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18)
회귀해서 건물주-118화(118/740)
118
유성일 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팩스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 전에 썼던 내용을 팩스기에 넣고는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
신대방동 농심 본사.
이일우 기획 실장은 신제품 출시로 인해 오늘도 늦은 근무를 하던 중에 조금 전 팩스 한 통을 받았다.
발신자는 원주 대리점 유성일 소장이었다.
후!
짧게 심호흡을 한 이일우 실장은 A4용지를 한 장 들고 있었다.
“김현성이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신제품 이름은 기본이고 광고 날짜에 심지어는 출시일까지도 정확히 노출된 것이다. 그것도 고2인 학생의 입에서 말이다.
이제 일주일 후엔 TV광고가 시작된다. 그리고 다음 달 2일이면 그토록 공을 들였던 신제품이 세상에 첫선을 보이게 된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끔 얼큰한 맛을 살린 제품이었다. 지금까지는 라면에서 매운맛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야심차게 준비했고 기대가 큰 제품이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광고가 나가기 딱 1주일을 앞두고 일이 터진 것이다.
물론 무시할 수도 있다. 설사 경쟁 회사에서 알았다 해도 별 의미는 없기 때문이다. 꼬박 1년을 준비한 프로젝트이고 이제 2주 후에는 신제품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 와서 어찌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경이 쓰이는 건 학생이라는 것과 신제품을 이용해 장사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보통 장사를 할 경우 기존의 제품을 이용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당연한 건데…….
그런데 이 학생은 무슨 배짱인지 가게 컨셉 자체를 아예 신라면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마치 신라면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었다.
디디딕.
이일우 실장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시각.
유성일 소장은 사무실에서 이번 주 실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원주 농심 대리점 소장 유성일입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는 본사 기획실장 이일우입니다. 늦게까지 수고가 많으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조금 전 팩스 내용 보시고 전화 주셨나 보군요?”
– 네,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무래도 소장님이 수고 좀 해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말씀만 하십시오.”
– 다름이 아니라 그 친구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 친구에 대해서 좀 더 알아봐 주셔야겠습니다. 가게도 그렇고 전반적인 모든 것에 대해서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최대한 조사해서 바로 보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뚝.
전화가 끊기자 유성일 소장은 대리점을 나와 주차에 있던 1톤 포터를 몰고 터미널로 향했다.
아직은 현성이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일 것이기에 현성을 태우기 위함이었다.
터미널 가기 전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자 저만치 걸어가는 현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빵빵.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소리를 치자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일단 타게.”
현성이 묻자 유성일 소장이 손짓을 하며 대답했다.
잠시 후.
“어디 가시는 겁니까?”
“홍천에 갑자기 볼일이 생겨서 말이야. 가는 김에 우리 아우님 가게도 들러서 구경도 하고 말이야.”
“볼 게 뭐 있다고요?”
“궁금해서 말이야. 내가 또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거든.”
유성일 소장은 넉살 좋게 말을 돌려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성일 소장의 착각이었다.
그 정도는 이미 눈치를 챈 현성이었다.
아마도 현성이 대리점에서 나오자마자 상부에 보고를 했을 것이다. 아무리 현성이 예지몽으로 돌려 말하긴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상부에선 보고를 받자마자 민감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고.
이제 며칠 후면 TV 광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신제품 출시를 위한 작업에 들어 갈 텐데 그 전에 이미 그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요주의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현성에 대한 조사 요구가 있었을 테고, 유성일 소장은 그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지금 이렇게 옆에 있는 것일 것이다.
쯧.
그런 유성일 소장을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아무리 조사해봐야 자신의 실체를 알지 못할 것을 알기에 측은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유성일 소장은 작정이라도 한 듯 현성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현성은 성실한 답변으로 그를 만족시켰다.
그 때문이었을까.
유성일 소장의 질문은 끝이 없었다. 심지어는 호구 조사에 학교생활까지도 물어왔다.
아무래도 학교생활에 문제가 있지 않나 예상한 듯했다.
그고 그럴 것이 졸업도 하기 전에 장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그렇게 생각한 듯싶었다. 하지만 현성의 대답에서 학교생활의 문제점을 못 찾아내자 이상하다는 듯 현성을 바라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유성일 소장의 많은 질문 덕분에 가게까지 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현성의 가게에 도착한 유성일 소장.
