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4)
회귀해서 건물주-14화(14/740)
준치의 아침을 챙긴 후, 현성은 텐트 밖으로 나왔다.
먼동이 트려면 아직 30분 정도는 더 있어야 한다. 현성은 나무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자연스럽게 바위 위에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꽤나 자연스러웠다.
산에 올라와서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이 시간이면 늘 해오던 버릇이다. 처음엔 솔직히 무협지 흉내를 내봤었다.
책방을 오래 하다 보니 웬만한 책은 다 봤다. 호흡법이야 책에 너무도 상세히 잘 나와 있으니 어려울 건 없었다.
효과?
아직은 없었다. 혹시나 몰라 초식도 몇 가지 흉내를 내봤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신 명상하기에는 좋았다.
길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고······.
어쨌거나 공기가 몸속으로 충분히 들어와 몸 밖으로 완전히 나갈 수 있도록 호흡을 길게 해주는 게 중요했다.
30분쯤 지나 먼 산을 바라봤다. 하늘이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침 햇볕이 나무 사이로 마구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유독 강한 빛 한 줄기가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스윽.
자연스럽게 현성의 시선이 그 빛을 따라갔다. 빛은 절벽 꼭대기에서 멈췄다. 당연히 현성의 시선도 거기서 멈췄다.
그런데 갑자기 현성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곤 목을 앞으로 쭉 빼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는 듯.
“저건······!”
유심히 살피던 현성의 입이 자동으로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현성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반짝!
그때 이슬을 잔뜩 머금은 빨간 열매가 햇볕을 받아 순간 반짝였다.
“어떻게…?”
절벽 꼭대기에 길게 뻗은 줄기와 파란 이파리, 그리고 가운데에 꽃송이처럼 매달린 빨간 열매.
“오오!”
현성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 산삼이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산삼이다. 설마 절벽 틈새에 산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물론 지금까지 찾던 군락지는 아니지만, 산삼은 산삼이다. 비록 한 뿌리지만.
현성의 발걸음은 뭐에 홀린 듯 어느새 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찾아봐도 절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안 보였다. 유일하게 방법이 있다면 절벽을 기어오르는 것인데…….
그건 자살행위였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껏 찾았는데, 그림의 떡이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은 아래로 내려가서 반대쪽 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방법밖에 없다. 그럴 경우 오늘 하루도 거의 끝날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그때였다.
“준치!”
갑자기 절벽 귀퉁이에서 준치가 나타났다. 생선 이름이라 붙여주고도 부끄러워했던 그 어린 멧돼지다.
방향이 전혀 다른데…….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그쪽에서 나타나서는 안 되는 방향이다. 분명 뒤쪽에 있어야 할 준치가 앞에서 나타나니 현성우로선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그 얘기는 절벽 어딘가에 틈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요것 봐라.”
준치가 다시 사라졌다. 현성의 입술이 비스듬히 틀어지며 입가엔 어느새 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역시나 준치가 밥값(?)을 했다. 준치를 따라가다 보니 절벽 사이에 조그만 틈새가 나왔다. 정말 신기할 정도로 절벽 틈새를 기어 빠져나가자 절벽을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나왔다.
잠시 뒤.
드디어 바로 눈앞에 산삼의 자태가 드러났다.
길게 위로 뻗은 줄기, 그 줄기의 끝에서 다섯 가닥으로 벌어진 가지, 그리고 그 가지마다 이파리가 일곱 잎이었다.
산삼은 가지를 구라 하고, 잎을 엽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이 산삼은 5구 7엽이다. 물론 잎이 많을수록 오래된 것이다.
열매도 채취 시기가 된 듯 빨갛게 변해 있었다.
산삼은 5월 중순이 되면 잎이 자라는 것을 멈춘다. 이 시기 황록색의 꽃이 30~50개 핀다. 열매는 6월에 열린 뒤 8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열매 안의 씨앗은 콩팥 모양으로 2개가 열리며 색은 연한 우윳빛이다.
현성은 조심스럽게 산삼의 줄기를 만져 보았다.
부르르!
손이 약간 떨렸다. 산삼을 직접 만져보기는 처음이다.
전생에서 동네 형 김민수도 산삼은 만지지도 못하게 했다. 생각해 보니 캘 때부터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했을 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생각할수록 나쁜 새끼다. 어떻게 그걸 혼자 처먹을 생각을 했을까?
현성은 산삼 줄기에서 손을 뗐다.
영물(靈物)이라 하더니 역시나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휴우……!”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조심조심 삼을 캐기 시작했다.
뿌리 하나라도 다칠까 봐 잡아당기지 않고 주변의 흙을 살살 털어냈다.
생존 본능이었으리라.
바위 틈새로 뿌리가 깊이도 뻗어 있었다. 삼을 캐기 시작한 지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뿌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하아!
입으로 열기를 뿜어내며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눈 앞을 가리는 땀을 털어내기 위함이었다.
땀을 털어내고 다시 허리를 굽혀 본격적으로 뿌리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바위 틈새라 난공불락(難攻不落)이었지만, 끝까지 파고 들어갔다.
한 시간이 지났다.
“휴우!”
