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05)
회귀해서 건물주-105화(105/740)
105
일수불퇴.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는 일이 없고, 이미 마음먹은 일은 죽어도 하고야 마는 오상철이기 때문이다.
오상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았어. 그런데 전 주인은 어떡할 건데? 아직 계약 기간도 남았잖아?”
“그건 오빠한테 맡겨. 나한테 방법이 있으니까.”
“알았어.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하고, 근데 혹시 오빠도 가게에 나올 거야?”
“처음엔 안 나오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안 나올 수가 없을 거 같아. 대신, 저쪽 가게 자빠지면 그날로 나도 빠질게. 그러니까 어떡하든 올해 안에 장사를 못 하게 만들어야 돼.”
“걱정하지 마, 저런 피라미 정도야 3개월도 안 걸려. 대신 오빠도 약속 지켜.”
오상철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상미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웃는 모습도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모르는 게 있었다. 현성 또한 업종은 다르지만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을 나온 오상철은 이정우의 어머니 신명순이 운영하는 분식 가게로 향했다.
드르륵.
오상철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신명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오늘은 또 왜요?”
“왜긴, 신 사장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지.”
“아니, 어차피 다음 달 말이면 끝인데, 이제 와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글쎄, 그거야 두고 보면 알 테고, 일단 이쪽으로 앉아보게.”
신명순은 어쩔 수 없이 오상철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명순이 자리를 잡고 앉자 오상철은 주머니에서 서류를 하나 끄집어 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신명순이 오상철을 보며 물었다.
“이게 뭡니까?”
“뭐긴……, 신 사장이 썼던 계약서지.”
“지금 제가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잖아요. 이걸 지금 왜 꺼내느냐는 말입니다.”
신명순으로선 지금 오상철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다음 달이면 끝이다. 이미 다 얘기됐던 부분이고, 그런데 왜?
신명순은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바라본 오상철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여기 좀 읽어보라고.”
오상철은 손가락으로 계약서 어느 한 부분을 콕콕 찍으며 말했다. 그러자 신명순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오상철를 바라봤다.
지금 오상철이 가리키고 있는 부분은 단서조항이 적혀있는 곳이다.
물론, 그 단서조항은 신명순의 동의하에 계약할 당시에 적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왜 지금에 와서 얘기하느냐는 것이다. 지난번에 가게를 나가라고 할 때도 아무 말이 없던 부분이다.
신명순은 다시 물었다.
“지금 그 얘기가 이 시점에서 왜 나오는 겁니까?”
오상철이 말하는 단서조항에는 10년 전 처음 계약 당시에 적었던 추가내용이었다.
원상 복구.
기간 종료 후 가게를 나갈 경우, 처음 있던 본래의 모습으로 원상 복구하겠다는 내용이다.
그 당시 이 가게는 동네 구멍가게였다.
신명순으로선 음식점이 목적이었기에 당연히 주방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상철이 요구했던 것이 원상 복구라는 단서 조항이었다.
혹시라도 신명순이 중간에 어떤 이유로든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일종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신명순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오상철이 이 단서조항을 끄집어낸다는 얘기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 가게를 비우고 나갈 경우 오상철의 여동생이 음식점을 할 거라는 소문은 이미 알고 있는 얘기다.
당연히 주방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그 말을 끄집어낸다는 건 그걸 핑계로 다른 걸 얻어 내겠다는 목적일 것이다.
일단은 상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게 우선일 터.
신명순은 오상철에게 바로 물었다.
“돌려서 말하지 말고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그쪽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말하기 편하지. 그렇지 않아도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일일이 말하는 것도 귀찮았는데 말이야.”
“말 한 번 참…….”
어쩌면 사람이 저럴까 싶었다.
10년을 넘게 봐왔던 사람이지만 이렇게 정 안 가는 사람도 처음 본다.
일부러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말이면 말, 행동이면 행동, 어쩌면 저렇게 완벽하게 재수가 없는지.
어떤 때는 같은 인간이란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휴우.
신명순의 입에서 한숨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그때, 오상철의 입이 열렸다.
“이번 달 안으로 나가 주게.”
오상철이 기어이 감추었던 발톱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허!”
헛웃음밖에 안 나오는 신명순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이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실망을 시키지 않는 오상철이었다. 끝까지 남은 한 방울까지 쥐어짜겠다는 거다.
이 인간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신명순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렇게 되면 목적은 분명해졌다.
자신을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게 하는 것, 그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물론 자신이 이번 달 내로 나가기만 한다면 원상 복구라는 단서조항은 당연히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버틴다면 그 단서 조항을 빌미로 자신의 목줄을 틀어쥐고 조여 올 것이다.
