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62)
회귀해서 건물주-162화(162/740)
“그 최소한 한 번의 기회라는 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지막으로 그 녀석들의 무릎을 꿇릴 수 있는 기회를 말하는 거네. 천 단위로는 안 되지만 억 단위로는 얘기가 달라진다는 얘길세.”
현성은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희철은 분명히 조금 전에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또다시 두 아들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말씀하고는 다른데요?”
“그래서 내가 아까 얼마 전이라고 했지 않았는가? 그 얼마 전이라는 게 자네가 투자 수익을 말하기 전까지를 말하는 거였네.”
현성은 그제야 박희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박희철의 말을 정리하자면 간단하다.
투자 수익을 알기 전과 후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알기 전에는 어차피 이대로 벌어봤자 자식을 상대로 무릎을 꿇릴 정도의 돈을 벌기는 틀렸다고 생각했기에 그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삶에 충실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현성의 입에서 투자 수익이 최소 10배는 된다는 소리를 들은 후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돈의 단위가 천에서 억으로 바뀌다 보니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즉, 천 단위로는 안 되지만 억 단위로는 자식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란 얘기다.
그냥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박희철의 마음이었으리라.
현성은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여전히 복수의 감정인 겁니까?”
“글쎄……, 그게 복수의 감정일지 아니면 아비로서의 마지막 집착일지 모르겠지만 살아서 한 번은 제대로 대면하고 싶네. 그러려면 확실한 미끼가 필요한 거고.”
“미끼요?”
“자네한테는 창피한 얘기지만 이렇게라도 발악이라도 하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네.”
현성은 턱을 가볍게 몇 번 쓸었다.
생각이 깊을 때 나오는 현성의 버릇이다.
‘발악이라…….’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다.
그때 박희철이 다시 말했다.
“아비의 마지막 집착이자 의무라고 생각해 주게.”
“그 말씀은…….”
“우선 내 책임이 제일 크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네. 될지는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다시 한번 시도는 해봐야 되지 않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내 자식들이 아니겠는가.”
“…….”
현성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처음 자식을 상대로 복수라는 말을 꺼내던 박희철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에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역시 아버지란 존재의 무거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박희철은 현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볼 땐 늙은이의 집착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라도 마지막 기회를 갖고 싶네.”
“……네.”
“돈은 준비 되는 대로 연락하겠네. 그렇게 알고 준비해주게.”
“3년입니다.”
“그건 또 갑자기 무슨 소린가?”
박희철은 현성을 빤히 쳐다봤다. 무슨 의미인지를 묻는 것이다.
현성의 답변이 바로 이어졌다.
“투자수익을 얻는 시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게 앞으로 3년 뒤라는 얘깁니다.”
정확히는 1989년 4월이다. 정부에서 1기 신도시를 발표하는 순간 모든 건 끝난다는 얘기다.
“그게 정말인가?”
“네, 3년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박희철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는 순간이었다.
“3년 만에 10배라……, 그게 가능하다는 얘기지?”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그러니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허!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박희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박희철은 입을 가린 채 조용히 물었다.
“거기가 도대체 어딘가?”
“헤헤, 아직은 비밀입니다. 천기누설이라…….”
“허, 이 사람……, 알았네, 알았어.”
박희철은 기분 좋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은 신명순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리곤 박희철을 보며 말했다.
“이제 라면 드셔야죠?”
“먹어야지. 빨리 먹고 부지런히 또 돌아다녀 봐야지. 내가 할 일은 하루라도 날짜를 당기는 일이니까 말이야.”
박희철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만연히 퍼져 있었다.
반면 현성은 조금 전부터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희철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누구를 기다리는가?”
“네? 그게…….”
“누군데?”
“이제 막 첫차가 도착했을 시간이라…….”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첫차가 도착했을 테고 이제 몇 분 뒤에는 학생들이 이 골목 앞을 지나갈 것이다.
현성의 관심사는 지금 그 학생들 중에 몇 명이나 과연 가게로 들어올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만약 예상을 빗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영업시간까지도 다시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현성이 초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때 신명순이 라면을 들고 박희철 앞으로 다가왔다.
“회장님, 라면 드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기……, 신 여사님.”“네? 무슨 따로 필요한 거라도…….”
“그게 아니고 부탁이 있어서요.”
현성은 박희철을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얼핏 봐도 평상시의 박희철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신명순이 박희철을 보며 물었다.
“부탁이요?”
“네, 그게 좀 얘기하기 좀 그렇습니다만…….”
박희철은 무슨 말인지 입만 달싹일 뿐 말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자 신명순이 다시 말했다.
“뭔데요? 말씀을 하셔야 제가 …….”
