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01)
회귀해서 건물주-101화(101/740)
101
“일들 안 하고 여기서 뭐 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사채업자 박희철이었다.
“여기서 뵙습니다. 어르신!”
유민철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희철을 맞았다.
인사라고 다 같은 인사가 아니었다. 유민철의 목소리에서 박희철에 대한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정중한 말투였다.
“같이 앉아도 되겠지.”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박희철의 모습에서 예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털털함이 묻어났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안 변한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이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어쩐 일은,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 여기서 저녁이나 대충 때우고 들어가려고 들어왔지.”
“헤헤, 외로움을 타시나 봅니다.”
“허허, 자네도 나이 먹에 보게. 혼자 있는 거만큼 …….”
다음 말은 뻔한 박희철의 신세타령이었다. 살아본 세월 탓인지 모르겠지만 박희철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듯싶었다.
그때 옆에 있던 유민철이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혹시 오 사장님 잘 아십니까?”
“오 사장이라면……, 오상철이 말인가?”
“네, 오 사장님은 어르신을 잘 알고 계신 거 같던데요?”
“흠……, 알지.”
박희철은 잠시 생각했다.
어렸을 적만 해도 별문제 없이 그럭저럭 잘 지내던 친구였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동갑내기 친구다.
그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내 유영숙 때문이었다. 우정보단 사랑이 먼저였으니까.
또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물론, 후회는 없다.
그 후로 두 사람 간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잠시 떠올린 박희철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오 사장은 왜?”
“아, 오늘 일하고 있는데 가게로 왔더라고요.”
“현성 군 가게 말인가? 거기를 왜?”
“김 사장에 관해서 묻길래 저는 그냥 어르신이 소개해줘서 왔다고만 대답했더니…….”
“했더니?”
현성은 순간적으로 유민철을 바라봤다.
얼핏 생각해도 지금 말하는 사람이 이정우의 어머니인 신명순의 분식 가게 건물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은 유민철의 얘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때, 유민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갑자기 김 사장과 어르신의 관계를 묻더라고요?”
“우리의 관계를 말인가?”
박희철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유민철도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대답을 이었다.
“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대답을 드렸지요.”
“뭐라고 그러셨는데요?”
참다못한 현성이 두 사람 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오상철이 가게에 왔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오늘도 확인을 했지만 남이 공들인 가게를 빼앗으면서도 어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아마도 궁금했을 것이다.
현성이 말을 하긴 했지만 직접 확인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다 박희철 얘기까지 꺼냈으니 오상철로서는 두 사람 간의 관계가 더욱 궁금했을 것이고.
유민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보통 사이는 아닌 거 같다고 했지.”
“우리가요?”
“우리가?”
현성과 박희철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질문을 유민철에게 했다. 그러자 유민철은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듯 놀라며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곤 박희철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허허, 잘못은 무슨……, 자네가 잘 봤네. 다음에 오 사장이 또 묻거든 아예 친손주 삼았다고 하게.”
박희철의 말에 어이가 없는 건 현성이었다.
“아저씨…….”
“이럴 땐 따지지 말고 그냥 넘어가 주게. 내 마음은 그러고 싶다는 얘기니까.”
박희철은 진심이었다.
어차피 현성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미 황천길에서 구천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는 판에 무엇인들 못 해주겠는가 말이다.
그만큼 현성이 귀하게 생각되는 건 박희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현성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럼 성(姓)이라도 바꿀까요?”
“그래 주겠는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내가…….”
“아저씨도 참, 제가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다. 제가 우리 집 장손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 다음엔 그런 말씀 다시는 ……, 아시죠? 우리 아버지 들으시면 섭섭해하십니다.”
현성도 안다.
박희철이 농담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그게 또 다 농담이 아니란 것도.
어차피 자신도 잘나서도 아니고 어쩌다 어른이 아니라 어쩌다 회귀한 덕분에 미리 사고를 안 것뿐이다.
단지, 귀한 한 생명이었기에 손을 내민 게 다였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인연을 맺을지 몰랐다. 물론 그것은 다행히도 박희철의 변화로 인해 얻어진 인연이었다.
처음엔 그저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죽은 목숨 살려주면 남한테 피해는 안 주겠지 하는 바람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박희철은 그 차원을 넘어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현성도 마음이 바뀐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 약간 놀라움을 가진 유민철이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진짜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요, 어떤 사입니까?”
“특별한 사이지. 아주 많이 말이야……. 나는 나의 하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하늘이요?”
“그만큼 나에겐 귀하단 말일세.”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의구심이 여전한 유민철이었다. 얼핏 생각해도 그 관계가 믿어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60된 노인네가 새파란 고등학생한테 하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말이다.
이해가 힘든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물론 처음에 박희철이 사고를 피한 다음 날 새벽에 소고기를 들고 집으로 찾아왔을 때도 분명히 그런 말을 했었다.
– 자네는 이제부터 내 하늘일세.
그땐 그저 흥분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을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다.
처음엔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그저 남한테 해만 안 끼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에 박희철의 변화된 모습에 대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싶었고, 그러면서 점점 기대를 하게 됐다.
