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80
– 81화 –
티아라라는 말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늙은 호랑이는 제 역린을 건든 젊은 늑대의 목덜미를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듯,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어디서 무슨 얘기를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얘기는 다른 사람이 함부로 입에 올려도 될 만큼 가볍지 않다.”
“역시. 당신은 아직 티아라에 대한 분노를 잊지 못했어.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꺼낼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입 다물어. 너 따위가 뭘 한다고 지껄이는 게냐?”
“뭘 아냐고? 당사자인 당신보다는 당연히 적게 알겠지.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부당하게 쫓겨났다는 건 알아.”
회귀 전, 준성이 기획팀에 앉아있을 무렵.
마광위는 제 후계 교육의 일환으로 한국 재벌의 역사 및 속사정에 대한 자세한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준성 역시 옆에서 차기 총수를 보좌하라는 뜻으로 같이 배웠고, 거기엔 티아라에 대한 정보 역시 섞여 있었다.
1989년.
티아라 그룹의 초대 총수는 승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티아라의 총수는 세습 경쟁을 그룹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진행했다. 싸움으로 그룹이 사분오열되지 않길 원했던 탓이었다.
첫째는 티아라 제과와의 연계를 생각해 과자 포장 업체를 만들었다. 밸류 체인(가치사슬) 상 후방에 있는 기능을 통합해 시너지를 얻겠다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뜬금없게도 자동차 부품 산업을 시작했다.
75년, 현룡이 자체 기술로 생산한 [포니타]의 등장으로 자동차 산업이 일본에서 독립을 시작. 추후 자동차 산업의 전망이 좋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당대 시기상 여자 경영자는 매우 드문 편이었기에, 깔끔하게 포기. 아버지 옆에 남아 비서 업무를 처리했다.
이렇듯 티아라 제과는 공정한 성과 비교를 위해 제 자식들을 외부로 내몰아 경영 성과를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승계에 반대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달콤새콤]과 [하임초코] 그리고 [코크다스]의 아버지이자, 메가 히트 상품을 연달아 만들어 티아라 제과를 매년 50%씩 성장시킨 괴물 같은 남자. 당시 부사장이던 윤일남이었다.일남은 경영 세습을 준비하던 총수에게 말했다.
– 형님,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전문경영인을 쓰십시오. 태어난 핏줄로 기업의 대표를 정하다니요? 이건 티아라 그룹의 미래에 치명적인 악수입니다! 본디 경영인의 자리는 태생이 아닌 실력으로 정해져야 한단 말입니다!
– 무한양행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미 이전부터 전문 경영인(CEO)제도를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회사 측은 오너 가문의 연락처조차 모르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 성장했습니다!
– 저는 형님의 자식들이 티아라를 더 성장시킬 수 없다고 봅니다. 당연히 조카로서는 사랑스럽고, 너무나도 예쁘죠. 하지만 경영자로서의 능력은 떨어집니다! 그러니 최소한 녀석들이 성장할 동안이라도 전문경영인을 쓰십시오!
말 그대로 직언이었다.
하지만 총수는 저 직언을 CEO직에 눈이 멀어버려 내뱉은 전략적인 대답이라고 판단. 내버려 뒀다간 제 자식들의 앞길을 막을 거라는 공포에 치명적인 착각을 해버렸다.
– 티아라는 내가 평생을 바쳐 세운 기업이다. 그걸 내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은 게 애비 마음인데… 그게 고깝더냐?
– 변했구나, 일남아. 너무 오랜 세월을 장사하며 지냈더니 돈귀신에 씌여 버렸어. 욕심에 마음도 눈도 전부 멀어버린 게야. 솔직하게 말하거라. 사장 자리가 탐난다고 말이다.
– 사랑스러운 조카들을 쫓아내서라도 이 티아라 그룹을 갖고 싶더냐? 나는… 나는 이제 더는 너를 믿을 수가 없다. 혹여 네가 진심으로 티아라를 위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들 이제 아무런 상관이 없어졌어.
– 나는 내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그게 40년 세월을 함께한 의형제와 의절하는 것일지라도.
그렇게 비틀어진 부정(父情)은 파국을 불러왔다.
추후 제 자식이 물려받을 왕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총수는 칼을 뽑아 들었고… 그 칼로 티아라 제과의 황금기를 이끈 영웅의 목을 베었다.
참 아이러니한 최후였다.
