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04)
회귀해서 건물주-104화(104/740)
104
교무실을 나온 현성은 학교 앞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갔다.
“어떤 새낀지 두고 보자.”
현성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상태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맥주 한 잔 덕분에 운동장을 오십 바퀴나 돌게 생겼는데 말이다.
현성의 입장에서 지금 화가 나는 건 단순하게 운동장 뺑뺑이 때문이 아니다. 그 정도야 이젠 웃으면서 뛸 수 있다.
그 정도의 체력은 얼마든지 충분하다는 얘기다.
현성이 지금 화가 나는 건 그 누군가의 짓이 너무도 비열하다는 것에 있다. 어떻게 맥주 한 잔 먹은 걸 가지고 정학을 요구할 수 있느냐는 거다.
누가 봐도 이건 악의라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결국, 그 누군가는 현성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개인 사심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절대 일어 날 수 없는 얘기란 거다.
“도대체 어떤 놈이…….”
디디디.
번호를 누르자 신호음이 울리는가 싶더니 박희철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아저씨 저 현성입니다.”
– 아니, 이 시간에 자네가 웬일이야?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아니요, 무슨 일 생긴 게 맞습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식당에서 저녁 먹으면서…….”
현성은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박희철한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박희철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 아니, 어떤 미친 자식이 그런 짓을!
“그러니까 그놈을 잡자고요. 오늘 시간 있으시죠?”
– 없으면 만들어야지. 걱정하지 말고 학교 수업이나 잘 받고 있게. 내가 전화 끊는 대로 바로 움직일 테니까, 그 일은 걱정 말고.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 그나저나 운동장 오십 바퀴를 언제 도는가?
“운동한다고 생각하죠, 뭐.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그놈 좀 꼭 잡아주십시오. 누군지 정말 궁금하네요.”
– 알았어. 그건 나한테 맡기게. 그럼 이만 끊겠네. 나 바로 움직여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뚝.
전화를 끊은 현성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는 훨씬 안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어차피 누구인지 찾는 거야 어려울 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박희철이다.
그 정도 알아보는 거야 아무것도 아닐 테니.
그 시각.
낄낄.
혼자 웃고 있는 오상철.
“이 자식 어디 두고 보자. 감히 너 같은 피라미가…….”
처음엔 어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덤비길래 누군가 싶어 알아보려 했었다. 그래서 오픈할 가게를 찾아갔던 것이고.
그런데 거기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다름 아닌 박희철과의 관계다.
생각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박희철.
학창 시절의 악연으로 평생을 등지고 사는 인간이다. 박희철 입장에서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입장에서는 평생의 한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자존심.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할 방법은 없었다.
결국, 평생 아킬레스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박희철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세월이 그만큼 지났으면 이젠 그 감정이 무뎌질 만도 할 텐데, 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라 그런지, 꺾어진 자존심 앞에서만큼은 그게 안 된다.
오상철이 인상을 쓰자 깊게 파인 주름이 더욱더 선명하게 얼굴에 드러났다.
절레절레.
오상철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오상철은 두 사람의 관계가 궁금해 사람을 붙였었다.
결국, 몇 가지를 알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알아낸 정보가 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어제저녁이었다.
최민성을 미소식당에서 만났다.
가끔 필요할 때 불러서 일을 시키고 밥 한 끼 먹으면 되는 그런 후배다. 물론 일의 경중에 따라 어쩌다 사례비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미소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룸이 있기에 은밀한 얘기를 나눌 때는 이곳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은 박희철과 김현성의 관계를 알아보도록 지시하고 이틀이 되던 날이었다.
오상철이 먼저 최민성을 보며 물었다.
“그래, 알아봤는가?”
“네, 형님. 그런데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최민성은 무슨 큰일이라도 한 듯 어깨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자 오상철이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뭔데?”
“땅을 기증했더라고요.”
“뭐, 땅을?”
“네, 형님. 그 구두쇠가 글쎄 일이백 평도 아니고 자그마치 이천 평을 김현성이라는 어린 친구한테 증여를 했지 뭡니까.”
오상철의 고개가 바로 옆으로 돌아갔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박희철은 그런 인간이 아니다. 아무리 친구이지만 저렇게까지 돈에 집착하며 살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돈에 미친 녀석이었다.
그런데 증여라니……, 그것도 이천 평이나.
오상철은 최민성한테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이유도 알아냈는가?”
“형님도 참, 제가 누굽니까?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최민성은 자신이 그동안 알아낸 정보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박희철의 관광부터 시작했다.
원래 관광을 가기로 했었는데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관광을 안 갔기 때문에 박희철은 살았다는 것이고.
만약 갔다면 그날로 박희철은 끝이었을 거라는 거였다. 왜냐하면, 그날 박희철이 타고 갈 관광버스가 한계령에서 추락사고가 났기 때문이다. 워낙 대형 사고라 전원 사망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얘기를 듣자 오상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그날 박희철은 왜 관광을 안 갔다고 하든가?”
