맹 역시 모조리 감옥에 있으니, 기회주의자들이 새로운 시류를 파악하고 마자환이나 마예라에게 붙으려 할 테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멸망한 뒤, 나라가 쪼개지며 다시금 전국시대가 도래하며 초한-쟁패기가 시작된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조금 다를 게 있다면···
역사엔 [유방]과 [항우]가 주축이었다면, 지금은 [창수], [예라], [자환]의 삼파전이 됐다는 것 정도리라.
솔직히 이쯤 오면 준성 입장에선 저 셋 중 누가 이기든 딱히 큰 상관은 없었다.
이유? 딱히 별것 있으랴.
처음부터 대영을 완전히 끝낼 생각 따윈 없었으니까.
자주 언급했다시피,
ND그룹의 상대는 대한민국 재계의 정점이다.
까닭에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기업집단을 한 번에 연쇄 부도 시켜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간, 사람들이 시쳇말로 하는 ‘대영이 망하면 경제가 망한다.’라는 말이 실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까닭에 준성은 대영이 완벽하게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기둥 몇 개만 작살 내 서서히 무너뜨리는 쪽을 선택.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이건 겨우 시작일 뿐이다. 이제 대영그룹 내부에선 왕자와 공주들 사이에서 죽고 죽이는 전쟁이 벌어질 거고, 그 과정에서 회사는 그룹 전체의 이익보단 각자의 생존을 우선시하며 온갖 불이익을 낳아 대겠지. 과연 그 내전을 끝내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추측건대 최소 5년,
싸움이 길게 늘어지면 20년.
최악의 경우에는 평생 갈라질 수도 있으리라.
그 사이 준성은 재계의 정점 자리를 꿰차고, [스마트폰 혁신]을 통해 한국과 세계 시장을 지배하면 그만이었다.
그쯤 되면 대영이 모든 상처를 회복했다고 한들, ND그룹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자그마한 기업에 불과하겠지.
딱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뇌리를 스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승리]였다.
‘··· 드디어 이긴 건가.’
회귀 후 10년 하고도 9개월.
오로지 기업의 성장과 복수만을 달려온 시간.
오래 걸렸다면 오래 걸렸고, 짧다면 짧게 걸렸다.
그 시간들이 오랜 숙성을 거쳐 좋은 향신료가 되어 줬기 때문일까? 준성은 이내 가슴 깊은 곳에서 짜릿한 승리의 쾌감이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 이제 내가 대한민국의 정점이다.’
경영자라면 누구나 꿈꾸던 그 자리!
하지만 여태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던 까닭일까?
아니면 여기까지 오며 목표가 수정됐던 까닭일까?
뭔가 만족감보다는 살짝 가벼운 공허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딱히 그 마음을 크게 신경 쓰진 않기로 했다.
‘목표는 언제나 변하는 법이다. 완벽을 쫓아갈 순 있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듯, 기업의 목표 역시 같아. 어제까지의 목표가 대한민국의 정점이었다면, 오늘부터의 목표가 세계의 정점이 됐을 뿐이야. 그러니 여기서 만족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준성은 뭔가 시원섭섭한 감정을 털어낸 뒤.
마치 전쟁이 끝난 후 공치사를 진행하고 장군과 영주들에게 전리품을 나눠 주는 왕처럼 자리를 옮겼다.
본디 자그마한 음식을 먹어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데, 그 커다란 대영전자를 삼켰으니 그에 준하는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덤으로 동맹들에게 약속한 ‘보상’ 또한 나눠 줘야 할 필요가 있었고 말이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렇게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길.
준성은 매 걸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나아갔다.
···
전쟁이 끝난 네스트는 묘-한 분위기였다.
비록 경영계의 전쟁이라는 게 실제 전쟁과 달리 그 시작과 끝이 모호하다지만, 아무래도 대영의 본진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전자에 ND그룹의 깃발이 꽂혔기 때문일까?
엄밀히 따지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자잘한 지분 확보 경쟁과 더불어 물밑에선 IR팀들 간의 기싸움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전면전은 끝난 탓에 다들 안심한 것처럼 보였다.
그걸 증명하듯 직원들 역시 전시와 다르게 살짝 가벼운 분위기로 거닐고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을 얼마나 거닐었을까?
준성은 이내 어느 사무실 앞에 도착할 수 있었고···
똑똑똑 –
– 네, 들어오세요.
