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29)
회귀해서 건물주-129화(129/740)
129
“어머니, 저 왔어요.”
“아직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일찍 왔구나…….”
신명순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하긴 10년 동안이나 있던 곳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가는데,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많이 속상하시죠?”
“속상한 거야 그렇다 쳐도 난 이해 안 가는 게 여기 건물주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니?”
“원래 있는 인간들이 더 한다잖아요.”
“진짜 놀랐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렇게 비열한 인간일 줄은 내가 정말 몰랐다.”
신명순은 이를 갈았다.
자그마치 10년이다. 물론 세입자와 건물주 관계로 맺은 인연이지만 어떻게 마지막을 이런 식으로 끝낼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결국, 신명순의 눈에서 이채가 서렸다.
그 모습을 본 현성.
“어머니.”
“미안하구나. 나도 끝까지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억울하다 보니, 그만…….”
“…….”
현성도 뭐라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그때 TV에서 다시 씬라면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신명순이 현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현성아, 저거 그거 맞지?”
“네.”
“그렇지 않아도 아까 내가 저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너 오면 확인한다는 게 그만 그 인간 때문에 그새 또 깜빡 잊고 있었구나.”
“오늘 저 광고 보고 놀라는 사람 여럿 되네요. 우리 집에서도 난리가 났었습니다.”
물론 그 결과가 엉뚱하게도 김일수한테로 튀었지만.
그나저나 다음 주까지 김일수를 집으로 데려가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데려가는 거야 그렇다 치더러도, 막상 데려가서는 뭐라 설명할지 그게 더 큰 문제였다.
하여간 성질 급한 어머니 때문에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게 생긴 건 사실이었다.
그때 신명순이 다시 물었다.
“사실이야?”
“뭐가요?”
“진짜 꿈에 씬라면이 나왔단 말이야?”
현성은 대답 대신 피식 웃고 말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들 똑같은 반응에 이젠 말하기도 지칠 정도였다. 똑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집에 있는 식구들도 박희철도 그리고 여기 이정우 어머니인 신명순까지.
“그게 말이 되냐고? 어떻게 꿈에 아직 나오지도 않은 라면이 나올 수 있냐고?”
맞는 말이다.
꿈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삶 속에서 일어난 경험치에서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건 아직 나오지도 않은 라면이, 그것도 이미지가 똑같이 나오니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현성이 여전히 말이 없자 신명순이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말도 사실인 거지?”
“그 말이 어떤 말인지…….”
“왜, 처음 나한테 그곳이 대박날거라고 그랬잖아. 꿈에서 봤다고?”
“아, 네, 그거야 당연하지요. 제가 왜 그런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현성은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러자 신명순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어.”
“네?”
“대박만 나면 돼, 내가 이 인간 보기 싫어서라도 열심히 할 거야. 그리고 내가 두고 볼 거야. 남의 가게 빼앗아서 얼마나 잘 되는지.”
신명순은 끝까지 오상철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 신명순을 보며 형성이 다시 말했다.
“어머니, 우리 그 인간 완전히 밟아버립시다.”
“그래, 그러자고. 남의 눈에서 눈물 빼면 지 눈에선 피눈물 난다는 걸 꼭 가르쳐 주자고.”
주먹을 쥐고 흔드는 신명순이었다.
잠시 후.
가게에 한 사람씩 도착했다.
처음으로 이정우가 도착했고, 그 다음에 김일수가 도착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박철민까지.
미리 오늘 이삿짐을 나르기 위해 모이기로 한 상태였다.
현성이 신명순을 보며 먼저 말했다.
“어머니가 먼저 가져갈 거 하고 여기에 그냥 둘 거하고 분리 좀 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가져갈 것은 이쪽으로 따로 빼놨다.”
“이쪽거만 옮기면 되는 거죠?”
“응, 그래.”
신명순이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뒤에 서 있던 김일수가 물었다.
“그럼 나머지는 다 그냥 버리는 겁니까?”
“욕심은 나는데, 그렇다고 이걸 집으로 옮기자니 힘만 들고, 나중에 언제 쓴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가 없구나.”
“아, 그렇군요…….”
김일수는 아깝다는 듯 아쉬움을 남겼다.
그때 현성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어머니, 이거 팔아 볼까요?”
“이걸 판다고?”
“생각해보니까 너무 아깝잖아요. 친한 사람 같으면 주고가도 상관없는데 굳이 그 건물주한테 하나라도 줄 필요가 없을 거 같아서요.”
“이걸 누가 살까……?”
현성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집마다 전화번호부 한 권씩은 가지고 있었다.
한참 동안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현성은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잠시 뒤.
통화를 끝낸 현성이 신명순을 보며 말했다.
“두 시간 뒤에 이쪽으로 오겠답니다.”
“누가?”
“좀 전에 통화했던 사람이요. 중고로 주방용품 취급하는 사람인데 이따 와본다고 하네요.”
“그거 잘 됐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인간한테는 접시 하나라도 주기 싫었는데. 오늘 우리 그거 팔아서 삼겹살이라도 먹자. 다들 고생하는데 잘됐네.”