윤일남이 없었다면 승계할 왕국도 없었을 것이거늘,
꼭 왕이 바뀌며 개국공신들의 목이 잘리듯,
그렇게 윤일남의 목 역시 떨어졌다.
비참한 최후였다.
하지만 숙청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총수는 불온의 싹을 뽑는다며 소위 ‘윤일남 사단’이라 불리는 이들 역시 모조리 숙청을 단행했고… 그렇게 제과 시장을 평정하던 최강의 군대가 모조리 잘려나갔다.
그렇게 잘려나간 이들이 세운 게 바로 쟈르뎅이었다.
원래는 제과 기업을 만들려고 했지만, 티아라의 미친 왕은 기어이 협력업체까지 손을 뻗쳐 윤일남의 손과 발의 힘줄마저 모조리 잘라버렸기에 불가능했다.
그렇게 제과 시장에 공포를 불러왔던 최강의 군대는,
비틀어진 부정을 품은 미친 왕에 의해,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되돌려 현재.
준성이 일남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기 위해 찾아왔다.
“네스트는 티아라 베이커리 최대 경쟁자인 파리 브레드의 48%를 소유하고 있다. 그 CEO 자리를 주지. 그 조건으로 쟈르뎅을 팔아라.”
그렇게 되면 네스트는 일남이 정성스레 닦아놓은 원두 유통 시장의 1/3을 얻어 추후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더욱 탄탄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고,
쟈르뎅은 네스트라는 모기업을 등에 업은 채 안정적인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됐으며,
윤일남은 제게 인생 최악의 오점을 남겨준 티아라에게 오랫동안 닦아 둔 복수의 비수를 날릴 수 있게 되고,
파리 브레드는 윤일남이는 능력 좋은 장수를 영입해 시장 선두주자인 티아라 베이커리를 박살 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네스트], [쟈르뎅], [파리 브레드], [윤일남]. 이 네 주체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상황. 그럼에도 일남은 쉬이 대답하지 못한 채 침묵을 유지했다.
“… 그 사건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티아라 내부에서도 금기시되는 이야기였을 텐데.”
“정보의 소스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 손을 잡느냐, 잡지 않느냐다. 나쁜 조건은 아닐 텐데?”
일남은 조용히 서류에 적힌 인수 희망가를 쳐다봤다.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가치가 하락할 게 분명한 미래 상황을 봤을 때, 더 쳐준 편에 속했다. 그에 더해 복수의 기회까지 주어진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좋은 조건이라고 봐야 옳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쉬이 승낙하지 못했다.
“당신 아래 있는 사람들 때문인가?”
물음에 대한 답 대신,
일남은 잠시 이쪽을 쳐다보곤,
조용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경영자라는 자리의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것처럼 결재만 한 뒤 구경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의사결정권에 준하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랐고,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직원들 역시 신경 써야 했다.
그렇기에 일남 역시 장군으로서 자기를 믿고 따라준 부하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 여기서 내가 복수에 눈이 멀어 저 선택을 받아들인 순간,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이들을 배신하는 꼴이 된다.’
특히 지금 남은 쟈르뎅의 창립 멤버는 숙청 당시 다른 제과업체로 이직하지 못한 패잔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최강의 장군이 이끌었던 이들이었기에 그 패잔병들 역시 수준이 꽤 높았으나… 준성에게도 마음에 드냐에 관한 것은 별개의 문제리라.
이에 준성은 일남에게 확신을 주기로 했다.
“티아라 베이커리를 분쇄할 동안, 당신이 품었던 사람들은 내가 대신 안고 갈 것을 약속하지. 당신이 날 어떻게 봤든 상관없어. 적어도 난 내가 뱉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다.”
애초에 이 유통라인을 굴리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했다.
몇몇 능력 없는 관리직을 자르면 모를까, 준성은 처음부터 쟈르뎅에 있는 직원들을 끌고 갈 생각이었다.
게다가 어디 그뿐이랴?
‘쟈르뎅의 직원들은 일남을 통제할 수 있는 목줄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일남을 제어하기 위한 볼모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제 사람을 엄청나게 아끼는 일남이었으니 보나 마나 효과적이리라.
직원들을 챙겨준다는 말이 통했던 걸까?
윤일남의 눈에 잠시나마 투지가 스쳐 지나갔다.
비록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이빨과 발톱은 무뎌졌지만, 적어도 그의 눈에는 여전히 맹수 같은 기운이 넘쳤다.
