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90
– 91화 –
준성이 정성스레 만든 전술핵이 꽂힌 이후.
네스트의 두 경쟁자는 잔뜩 위축됐다. 그걸 증명하듯 핸썸 플레이스 팀 분위기는 거의 반쯤 초상이 난 분위기였고, 몇몇 점주들은 본사에 찾아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스타벅스 역시 겉으로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척을 했지만, 실상은 이번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웅크린 것에 불과했다.
그러한 가운데…
이태원동,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
마예라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 부르셨다고요.”
“그래. 어떻게 잘 지냈느냐?”
그 말에 마예라는 ‘다 알면서 뭘 묻습니까?’라는 표정으로 잠시 광위를 쳐다봤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핸썸 플레이스 얘기는 들었다. ”
“…”
“고집을 부린 결과가 겨우 이거더냐? 실망스럽구나.”
“…”
“내가 대영은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그룹이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지 않았더냐. 대영은 그깟 작은 사업을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여기가 어디 구멍가게인 줄 아느냐!”
마예라는 ‘구멍가게’이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마광위는 대한민국 최고 기업집단의 총수답게 굉장히 오만했는데, 까닭에 그의 전문분야를 벗어난 사업은 전부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 너는 차후 대영의 총수가 될 몸이다. 그러니 소꿉장난 같은 일은 그만하고,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고쳐먹거라.
어렸을 적부터 귀에 딱지도 얹도록 들었던 말.
이에 마예라는 대들 듯 입을 열었다.
“이길 수 있었어요. 시간과 예산만 조금 더 있었다면…”
“쯧, 한심하구나. 세상에 압도적인 자본과 시간으로 이기지 못할 사업이 어디 있더냐? 저 둘만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를 앉혀놔도 높은 확률로 이기는 게 사업이다! 혹여 네가 진 이유가 만약 시간과 자본이라고 생각한다면, 네 녀석은 절대 대영 총수가 될 수 없다. 혹여 되어서도 안 되고.”
광위는 분이 덜 풀렸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패배는 능력이 부족한 자들의 변명에 불과해. 정말로 이길 각오로 싸웠더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느냐? 그럼에도 졌던 게냐? 그렇다면 그건 네가 재능이 없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다!”
“감히, 감히 어디 대영의 핏줄로 태어나 그런 짧은 생각을 입에 올리느냐! 우리가 어떤 가문이더냐! 한국의 정점이다. 그 누구보다도 탐욕스럽게, 그 누구보다도 오만하게 이 나라 정점에 오른 자들이란 말이다!”
혀끝에 독이라도 바른 듯 신랄한 비판.
사실 광위는 커피 사업에 마예라를 꽂았을 때부터,
말도 안 되게 실컷 깨질 것이라 생각하고 보냈었다.
그럼에도 광위는 꼭 큰 실망이라도 한 것처럼 연기했다.
‘여태껏 딸이라고 너무 온실 속에서만 키웠어. 그래서 세상 물정을 몰라 너무 연약하지. 작은 위기에도 크게 흔들려. 그러니 강해져야 할 거다, 딸아. 그러기 위해 널 이준성 그놈에게 붙인 게고 말이야. 이제 어떻게 할 테냐?’
마광위는 기대된다는 듯 제 딸을 내려다봤다.
예라는 분했는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거리기도 잠시.
뚝- 뚜둑- 뚝-
이내 소리 없이 눈물 몇 방울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독기가 가득한 눈으로 광위를 쳐다봤다.
“지금 제가 뭐라고 해도 아버지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아요. 그러니 변명은 하지 않을게요. 근데… 근데 너무 분해요. 그깟 네스트라는 작은 기업. 조금만 노력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마예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단 말인가?
예라는 삶에 있어서 단 한 번도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장애물은커녕, 벽을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대영 그룹의 외동딸로서 그저 탄탄대로만 걸어왔을 뿐이다.
다른 이들이 깔끔하게 닦아놓은 고속도로.
그게 바로 예라가 살아온 삶이었다.
살면서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한 적 없었고,
살면서 이기고 싶은 이에게 진 적 또한 없었다.
그랬던 마예라가 난생처음 벽을 만났다.
참 낯선 기분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작고 허름해 보여 ‘툭’ 치면 부서질 것만 같던 [네스트]라는 벽.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있는 힘껏 두들겨 봐야 제 손만 아플 뿐이었고,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정권에 주먹이 으스러졌다.
게다가 그뿐이던가?
난생처음 걸레짝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기까지 했다.
여태까지 이겨만 왔기에 더더욱 뼈아픈 패배. 그게 꼭 목에 걸린 가시처럼 마예라의 가슴에 흉터처럼 남아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쩔 테냐?”
“… 말한다면 들어주실 거예요?”
“들어 봐서.”
순간 마예라는 핸썸 플레이스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네스트와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이내 포기했다.