신명순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는 많이 나아 보였다.
그때 이정우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그 생각은 어떻게 했어?”
처음엔 현성도 그 생각까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뒤에서 김일수가 아쉬워하자 문뜩 생각이 난 것이다. 또한 신명순을 위해서도 단 한 푼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어머니가 너무 아까워하시잖아. 그리고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닌 거 같아. 가게를 넘기고 가는 것도 아니고 쫓겨나다시피 하는 건데 너무 억울하잖아. 그런 인간한테 어머니 말씀처럼 접시 하나라도 놔두고 갈 수 없는 거고.”
“그건 내 마음도 마찬가지야. 어찌 됐건 고맙다.”
이정우는 고맙다며 현성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곤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어머니가 밤새 잠 못 자는 것을 알았다. 그러더니 일찌감치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어디로 가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요즘 들어 더욱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자, 이제 슬슬 날라볼까.”
현성이 말하자 모인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이게 마지막이지?”
김일수가 짐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짐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 그게 마지막이야. 최대한 줄였는데도 이렇게 많네. 다들 고생 많았다.”
이사는 채 세 시간이 안 걸렸다.
중간에 중고업자도 다녀갔다.
다행히도 2만 원을 받은 덕분인지 신명순의 서운함은 덜 한 듯싶었다.
“다들 수고했어. 삼겹살이라도 먹으러 가자.”
한결 밝아진 신명순의 표정이었다.
그건 이정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가게에 들어올 때만 해도 얼굴이 많이 어두웠었다. 그런데 이사를 다 끝난 지금은 많이 밝아져 있었다.
현성을 포함해 다섯 명은 미소식당으로 향했다.
신명순의 분식 가게에 도착한 오상철과 최민성. 그리고 또 한 사람, 오상미.
오상미는 건물주 오상철의 여동생이다.
“깨끗하네.”
오상철은 뭐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최민성이 그의 말을 받았다.
“형님, 아주 깨끗합니다. 접시 하나 없는데요.”
“쯧쯧. 그러게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단돈 만 원이라도 주고 집기는 놔두고 가라고 할 걸 그랬네.”
아쉬운 마음을 역력히 드러내는 오상철이었다.
오상철의 노림수는 하나였다.
신명순이 집기를 놔두고 가면 필요한 몇 가지만 추가로 사서 바로 영업할 목적이었다. 굳이 돈까지 들이면서 공사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공사한다는 것도 사실은 핑계였다. 그렇게 해야 신명순을 가게에서 내보낼 명분이 서기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신명순이 떠나면서 집기 전부를 팔아버릴 줄은 몰랐기에 공짜로 얻고자 했던 자신의 바람이 없어지자 지금 허탈해하는 것이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오상미가 오상철을 보며 말했다.
“오빤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그년이 분명히 필요한 것만 가지고 나간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놓고선 이렇게 뒤통수 칠 줄은 몰랐지.”
“순진하게 그년 말을 믿은 게 바보지.”
“누가 아니래. 이제 와서 뭐라 따질 수도 없고…….”
허탈해하는 오상철과 오상미였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던 최민성은 속으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왕 장사를 할 거면 새로 사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고 싶을까 싶었다.
아무리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뭐라 말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터라 최민성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오상철이 최민성을 보며 물었다.
“혹시 주방 중고매장 아는 데 있어?”
“원주까지 나가야 하는데요.”
“어쩔 수 없잖아. 지금 나랑 가지.”
“네, 형님.”
최민성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양쪽으로 수고비를 다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상철한테는 물론이고 주방 중고매장 사장으로부터도 일정 수고비를 뒤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분식 가게를 나와 원주로 향했다.
그 시각.
미소식당에서는 다섯 명이 흥겹게 삼겹살을 먹고 있었다.
신명순이 말했다.
“많이들 먹어. 그래도 아들 친구들 덕분에 잘 마무리 할 수 있게 됐네.”
“네, 어머니도 마음고생 많으셨어요.”
현성이 대답하자 신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현성이한테는 이 신세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구나.”
“신세는 무슨 신세요?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아니야, 지금 생각해보면 현성이 가게를 안 냈더라면 당장 어쩔 뻔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가 안 계셨으면 가게 할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 겁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처음부터 시작점은 신명순이었다.
신명순이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건 신명순이 이정우의 어머니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그때 이 가게가 생각이 났고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현성도 신명순의 덕이라면 덕이었다.
미래를 위한 발판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때 신명순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아무리 따져도 덕은 내가 보는 게 맞아. 이 은혜 안 잊을게.”
“어머니도 참…….”
“사람이 자고로 고마운 줄은 알아야 하는 법이거든.”
신명순은 옆에 있는 현성의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한 신명순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어? 아저씨?”
박희철이었다.
“여기들 계셨구먼, 저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벅희철이 신명순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신명순이 약간 수줍은 듯 대답했다.
“그럼요, 앉으세요.”
현성이 벌떡 일어나 의자를 들고 와 자리를 마련하자 박희철이 고맙다며 현성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곤 불판을 보더니 신명순을 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