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1)
회귀해서 건물주-11화(11/740)
“망할 놈!”
현성의 집을 나온 박희철의 입에서 욕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황당해서 말이 다 안 나온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가는 게 있다. 다른 거야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말은 도저히 말도 안 된다.
이번엔 안 당한다니? 게다가 송아지도 언급을 했다. 물론 각서 내용에는 있는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이라는 거다.
말 그대로 아직, 집행 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그 녀석은 마치 이미 당했다는 듯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확정적이었다.
물론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러기엔 그 눈빛이 너무 강렬했다.
‘뭐야, 도대체 이놈?’
박희철은 걸으면서도 노려보던 현성의 눈빛이 자꾸 떠올랐다.
“별 미친놈이······.”
결국, 현성을 미친놈으로 치부해버리는 박희철이었다.
박희철이 떠나고 남은 두 사람.
아버지가 현성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많이 아팠지?”
“아프긴요? 소리만 컸지, 힘 조절도 하셨던데요, 뭐.”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구나. 아비로서 너 볼 면목이 없다.”
“그런 말씀 마세요. 아버지의 잘못도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까요.”
이제는 안다.
유산 없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말이다. 더군다나 한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버지의 고향은 평안남도 안주라 했었다.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5살 땐가 남으로 내려오셨다는 얘기를 언젠가 들었었다.
그러니 오죽했겠는가.
자수성가(自手成家)?
좋은 얘기다. 현성도 어려서는 그게 가능한 줄 알았으니까.
만약 내가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
솔직히 자신 없다. 그만큼 아버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셨다. 그땐 몰랐는데 아버지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사실을 알게 됐다.
현성은 아버지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버지 열심히 사신 거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
현성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거친 두 손이 아버지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현성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 힘내시고 앞으로 우리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고요. 저도 이제부턴 정신 차리고 공부도 열심히 할 테니까요. 네, 아버지?”
“고맙구나. 우리 아들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구나. 알았다, 이 아비도 기죽지 않고 더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마.”
“역시 우리 아버지 최곱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찐하게 한번 안아 볼까요?”
“허허, 녀석도···.”
현성이 양팔을 벌리자 아버지도 못 이기는 척 현성을 안았다.
예전엔 몰랐다.
아버지의 가슴이 이렇게 넓고 따뜻한지를······.
방으로 들어온 현성.
빠드득.
생각할수록 이가 갈렸다. 설마 박희철이 송아지를 끌고 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한동네에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단 말인가.
“하긴······.”
현성은 그제야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사람이 죽었는데 상(喪)을 치를 사람이 없었다. 다름 아닌 박희철 얘기다.
관광 간다고 떠났던 사람이, 다음날 죽어 시신이 돼서 돌아왔다. 낭떠러지에서 관광버스 추락 사고였다.
9시 뉴스에도 나올 만큼 대형 사고였다.
결국, 상여도 가족들이 메고 나갔다. 아무도 상여를 메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현성은 그저 무슨 일인가 싶었다.
물론,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됐다. 박희철한테 그동안 당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본인이 죽자, 그동안의 악행이 낱낱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이다.
쯧쯧······.
현성은 혀를 찼다.
“그렇게 허망하게 갈 거면서······.”
그때 밖에서 현성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 먹으라는 소리였다.
“와우!”
현성은 아침밥상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부터 나왔다.
반찬이 많아서?
아니다.
다시 어머니의 밥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자체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자리에 앉으며 어머니를 보고 말했다.
“어머니, 감자볶음이네요. 이게 얼마 만인가요?”
“얘가······, 무슨 농담을 아침부터 그렇게 썰렁하게 하니? 며칠 전에도 해줬었는데.”
“하하…, 그런가요? 제가 요즘 자꾸 깜박깜박합니다.”
“요즘이 아니라, 어제오늘 너무 이상한 거 알지? 너무 낯설어.”
당연하다.
낯설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지금으로선 그저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것이다.
현성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젓가락을 막 들 때였다.
아버지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현성아, 하나만 묻자.”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아까 말이다. 박 씨한테 했던 얘기는 다 무슨 말이야?”
아버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법 채권추심이니 뭐니 하면서 법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하던 현성의 모습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현성은 아버지의 질문에 잠깐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 거짓말이에요.”
“뭐?”
“제가 그냥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한 말이라니까요.”
어차피 이때까지는 대부업법이 없던 시기다. 나중에 2002년 10월이나 돼서야 시행됐던 법이다.
현성은 굳이 피곤한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부모님한테는 조금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또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의 성의 없는 대답에 어머니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럴 거야?”
“열 받잖아요. 실컷 자고 있는데 아침부터······.”
현성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눈총이 따가웠지만, 지금은 모른 체하는 게 상책이다. 궁금한 것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어머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설명으로도 지금으로선 두 분을 납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게 현성의 판단이었다.