덜컥 – 휘릭 –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혼자 짐을 정리 중인 마예라 상무가 눈에 들어왔다.
“··· 어, 안녕하세요,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보니까 짐 정리 중이셨나 보네요.”
그 말에 마예라는 들고 있던 상자를 내려놓고는 어딘가 겸연쩍게 웃으며 제 데스크 위에 걸터앉았다.
“예. 떠날 때가 돼서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약 60일간의 지분 경쟁 결과 ND그룹은 대영전자의 경영권을 확보. 즉시 이사회를 소집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CEO를 강판하고 그 자리에 마예라가 선임됐으니 말이다.
까닭에 그녀는 짧았던 ND그룹 망명 생활을 마치고, 제 뜻대로 대영을 정화하기 위해 떠날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이에 준성 역시 뭔가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시간 참 빨라요, 그렇죠?”
“··· 그러게요. 여기에 온 게 벌써 엊그제 같은데.”
그 말에 준성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찾아왔던 그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저를 거둬주세요. 저는 대영에게 추방당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적어도 제가 혼자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대영을 정화할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세요. 저 역시 그에 보답하겠습니다.
처음 저 말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준성은 무슨 고전 소설 속 허생이 대뜸 얼굴도 모르는 부자를 찾아가 돈을 꿔 달라고 하는 장면이 떠올랐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던가?
비록 준성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예라는 본인의 힘으로 대영을 정화할 기회와 자리를 동시에 얻어냈다.
“기억나십니까? 처음 제게 했던 말.”
“··· 대영을 정화한다고 했던 것 말씀이신가요?”
“네. 그냥 끝이 다가오니 처음이 생각 나서요.”
준성의 말에 예라는 살짝 부끄러워졌는지 커흠- 소리를 내며 헛기침을 하고는 배시시 웃었다.
“생각나죠. 결국 모두 제가 말한 것처럼 됐네요. 거봐요, 저 마예라라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든 반드시 승리하죠.”
그녀는 마치 샴푸 CF의 모델처럼 제 머리를 챠량- 하고 넘기며 과장된 리액션으로 말했고, 준성은 푸흡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까닥거렸다.
“오늘로 ND그룹 근무는 끝나겠네요.”
“예, 앞으로 마예라 상무가 아니라 마예라 대표예요.”
대표라는 말에 준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회장이 아니고요? 대영그룹의 여주인이 돌아왔으니, 응당 회장 명칭을 쓰실 줄 알았습니다마는.”
“아- 예. 원래는 그럴 예정이었는데··· ND그룹에서 지내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어요. ‘모 총수님’의 수평 지향적인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거든요. 그래서 흉내 좀 내보려고요.”
“재밌네요. 그 ‘모 총수’한테 허락은 맡으셨는지?”
예라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리고는 답했다.
“아뇨. 세상 어느 기업이 벤치마킹하는 데 ‘당신네 따라 할 거예요~’라고 얘기를 하나요? 원래 다들 이렇게 슬쩍 빌려 가는 거고, 나눠 쓰는 거죠. 설마 쪼잔하게 원조를 주장하실 건 아니죠? 그러실 거면 국밥집처럼 원조 간판 붙이세요.”
대놓고 베낀다는 태도에,
준성은 어이가 없다 못해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시죠. 저도 모킹버드(Mockingbird, 흉내지빠귀)에게 질 생각은 없거든요. 그러니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당연하죠. 짧은 시간이었지만, 대표님 아래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제 나름대로 체화했거든요. 그러니 시장에서 만나면 아주 뼈아픈 한 수를 날려 드리겠습니다.”
누가 새끼 호랑이 아니랄까 봐, 벌써부터 이빨을 드러내는 마예라였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아직 덜 큰 고양이에 불과했기에 준성 역시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받아넘겼다.
“언제든지 마음껏 덤벼 보세요. 박살을 내 드릴 테니. 자, 그럼 마지막 인사는 이쯤 할까요? 원래 경영계에는 피아가 모호해서 지금처럼 긴 작별인사는 낯설거든요.”
대화는 딱 거기까지였다.
예라가 곧 있을 CEO 취임식을 준비하랴, 네스트에 뒀던 짐을 빼랴, 부재중 있었던 대영 전자의 사건 사고를 복기하랴, 어마어마하게 바빴기 때문이었다.