생각할 것도 없다.
이건 처음부터 싸움이 안 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선택의 기회가 없다. 신명순이 원상 복구에 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잠깐!
신명순은 의문이 하나 들었다.
왜 지금 저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자신을 빨리 쫓아내려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물론 자신이 빨리 가게를 비워주는 만큼 당연히 빨리 오픈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좀 더 빨리 오픈하겠다고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둘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두 달 전에 얘기를 꺼낼 때만 해도 다른 말은 없었다.
그 말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로 다른 변수가 생겼다는 얘기가 된다.
신명순은 오상철을 보며 말했다.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오상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신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그거까지는…….”
오상철은 말을 아꼈다.
차마 어린 현성을 상대로 이 짓을 꾸미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았고, 나도 고민을 좀 해보고요.”
신명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머리로는 미리 나가야 한다는 걸 아는데, 가슴으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 상황이었다.
10년을 지켜온 가게다.
이런 식으로 이렇게 야비하게 쫓겨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아!”
신명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상철이 나가고 신명순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러기를 잠깐.
뚝.
신명순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기어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였다.
드르륵.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신명순은 눈물을 훔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회장님이 이 시간에 어떻게…….”
가게에 나타난 건 박희철이었다.
현성의 전화를 받고 바로 집에서 나왔던 것이다.
“뭐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 저 아래에 있는 미소식당이 아직 문을 안 열었더라고요. 그래서 잠깐 들어왔습니다.”
“아, 네.”
“그리고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신명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처음 온 손님은 아니다. 어쩌다 가끔 들러서 김치 칼국수를 먹고 가는 손님이다.
그게 다인데 갑자기 인사를 하러 왔다고 하니 신명순으로서는 조금 당황했던 것이다.
“인사……요?”
신명순은 조심스럽게 물렀다.
그러자 박희철이 사람 좋은 인상을 지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손까지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현성이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한 거니까요.”
“우리 현성이요?”
신명순은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박희철의 말본새로 본다면 마치 친할아버지라도 된 듯이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명순이 되묻자 박희철이 다시 말을 이었다.
“현성이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앞으로 라면 가게에서 일 도와주기로 하셨다고. 그래서 이렇게 인사드리는 겁니다.”
“……네.”
여전히 의문이 안 풀리는 신명순이었다.
현성이한테 할아버지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꾸 더 묻기엔 상황이 또 상황인지라 신명순은 그저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러자 박희철이 눈치라도 챈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가게에 제가 관심이 조금 많습니다.”
“관심이요?”
“네, 그 가게가 잘 된다면 제가 생각할 게 좀 많아서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꾸 관심이 가더라고요.”
사실이다.
처음엔 예지몽에 관해서 믿지 않았다. 그런데 일어나는 일마다 부정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박희철 자신이 사고를 피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엔 갑자기 라면 가게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대박 나는 꿈을 미리 꿨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자신이 그 꿈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조건을 걸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 꿈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투자하겠다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자꾸 신경이 쓰이고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명순이 알겠다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러자 박희철도 멋쩍은 듯 웃고는 다음 말을 이었다.
“제가 늘 먹던 거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김치 칼국수 말이죠?”
“저는 여사님이 끓여주는 그 김치 칼국수가 그렇게 입에 맞습니다.”
“호호, 참 회장님도……, 알았어요. 금방 끓여 드릴게요.”
조금 전 눈물을 보이던 신명순은 보이지 않았다.
신명순이 주방으로 막 들어가려 할 때 박희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 그릇이 아니고 두 그릇입니다.”
“두 그릇이요? 누가 또 오시는 겁니까?”
“네? 아…, 네.”
박희철은 잠깐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무슨 일인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잠시 후.
“여기요.”
신명순이 김치 칼국수를 들고나와 박희철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곤 또 한 그릇은 박희철 건너편에 내려놓았다.
김치 칼국수 냄새가 나자 박희철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음……, 역시 이 냄새지.”
그리곤 신명순을 바라봤다. 그러자 신명순이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왜, 혹시 다른 거 뭐 필요하세요?”
“그게 아니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쪽으로 잠깐만 앉으시겠습니까?”
박희철은 정중하게 건너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신명순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잠깐 망설이다가 박희철이 말한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다른 분 오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늦는 가 봅니다.”
“오셨습니다. 이미…….”
“그게 무슨 …….”
그제야 눈치를 챈 신명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황당하네요.”
“혹시라도 기분이 상하셨다면 제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장난도 아니고 다른 마음도 없습니다. 사실 조금 전에 들어오다가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