대신 밥을 열심히 먹었다.
역시 밥은 집밥, 그것도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최고였다.
“밥 더 있어요?”
현성은 어머니 앞으로 밥그릇을 내밀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밥맛은 꿀맛이었다.
두 그릇을 먹었는데도 더 먹고 싶을 정도였다. 역시나 어머니의 감자볶음과 된장찌개는 예술이었다.
현성은 식사하고 계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저 당연히 영원할 줄 알았기에 그게 행복일 거라고는 예전엔 생각도 못 했었다.
그래서일까.
현성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져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현성을 바라봤다.
“우리 아들, 뭐가 그리 좋을까?”
“다요.”
“여보, 우리 현성이 맞죠?”
어머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대답이 꼭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에선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내가 볼 땐, 우리 아들 아냐.”
“그죠?”
그걸 또 어머니는 그새 장단을 맞췄다. 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하더니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이 너무 많아.”
“그죠!”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말을 못 했는데, 오늘 보니까 확실히 아니야.”
“맞아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성을 중간에 놓고 놀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현성도 깜박하고 있었다. 나이 먹어서야 그런 게 없었지만, 어려서는 말수가 정말 없었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그랬다.
“제 아버지 어디 있어요?”
현성은 그 말과 함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푸우, 하하, 하하하······.
두 사람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그냥 좋았다. 그냥 웃음이 자꾸 났다.
“허, 허허, 허허허······.”
“호호, 호호호······.”
세 사람은 그렇게 아침밥상에서 한참을 웃었다.
잠시 후.
아침 식사를 마칠 때쯤, 현성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며 말했다.
“저, 오늘 산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현성이 갑자기 산에 간다고 하자 아버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뭐라고?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산에는 갑자기 왜?”
“아까 얘기했잖아요. 빚 갚겠다고······.”
“빚?”
현성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황당한 건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설마 했다.
물론 아까 박희철한테 큰소리치는 거는 들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그냥 해본 말이라 생각했었다.
설마 진짜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산에 간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한심했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똥 싼 놈이 성을 낼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음….
일단 무슨 말인지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이야?”
“산삼을 캐러 갈 겁니다. 그래서 빚을 꼭 갚을 겁니다.”
“뭐, 산삼?”
현성은 한 술 더 떴다.
허!
아버지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젠 어딘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산삼이라니······.
산삼이 무슨 동네 똥개 이름도 아니고.
현성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엔 실망감이 가득해 보였다.
잠깐이나마 다 컸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울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이번엔 아버지의 말이 짧았다.
“됐다. 애도 아니고······.”
“네? 애요?”
현성은 순간 황당했다. 이유야 어쨌든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애라니?
하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현성은 아버지의 반응을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는가. 갑자기 산삼을 캐서 빚을 갚겠다고 하니 말이다. 현성이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빚을 갚겠다는 의욕 때문에 그만 경솔함이 초래한 자신의 실수였다.
‘어쩐다?’
문제는 어찌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막무가내로 우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생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혹시, 꿈이라도······.”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성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만큼 마음이 다급했던 것이다.
“역시! 어머닙니다. 어찌 알았습니까?”
“진짜?”
어머니의 눈이 더욱 크게 떠졌다. 그러자 아버지도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순간 현성의 순발력이 빛나기 시작했다.
“사실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게 ······.”
“그래서?”
“무를 자그마치 여덟 개나 캤다니까요.”
보통 꿈속에서 무는 산삼을 상징한다. TV ‘전설의 고향’에서 보면 단골 메뉴였다. 그러기에 현성은 열성적으로 꿈 얘기를 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의 착각이었다.
“꿈 깨!”
아버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그냥 있어. 빚 문제는 내가 어떡하든 해결해 볼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웬만하면 들어보려고 했지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꿈 타령을 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은 안 했지만, 어제 바다에 빠졌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온몸이 전기에 감전이라도 되는 느낌이었다.
만약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데 또다시 위험 속으로 자식을 밀어 넣는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이 싸질러 놓은 똥 때문에. 백 번을 양보한다 해도 이것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각하기는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아닌데….’
뭐라 설명하기 갑갑하던 찰나에 어머니가 꿈을 꿨냐고 물었을 땐 이거다 싶었다. 그래서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끌어다 나름 그럴듯하게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당연히 쉽게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물론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당연히 걱정이야 되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어떡하지?’
톡톡톡톡….
검지로 빠르게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질 설득할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일어서며 마무리를 했다.
“어깨도 성치 않을 테니 오늘은 집에 꼼짝 말고 붙어 있어.”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안방을 나갔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성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후.
자신의 방에 누워있는 현성.
그의 얼굴엔 세상 고민을 다 짊어지기라도 한 듯 수심이 가득했다.
“어쩐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모님을 설득시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