짧은 인사를 마치고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문득 등 뒤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준성 대표님, 감사합니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네요. 게다가 저를 믿고 경영권까지 주신 점은 반드시 잊지 않고 기억해 두겠습니다.
– 그러니 부디 여태까지 있던 대영과의 악연은 잊어 주시고, 제가 열어 갈 푸르고 정의로운 대영과는 좋은 경쟁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준성은 딱히 돌아보지는 않은 채 그저 손만 흔들어 떠나려는 그녀를 침묵으로 배웅해 줬다.
···
며칠이 지난 후.
대영전자 이사회와의 격전 끝에 CEO이자 최종 의사결정자가 된 마예라의 취임식이 시작됐다.
비록 대영전자 내 대다수 지분은 ND그룹과 그 동맹들에게 귀속됐기에 그녀가 오너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큰 상관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준성은 이미 복수가 끝나 더는 대영에게 큰 관심이 없었거니와, ND그룹 역시 디폰에만 집중하고 싶을 뿐. 대영전자라는 큼지막한 덩어리를 껴안고 싶진 않았으니 말이다. 스마트폰 사업부만 딱 잘라다 양수하면 모를까.
까닭에 지분 자체는 ND그룹에 있었지만, 그 경영권을 마예라에게 암묵적으로 양도. 추후 이익을 실현한 뒤 긴 시간에 걸쳐 부채를 상환하듯 지분을 양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극소수만 아는 이야기였기에, 예라는 제 가슴 속에 비밀을 품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스읍 –
‘대기실에서 나가면 총수로서의 삶이 시작되겠지.’
참 묘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큰 과업을 앞둔 부담감과 더불어, 그렇게나 원하던 것을 드디어 얻었다는 성취감과 흥분. 그리고 본인이 준성처럼 잘해내 마창수와 마광위가 남긴 잔당들을 잘 쓸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적절히 섞인 기분을 느끼기도 잠시.
후우 –
이내 깊은 날숨과 함께 마음을 정리했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어. 고민 따위 더는 필요 없어. 이제 필드에서 여태까지 준비한 내 역량을 증명해야 할 때야.’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예라는 준비한 청심환을 씹어 삼킨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러자 머지않아 발표를 위한 강단과 예라 사이에는 오로지 얇은 커튼 하나만 남게 됐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그 커튼을 열어 온몸으로 빛을 맞이했다.
스와아아아 –
밝은 빛에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도 잠시. 이내 동공이 적응하자 눈앞에 예라에게 힘을 실어준 대영전자의 주요 인물들이 홀 안에 가득 채워져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게다가 그뿐이랴?
와아아아 – !
짝짝짝짝짝 – !
마예라 – ! 마예라 – !
마치 총수가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귀환한 영웅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힘찬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져 내렸다. 이에 예라 역시 그 소리를 듣자 조금 전까지 느꼈던 부담감과 중압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고···
즉시 ‘경영인 마예라’가 되어 강단 위에 있는 마이크를 잡고 제 취임사와 함께 앞으로 대영전자를 모태로 한 [완벽히 새로운 대영그룹]이 나아갈 길을 발표했다.
– 반갑습니다, 대영전자 임직원 여러분. 오늘부터 대영전자 사장직을 맡게 될 마예라입니다.
– 아마 여기 계신 몇몇 분들은 저를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과거 대영그룹 시절에서 뵀거나, 뉴스에서 제 모습을 확인하셨거나, 아니면 그 후에 저를 보셨거나 하는 형태로요.
– 제가 살아온 인생 중 어떤 모습을 보셨든, 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든 크게 상관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니까요.
잠시 숨을 고른 마예라가 좌중을 훑으며 말했다.
좌중들을 보는 그 눈빛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 오늘 이 순간부터 대영전자는 바뀌게 될 것입니다.
– 구시대의 끔찍한 유산이자 전임자의 모럴 하자드로 인해 발생했던 끔찍한 사건들은 앞으로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청렴한 기업을 목표로 나아갈 것입니다.
–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오로지 이익만을 좇는 순간, 그것은 기업이 아닌 괴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 과거의 대영은 어땠습니까? 이익을 위해 경쟁사의 제품 테스트에 전파 방해를 넣고, 영향력을 이용해 언론을 장악하며, 그릇된 청탁으로 공무원과 공권력을 의도적으로 움직이고, 안전에 대한 비용을 절감해 노동자를 위험한 환경에 밀어 넣었으며,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시체를 유기해 화장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행동이 바로 대영을 괴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딱 거기까지 얘기했을 무렵.
