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55)
회귀해서 건물주-155화(155/740)
“허!”
이춘식은 사라진 현성의 뒷모습만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일부러 메뉴판에도 없는 4단계를 주문하고는 맵다는 핑계로 라면을 다시 끓여오라고 했다.
누가 봐도 이건 고의적인 도발이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그런데 문제는 상대방의 반응이었다.
이 정도로 도발을 했으면 벌써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나왔어야 했다. 더군다나 상대는 한창 예민할 고등학생이 아닌가 말이다.
각본에는 이상이 없었다.
물론,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긴 했었다. 바로 라면값이다.
다시 끓여오는 대신에 그 라면값을 자신이 부담하는 문제였다. 그럴 경우 금전적인 피해는 오로지 자신이 100% 부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라도 시비가 붙어 경찰이라도 오는 날에는 자신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메뉴판에도 없는 라면을 주문한 자신의 과실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최민성이 일을 시키면서도 얘기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다. 경찰과는 어떤 식으로든 엮이지 말 것. 그리고 설사 엮이더라도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말 것이었다.
그래서 라면값을 자신이 부담했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김현성의 입장에서는 금전적으로 손해날 일은 없다. 하지만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자존심 문제였다.
사람이 돈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이 어린 학생이라면 틀림없이 예민할 거라는 게 이춘식의 예상이었다.
그런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지금 이춘식이 황당한 이유인 것이다.
“괜찮아?”
이춘식을 바라보던 최희철이 조용히 물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방법도 없고, 이대로 좀 더 밀어붙이면 저놈도 아마 더는 못 참을 거야.”
현성이 단순한 어린아이가 아니란 걸 모르는 이춘식은 끝까지 포기할 줄 몰랐다.
그 시각 주방에서도 심각한 표정의 한 사람이 있었다.
신명순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사장님, 괜찮겠어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냥 제가 주문 넣는 대로만 끓여 주시면 됩니다. 지금 저놈들이 노리는 건 라면이 아니라 다른 거거든요.”
“다른 거……?”
신명순으로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라면 먹으러 왔으면 라면만 먹으면 되지 다른 게 뭐가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불안한 표정으로 신명순은 다시 말했다.
“정말 아무 문제 없는 거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놈들의 목적을 안 이상 당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신명순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현성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라면까지 나가면 한 테이블에서 벌써 아홉 그릇째다. 이유야 어쨌든 라면값도 그들이 다 낸다고 했다.
자고로 라면 장사꾼은 라면만 잘 팔면 된다.
자존심?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럴 때도 아니고 그럴 가치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현성이었다.
개가 짖으면 그냥 무시하면 된다.
같이 짖으면 같이 개가 되는 법이다.
물론, 라면값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땐 현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현성은 라면을 들고 다시 이춘식이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형님들, 2단계 씬라면 나왔습니다.”
현성의 입에선 어느새 형님들이란 말까지 나왔다. 그 정도 비위야 얼마든지 맞추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업종이야 다르지만 어찌 됐건 20년을 넘게 장사했던 현성이다. 업종은 다르다 하더라도 모든 장사의 공통점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서비스 정신이다.
“형님들……?”
하지만 말이라는 게 또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
이춘식은 현성을 힐끗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새파란 고등학생이다. 그런 놈이 실실 웃으며 형님들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저보다 한참 위니까 형님들이 맞죠. 안 그래요?”
“…….”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형님들!”
“…….”
세 사람 중 어느 누구도 현성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끙.
현성이 물러가자 세 사람의 표정은 가관도 아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여기 들어온 목적은 라면이 아니라 라면을 핑계로 깽판을 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깽판은 고사하고 오히려 애한테 농락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가 말이다.
게다가 라면은 먹지도 못하고 라면값만 나가게 생겼으니 이래저래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였다.
그때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안용수가 이춘식을 보며 물었다.
“우리 지금 뭐 하냐?”
“휴우.”
짧게 한숨만 짓는 이춘식이었다.
그러자 안용수가 다시 물었다.
“그냥 조용히 가는 게 어때?”
“……가만히 있어 봐. 일단 라면부터 맛 좀 보고. 다 돈인데 맛은 봐야 할 거 아니야.”
“지금 이걸 먹자고?”
“아깝잖아.”
그 와중에도 라면값이 아까운 이춘식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안용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후릅.
이춘식은 앞에 놓인 라면 국물을 한 숟가락 입으로 가져갔다.
