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09)
회귀해서 건물주-109화(109/740)
109
멋쩍은지 웃고 마는 김일수였다.
현성으로선 그렇게라도 신경 써주는 김일수가 고마울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현성이 물었다.
“어떻게 됐어?”
“일단 마음은 전했어. 한 번에 쉽지는 않을 거야. 입장 바꿔 나부터라도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그래도 기특하네.”
“자식, 기특하긴……. 저번에 할머니 생신 때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많은 얘기를 나누던 그 날 생각했던 건데 그동안 기회가 없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말이라는 게 어느 정도 사전에 분위기가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2 사내자식들의 연령대라면 더 심할 것이다. 어찌 보면 오늘이라도 그 마음을 전했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이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연기가 제법이더라.”
“티 났냐?”
“야, 아무리 그래도 천하의 김일수가 턱걸이 하나라는 게 말이 되냐?”
“방법이 없더라고…….”
“그럴 때 보면 완전 곰 새끼는 아니야, 그지?”
“뭐, 곰 새끼? 이 자식이.”
김일수가 손을 들어 현성을 내리치자 현성이 슬쩍 피하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러자 김일수가 다시 현성을 쫓고, 현성이 다시 앞으로 튀어 나가는 장면이 연출됐다.
잠시 뒤, 뒤따라오던 김일수가 다시 물었다.
“정우가 혹시 기분 나쁘지 않을까?”
“왜?”
“내가 일부러 그런 걸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말이야.”
“야,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정우도 충분히 이해할 거야.”
“진짜?”
“어차피 상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한 거잖아. 그거까지 걱정하는 거 보니까 네가 이제야 좀 인간이 되는가 보다.”
역시 아직은 순수한 김일수였다.
그런 김일수를 보며 현성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이제 반 바퀴 남았는데, 우리 전력 질주 한번 해볼까?”
“단거리라면 나도 자신 있지.”
“그래? 그렇다면 라면 내기 어때?”
“콜!”
고개를 끄덕이며 큰소리로 대답하는 김일수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동시에 기합 소리를 내며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란히 뛰는 그의 등 뒤로 저녁노을이 붉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자 그들 앞으로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앞으로 같이 걸어갈 그들의 인생처럼 말이다.
“뭐야, 저 자식!”
정문 귀퉁이에서 현성을 지켜보던 오상철의 얼굴에 내천 자가 그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내심 기대가 많았었다.
오십 바퀴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한 바퀴가 아무리 못 돼도 300m는 될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 15km라는 얘기다.
그 거리를 뛰고도 저 여유를 부리는 있는 현성을 보고 있자니 오상철로서는 배알이 뒤틀렸던 것이다.
“저 새끼 뭐야?”
내년이면 환갑인 오상철의 입에서 이번엔 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최민성이 오상철을 힐긋 바라봤다.
잠깐 오상철을 바라보던 최민성도 분위기를 파악한 듯 금세 오상철의 분위기에 편승했다.
“형님, 저 새끼 웃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보통 놈은 아닌 게 분명해. 하긴 그러니 저 나이에 라면 가게를 한다고 설치지.”
“참, 그나저나 저 새끼 라면 가게 오픈하게 놔둘 겁니까?”
“일단은…….”
대답하는 오상철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본 최민성의 표정도 묘하게 뒤틀리며 오상철의 말을 받았다.
“일단이라 하시면 나름대로 대응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대신, 먼저 오픈할 거야.”
“네? 먼저 말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있는 신 사장은……?”
“그년은 쫓아내야지. 오늘 통보했으니까 제까짓 게 안 나가고는 못 버틸 거야.”
최민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 사장 같은 경우엔 아직 계약 기간이 다음 달까지 남을 거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상철이 비열한 방법으로 신명순을 압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최민성이 궁금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물론 확실한 방법은 있는 거지요?”
“내가 누구야, 이미 안 나가고는 못 버티게 조치해 뒀으니까 그런 걱정은 말고 필요할 때 부르면 잽싸게 달려오기나 해. 앞으로 자네가 할 일이 많아 질 거야.”
“헤헤, 고맙습니다, 형님.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그래서 말인데, 내일부터 저 자식에 대해서 모든 걸 다 조사해 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늦어도 다음 주 넘기면 안 돼.”
“넵,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번에 조사하면서 몇 가지 의문점이 있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저 자식에 대해서 모든 걸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최민성은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누가 보면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줄 알 정도로 결의도 당차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이 두 사람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저것들은 뭐야?”
정문 반대쪽인 길 건너 승용차 안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는 박희철.
자연스럽게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저 인간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운동장에는 현성과 그의 친구들밖에 없었다.
박희철은 권오영 사장이 건네준 메모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없는데…….”
메모지에 오상철과 최민성의 이름은 분명히 없었다. 그렇단 얘기는 적어도 저 두 사람은 오늘 현성이 뺑뺑이를 도는 데 있어서만큼은 관련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도대체 저들이 왜 여기에…….
박희철은 다시 메모지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 시각.
현성이 김일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제법 빠른데.”
“누가 할 소릴, 운동장 오십 바퀴를 돈 놈이 뭐가 그렇게 빨라? 근데 너 혹시 봐준 거 아냐?”
“봐주긴 누가 뭘 봐줘? 진짜 열심히 뛰는 거 안 봤어?”
“하긴, 오십 바퀴나 뛰었으니…….”
간발의 차로 겨우 이겼다. 하지만 김일수로서는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오십 바퀴를 돈 녀석하고 반 바퀴를 돈 자신과 비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내기는 내기.