반도체 공장의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벌떡 일어나··· ‘더 이상의 백혈병으로 사람이 죽으면 안 됩니다! 노동자의 안전이 보장돼야 합니다!’라며 큼지막하게 소리쳤다.
이에 깜짝 놀란 경호원들이 급히 그를 끌어내려 했지만, 마예라는 조용히 손만 들어 제지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 맞는 말입니다. 앞으로 대영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더는 백혈병 환자가 발생하는 일 따윈 없을 겁니다. 그 외에 다른 공장에서도요. 이건 제가 직접 약속드리겠습니다.
– 게다가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제 대영은 항상 정의로울 것이며, 불의를 외면하지 않고, 이익만을 좇다가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 따위도 하지 않을 겁니다.
– 물론, 쉽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비효율]이나 [실적 악화] 혹은 [위기]라는 말이 뒤따를 테고 몇몇 사람은 대영전자의 정의에 대해 의심을 할 겁니다.
–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열어갈 새로운 대영전자를. 더 나아가 다시금 정점이 될 새로운 [대영전자그룹]과 함께해 주십시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매우 인상적인 취임사였기 때문일까?
꽤 과격한 혁신 의사가 묻어나는 내용이었지만, 그럼에도 최근 워낙 심각한 사건이 연달아 터졌기 때문인지 임직원들 역시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눈초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짝짝짝짝짝 – !
마예라 – ! 마예라 – !
모두가 새롭게 시작될 대영전자. 조금 더 정확하게는 [대영그룹]에서 분리해 새로운 [대영전자그룹]이 될 왕국의 시작과 그 여왕이 내딛는 첫걸음에 환호했을 뿐이었다.
···
비록 마예라의 날갯짓은 작았지만,
그녀의 발언은 태풍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마치 대륙에 있는 나비의 움직임이 바다를 건너 토네이도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마예라가 [대영전자그룹]의 출범을 말한 것에 언론과 재계가 들썩인 것이다.
– 대영에 드리운 그림자!
–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대영그룹?
– 왕자와 공주가 왕국을 나눠 가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본디 기업집단이란 하나로 뭉쳐 있어야 규모의 경제와 내부거래를 통해 더 큰 효율을 뿜어낼 수 있을뿐더러, 그 영향력 역시 제곱이 되니 말이다.
근데 항상 대한민국 재계의 정점을 유지하던 대영이 기존 [어리숙한 마창수]와 [혁신가 마예라]가 이끄는 두 개의 그룹으로 쪼개진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일일 수밖에.
물론, 이게 아예 이례적인 일은 아니긴 했다.
당장 현룡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던가?
1999년에 대한민국 재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JY회장의 사망 직후. 자식들끼리 회사를 잘 나눠 가지라는 창업주의 유언이 무시된 채 왕자와 공주들의 전쟁이 반발했다.
그 결과 당시 현룡 회장이던 MG가 과장 조금 많이 섞어 ‘*같아서 못 해먹겠다’라며 현룡의 핵심 산업인 자동차를 들고 그대로 이탈. 지금의 [현룡자동차그룹]을 만든다.
그 결과 현룡은 예전부터 유지되던 [현룡그룹]과 [현룡자동차그룹]으로 분리. 각자의 길을 걷게 됐고 말이다.
게다가 이런 사례는 재계에 꽤 여럿 있었다.
수완이 좋은 창업주의 사망 이후 형제들에게 지분은 공평하게 나눠줘서 회장직을 ‘임기제’로 진행하거나, 혹 그게 아니라면 능력에 차등을 두고 분봉하듯 회사를 쪼개거나 하는 등의 일 역시 심심찮게 일어났다.
그 이후 왕자와 공주들이 서로 합심하면 좋았겠지마는··· 서로의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게 된 그룹은 보통 여러 갈래로 찢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저 대영 역시 저들과 똑같았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다만 언론이 저렇게까지 떠들어대는 이유는 지금 쪼개지는 기업이 다름 아닌 ‘대영’이라서였다.
촤락 – !
그렇게 얼마나 뉴스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준성은 보던 신문을 접곤 픽 미소를 머금었다.
‘··· 마예라, 결국 그런 선택을 한 건가.’
뭐,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다.