‘네스트의 이준성… 강해. 내가 봐왔던 사람 중 그 누구보다도. 다시 싸운다고 해도 질 가능성이 커. 지금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비록 자존심이 사정없이 짓밟히긴 했지만,
그녀는 감정에 휘둘릴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준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도 않았다.
‘그래, 내가 졌어. 이번엔. 하지만 다음은 다를 거야.’
그녀는 비록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꼭 준성을 이기겠노라 다짐했다.
“… 복수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불가능해요. 내 능력이 떨어지니까. 아버지 말이 맞아요. 아버지가 주신 권력으로 그 사람을 이겨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이길 정도로 나아질 수 있는지. 복수는 그 이후로 미룰게요.”
“알겠다. 그럼 이제 사춘기 계집애마냥 만지던 커피는 손 떼고, 대영으로 돌아와라. 자리를 만들어주마. 그리고 때가 되면 그 녀석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지.”
광위는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이런 결과를 내준 이준성이 더더욱 탐이 났다.
‘이준성… 보면 볼수록 탐나는 녀석이로다. 내 자식들 옆에 붙여 대영의 기둥으로 키우고 싶거늘… 쯧. 아쉽구나.’
*
얼마 후.
파견으로 있던 마예라가 대영으로 되돌아갔다.
그 결과 핸썸 플레이스를 향한 총수의 관심 역시 사그라들었고, 동시에 그룹 단위의 전폭적인 투자 역시 멈췄다.
“… 쯧.”
CK 마맹덕 총수는 상황을 지켜보며 혀를 찼다.
사실 그깟 네스트는 자본으로 짓누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예상은 너무나도 쉽게 빗나갔고… 그 잘못된 예상의 결과는 상상 이상으로 참혹했다.
“인재가 없어, 인재가… 바보 같은 새끼들.”
“핸썸 플레이스는 어떡할까요?”
“일단 시작한 거 내버려 두되, 크게 투자는 하지 마. 보니까 네스트 그 새끼 그거 미친개네. 그런 놈들은 제 영역이 조금이라도 침범당하면 거품을 물지. 그러니 전면적인 싸움을 해봐야 출혈만 늘 뿐이다. 느긋하게 가야지.”
마맹덕은 핸썸 플레이스의 확장 정책을 폐지.
목표를 네스트와의 경쟁이 아닌 생존으로 전향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기업에 준성의 전략 앞에 무릎을 꿇었다.
*
같은 시각.
스타벅스 한국 지부장은 ‘쓰읍’ 소리를 냈다.
‘… 네스트. 생각보다 강적인데.’
사실 스타벅스는 처음 한국 시장에 상륙할 때만 하더라도, 네스트를 그저 ‘지역 터줏대감’ 정도로 생각했었다.
특히 거의 집념에 가까울 정도로 중저가를 선호했기에, 딱히 포지셔닝이 겹칠 일도 없어 극심한 경쟁 없이 서서히 시장을 잠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네스트는 스타벅스와 핸썸 플레이스가 어느 정도 성장하길 기다렸다가, 커다란 폭탄으로 쌍으로 엿을 먹여버렸다.
이에 스타벅스 한국 지부장은 생각은 바꾸기로 했다.
‘네스트는 복어다. 가만히 있을 땐 약해 보이지만, 우리가 약점을 노출하는 순간 집요하게 파고들어 맹독을 날린다.’
솔직히 이쯤 되니 깨달을 수 있었다.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크게 고전할 거라 말이다.
‘일단 본사에 연락을 넣어놔야겠다.’
그렇게 스타벅스가 네스트를 ‘그저 그런 지역 강자’에서 ‘주목할만한 경쟁자’로 격상시켰다.
*
반면 네스트는 축제 분위기였다.
다큐멘터리 방영 당시만 해도 직원들에게서 약간의 불안이 싹트기도 잠시. 네스트는 매출 타격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 경쟁자들은 싹이 죄다 말라버렸기 때문이었다.
분명 방법이 과격한 극약처방이긴 했지만,
그만큼 효과가 뛰어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걸 증명하듯 김재민은 신이 나 있었다.
“대표님! 핸썸 플레이스의 팽창이 멈췄습니다! 얘기 들어 보니까 CK 쪽에서 계획을 변경한 것 같습니다.”
준성 역시 만족스러운 결과였기에 미소를 지었다.
“좋은 소식이군요.”
“역시 대표님이 옳았습니다! 쟈르뎅에 이어 핸썸 플레이스 그리고 스타벅스까지! 기분 좋군요! 대기업을 향한 승리라 그런지 더욱 짜릿하네요!”
“좋군요. 그래서 매출 추이는 어떻습니까?”
반면 준성은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깟 대기업 이제부터 여러 번 꺾을 텐데 대수냐는 듯한 태도. 재민은 살짝 뻘쭘했는지 ‘커흠’ 소리를 냈다.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다시 상승세입니다. 특히 핸썸 플레이스, 스타벅스와 인접한 매장들은 매출 상승 폭이 훨씬 두드러졌고요.”