“여긴가?”
“네, 아담하죠?”
“흠…….”
유성일 소장의 관심은 다른 데 가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입구에 있는 간판이었다.
한참 간판을 바라보던 유성일 소장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 간판도 자네가 디자인 한 건가?”
“네.”
“혹시 이것도 꿈에서 본 것이고?”
“네.”
현성은 또다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간판을 한참 들여다보던 유성일 소장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허!
할 말이 없었다.
간판을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본사에서 받은 이미지와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예지몽이라지만 설마 했었다. 그런데 간판을 보는 순간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간판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현성이 그를 불렀다.
“뭐 하십니까?”
“어? 아, 아닐세. 간판이 너무 훌륭해서 말이야.”
“붉은색이 입맛을 확 당기지 않습니까?”
“매운맛을 제대로 표현했군. 정말 놀라워.”
유성일 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몇 번을 더 간판을 살핀 후 현성이 안내하는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으로 들어온 유성일 소장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무슨 주방이…….”
“왜요?”
“라면 전문점치고는 주방이 너무 넓어서 말이야.”
“일부러 넓게 만들었습니다. 네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더라도 지장이 없도록 말이죠. 처음 공사할 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나중에 진짜 고생하는 게 주방이라…….”
현성의 설명을 들은 유성일 소장이 다시 말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될 거란 거지?”
“하하, 꿈은 크게 가지라잖아요.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처음엔 솔직히 자네의 말에 믿음이 안 갔었는데, 이제 이렇게 보고 나니 기대가 저절로 가는구먼. 자네 말처럼 이왕 시작했으니 꼭 대박 나시게.”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그러니 형님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허허, 내가 볼 땐 자네가 나를 도와줘야 할 거 같은데, 안 그런가, 김 사장님!”
농담까지 섞어가며 말하는 유성일 소장이었다.
겉으론 그렇게 편하게 말하면서도 그의 눈빛은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검열이라도 나온 듯 구석구석 살피는 그의 모습에서 연륜을 가늠케 했다.
그러자 현성이 웃으며 유성일 소장의 말에 보조를 맞췄다.
“형님도, 참……. 그럼 우리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로 합시다. 어떻습니까?”
“그 말이 정답일세.”
현성의 말에 유성일 소장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흔쾌히 대답했다. 그러자 현성이 이번엔 안채로 그를 안내했다.
어차피 이 사람은 모든 걸 다 확인을 해야 이곳을 떠날 것을 알기에 현성이 알아서 미리 안내를 한 것이다.
안채에 들어온 유성일 소장의 입이 또 한 번 벌어졌다.
“허허, 안채를 이런 식으로 개조할 줄이야…….”
현성이 선택한 방법은 큰방 앞에 마루를 놓아서 기존의 마루와 연결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리곤 영업용 입식 테이블을 놓아 신발을 벗지 않고 바로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마당에도 테이블을 놓았다. 물론 비가와도 이상이 없게끔 지붕 공사도 마무리를 한 상태였다.
주방을 늘리느라 가게 홀이 좁아진 대신에 안채의 마당을 활용한 것이다. 그렇게 하고 보니 실질적으로는 손님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처음보다 오히려 늘어난 셈이 되었다.
현성이 빙긋 웃으며 물었다.
“괜찮아 보입니까?”
“김 사장, 이거 볼수록 놀라운데, 그나저나 진짜 처음 장사하는 거 맞아?”
“당연하지요.”
거짓말도 하면 느는가 보다. 이젠 고민도 없이 거짓말이 입에서 바로 튀어나왔다. 그러자 유성일 소장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처음인데 이 정도라 이거지. 아무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네. 그럼 난 또 가볼 때가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네.”
끝까지 연기에 충실한 유성일 소장이었다.
그런 그를 배웅하며 현성은 미소를 잊지 않았다. 현성의 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유성일 소장은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현성은 그의 손을 덥석 잡고 흔들었다. 이렇게 해서 전생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던 두 사람의 인연도 새롭게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유성일 소장이 떠나고 현성이 문을 닫고 막 나올 때였다.
누군가 현성의 가게로 다가왔다.
“어? 어르신!”
건물주 오명선이었다.
“지나가다 불이 켜져 있길래 잠깐 들렀네. 개업 준비는 잘 되고 있는가?”