제아무리 ND그룹이 최대 주주가 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물산과 마광위의 핏줄들이 전자의 지분을 가진 상태. 그러니 예라 입장에서는 곧 있을 끔찍하고 지저분한 내전에 앞서 독립을 선언하고 싶었을 게 분명하다.
‘앞으로의 미래는 대충이나마 그려지는군.’
예라는 이른 시일 내에 아주 높은 확률로 빅배스(big bath)를 진행할 게 분명했다. 빅배스란 그 이름처럼 과거에 있었던 손실이나 실수를 한꺼번에 폭로하듯 발표해,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뒤 당근을 던져 줘서 수습하는 행위를 말했다.
이는 보통 CEO들이 새로 취임했을 때 인력과 함께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진행되는데···
이로 인해 CEO는 취임 전에 있었던 손실과 실수를 모두 공개해 큰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밝혀 제 취임의 명분을 살리고, 작은 실적만으로도 주주들에게 ‘그래도 예전보단 좋다’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경영전략이었다.
‘특히나 대영은 어마어마한 비리가 있었던 만큼, 거의 욕조가 가득 찰 때까지 구정물이 쏟아져 나올 거다. 그 과정에서 분노한 마예라 역시 피의 숙청을 감행할 테지.’
거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미 복수는 끝나지 않았던가?
그러니 준성 입장에선 적당히 절벽으로 간다 싶으면 훈수나 슬쩍- 슬쩍- 두면서, 마예라가 채무(?)를 갚아 나가는 것만 지켜보며 배당금이나 챙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응원 정도는 해 주기로 했다.
‘이 세상에는 저런 기업인도 필요한 법이지. 마예라 총수, 힘내시길. 아마 굉장히 어려운 길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당신의 가슴 속에 있는 신념이 빛이 되어 주기를.’
딱 거기까지 생각한 뒤.
준성은 머릿속에서 마예라를 지워 버린 후,
다음으로는 마광위와 마창수를 잠시나마 떠올렸다.
‘흐음, 뭐 하고 있으려나?’
···
비슷한 시각.
대영물산의 전략기획실에는 난리가 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대영전자가 갑자기 계열분리를 선언하며 그룹의 핵심 산업을 송두리째 뺏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소위 [마광위 게이트]로 인한 공권력의 분노를 아슬아슬하게 피해간 푸른 혈맹들이 방어를 준비했지만, 이미 전방위 포격으로 만신창이가 됐기에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예라가 계열분리를 선언하자마자 마창수는 승사원에 틀어박혀 모든 연락을 끊어 버렸고, 이에 안 그래도 몸속에서 핵폭탄이 터진 대영물산의 모든 업무가 마비되어 버렸다.
“마창수 부회장님은!?”
“승사원에 칩거 중이십니다!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야, 이 개**야! 나도 알아!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채널 뚫어야 할 거 아니냐고! 이런 상황에서 비서실은 뭐하는 거야! 피승원 비서실장이 후임자 붙여 놨잖아!? 근데 왜 이런 꼴이 나는 거냐고!”
“그, 그게··· 마창수 부회장님이 아무런 연락도 듣고 싶지 않으시다며 모든 채널을 일방적으로 닫으셨습니다···!”
“씨*, 이 머저리 같은 월급 도둑 새*들! 됐어! 차 준비해! 내가 직접 가서 얘기한다!”
···
이태원 승사원.
본래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이던 공간.
하지만 지금은 그 주인이 구치소에 갇혔고, 항상 마광위가 앉아있던 방석 위에는 마창수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모습이 폭군의 의지를 이어받은 세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덥썩 – ! 꽈아아악 – ! 꾸욱 – !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이로 제 검지를 물어뜯었다.
그러자 상처가 나은 지 얼마 안 된 여린 살점에 다시금 이빨이 박히며 피가 새어 나왔지만, 마창수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른 한 손으로는 마광위가 직접 남겨 준 [대영의 법칙]을 환자처럼 들여다봤다.
“··· 반드시 막아야만 해. 예라가 계열분리를 선언했어. 모두 이준성 그 자식이 시킨 걸 거야. 지금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방어가 먼저인가? 아버지를 꺼내는 게 먼저인가? 근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나는··· 나는··· 나는 도대체 뭘 해야 하지?”
참으로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안 그래도 말만 부회장에 총수 대리지, 사실상 하루에 한 번 내려오는 마광위의 지시를 이행할 뿐인 허수아비였던 마창수였다.
