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22)
회귀해서 건물주-122화(122/740)
122
10분쯤 걸었을까.
멀리서 귀에 익은 노랫소리가 들렸다.
–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
아버지의 애창곡,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다.
피식.
노래를 듣는 순간 현성은 웃고 말았다.
노래를 부른다는 건 아버지한테 별일이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술까지 사가지고 최윤식의 집을 찾아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저벅저벅.
현성의 발걸음이 더욱더 빨라졌다.
“아버지!”
아버지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현성은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이게 누구여? 우리 아들, 현성이 아니냐?”
아버지는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현성을 바라보며 양팔을 벌렸다.
순간 현성은 당혹스러웠다.
지금 아버지의 행동으로만 봐서는 다음 행동은 현성 자신이 달려가 품에 안겨야 그림이 완성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전생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황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성이 누구인가?
그 옛날 철없던 현성이 아니었기에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쪼르륵.
현성은 어린아이처럼 달려가 아버지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
“그래, 장한 우리 현성이!”
어느새 아버지의 입에는 ‘장한’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이럴 때 보면 술의 힘이 얼마나 사람의 감정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생의 기억을 통틀어 봐도 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양팔을 벌린 기억은 없었다.
그 흔한 가벼운 포옹조차 없던 아버지였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도 전생과 다르게 많이 변했다.
현성은 아버지의 품에서 떨어지며 물었다.
“별일 없으셨어요?”
“별일? 별일 있을 게 뭐 있어?”
“최 씨 아저씨네 집에 가셨다면서요? 그것도 술까지 들고.”
“그게 어때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되묻는 아버지였다.
오히려 걱정했던 자신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두 분이 사이가 안 좋아서 저는 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그래서 이렇게 달려왔던 거구나.”
“아무래도 걱정이 되니까요. 이젠 두 분이 화해라도 하신 겁니까?”
“화해라기보다는 내가 입장이 바뀐 거지. 그러다 보니 이젠 싸울 일이 없더구나.”
현성은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이상한 말을 했다.
“다 네 덕분이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그게 말이다, 그러니까 …….”
아버지는 그동안 최윤식과 있던 일을 현성한테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이 길어질수록 현성의 표정은 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아버지의 말이 끝났을 때 현성은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아버지와 최 씨 아저씨는 자식들 때문에 싸웠다는 거죠?”
최윤식의 슬하에는 현성과 동갑인 최종민이라는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현재 춘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성적이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최윤식은 아버지한테 아들 자랑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꼈던 것이고.
현성은 다시 물었다.
“지금은요?”
“지금은 다르지.”
현성은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아버지를 보며 다시 물었다.
“뭐가 다른데요?”
“빚도 갚고, 땅도 사줬고, 공부는 또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거기다 이제는 라면 가게까지, 굳이 춘천에 학교 다닌다고 해서 더 특별할 게 뭐가 있겠어?”
아버지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였다. 좀 어이가 없었지만 현성으로선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 앞에서 뭐라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은 내가 오히려 큰소리쳤지 않았겠냐?”
“그랬더니요?”
“찍소리 못하지. 그래서 내가 오늘은 일부러 최 씨한테 갔던 거야.”
현성은 이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부모로서 자식들이 잘되는 거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두 사람은 그동안 자식들을 두고 자존심 싸움을 벌였던 것이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한편으론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게 또 어른들의 한 단면이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아버지가 갑자기 현성을 향해 등을 돌리며 말했다.
“업히거라.”
“네? 아버지 이건 아니죠.”“아니야, 오늘은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냐?”
“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라니깐.”
아버지는 완강했다.
이제 난처한 건 현성의 몫이었다. 솔직히 자신이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단지 회귀했기에 자신으로서도 가능했던 일들이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아버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기세였다.
잠시 후.
“그럼 딱 한 번입니다.”
현성은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알았다. 일단 업히기나 하거라.”
현성은 어쩔 수 없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아버지 등에 업힐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등에 업혀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물론 아주 어려서야 업혔을지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기억에 남아 있을 리는 없었기에 기억하는 한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
“왜?”
