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0)
회귀해서 건물주-10화(10/740)
현성은 박희철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
“아저씨, 지금 몇 시입니까?”
마음 같아서는 육두문자라도 섞어서 따지고 싶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라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안 해도 엿 먹일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현성의 말에 박희철은 어이가 없었다.
“뭐가 어째? 어린놈이 어디 싸가지 없이 어른들 일에 끼어들어?”
“지금 저보고 싸가지라 했습니까?”
현성은 정면으로 박희철을 쳐다봤다. 눈빛은 날카로웠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기에 크지 않았다.
그게 더 화가 났는지, 박희철의 얼굴로 피가 쏠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말도 못 하고 식식거리는 박희철이다.
그러자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싸가지를 찾더라도 한 시간 뒤에 다시 오세요.”
“뭐가 어째?”
“지금 7시니까 8시에 다시 오시라고요.”
“그, 그게 무슨······.”
박희철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 말이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오라니? 그런 법이라도 있는 건가? 너무나 당당한 현성의 태도에 박희철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현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잘 들으세요. 그러니까 ······.”
현성은 불법 채권추심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침 8시 이전이나 밤 9시 이후에 채무자의 집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연히 불법임을 강조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언급했다.
물론, 이때는 대부업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일 없는 박희철이기에 현성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현성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박희철의 얼굴은 완전 똥 씹은 얼굴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놀란 건 박희철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어머니까지도 어느새 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희철이 누구인가? 그리 호락호락할 위인이 아니었다.
“어디서 헛소리를······.”
현성은 박희철로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차피 이 인간을 한 방에 보내기는 자신도 조금 아깝긴 했다.
어차피 잡아 놓은 물고기다. 그렇다면 좀 더······.
살아온 세월 덕분인지,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번졌다. 물론 입을 살짝 가려주는 정도의 센스는 잊지 않았다.
입을 손바닥으로 슥 훔치며 현성이 물었다.
“아저씨, 등록증 있어요?”
“······무슨 증?”
박희철은 속으로 뜨끔했다. 이런 경우가 저번에도 한 번 있었다. 돈을 빌려 간 인간이 갑자기 등록증을 요구했었다. 알고 보니 그 아들이 어디 법대를 다닌다고 했다.
그때는 이자 몇 푼 깎아주고, 어찌 넘어가기는 했는데······.
오늘 이 어린 녀석의 입에서 그 말을 또 들으니 놀라는 건 당연했다.
등록증? 당연히 없다.
그런 거엔 관심도 없었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동네에서, 그리고 내 돈 내가 빌려주고 이자 받겠다는데 무슨 등록증?
자고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박희철이 세게 나갔다.
“내 돈 내가 빌려준다는데, 무슨 등록증? 어디서 어린놈이 벌써부터······.”
박희철은 말을 하다 중간에서 끊었다. 이유는 황당 그 자체, 저만치 떨어져서 히죽대는 현성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어린놈의 모습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살아보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입을 벌려서 크게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웃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왕재수다.
일그러진 박희철의 표정을 확인한 현성이 한 발을 뗐다.
저벅.
현성이 다가오자 박희철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현성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허!”
박희철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물러날 의지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몸은 이미 뒤로 가 있었다.
내년이면 환갑이다. 어린놈한테 이게 무슨 개망신이란 말인가.
기세에 밀리고 말았다. 아니라고 박박 우기고 싶은데 몸이 그렇게 저절로 움직인 것이다.
반면,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박희철을 응시했다.
그리곤 강도를 조금 더 높였다.
흠흠.
말이 길어질 거 같아 일단 헛기침으로 목부터 풀었다.
“박희철 씨!”
현성은 박희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3쌍의 안구가 동시에 번뜩이기 시작했다.
정면에 있는 박희철이야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앞으로 이동해 현성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궁금한 건 제일 못 참는 어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현성아······.”
“김현성!”
그 뒤로 바로 아버지가 현성의 이름을 불렀다.
박희철은 할 말을 잊은 듯 눈만 끔뻑였다. 붕어가 따로 없었다.
현성은 그런 박희철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등록증 없는 건 그렇다 칩시다. 한 동네에서 그 정도야 문제가 되겠습니까?”
“흠흠······.”
딱히 할 말이 없자 박희철은 괜히 헛기침만 남발했다. 사실 등록증이 필요하였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게 있는지도 사실은 의심쩍기도 했다.
하지만 떳떳하지 않기에 일단 현성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때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문제는······.”
“문제? 무슨 문제?”
“다만, 그 도둑놈 심보가 문제라는 겁니다.”
“뭐, 도둑놈?”
이 싸가지가 이젠 대놓고 도둑놈이란다. 처음 이름을 부를 때도 기가 막혔는데, 이젠 도둑놈? 이러다가 좀 더 있으면 쌍욕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때 다시 현성이 박희철의 이름을 불렀다.
“박희철 씨!”
이 개자식이 보자보자 하니 사람을 뭐로 보고······.
박희철은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밀리면 끝일 거 같았다. 그래서 인상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성의 입이 먼저 열렸기 때문이다.
“이자가 이게 뭡니까? 이게 지금 한동네에 살면서 할 짓입니까?”
“뭐, 짓?”
“사람이 그렇게 사는 거 아닙니다. 가진 사람이 좀 베풀고 살고 그러는 거지,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제 눈에선 피눈물 난다는 말도 모르십니까?”