그러던 중 준성에 의한 광범위 포격으로 인해 대영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과한 부담감에 맛이 가 버린 것이리라.
뭐,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평생을 키운 그룹이,
본인이 물려받자마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대한민국의 정점인 기업이.
경영자는 본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일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게 많았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연스레 인생에 있어 ‘일’과 ‘기업’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어지는 거였고 말이다.
이는 마창수 역시 똑같았다. 그에게 있어 마광위는 ‘아버지’라기 보다는 ‘총수’에 가까웠고, 실제로도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 역시 ‘총수’로서였기에··· 그의 삶에는 이제 대영을 제외하고는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근데 그 대영이 무너진 것이다.
하늘같았던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고,
굳건히 믿던 동생이 배신해 그룹을 쪼갰고,
웬 미친놈이 갑자기 회사를 발골해 대기까지 했다.
사실상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막아야만 한다··· 이제부터 내가 대영의 총수다··· 내가 모든 것을 지켜야 해··· 회사가 없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니까··· 해야만 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수있다. 해야만한다. 내가아니면그누구도하지못한다··· 그러니까제발정시챠고다쟈이르시자해야···”
마치 자신을 채찍질하던 중얼거림이 어느새 미친 사람의 독백처럼 변해버렸고, 마지막에 가서는 그 발음조차 모두 뭉개져 식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게 약 30분쯤 흘렀을까?
“흐어어업- 꺼억- 꺽- 흐업- 꺽-?”
과한 부담과 강박에 의한 공황증세로 인해 마창수는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스트레스성 쇼크로 터널에 불이 꺼지듯 시야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밖에서 대기하던 비서와 최근 창수의 상태가 좋지 않아 항시 동행하던 의료진이 급히 들어와 마창수를 바닥에 눕혀 벨트를 풀고 심호흡을 시켰다.
흐어어어- 꺽- 흐업- 허어어-
그 결과 마창수는 머잖아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게 ‘진짜 안정’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어 보였다.
오히려 안에 있던 무언가가 무너졌다고 하면 모를까.
얼핏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고···
사실상 죄인은 마광위와 마병수였기에,
마창수는 휘말린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뭐 어쩌랴.
본디 경영은 전쟁이다.
달콤한 승리를 맛본 이가 있다면,
쓰라린 패배를 맛보는 이도 있는 법.
그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일이었다.
여담으로 준성은 마지막 전쟁에 한해서 마창수를 향해 그 어떠한 계략이나 음지 공격도 자행하지 않았다.
이는 회귀 전에 모시던 상급자에 대한 일말의 예의이자, 마창수가 본인의 의지와 달리 마광위의 뜻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경영자가 됐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마창수, 만약 네가 이 일로 인해 재귀 불능 수준으로 망가져 버린다면··· 차라리 전문경영인 제도를 시작하는 게 나을 거다. 그게 너와 대영 모두가 행복한 길이 될 테니까.’
실제로 추후 마창수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알 수 없었다. 딱히 알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
다음으로 마자환은 제 아버지에게서 이어받은 꿈을 이뤘다. 바로 대영 안에 CK의 영향력을 집어넣은 것이다.
까닭에 그는 대영카드를 시작으로 제 권한을 넓히기 시작했다. 비록 금산분리에 의해 완벽한 지배는 불가능했지만, 준성이 붙여 준 백기사 세력의 도움으로 마광위와 마창수의 의사결정을 막을 정도는 확보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그는 꼭 판타지 소설 속 불의 신을 믿는 사제처럼. 마광위의 손이 조금이라도 닿은 모든 것을 새하얗게 불살라버릴 기세로 숙청을 시작했다.
– 마광위? 그놈은 실패한 경영자잖아.
– 나는 대한민국에 역대급 모럴 하자드를 터트린 경영자를 믿지 않아. 그리고 그 녀석이 키운 부하들 역시 똑같겠지. 지금 이 순간부터 [대영카드]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자회사에 전사적 감사를 시작해.
–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비리가 있는 놈들은 모두 숙청해. 녀석들은 주주의 이익을 저해하는 기생충 같은 놈들이니까. 회사는 그런 놈들의 놀이터가 아니라고, 알겠어?
마치 구조조정의 화신인 잭 웰치(81~01년까지 재임한 GE의 회장, 살벌한 구조조정으로 연쇄살인마 혹은 중성자탄 잭 그리고 경영의 귀재로 불렸음)의 귀환이 이러할까?