‘… 티아라에게 복수할 기회라?’
그 날 이후로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 날 이후로 얼마나 고통받았던가?
그 날 이후로 얼마나 많은 날 동안 복수를 꿈꿨던가?
일남은 매력적인 제안에 흔들렸지만,
그렇다고 그 제안을 덥석 물지는 않았다.
사람은 본디 나이가 들면 신중해지기 마련이었기에.
“… 생각할 시간을 좀 주게.”
“마음대로 해. 하지만 길게는 안 돼.”
준성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저 호랑이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뿐.
하지만 안 좋은 결과가 돌아올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
준성이 떠난 뒤.
업무가 끝난 뒤 쟈르뎅의 창립 멤버들이 한 데 모였다.
각각 일남을 따라 명예롭게 싸워준 부사장부터,
불투명한 회사임에도 불평 한 번 안 한 전무와 상무.
그리고 믿음 하나로 따라와 준 모든 이들까지.
일남은 그런 이들을 슥 둘러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 쓰애끼들, 참 늙었다.”
진지한 자리에서 튀어나온 우스운 농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살면서 너무나도 많은 격전지를 건너왔기에 모든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쟈르뎅의 창립멤버들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 에이, 아니죠. 형님만 하겠습니까.
– 벌써 손주까지 봤는데 오죽하겠습니까?
– 우리 이미 다 늙었습니다. 한창때가 아니에요.
창립 멤버의 막내가 쉰이 넘었고,
그 수장인 일남은 나이가 벌써 일흔이었다.
말 그대로 베테랑 중의 베테랑만 남은 거였다.
“있잖냐… 늙은 나이에 주책일 수도 있다만은… 오늘 회사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 거기에 조건이 하나 붙었지.”
이후 일남은 준성이 약속한 복수를 입에 담았다.
그러자 가벼웠던 사무실의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만 옆집 아저씨 같던 창립 멤버들의 눈에 귀기(鬼氣)가 서렸다. 누가 윤일남 아래에서 경쟁자를 분쇄하던 귀신들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똑같았다.
“인수 가격은 나쁘지 않다. 팔면 모두 나눠 가질 생각이다. 그리고 네스트 측에서 고용 역시 보장해줬다. 내가 허튼짓 못 하게 잡아둘 생각인 것 같으니, 거짓은 아닐 거야.”
일남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옛말에 사람이 늙으면 흘려보내는 것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지만… 나는 아직 나이를 덜 먹은 모양이다. 그 시퍼렇게 젊은 꼬맹이가 복수할 기회를 준다니까 심장이 뛰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룹의 알토란인 티아라 베이커리를 깨부수고, 총수에게 왜 그랬느냐 물어보고 싶더구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그래서 나는 가고 싶다. 하지만 이 회사가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너희의 의견을 물어보고 싶구나. 어쩔 테냐?”
그 말에 침묵이 내려앉기도 잠시.
창립 멤버들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 사실 뒤가 구리긴 합니다만, 형님께서 가신다면 막진 않겠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일해봐야 얼마나 더 합니까? 그럴 거면 끝내기 전에 하고 싶은 거 해야죠.
– 저는 갑니다. 티아라 새끼들 조질 수 있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습니다. 가실 때 저 좀 데려가 주십시오.
– 어차피 사장님 아니었으면 여기저기 헤매다가 공장이나 들어갔을 겁니다. 저는 어딜 가든 끝까지 함께 갈 겁니다.
– … 얘기 들어보니까 네스트 연봉 세던데. 가죠. 최근에 마누라가 직장 잘려서 돈 필요했는데 잘됐네요. 마침 우리 애들 대학 등록금 때문에 목돈도 필요했는데, 회사 인수대금 나눠 받을 수도 있으니 좋기도 하고요.
일남이 먼저 그들을 챙겨줬기 때문일까?
창립 멤버들은 딱히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반대하지도 않았다. 아마 따진다면 동의한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이에 일남은 퍽 미안하면서도,
동시에 퍽 고맙다는 복잡한 표정으로 웃었다.
“쓰애끼들… 고맙다. 고마워…”
*
나흘 후.
준성에게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 그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귀신 들린 호랑이가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 윤일남이었다. 이에 준성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신 선택을 한 겁니다.”
그렇게 귀신 들린 호랑이가 준성의 왕국에 합류했다.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 경쟁자들을 분쇄하리라.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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