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
회귀해서 건물주-1화(1/740)
회귀해서 건물주
60대 후반인 한 남자, 그리고 50대 초반인 또 한 남자.
두 사람의 대화 모습은 극과 극이었다.
흔히 말하는 갑과 을, 건물주와 세입자다.
“난 분명히 말했네.”
“아니, 그 말씀은 저보고 장사 그만하라는 얘기 아닙니까?”
“그거야 김 사장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고, 난 분명히 통보했네.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게. 아, 그리고 철거는 돈 들어갈 테니 굳이 안 해도 되네.”
건물주 이세호는 그 말을 끝으로 휑하니 사라졌다.
현성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무슨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인가. 다음 달이 만기라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뭐?”
철거는 굳이 안 해도 된다고?
지금 그 말은 현성이 나가고 나면 이 업을 그대로 누군가 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아! 갑자기 이게 무슨······.”
자그마치 10년을 이곳에서 장사를 했다. 더군다나 3년 전에 리모델링까지 해서 만화카페로 바꿨다. 그 전엔 대여점이었고.
4년 전, 그러니까 정확히 2015년 여름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이 폭염으로 몸살을 앓았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조사 결과, 2015년 7월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웠던 달로 기록됐다고 한다.
NASA가 1880년부터 세계 평균 기온을 재기 시작한 이래 가장 더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고,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지에서도 홍수와 가뭄 등 기상 이변이 속출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 만화업계에 기현상이 하나 일어났다.
열대야로 인해 숙면을 취하기 어려운 밤이 지속되자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잠도 잠이지만 전기세 때문이었다. 밤새 에어컨을 켰을 경우, 누진 전기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전국 만화방과 만화카페가 유례없던 호황을 누리게 됐다.
그러자 그해 하반기부터 전국적으로 광풍이라 할 정도로 만화카페 붐이 일기 시작했다.
해마다 이상기온 현상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에서 수요가 있으니 공급은 당연했다.
현성 또한 당연히 돈이 보이는데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현성은 어찌하다 보니 이쪽 업계에 몸담은 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비디오 대여점부터 시작했으니, 청춘을 다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자랑할 것도, 그렇다고 흠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의 삶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종이책 시장은 하루가 무섭게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폐업까지도 고민하던 순간에 때 아닌 이상기온이 만들어준 기회였다.
물론 고민은 깊었다.
될까?
일시적인 현상은 아닐까?
신중을 기하기 위해 전국 유명한 체인점들을 다니며 벤치마킹까지 끝냈다. 그러기를 3개월.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지, 막상 결정을 내리자 공사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공사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철거부터 시작했다. 그다음엔 도색, 전기, 다락방 공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닥까지, 남들은 한두 달씩 걸리는 걸, 단 20일 만에 공사를 끝냈다.
주택가의 특성을 살려 대여와 카페를 접목시켰다.
기존의 대여 손님들을 무시할 수도 없었고 무시해서도 안 되었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이니 말이다.
50평이라, 조금 작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화려한 외향보다는 철저히 실리 위주로 방향을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의 방문 빈도수는 처음보다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한때 유행일거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품도 빠지고 나면 조정국면이 찾아오리라는 판단이었다.
현성의 예상은 거의 적중했다.
거품이 빠지자 자본으로 밀고 들어왔던 대형 체인들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다. 일부 오픈 업자들의 달콤한 말에 현혹돼 오픈한 것이 문제였다.
과다한 창업비에 비싼 임대료, 그리고 풀 알바로 인한 인건비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운영비는 그들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도 현성은 시작 전에 충분히 고민했던 부분들이라 어느 정도는 피해갈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고정적인 대여 손님들의 뒷받침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주택가 특성상 어린 아이들의 접근성이 용이해지자, 이들의 방문이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다락방에 놀러 온다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노후대책이라 생각하고 친구한테 부족한 공사비용까지 빌려서 공사를 끝냈고, 빌렸던 돈도 대부분 갚았다.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복병이 나타난 것이다. 사실 몇 달 전부터 불안하기는 했었다. 다름 아닌 건물주 이세호의 행동 때문이다.