“네, 이제 안채만 조금 더 손보면 됩니다. 생각보다 며칠 빨리 준비가 끝날 거 같습니다.”
“잘됐구먼. 혹시 저녁은 먹었는가?”
“이제 집에 가서 먹으려고요.”
현성이 대답하자 건물주 오명선은 잘됐다는 듯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는가?”
“지금이요?”
“그려, 내가 밥 한 끼 먹이고 싶어서 말이여. 어때, 괜찮겠는가?”
조금은 낯선 모습이었다.
건물주에 대한 인식이 워낙 안 좋게 머릿속에 박혀 있는 탓인지 오명선의 이런 모습이 적응이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또 거절하기엔 예의가 아닌 듯했다.
“네, 괜찮습니다. 어느 식당으로 갈까요?”
“식당 밥 먹일 거면 내가 말도 안 했지. 우리 집으로 가세. 가서 따뜻한 국에 밥 한 끼 먹자고.”
현성은 잠깐 망설였다. 그냥 식당이라면 모를까 집으로 가기엔 왠지 꺼려졌다. 현성이 알기론 건물주 오명선은 혼자 살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현성이 조금 머뭇거리자 오명선이 바로 말을 이었다.
“왜? 홀아비가 해주는 밥은 싫다 이건가?”
“아, 아니 그게 아니고…….”
“그럼 얼른 따라오게.”
그 말을 끝으로 오명선은 앞서 걷기 시작했다. 현성도 어쩔 수 없이 오명선의 뒤들 따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명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갔다. 현성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 밥상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현성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었다.
하나는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인 듯했고, 도 다른 하나는 가족사진인 듯했다. 얼핏 봐도 대가족으로 보였다.
30분쯤 지났을까.
오명선이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많이 기다렸지?”
“아니요, 잠깐 사진 좀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이 분이 할머니인가 봅니다.”
현성은 왼쪽 사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오명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려,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이나 지났네. 처음 같아서는 못 살 거 같더니 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먼. 뭐니 뭐니 해도 시간만큼 좋은 치료제는 없는 거 같네.”
“아, 네……. 그런데 할머니가 젊어서는 상당히 고우셨겠는데요?”
“고왔지, 고왔어.”
오명선은 잠깐 추억이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현실로 돌아와 말을 이었다.
“어서 먹게, 간이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무슨 날입니까? 무슨 반찬이 이렇게 많아요?”
현성은 반찬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일반적으로 그냥 평범하게 먹는 반찬들이 아니었다. 갈비에 잡채, 그리고 국도 소고기 뭇국이었다.
어쩐지 조금 늦는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래도 이상한 건 이 모든 반찬들이 30분 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반찬들이 아니었다.
그 말은 미리 만들었다는 얘기고, 그러기 위해선 무슨 특별한 날이었을 거라는 게 현성의 생각이었다.
현성의 물음에 오명선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무슨 날은 아니고, 사실은 자네한테 밥 한 끼 먹이고 싶어서…….”
“네? 그 말씀은?”
“부끄럽지만 오전부터 내가 준비한 거네.”
“이 갈비랑 잡채도 말입니까?”
오명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생각 탓이었을까.
빙긋 웃는 오명선의 얼굴에서 친할아버지가 계신다면 이런 표정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저를 위해서 이 많을 걸 다 준비하셨다는 말씀입니까?”“너무 고마워서 말이야.”
“제가 뭐 특별히 해드린 것도 없는데요.”
“왜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게 말이야…….”
오명선은 현성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가게를 계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불안했다고 했다. 시작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우려는 오히려 기대감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오명선의 얘기가 끝나자 현성은 씩 웃고 말았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때 오명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고맙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 제 장사를 위해서 했던 건데요.”
“그거야 그렇지만 나로서도 고마운 건 사실이네. 어쨌건 가게가 확 바뀐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는가?”
“헤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야말로 정말 기분이 좋네요.”
현성은 진심으로 기분이 좋았다.
보통의 건물주라면 어떡하든 월세를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심지어 어떤 건물주는 잘된다 싶으면 어떤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그 가게를 빼앗아 자기가 아는 지인이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경우도 봤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현성 자신이 직접 당해봤으니까.
그런데 지금 오명선은 어떤가.
어린 세입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위해 아침부터 음식을 준비했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이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르신! 잘 먹겠습니다!”
현성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세상엔 나쁜 건물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현성은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