“고맙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거라. 고마운 거로 따지자면 내가 훨씬 더 고맙지. 아비가 못나서 네가 고생이 많았지.”
등에 업혀있다 보니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겨울이면 워낙 추운 곳이라 아침이면 신발이 언다. 학교에 가기 위해 나오면 아버지는 그때마다 따뜻한 신발을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부엌에서 화롯불에 신발을 따뜻하게 데워났던 것이다. 그 신발을 신고 나갈 때면 발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듯했다.
그리고 여름에 비라도 많이 오는 날에는 학교 앞까지 데리러 왔던 아버지다.
현성은 처음으로 아버지의 목을 양팔로 꼭 껴안았다.
잠시 후.
“아버지, 이젠 교댑니다.”
이번엔 현성이 아버지를 업었다.
그리곤 집을 향해 걸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아버지의 포근함이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는 아버지를 업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잠깐 걷던 현성이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왜, 무슨 할 말이 있는 게냐?”
“혹시 당귀라고 들어 보셨어요?”
현성은 오늘 낮에 김진용 사장한테 들었던 당귀 얘기를 아버지한테 할 요량이었다.
현성이 묻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들어보기는 했는데, 갑자기 당귀는 왜?”
“혹시 재배해 볼 생각 없으세요?”
“당귀를 말이냐?”
아버지는 관심이 있은 듯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어느새 현성의 등에서 내린 아버지는 현성의 옆으로 서며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린지 자세히 얘기해 봐”
“그게 말입니다. 제가 오늘 서울 가서 …….”
현성은 오늘 김진용 사장과 나눈 얘기를 아버지한테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나보고 시험적으로 당귀를 심어보라는 얘기지?”
“네, 그 재배 방법은 여기 메모지에 적혀 있는 이 분이 자세하게 가르쳐 줄 겁니다.”
“싫다.”
“네?”
현성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 밖의 대답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현성은 그 이유를 바로 물었다.
“아니, 무슨 이유라도 있으신 겁니까?”
“이유?”
“네.”
“현성아 잘 듣거라. 네가 볼 땐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식구들 밥 안 굶기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 땅에서 키우는 감자와 옥수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거기다 당귀를 심으라고?”
“수익이 훨씬 나으니까요?”
현성은 솔직히 아버지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기다 다른 걸 심으면 몇 배의 수익이 나오는데 그것을 마다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전혀 뜻밖의 아버지 행동에 현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식구들을 상대로 실험을 할 수는 없지 않겠니?”
“네? 그게 무슨…….”
“그래, 네 말처럼 당귀를 심어서 수익이 많이 난다고 치자, 근데 그 반대의 경우엔 어떻게 할 건데……, 굶길 거야?”
“…….”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말처럼 반대로 당귀 농사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확률로 따지자면 실패할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지도 모른다.
처음이니까.
아무리 누군가 도와준다 하더라도 어차피 당귀 농사는 아버지가 지어야 한다. 그랬을 경우 위험 부담은 어디까지나 오로지 아버지의 몫이라는 얘기가 된다.
만약에라도 그렇게 된다면, 그 부담은 현성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
아버지의 말처럼 이건 실험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식구들을 담보로 하기엔 그 위험 부담이 너무 컸던 것이다.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실책.
잘못된 방법,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만약에라도 아버지에게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그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현성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저는 그저…….”
“아니다, 그게 어찌 네 잘못이겠냐? 가난이 죄지. 너야 어떡하든 소득을 늘리려고 했던 건데, 그러기엔 우리 사정이 너무 여유가 없던 것이고,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아니다, 그리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게다.”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라니……. 그 말은 방법이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잠깐!’
그래, 어쩌면 그 방법도…….
현성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방법이 스쳐 지나갈 때였다.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전체가 아닌 부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니?”
“전체가 아닌 부분이요?”
“그렇지, 밭 한 귀퉁이에만 심는 거지. 일단 실험 삼아 심어보면 그 답을 얻지 않을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떠니?”
짝! 짝!
현성은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