월세도 통장으로 꼬박꼬박 보냈기에 매장에 올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꾸 기웃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뭐라 말할 처지도 아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불안했지만 애써 모른 체했다.
결국, 그 불안감이 오늘 터지고 만 것이다.
[임대계약 연장 불가!]만기 한 달을 앞두고 건물주 이세호로부터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미친 새끼!”
현성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터져 나왔다.
욕심이 났겠지. 쉬워 보였을 테고.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날로 처드시겠다?
그건 안 되지! 아니 못하지!
“엄연히 임대차보호법이 있는데······.”
하지만 말뿐이었다.
막상 닥치고 나니 솔직히 불안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심장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벌컥벌컥.
현성은 약통에서 알약을 하나 꺼내 입에 넣고는 물을 한 컵 마셨다.
휴우!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분쟁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을까? 종일 그 생각뿐이었다.
최소한 인테리어 비용이라도······.
생각이 거기까지 들자 앞이 캄캄했다.
TV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치니 그 압박감에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
“벌써?”
시계를 보니 마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어떡하든 상념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해서 털어낼 게 아니란 얘기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비 온다고 좋아했을 텐데, 오늘은 이 비마저 자신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집사람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하아!
집에 있는 아내를 생각하니 한숨이 저절로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내 윤지수는 현성보다 일곱 살이 많다. 흔히 얘기하는 연상연하 커플이다.
하지만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했던가?
살면서 그게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너무 늦게 만났다는 정도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가 현성의 나이 서른셋이었고, 윤지수는 마흔이었다.
살면서 아내 윤지수가 늘 하던 말이 그 소리였다.
–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그런 아내 윤지수가 요즘 좀 아프다.
몇 년 전에 고관절 수술한 부위가 요즘 들어 자꾸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별일 아니라고 하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선 안쓰럽기만 하다.
그럴 때면 농담처럼 아내 윤지수는 말하곤 했다.
– 늙느라 그런다고.
그래놓고는 본인도 멋쩍은지 웃곤 했다.
그러면서도 아침 출근할 때면 현성이 신경 쓸까 봐 항상 웃어주는 윤지수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싶었다.
두 사람 밥 먹고 살고, 아프면 병원 가고, 가끔 삼겹살에 소주 한잔씩 나누며 서로 위해주고 서로 챙기면서 말이다.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두 사람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고,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욕심이었던 걸까.
삑.
주차장에 도착해 차 문을 열고 1톤 포터에 올랐다. 비록 년식은 10년을 넘었지만, 큰 고장 없이 지금까지도 잘 타고 있는 애마다.
따르릉.
시동을 막 걸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아내 윤지수였다. 애써 태연한 척 전화를 받았다.
“어, 여보.”
– 왜 이렇게 안 와?
“이제 막 출발하려고.”
– 뭐야? 난 비 오길래 당신이 좋아하는 김치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평상시 같았으면 집에 도착할 시간이었기에 시간에 맞춰 아내는 김치전을 준비했던 것이다. 물론 막걸리도 냉장고 안에 있을 테고 말이다.
‘사는 게 뭐 별거 있나, 이런 게 사는 거지.’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 미안, 빨리 갈게.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오네.”
– 그러게 말이야. 서두르지 말고 조심해서 와.
“······응, 알았어.”
–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아내 윤지수는 현성의 목소리에서 평상시와 다르게 힘이 없음을 느꼈다.
더군다나 그 좋아하는 김치전을 해놨다고 하는데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기에 더욱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상시 같았으면 목소리 톤부터 바뀌었을 텐데 말이다.
“아니야, 무슨 일 있을 게 뭐 있어······.”
– 알았어. 운전 조심하고.
“······ 지수야!”