이번 전략에 공을 들인 만큼,
결과 역시 그에 준할 정도로 달콤했다.
이에 준성 역시 가볍게 남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다른 일을 하려는 찰나…
우으응- 우으응- 우으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예, 이준성입니다.”
– 나다. 술 한잔 하자.
밑도 끝도 없이 술을 마시자는 말. 평소라면 어이가 없는 내용에 전화를 끊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는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 마광위?’
어떻게 저 목소리를 잊을 수 있으랴.
회귀 전 거의 인생을 함께한 동반자이자,
제 목에 칼을 박아넣은 망나니 새끼의 애비이며,
언젠가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하는 산 중 하나였다.
“뜬금없군요. 제가 당신이랑 술을 왜 먹습니까?”
억만금을 줘도 가질 수 없는 대영 총수와의 술자리를 단칼에 거절했기 때문일까? 마광위는 커다란 웃음을 터트렸다.
– 크하하하! 언제 봐도 유쾌한 놈이구나. 내 오늘 기분이 좋으니 그 정도 반항은 참아주마.
“글쎄요. 마지막으로 뵀을 때 우린 적이 된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총수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셨고요.”
– 그래. 그랬었지. 그땐 뭣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은 놈이 퍽 꼴 보기 싫었거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어차피 네놈도 회사 굴리니 알 것 아니더냐? 장사에 피아(彼我)가 어딨더냐, 손익(損益)만 있을 뿐이지. 어차피 장사치들인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익이 된다면 원수와도 친구가 될 수 있고, 손해가 된다면 죽마고우도 철천지원수가 될 수 있는 게 경영이지.’
고민하기도 잠시.
어차피 당장 급한 일도 없거니와,
마광위는 언젠가 진검 승부를 해야 할 상대였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조금씩이나마 아군이 아닌 적으로서의 마광위를 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어디로 가면 됩니까?”
– 사람을 보내마.
…
늦은 저녁.
본사 앞에 고급 세단과 함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타시죠. 그분께서 기다리십니다.”
언제 봐도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차가운 인상.
피승원 비서였다.
“고생 많으십니다. 한 사람의 손발이 되는 게 참 쉬운 건 아닌데 말이죠.”
준성은 옛 생각이 나서 농담을 툭- 던졌지만, 피승원은 그저 냉혈동물 같은 눈으로 잠시 쳐다봤을 뿐. 그 어떠한 대답도 돌려주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미없는 건 여전하군.’
고급 세단 뒷좌석에 앉아 편하게 있길 몇 분.
저번과 달리 이번에는 차가 이태원동으로 향했다.
이에 준성은 ‘본진’으로 갈 거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광위의 개인 집무실이 나타났다. 마치 사극 세트장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도 잠시.
피승원이 차에서 내리며 물티슈를 건넸다.
“이번에는 귀빈으로 오신 게 아니시니 절차에 따라 주십시오. 일단 지갑을 포함한 모든 소지품을 건네주시고, 특히 녹음기 같은 전자기기는 숨기지 말아 주십시오. 손은 여기 있는 물티슈로 닦으시고, 대화 중 총수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술은 총수님께서 허락하실 때만…”
이에 준성은 거기까지 듣고는 틱 쳐냈다.
저 의전이 뭘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바로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는 의전이다.
‘하, 늙은이가 주책이군. 애새끼도 아니면서 말이지.’
분명 저번에 제안을 거절했으니 사소한 부분에서 툴툴대는 것이리라. 대영을 이끄는 사람 치곤 속이 참 좁았다.
“쓸데없는 절차 집어치우죠. 누가 보면 네스트가 대영 계열사인 줄 알겠군요. 저는 어디까지나 동등한 위치로 대영 총수를 보러 온 거지, 구걸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당돌한 거절.
피 비서는 2초 정도 침묵했다가 말을 이었다.
“들어가십시오.”
집무실 겸용으로 쓰이는 개량 한옥에 들어갔다.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술상과 함께 마광위가 보였다. 그는 준성을 보자 꼭 갖고 싶은 물건을 보듯 눈을 빛냈다.
“왔니? 앉아라.”
“용건부터 듣죠. 앉는 건 그다음에. 시답잖은 얘기를 할 거면 가겠습니다. 시간 아깝거든요.”
“언제봐도 비싸게 구는 녀석이군. 네 시간이 아무리 값져도 과연 나보다 더할까? 콧방귀 그만 뀌고 앉아라. 오늘은 일 얘기가 아니라, 즐기려고 불렀으니까.”
얼마 전 준성은 예라를 사정없이 두들겨 패지 않았던가?
그 마당에 애비라는 사람이 제 딸을 팬 놈에게 ‘즐긴다’라는 말을 한다? 차라리 호랑이 밥상에 올라온 큼지막한 브로콜리가 덜 이상해 보일 상황이었다.
“뜬금없군요.”
“마예라, 내 딸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