김일수는 웃으며 말했다.
“야, 어쨌든 내기는 내가 이겼다.”
“자식, 알았어, 인마. 라면은 내가 산다. 대신, 다음에 정식으로 한 판 더 붙는 거다.”
“언제든지…….”
김일수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현성은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그러자 김일수도 씩 웃으며 현성이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살짝 맞댔다.
두 사람은 땀을 닦기 위해 수돗가를 향해 걸었다.
그러던 중 현성이 김일수를 불렀다.
“야, 하나만 묻자.”
“뭔데?”
“너 내 동생 알지?”
“지연이 말이야?”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김일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성을 향해 다시 물었다.
“지연이는 왜?”
“어때?”
“어떻다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현성은 동생한테 받은 편지를 김일수에게 아직 건네주지 못했다. 아니, 일부러 주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아침에 주려고 했었지만, 그게 막상 주려니 또 은근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생에 대한 오빠의 마음.
그런 마음이었다.
물론 철부지 장난이란 것도 잘 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현성으로선 지금까지 동생한테 받은 편지를 건네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생에서는 전혀 없던 일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만약 지연이가 좋다고 하면 어떨 거 같아?”
현성은 이런 질문을 하는 자체가 곤혹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쿨하게 그냥 편지를 건네주면 될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현성의 질문에 황당한 건 김일수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사실이라면 어떨 거 같냐고?”
“글쎄, 솔직히 실감이 안 나기는 하는데, 만약 그렇다면 가슴이 많이 뛸 거 같아. 누군가 나 같은 놈을 좋아한다는 자체가 믿기지도 않고. 그런데 갑자기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왜 자꾸 하는데?”
“그냥……, 휴우……!”
현성은 결국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엔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뭐야, 그 한숨은? 설마……, 아니지?”
“…….”
“야, 똑바로 말해 봐. 말을 해놓고 그게 뭐야?”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동생 김지연이 김일수한테 편지를 썼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현성은 더 이상 동생 김지연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현성과 김일수가 수돗가에서 땀을 거의 다 씻을 때쯤 이정우가 도착했다.
“멀리서 보니까 시합하는 거 같던데 누가 이겼냐?”
이정우의 질문에 신이 난 김일수가 어깨를 으쓱이며 앞으로 나섰다.
“너도 봤냐? 이 형님이 오늘 이겼다는 거 아니냐.”
“진짜로?”
“못 믿겠으면 현성이한테 직접 물어봐. 야, 김현성 네가 직접 말해 봐, 이 자식이 내 말은 안 믿는다.”
김일수는 억울하다는 듯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머리에 물기를 손으로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자식 그거 한 번 져줬더니 더럽게 말 많네.”
“뭐? 이 자식이 진짜 너 그럴 거야? 아까하고 말이 다르잖아.”
일그러지는 김일수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이정우도 김일수를 놀리 듯 웃기 시작했다.
“킥킥, 야 김일수 알았다, 알았어.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인상 쓸 필요 없잖아. 누가 보면 진짜 네가 이긴 줄 알겠다.”
“뭐? 너 진짜…….”
끝까지 김일수를 놀리는 이정우였다.
현성은 그런 두 녀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화해를 한 덕분인지 서로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두 녀석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김일수에 대해서는 평생의 한으로 남았던 이정우였다.
그런 그가 자신의 눈앞에서 김일수를 놀리고 있었다. 이 또한 현성에게 있어서는 크나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야, 빨리 라면 먹으러 가자.”
현성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잠시 후.
세 사람이 학교 정문에 막 다다랐을 때였다.
현성의 눈에 길 건너에 있는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한 눈에 봐도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현성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하나를 김일수한테 내밀었다.
“야, 이걸로 라면 먹어. 미안한데 나는 아무래도 누구 좀 만나야 될 거 같아서.”
“무슨 소리야? 같이 안 가고?”
현성은 대답 대신 턱으로 길 건너편을 가리켰다.
그러자 김일수가 아쉬운 표정으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어쩔 수 없지 뭐. 우리 둘이 가서 먹을 테니까 어서 가봐. 저 승용차 아까부터 저기 서 있더만.”
“그래, 그럼 내일 보자.”“가라, 현성아. 내일 봐.”
이정우도 손을 번쩍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때 현성이 돌아서는 김일수를 다시 불렀다.
“야, 김일수.”
“뭐야? 무슨 할 말이 또 있어?”
현성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냈다.
“이거.”
“이게 뭐야?”
“귀하신 분의 친필이니까 집에 가서 조용히 뜯어봐라. 길바닥에서 막 뜯어보면 나한테 죽는다.”
“이게 뭔데?”
김일수는 편지를 앞뒤로 훑었다.
그때 김일수의 눈에 이상한 글자가 눈에 띄었다.
– Dear My Dream!
김일수가 현성을 보며 급히 물었다.
“야, 이거 혹시 지연이가…….”
“조용히 해라. 지금 내 심정이 복잡하니까 조용히 빨리 사라져. 그렇지 않으면 그거 다시 빼앗을 거 같으니까. 지금은 나도 나를 못 믿겠다.”
“캬! 내가 꽃 편지를…….”
그때 이정우가 김일수가 들고 있는 꽃무늬 편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뭐야?”
“애들은 몰라도 된다. 야, 이걸로 라면이나 먹어. 나 먼저 갈 테니까. 그럼 내일 보자.”
김일수는 이정우한테 천 원짜리 지폐를 내팽개치듯 던져주고는 터미널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허……!”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은 그저 어이가 없어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