그는 카드 아래에 있던 계열사 중 1위가 아닌 기업들은 모조리 정산 명령을 내렸고, 그중 알토란 같은 회사는 CK그룹 측에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경영권을 넘겨 버렸다.
그 모습이 얼핏 몽골 제국의 대학살을 연상시켰다.
수레바퀴보다 더 큰 남자를 모두 학살하고,
여자들을 제 제국에 흡수한 것처럼.
마자환은 마광위의 푸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푸른 혈맹들을 모조리 윤리 감사라는 명목으로 숙청. 이후 ‘캐쉬카우’ 역할을 하거나 ‘별(Star)’에 속한 사업은 본인이 삼켰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 미치광이가 경영권을 잡으면 생기는 최악의 일.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영자는 윤리적인 하자가 있는 경영자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적어도 후자는 주주들까지 통째로 불살라버리진 않으니까.
··· 라고 말이다.
반면 준성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마자환은 절대 미치광이가 아니야. 녀석은 지금 그 어떤 사람보다도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다. 오히려 미치광이 노릇을 하며 제 간접적 지배에 조금이라도 반항할 놈들의 목을 치고, 기계적 중립을 유지하는 녀석들의 혀를 자른 거야.’
정답이었다. 동시에 저건 준성이나 예라 그리고 권영처럼 ‘선한 이미지’를 구축한 경영인은 절대 할 수 없는 과격한 방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까닭에 마자환은 평소의 ‘미친개’ 이미지를 십분 활용. 피비린내를 풀-풀- 풍겨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모두 ‘아, 저 개**가 또 지랄이네’라고 했을 뿐.
그렇게 대영카드와 그 아래에 있는 괜찮은 계열사들은 CK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이는 아마 대영에게 있어 치명적인 맹독이 되어 주리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자환의 손에 닿은 계열사들은 잿더미가 되거나 CK 그룹 산하의 기업이 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영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창수는 거의 강박에 시달리는 정신병자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하루에 한 번 전달되어 내려오는 아버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언제나 그렇듯 정석적인 전략을 펼쳐 제 영토에 침공한 마예라와 마자환을 견제하려 했으나···
이미 그의 말을 들을 푸른 혈맹이 모조리 감옥에 들어가 있거니와, 지배구조를 이용해 압박하려고 해도 오히려 물산의 대주주인 카드가 발목을 걸고넘어졌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는 마창수가 직접 대영물산의 의사결정자인 마창수에게 전화를 걸어 확고한 답을 건네줬다.
– 응, *까. 안 돼. 꼬우면 이사회 소집하던가. 근데 내가 거기서 시간을 아주 질-질- 끌 거거든? 그러니까 대가리 굴려 보시던가. 어차피 답은 없겠지만. 크크큭!
··· 라고 말이다.
대영이 그렇게나 믿어 의심치 않던 [순환출자] 구조가 지금은 오히려 마창수의 움직임을 막는 걸림돌이 된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마자환은 언제나처럼 휠체어에 앉은 채.
녹즙을 마시며 섬뜩한 웃음을 흘리며 생각했다.
‘대영의 진짜 주인이 돌아왔다. 이로써 아버지가 옳았다는 게 밝혀졌고, 마광위와 그 핏줄이 우리보다 못하다는 게 증명됐어. 이 얼마나 옳게 된 세상인가? 아주 마음에 들어.’
여담으로 그는 대영카드의 아래에 있는 계열사들의 소화가 끝난 후. 마예라와 연합해 마창수의 멱을 따고, 마지막으로 예라를 배신해 본인이 최후의 승자가 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이 제대로 먹힐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마예라와 연합해 마창수를 몰아내는 것까지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특히 맨 마지막 계획은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예라를 친다는 것은 곧 ND그룹을 친다는 것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어떠랴.
이 세상 모두가 꿈을 꿀 권리가 있었다.
그게 참으로 허황됐든, 아니든 간에 말이다.
···
마지막으로.
마광위는 최후까지 저항을 계속했다.
그는 1심에서 35년을 구형받았음에도 전혀 포기하지 않고, 항소하였으나··· 마예라의 직접적인 폭로 외에도 대영의 영향력이 무너지며 온갖 추가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던 탓일까?