“켁.”
여전히 매운맛이 코끝을 강타했다.
평상시에 매운맛엔 어느 정도는 자신 있는 이춘식이었다. 그런데 이건 지금까지 먹던 매운맛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벌컥.
급하게 물을 한 컵 비운 이춘식은 현성을 불렀다.
“여기!”
현성이 이춘식 앞으로 쪼르륵 달려와서는 물었다.
“네, 형님.”
“혹시 여기 고춧가루 어떤 거 쓰는 거야?”
“그건 왜요?”
“아니, 너무 매워서 사람이 먹을 수가 있어야지. 혹시 이상한 거 쓰는 거 아냐?”
이춘식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말했다.
“하바네로라고 아세요?”
“하바…… 뭐?”
“멕시코산 하바네로라는 고추가 있는데, 우리나라 일반 청양고추보다 최소 10배는 매운 고추가 있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쓰는 고추가 바로 그 하바네로입니다.”
현성의 설명을 들은 이춘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고추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매운 고추는 청양고추밖에 모르던 이춘식으로선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이춘식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었다.
이춘식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고춧가루가 국산이 아니라는 얘기지?”
“당연하지요. 국산으로는 이 매운맛을 절대로 낼 수가 없습니다.”
현성의 대답은 당당했다.
더군다나 하바네로는 매운맛만 있는 것이 아니다. 끝 맛은 감귤 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달콤함도 있다. 그래서 나중엔 스낵 등에도 하바네로가 쓰이게 된다.
현성이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아무리 매운맛이 유행이라지만 그 매운맛 하나로는 소비자의 입맛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이춘식이 현성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그래서 수입산을 썼다?”
황당한 건 현성이었다.
수입산을 썼다고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산지 표시에 대한 인식조차 제대로 없던 시대다.
현성으로선 지금 이춘식이 왜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현성은 이춘식을 보며 물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수입산을 썼으면서 오히려 지금 나한테 큰소릴 치는 거야?”
“그게 뭐 잘못됐어요? 대한민국에 어디 수입산을 쓰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그거야…….”
이춘식으로선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현성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눈이 있으면 저기 메뉴판 좀 보세요.”
현성은 손가락으로 메뉴판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빨간 글씨로 하바네로 고추에 대한 설명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원산지 표시는 기본이고 매운맛의 정도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거기다 맨 밑줄에는 청양고추보다 최소 10배는 더 매울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메뉴판에서 내용을 확인한 이춘식은 난감했다.
단순히 수입산이라는 말에 흥분해서 큰소릴 쳤었다. 어떡하든 상대의 약점이 필요했던 상황이라 자신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게 법에 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디서도 수입산을 쓰는 것이 법에 저촉된다는 말은 듣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이 자식은 아예 메뉴판에 수입산을 쓴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법에 저촉이 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수다.
초조함이 가져온 자신의 명백한 실책이었다.
현성은 다시 한번 세 사람을 슬쩍 바라봤다.
이렇게 되면 이들의 목적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처음엔 그저 어린 현성이 장사를 하는 것에 대한 단순한 시기심에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해줄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하자도 없는 수입산 고춧가루를 쓴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는 것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단순한 시기심이 아니라면 다른 목적이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현성은 이춘식을 보며 물었다.
“지금 저한테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무슨 이유?”
“말이 안 되잖아요. 무엇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제 영업을 방해하려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현성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때 이춘식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무슨 영업방해를 했다고 그래?”
“지금 그럼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처음에야 그렇다고 쳐요. 하지만 조금 전 고춧가루 얘기는 분명히 다르죠. 수입이라고 하니까 마치 무슨 큰 건수라도 잡은 것처럼 몰아붙이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그거야…….”
제대로 대답을 못 하는 이춘식이었다.
급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저질렀던 실수이기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이춘식이 제대로 말을 못 하자 현성이 다시 물었다.
“누굽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볼 땐 단순히 저를 괴롭히러 온 거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는 얘긴데, 누굽니까?”
“이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가 무슨 사주를 받았다고 그래?”
이춘식은 발끈했다.
그러자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럼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러자 현성이 이번엔 최희철과 안용수를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이춘식에게 물었다.
“형님들 이 동네 사람들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그거야……, 인마 놀러 왔다가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 그게 뭐가 문제가 돼?”
“물론 문제가 될 건 없지요. 하지만 그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부러 들어왔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요?”
쾅.
그때 가만히 있던 최희철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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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건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