“저기, 그 ‘회장’이란 호칭 말인데요.”
“그게 어때서요?”
“혹시 다른 말로 대신할 순 없을까요? 늘 느끼던 건데 신 여사님한테는 ‘회장’이란 말은 듣기가 좀 불편해서요.”
박희철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황당한 건 신명순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부르던 호칭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게 불편하다니…….
결국, 다른 호칭을 원한다는 건데……,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신명순으로선 황당할 뿐이었다.
그때 박희철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부탁을 했나 보군요. 저는 그동안 늘 생각했던 건데, 그게 아무래도 제 입장만 너무 생각했었나 봅니다.”
“…….”
“당황하셨다면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네.”
신명순은 짧게 대답한 후 주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박희철 옆으로 슬쩍 다가가 말했다.
“분위기가 이상한데,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험, 이 사람이……, 분위기는 무슨 분위기? 난 그저…….”
“이거 왜 이러십니까? 하긴 앞으로 30년이나 남으셨는데…….”
현성의 말에 박희철은 묘한 웃음을 짓더니 되물었다.
“진짜지?”
“저는 거짓말 같은 거 안 한다니까요.”
“허허, 내가 이제 망령이 드는가 보네. 뻔히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소리가 듣기 싫지 않은 걸 보니.”
박희철은 그 말을 끝으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찌나 또 당당한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현성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드리워졌다. 앞으로 그의 행보가 또 궁금해지는 건 또 뭔지 자신이 생각해도 웃음밖에 안 나왔다.
현성의 시선은 여전히 시계로 향해있었다.
그때 신명순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오겠지요?”
“올 겁니다. 아니, 와야지요. 꼭 와야 합니다.”
간절함이 통했던 걸까?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현성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크게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현성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아침 첫차가 너무 이르다 보니 미처 아침을 챙기지 못한 학생들이 주로 가게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다음엔 씬라면에 대한 호기심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그건 아무래도 TV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는 듯싶었다.
그리고 더 웃긴 건 아침을 먹은 학생들도 분위기 때문인지 또다시 라면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나이 때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휴우.”
40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7시 40분부터 들어오던 학생들이 8시 20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가게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신명순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역시, 사장님의 예상이 맞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사실 많이 불안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역시 학생들이다 보니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TV 광고도 덕을 크게 보는 것 같고요.”
“맞습니다. 역시 TV 광고가 무시 못 하네요. 저희야 돈 안 들이고 공짜로 광고하는 거니 그 재미가 더욱더 쏠쏠한데요. 하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물론 간판을 제작하면서 처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긴 했지만 막상 실제로 그 효과를 보고 나니 농씸이란 회사가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설거지를 끝낸 김지숙이 현성을 보며 물었다.
“사장님, 아침에 라면 몇 개나 나간 거예요?”
“그게……, 잠깐만요.”
현성은 카운터의 장부를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정확히 55개 나갔는데요.”
“그렇게나 많이 나갔어요?”
“저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나갔네요. 한꺼번에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네요. 앞으로도 이 정도만 나간다면 아침 장사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이번엔 신명순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어른 손님들은 안 오는 걸까요?”
“글쎄요,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니까 조금 더 기다려보자고요. 저는 이제 학교 갈 준비를 할 테니까 남은 시간 잘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이렇게 아침부터 고생하고 학교 수업엔 지장 없을까요?”
“괜찮을 겁니다. 제가 체력 하나만큼은 또 끝내주거든요.”
현성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은 이미 몇 번에 걸쳐 확인이 된 상태다. 특히 며칠 전에 김일수의 할머니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한 번 더 검증을 한 상태다.
이유야 어찌 됐든 체력만큼은 자신 있는 현성이었다.
안채에서 학교 갈 준비를 마친 현성이 홀에 막 나왔을 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몇 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현성의 눈이 유난히 빛나는 순간이었다.
“어르신!”
“김 사장, 우리 왔네.”
“어서 오십시오. 혹시 라면 드시러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어제 그렇게 극진한 대우를 받았는데 우리가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수 있나? 해장국으로 라면을 먹으려고 왔네. 어제 먹어 보니 해장국으로 아주 안성맞춤이겠더구먼.”
가게를 찾아준 사람은 다름 아닌 노인회장인 서민규와 그의 친구들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들이라 현성의 반가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현성의 목소리가 유난이 밝았다.
“어르신!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허허, 이 친구……, 우리가 그렇게도 반가운가? 이 늙은이들을 이렇게 반겨주니 오히려 우리다 무안할 정도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당연히 반갑고 감사할 뿐이죠.”
163
회귀해서 건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