현성은 갑자기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아내 윤지수의 이름을 불렀다. 좀처럼 이름을 부를 일은 거의 없기에 부르는 자신도 조금은 어색했다.
하지만 왠지 불러보고 싶었다.
– 갑자기 이름은 왜 부르고 그래? 낯설게.
“그냥 불러보고 싶어서,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그리고 ······사랑해!”
– 당신······, 알았어. 나도 사랑해.
아내 윤지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참았다. 그러자 전화가 끊겼다.
“뭐지? 이 사람?”
왠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몇 번씩이나 먼저 사랑한다고 해야, 겨우 그것도 부끄러운 듯 억지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말이 더욱 귀하게 생각됐었고, 진심으로 들렸다.
그런 사람인데, 도대체 오늘은 무슨 일인지······.
현성이 주차장을 막 빠져나오려 할 때였다.
따르릉.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당연히 아내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금방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 뭐야? 김현성, 나야.
“어, 정우구나. 이 시간에 웬일이야?”
– 자다가 깼어. 별일 없지?
둘도 없는 고향 친구 이정우다. 공사비용이 부족해서 부탁했던 그 친구다.
“왜, 꿈꿨냐?”
가끔 이상한 꿈만 꾸면, 별일 없냐고 전화하는 녀석이다. 아마 오늘도 꿈을 꾼 게 틀림없을 것이다.
– 아니, 그냥. 별일 없으면 됐고.
“정우야!”
– 야밤에 무슨 친구 이름을 그렇게 찐하게 부르고 그러냐?
“친구야, 고맙다!”
– 이 자식이? 너 혹시 갱년기야?
“자식, ······그만 자라, 다음에 내려가면 진짜 찐하게 한잔 마시자.”
– 그래, 그러자. 오늘도 수고했다. 들어가라.
이 목소리, 언제 들어도 반갑고 기분 좋은 녀석이다. 나이를 먹고도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다. 열 친구 안 부러운 그런 녀석이다.
주차장을 빠져나온 현성은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늦었는데 친구 이정우와 통화하느라 시간이 더 지체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바로 받았다.
집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뻔했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아내의 얼굴을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한 것이다.
무슨 말을 어떡해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후후!
안정을 찾기 위해 일단 길게 심호흡을 했다.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이제 이 언덕만 넘으면 집이다. 힘내자, 아자!”
현성은 일부러 큰소리를 지르며 손에 힘을 줬다. 그리 만만하게 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현성이 탄 포터가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로 막 들어설 때였다.
번쩍!
주위가 갑자기 환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우르르······ 쾅, 쾅!
소나기에 번개에 천둥 벼락까지, 오늘 제대로 날을 잡은 듯했다.
간신히 집 근처에 도착해 주차할 곳을 찾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용케 전봇대 옆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막 주차를 끝냈을 때였다.
번쩍!
번개 불빛이 이렇게 밝은 줄은 50평생에 처음 볼 정도로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곧이어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꽈과과광! 쾅! 쾅!
빠직! 번쩍!
“뭐야?”
갑자기 머리맡 전봇대에서 불꽃이 튀었다.
“어?”
지붕 위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툭!
갑자기 눈앞에 굵은 전선이 나타났다.
툭! 툭!
전선이 움직일 때마다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상황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이라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님을 바로 깨달았다.
턱!
왼손으로 차 문고리를 잡고 당기려할 때였다.
“윽!”
왜 하필······, 놀란 탓일까? 그때 갑자기 심장이 쪼여오기 시작했다. 급하게 약통을 챙겼다.
“어?”
뚜껑을 여는 순간 약통을 놓치고 말았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고개를 숙여 손을 뻗었다.
간신히 약통이 손끝에 닿을 때였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차 지붕 위로 뭔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현성의 등과 어깨를 강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전봇대가 부러진 것이다.
“어?”
현성은 순간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꼈다.
설마 이대로?
아니겠지!
“여보, 지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