이미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다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제 남은 건 제일 깊게 박힌 마지막 뿌리 하나.
“조금만 더!”
‘정신일도 하사 불성’이라 했다. 다시 정신을 집중해 나머지 부분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말도 거짓말인가 보다.
얼마나 깊이 파고 들어갔는지 꼬챙이도 더는 안 들어갔다.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손은 당연히 안 들어가고 나무 꼬챙이도 더는 한계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톡톡.
어쩔 수 없이 뿌리를 잡고 정신을 집중해 살살 튕기듯이 당기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어! 불안한데….”
그때였다.
툭!
아! 망했다. 결국, 마지막 순간 끊어지고 만 것이다.
잠시 후.
미련은 금물, 아쉽지만 빨리 잊는 게 건강에 좋다.
현성은 끝이 잘려나간 산삼 한 뿌리를 들고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형(人形)의 삼 한 뿌리. 어쩜 이렇게 사람의 모습을 닮았을까. 신기함 그 자체였다.
“아!”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다른 어떤 미사여구(美辭麗句)도 필요 없었다. 오히려 어설픈 표현으로 산삼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았다.
현성은 산삼 잡은 손을 눈에서 멀리 쭉 내밀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려보았다.
“얼마나 된 걸까?”
산삼의 나이, 즉 심령을 가늠하는 기준엔 일반적으로 네 가지가 있다.
노두(蘆頭), 황취, 줄기와 잎,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주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노두를 살피는 것, 약통(몸통) 위에 기린의 목 모양으로 길게 뻗은 줄기의 흔적이다.
황취는 몸에 난 가락지 비슷한 흔적, 줄기와 잎도 심령을 살피는 데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옥주, 산삼의 지근(뿌리)에 좁쌀처럼 달라붙은 동그란 마디. 역시 이 수가 많을수록 오래된 산삼이라고 한다.
현성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멈춘 곳은 뿌리에 달린 작은 돌기, 옥주였다.
“도대체 얼마나 된 거야?”
하지만 역시 고민은 길지 않았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고민해서 해결된다면, 당연히 고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건 고민해봐야 아무 의미도 없고, 머리만 아플 뿐이다. 현성이 산삼의 심령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빨리 접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사람이 살면서도 마찬가지다.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라면, 당연히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빨리 잊어야 한다.
괜히 고민해봐야 머리숱만 빠질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또 사실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
머리와 가슴, 어찌 보면 참 가까운 거린데 말이다.
현성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많이 했었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지금 현성의 진짜 고민은 따로 있었다.
“어찌할까?”
어차피 한 뿌리다. 한 뿌리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된다.
분명 이산 어딘가에 산삼은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단지 못 찾고 있을 뿐이다. 그곳을 찾기 전에는 이 산을 절대 내려갈 일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산삼은?’
고민 끝에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먹자!”
현성은 고심 끝에 산삼을 먹기 위한 명분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산삼을 먹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생으로 그냥 씹어 먹거나 갈아서 먹기도 한다. 아니면 가장 약한 불로 4~5시간 달여 먹기도 한다.
생으로 먹을 때는 삼을 깨끗이 씻어 잎, 잔뿌리, 몸통의 순서로 먹는다. 잎을 먹을 때에는 시계방향으로 뒤쪽 작은 잎부터 한 잎씩 먹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현성이 그것까지 알 리는 없고.
오드득.
현성은 흙을 털어낸 다음, 가장 먼저 노두를 잘라 버렸다. 노두는 먹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우적.
그리곤 몸통 윗부분을 한입 베어 물었다.
“음!”
입안으로 삼의 향이 확 밀려들어 오는 느낌이었다. 전생에서야 먹은 거라곤 복날 삼계탕에 들어간 인삼 정도였다.
당연히 그 맛과는 비교 불가.
향이 이렇게 진할 줄은 몰랐다.
행여나 빨리 먹으면 약발이라도 떨어질까 봐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다.
오물오물.
몸통을 다 먹자 이번엔 뿌리 쪽에 붙은 옥주를 먹기 시작했다.
몸통을 먹을 때 와는 맛이 약간 달랐다. 쌉싸름하면서도 끝 맛은 왠지 약간 달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오묘한 맛임에는 틀림없었다.
꿀꺽.
그렇게 마지막 잔뿌리까지 다 먹었을 때였다.
“어?”
왜 이러지?
숲이 갑자기 현성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명현현상(瞑眩現象)인가?”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정신을 잃었다.
명현(瞑眩)이란 한약 등을 복용한 환자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일시적인 증상 악화를 겪거나 다른 증세를 보인 뒤 나아지는 것을 뜻한다.
장기간에 걸쳐 나빠진 건강이 호전되면서 나타나는 일시적 반응으로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는 징후로 이 반응이 강할수록 치료 효과가 높아진다.
현성이 모르는 게 있었다. 암벽 틈에서 그 정도 산삼이 자라기까지는 최소 150년은 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루가 지났다.
여전히 현성은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변한 게 있다면 현성의 얼굴빛이었다.
약간 하얘졌다고나 할까……, 깜상은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항상 좀 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려서는 그게 또 현성의 말수가 적었던 이유라면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