“안 간 게 아니더라고요. 정확히 말하면 못 갔던 겁니다.”
“못 갔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관광 가는 박희철을 버스에서 누군가 못 가도록 끄집어 내렸답니다. 그것도 강제로 말입니다.”
“설마 그게…….”
오상철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런 식의 전개라면 그 누군가는 바로 그 어린 김현성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래야 그다음 일들이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최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다음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그게 그 김현성이라는 어린 친구였답니다.”
말이 안 된다.
그 관광이 어디 보통 관광인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관광이 아니었다.
심지어 오상철 자신조차 갈 수 없었던 관광이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난다.
8월 마지막 주 일요일이었다.
저녁에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평상시라면 사고니까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왜냐하면, 사망자 명단 때문이었다. 그 사망자 명단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건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박희철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날 박희철은 관광을 안 갔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것도.
그런데 그 이유가 그 어린 친구 때문이었다니…….
이제 궁금한 건 하나였다.
그 어린 친구가 어떻게 미리 알고 박희철의 관광을 막았냐는 것.
오상철은 최민성을 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그 이유도 알아냈는가?”
“그건 저도…….”
“음……, 그렇겠지. 그 이유는 본인 한 사람밖에 모를 테니 말일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뭐를 말입니까?”
“그 친구가 진짜로 사고를 미리 알고 박희철을 막았을까?”
대답을 듣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오상철 자신도 갑갑해서 물은 것이다.
최민성 또한 더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야 어찌 됐든 박희철은 목숨을 구했다.
그래서 그 대가로 박희철이 김현성에게 그 땅을 준 것이고.
“어떻게 알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상철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무슨 예지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사고를 미리 안다는 게 그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흠, 어찌 됐든…….”
오상철의 얼굴엔 다시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오늘 현성이 운동장 오십 바퀴를 돌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던 것이다.
학생이 식당에서 버젓이 술을 먹는 걸 인정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게 김현성이 아니었다면 아무 문제도 안 됐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박희철 때문이다. 박희철과 연관이 없었다면 자신 또한 그런 일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맥주 한 잔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박희철을 생각하면 한 잔이 아니라 한 모금도 인정할 수 없었던 오상철이었던 것이다.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오상철의 여동생 오상미였다.
“오빠 불렀어?”
“응, 그래 이리와 앉아 봐.”
“왜,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사람을 부르고 그러셔?”
오상미가 맞은편에 앉자 오상철은 커피를 내밀며 말을 이었다.
“좀 일찍 서둘러야겠다.”
“서두르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영업 말이야. 아무래도 다음 달 시작하면서부터는 장사를 바로 시작해야겠다.”
“다음 달부터?”
오상미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11월 중순이나 돼서 장사를 시작하기로 미리 얘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오상철의 말대로라면 그 시기를 한 달 반이다 당긴다는 얘기가 된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이유는 빤하다. 기존에 영업을 하던 분식집 만기가 10월 말까지이기 때문이다.
오상미가 의아해하자 오상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일이 생겼어.”“일?”
“너도 들었지? 저 건너편 골목 안쪽에 라면 가게 생긴다는 얘기 말이야.”
물론 알고 있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가게 오픈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지 오상미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거하고 무슨 상관이야?”
“아니, 상관이 있어. 너 박희철이 알지?”
“박희철이라고 하면……, 오빠하고 동창이면서 오빠와는 상극이라는 그 사람 맞지?”
“그래, 그 자식.”
빠드득.
오상철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자 오상미가 물었다.
“설마 그 사람이 그 가게를 한다는 거야?”
“물론 그 인간이 하는 건 아닌데, 거의 비슷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거의 비슷하다는 건 또 뭐야?”
“그게 말이야…….”
오상철은 박희철과 현성에 관한 얘기를 오상미에게 간단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상철의 설명이 끝나자 어이가 없다는 듯 오상미가 말했다.
“오상철이 많이 죽었네.”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결국 지금 그 꼬맹이하고 싸우겠다는 얘기잖아. 물론 오빠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그렇다고 어떻게 비린내 나는 고등학생하고 싸우려고 하냐?”
갑자기 쭈그리가 된 오상철.
그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초장에 밟아버리고 싶어서 그러지.”
“오빠, 나 오상미야. 보증 섰다가 지금은 비록 이렇게 쫄딱 망해서 시골로 다시 들어왔지만 한때는 그래도 서울에서 대형 식당을 운영했던 나야. 지금 나를 못 믿겠다는 거야?”
“못 믿겠다는 게 아니고 싹은 처음부터 잘라야 되는 거야. 이번엔 오빠 말 들어.”
오상미는 어이가 없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상대는 고등학교 2학년인 꼬맹이다. 물론 그 나이에 장사를 한다는 자체가 이해가 안 됐지만, 그런 꼬맹이를 상대하기 위해서 또 무리수를 두려는 오상철이 더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오상철의 말을 안 들을 수도 없다.
그건 오상철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