물론 현성은 알고 있었다.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봤고, 충분히 당해봤다. 어쩌면 그래서 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봤자, 박희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자신 혼자만의 절규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발악은 추할뿐이란 것도 알고 있다.
빚?
갚는다.
그까짓 거 갚으면 된다.
예전 기억을 되짚어 산삼만 찾으면 된다. 그러면 이런 인간은 더 볼 필요도 없다.
‘그래! 이제 끝내자. 더 이상은 추할뿐이다.’
현성은 아버지한테 건네받은 각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박희철이 보란 듯이 찢기 시작했다.
북.
한 번 찢자, 각서가 보란 듯이 반으로 갈라져 두 장이 되었다. 두 장을 겹쳐 다시 또 찢었다. 그리고 다시 찢고, 반 접어서 또 찢었다.
북, 북······.
더 이상 찢을 수 없을 때까지 잘게 찢었다.
가난에 대한 원망이었고 절규였다.
“이, 이게 무슨······.”
박희철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저 입만 벌릴 뿐, 아무 소리도 못 내고 현성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휙!
현성은 보란 듯이 있는 힘껏 손을 위로 뿌렸다.
하늘로 뿌려진 하얀 종잇조각이 현성과 박희철,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변으로 흩날렸다.
그때였다.
짝!
누군가 현성의 뺨을 후려갈겼다.
움직인 사람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현성의 뺨을 후려갈긴 것이다.
“김현성!”
현성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목소리뿐만이 아니라 현성을 때렸던 오른손도 떨고 있었다.
우득!
아버지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릿한 향이 느껴졌다.
처음이다.
자식의 얼굴에 손을 대기는.
그럴 자격이나 있나?
오죽했으면 어린 녀석이 이렇게까지 했을까?
뭐 하나 제대로 해준 적도 없는데······.
아버지의 동공이 마구 흔들릴 때였다.
스윽.
현성은 떨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잡았다.
“아버지! 저는 괜찮습니다.”
“현성아!”
“저는 괜찮은데, 아버지는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아비가 못나서 ······.”
현성은 아버지의 눈을 바라봤다. 아버지의 눈 속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예전엔 몰랐다. 그저 당연할 줄로만 알고 모든 걸 받기만 했었다.
아버지 나이가 돼서야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그건 바로 아버지의 희생이었다.
현성은 잡았던 아버지의 손을 풀고 박희철을 바라봤다.
저벅.
박희철 앞으로 다가간 현성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박희철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기를 잠깐.
현성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빚, 이번 달까지 갚습니다. 틀림없이!”
“머, 뭐라고······.”
“틀림없이 갚겠다고 말씀드리는 겁때.”
“헛! 좋은 말로 할 때······?”
박희철은 황당하기도 하고, 어찌해야 하나 니다. 그러니까 조용히 이 집에서 나가 주세요. 좋은 말로 할 고민스러웠다.
각서는 이미 날아갔다.
그렇다고 지금 이 분위기에서 당장 뭐를 더 요구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냥 더 버티자니 저 미친놈이 뭔 짓을 할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모양새가 영 아니고······.
그때, 현성의 서늘한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안 당합니다.”
“뭐, 이번엔?”
“이번만큼은 우리 송아지 못 끌고 갑니다. 한 번은 당했지만, 두 번은 안 당합니다.”
현성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외양간에 있던 송아지가 없어졌다. 학교 갔다 오면 송아지부터 챙겼던 현성이다.
아버지한테 물었지만, 끝까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그 송아지는 현성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희망이었다. 대학 등록금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희망이 없어진 것이다.
조금 전 각서를 보고서야 송아지의 행방을 알게 됐다.
부르르!
현성의 움켜쥔 주먹이 저절로 떨렸다. 그러자 어머니가 급히 현성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번엔 어머니의 눈과 마주쳤다. 흔들리는 어머니의 눈빛을 봤다. 더는 안 된다고, 어머니는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현성은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리곤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설마 때리기야 하겠어요?”
현성은 일부러 좀 큰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 어쩌면 직접 맞는 것보다 더 치욕적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라도 지난날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흠칫.
박희철은 현성의 말에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더 있다가는 정말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았다.
흠.
짧게 헛기침을 한 박희철이 아버지를 보며 다짐을 받듯 말했다.
“이번 달 말이네. 명심하게.”
“네? 아……, 네.”
박희철은 끝까지 아버지를 향해 입을 놀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의 눈이 뒤집히는 순간이었다.
“꺼지시라고요!”
“머? 뭐…….”
“내 말 안 들려요? 틀림없이 갚겠다는데, 왜 우리 아버지 보고 자꾸 뭐라 그래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현성은 악을 쓰듯 말했다.
“허!”
박희철은 기가 막혔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또 뭐라 하기엔 이 미친놈이 진짜 무슨 짓이라도 할 거 같다는 거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박희철이었다.
그때 현성의 입이 다시 열렸다.
“셋 셀 때까지 여기서 안 나가면, 저도 이제부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현성의 최후통첩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곤 바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박희철은 움찔했다.
이런 미친놈이!
“둘!”
현성의 소리가 더 커졌다. 더 이상 버텼다가는 분명 무슨 사달이 날 듯싶었다.
박희철은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인정할 수 없었지만 우선 안전이 먼저였다.
휘적휘적.
박희철은 어느새 마당을 벗어나고 있었다.
박희철이 나간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현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러고 보니 저 인간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