정치권과 MH의 주도 아래 빠르게 진행된 2심 재판 결과. 온갖 정성을 쏟아부었음에도 마광위의 형량은 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여러 건의 범죄를 저질러 죄질이 매우 나쁨에도 전혀 반성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 마광위에게 1심과 같은 징역 35년 형을 선고함과 동시에, 벌금 2,500억 원을 부과한다.
– 또한, 피고 피승원은 마광위의 지시에 따라 일을 조작하고 덮으려고 한 점을 고려. 죄질이 매우 나빠 1심의 20년이 아닌 30년 형을 선고한다.
마광위의 벌금이 2배 이상 불어났거니와,
피승원의 형량 역시 추가되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마광위는 벌써 2번의 기회를 날린 것에 통탄.
지금은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마지막 대법원 재판만 남기고는 시간을 질-질- 끌고 시작했다. MH와 집권 여당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린 것이다.
‘정치권, 네놈들이 이렇게 대영을 결딴내고도 무사할성싶더냐? 대영 없이는 대한민국 경제도 없단 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대한민국의 성장률은 토막이 날 테고, 머지않아 경제에도 치명타가 올 거야. 그러니 다음 대통령은 여론을 의식해서라도 나를 풀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간은 내 편이다.’
나름 현명한 생각이었다.
지금의 한국은 MH의 과격한 개혁으로 인해 일종의 과도적 시간을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당연히 일시적으로나마 이런저런 사건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언젠가는 ‘예전이 나았다’라는 말과 함께 마광위에게도 기회가 올 터. 특히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MB는 기업인 출신으로서 친-재벌적 노선을 펼칠 게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이···
마창수는 강박에 짓눌려 썩어 갈 테고,
마예라는 지배구조를 강화할 테고,
마자환은 대영을 토막 낼 테지만.
현재의 마광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구치소에 갇혀 가능성이 희박한 전략을 짜내는 것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재계의 정점이자 누구나 두려워하던 대영의 폭군은 감옥에 갇힌 채 오지 않을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며 얼마 남지 않은 제 수명을 분노와 함께 태워 나가고 있었다.
근데 과연 그는 알고 있었을까?
시간이 정말 그의 편이 맞을지?
본인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마 모르리라. 그는 회귀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준성은 굳이 그걸 알려 주지 않기로 했다.
본디 완벽한 절망은 희망이란 향신료로 완성되니까.
그렇게 마광위는 제 희망이 오히려 절망을 키워 나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오지도 않을 미래를 준비했다. 마치 저승길에 제 재산을 싸가려 하듯. 그게 퍽 애처로워 보였다.
···
그렇게 [마예라], [마창수], [마자환], [마광위]라는 대영의 핏줄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을 무렵. 준성은 언제나 그렇듯 제 사무실에 있는 데스크에 앉아 마광위가 시간을 끌기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며 피식 미소를 머금었다.
‘마광위. 그런 선택을 한 건가. 그래. 오지 않을 밝은 미래를 생각하며 푸-욱 썩어 가라고. 그게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벌이니까.’
덤으로 준성은 그 상쾌한 기분과 함께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바로 경영자와 참치에 대한 얘기였다.
– 그거 아십니까? 참치는 헤엄을 멈추면 죽습니다. 아가미를 여닫지 못해서, 계속 움직이며 물을 빨아들여야 하거든요. 근데 저는 경영자 역시 똑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 경영자는 일하지 못하게 되면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늙어가죠. 인생에 일 말고는 남은 게 없거든요. 여태까지 경주마처럼 달려왔으니까요. 그렇게나 정정하던 재벌 총수들이 은퇴하고 나서 빠르게 죽는 것도 그런 이유이고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광위라는 참치의 헤엄이 멈췄다.
게다가 그의 몸은 이미 노쇠한 상태.
과연 얼마나 빠르게 늙어 갈까?
동시에 얼마나 빠르게 죽어 갈까?
뭐, 굳이 알아서 뭣하랴.
어차피 내버려 두면 될 텐데.
준성은 딱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창밖을 쳐다봤다.
가을 특유의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꼭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이러할까?
스읍 – 후우 –
괜히 기분이 좋아 가볍게 심호흡을 하자,
폐가 통째로 맑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환기하지 않았으니 맑은 공기가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그런들 또 어떠한가. 그냥 복수가 깔끔하게 끝나서 몸이 가볍다고 생각하곤 넘기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맑은 하늘을 보며 심호흡을 했을까?
준성은 몸을 들려 다시금 데스크에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일을 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