그런데 다행히도 박희철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간이 점점 지날 수록에 박희철의 변화된 삶을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막상 저 말을 다시 들으니 역시 박희철이 다른 사람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악연으로 끝날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늘 보니 이렇게까지 발전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다는 자체가 그저 그냥 얻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겹살이 어느 정도 익자 현성이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다 같이 건배하죠. 멋진 건배사 부탁드립니다.”
“근데 이거 운전 때문에 술을 못 먹으니 영 기분이 안 나는구먼.”
“아니면 드시고 택시 타고 가시던가요.”
당연히 대리기사는 없는 시대였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를 놓고 택시를 타던가, 아니라면 깔끔하게 안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희철은 기분파였다.
“옳거니! 그런 방법이 있었구먼. 차를 놔두고 택시를 타고 가면 되는 거였어. 역시 자네 머리 회전이 빠르구먼.”“진짜 드시려고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오다 보니까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더라고. 비 올 땐 또 사람이 분위기를 내줘야 하거든. 안 그런가? 민철이.”
“네? 아, 좋죠.”
쩝.
두 사람을 바라보는 현성의 표정만이 어두웠다.
그 모습을 바라본 박희철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왜? 혼자만 빠지게?”
“당연하지요. 저는 엄연히 학생인데……, 그리고 오늘 집에 가서 할 일도 있고요.”
“글쎄, 그게 될까…….”
못 믿겠다는 박희철의 표정이었다.
잠시 후.
“자, 이제 셋 다 똑같이 알코올로 채웠으니 건배할까?”
결국, 현성은 건배 첫 잔만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현성이 모르는 게 있었다.
그 한 잔에 대한 대가가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흠……, 학생 새끼가 식당에서 대놓고 술을 처먹겠다고……, 그 꼴은 내가 못 보지.’
식당 홀이 아닌 룸 안에서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던 오상철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말려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현성은 침대에 누웠다.
탁탁.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무 침대지만 누울 때마다 느끼는 건 세상의 어느 침대보다도 편하다는 것이었다.
주르륵주르륵.
빗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그래서 그런지 현성의 마음이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감성이 풍부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유독 비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비가 오면 괜히 바다가 보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도 비가 오면 가끔 수업을 빼먹곤 했었다.
비 오는 날 학교에서 넉넉잡고 두 시간만 걸어가면 바다가 나왔다. 바로 경포 해변이었다.
현성이 다녔던 대학은 강릉대학교였다.
처음엔 국립대라 학비 때문에 선택해서 갔지만, 나중엔 바다가 가까워서 참 좋았던 학교다.
비 오는 날 경포해변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안목항이 나온다. 물론 훗날에는 넓은 강릉항 여객터미널로 바뀌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주 작은 항이었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훗날처럼 커피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비 오는 날 찾아가 포장마차에서 해물전 한 접시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그게 그렇게 좋았다.
“좋았는데…….”
그때를 생각하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흐르는 현성이었다.
그리고 이제 비만 오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아내 윤지수다.
사람이 유유상종이라고, 현성의 경우가 그랬다.
윤지수도 비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윤지수를 처음 만나던 날도 비가 왔었다.
처음 만났다는 건 이성의 감정을 느끼게 된 첫날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성은 그 당시 복합대여점을 운영 중이었다. 비디오와 DVD, 그리고 도서까지, 어느 정도 구색을 갖춘, 그 당시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중형 규모의 대여점이었다.
반대로 윤지수는 현성이 운영하는 대여점의 고객이었다. 그것도 보통 고객이 아닌 흔히 말하는 VIP 고객, 영화면 영화 책이면 책, 거의 가리지 않는 최고의 고객이었다.
영업을 마친 현성은 비가 오기에 집에서 가까운 포장마차로 향했다. 보통은 집 근처에서는 술을 잘 안 마신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래도 장사를 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은 비가 오길래 간단하게 한잔할 생각으로 가까운 포장마차로 갔었다. 그런데 거기서 윤지수를 만난 것이다.
“어머! 사장님…….”
혼자 술을 마시던 윤지수는 현성을 보며 반갑게 맞았다.
반가운 건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매상에 그만큼 일조를 하는데 반갑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당연히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누구신가, 지수 씨가 이 시간에 웬일입니까?”
“비도 오고 해서 그냥……, 그런 사장님은 이 시간에 마눌님과 토끼 같은 자식 놔두고, 웬일이시래?”
마눌이란 말에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현성은 그때까지 미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가 33세였다. 훗날에야 안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33세면 노총각 소리를 듣던 시절이었다.
장가도 안 간 노총각한테 마눌 얘기를 하니 현성으로선 당연히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어요? 마눌은 뭐고 토끼 같은 자식은 또 뭡니까?”
“어머! 이 사장님 진짜 큰일 나겠네,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알고 보니 윤지수는 그동안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현성이 유부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에 한 아줌마가 있었는데, 매일 가게에 와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네 살 된 여자아이까지 항상 데리고 와 있었으니 당연히 아내와 아이로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