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72)
회귀해서 건물주-172화(172/740)
172
“나도 그랬어. 그땐…….”
“엄마도?”
“응, 그땐 몰랐지.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은 안 할 거야.”
“그거 의미 없는 얘긴데…….”
서인혜의 답변에 이세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차피 돌아갈 수 없는 거잖아.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우리 인생이 아니지. 그러니까 의미 없는 얘기라고.”
“그래서 지금 내가 너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
피식.
서인혜는 가볍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세희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 이 상황이 웃을 타이밍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세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뭐니?”
“아, 미안…… 엄마. 내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그리고 미안한데 하나 물어도 돼?”
“……뭔데?”
“외할머니 얘긴데…….”
“외할머니?”
이세희는 외할머니란 말에 깜짝 놀랐다. 여기서 지금 외할머니를 얘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어렸을 적 얘기를 물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인혜의 입이 열렸다.
“할머니는 뭐라 그랬어?”
“뭐……, 뭐가?”
“외할머니는 그때 엄마보고 뭐라고 그랬냐고? 엄마 중3 때 말이야.”
“그, 그거야 당연히 말렸지.”
이세희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자 서인혜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했어?”
“지금 묻고 싶은 게 뭐야?”
“엄마도 엄마 고집대로 아빠를 만났지? 내 말이 틀려?”
“그거야…….”
이세희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서인혜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현성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오빠.”
“어, 왜?”
“나한테 솔직히 말해줘.”
“뭐를 말이야?”
무엇을 묻는지 대충 감은 왔지만 현성은 모르는 척 물었다.
“내가 슈퍼에 갔다 오는 동안 엄마가 뭐라 그랬어?”
“뭐?”
“엄마가 진짜 콜라가 먹고 싶어서 나를 보낸 건 아닐 거야. 엄마는 오늘 오빠한테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을 거야. 안 그래?”
“그거야…….”
현성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세희는 엄마로서 딸내미가 걱정돼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현성이 대답을 제대로 못 하자 서인혜는 다시 물었다.
“왜?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그래, 네 말처럼 아주머니가 너를 슈퍼에 보내고 말했다는 얘기는 네가 모르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게 맞을 거 같은데…….”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그렇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인혜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듯했다.
“아니, 그건 오빠 생각이고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어차피 내 얘기잖아. 알고 싶어.”
“너…….”
난감한 건 현성이었다.
말을 하자니 이세희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고 있기에는 서인혜의 성격상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세희가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 감정이 없다더라.”
“그게 무슨…….”
서인혜는 이세희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이세희가 작정이라도 한 듯 다시 말했다.
“현성 학생은 너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더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오빠가 진짜 그랬다고?”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니. 그러니까 이것아 헛물켜지 말고 정신 차려.”
서인혜의 시선이 다시 현성한테로 향했다.
“오빠, 사실이야?”
“음…….”
현성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사실대로 얘기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현성의 말이 바로 이어졌다.
“네 입으로 조금 전에 말했듯이 나에겐 이미 아내가 있어.”
“꿈에서 봤다는 그 윤지수라는 사람 말이야?”
“그래, 나에게 있어 여자는 그 사람 한 사람뿐이야.”
현성은 솔직한 마음으로 말했다. 생각 같아서는 돌려서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미 상황이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름 심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서인혜는 달랐다.
“풉.”
서인혜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오빠, 이건 어디까지나 만약인데, 혹시라도 그 윤지수란 사람을 못 만나면 어떡할 거야?”
“그럴 일은 없어.”
“그러니까 내가 만약이라고 그랬잖아. 만약 그렇게 되면 어떡할 건데?”
“그땐…….”
물론 그럴 일은 없다. 전생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건 33살 때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어떡하든 최대한 빨리 만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현성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서인혜가 다시 물었다.
“그땐 뭐?”
“마음대로…….”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그럴 가능성은 없기에 상대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진짜지? 오빠 분명히 말했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서인혜의 표정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한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세희의 표정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너는 자존심도 없니?”
“엄마, 나 엄마 딸이야. 엄마는 그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거잖아. 안 그래?”
“하여간……, 휴우.”
이세희는 한숨을 쉬고 말았다. 아무리 자식이 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고집불통인지 속상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딸내미를 보고 뭐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닮았기 때문이다.
휴우.
어쨌건 현성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처음 이세희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만 해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서인혜마저 합세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다행히도 윤지수 덕분에 상황이 수월하게 정리됐다. 현성은 현성대로 솔직히 말할 수 있었고, 서인혜는 서인혜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서인혜의 경우는 윤지수란 존재를 믿지 않기에 가능한 얘기겠지만 지금으로선 아무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어차피 시간이 약일 테니 말이다.
***
벌컥벌컥.
서인혜의 집을 나와 가게에 도착한 현성은 시원한 물부터 한 컵 마셨다.
그때였다.
따르릉.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날세.
“어? 아주머니? 어쩐 일이세요?”
전화를 건 사람은 조금 전에 헤어진 서인혜의 어머니인 이세희였다.
– 아까는 옆에 인혜가 있어서 말을 못 했는데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다시 전화했네.
“아, 네.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 학생도 좀 전에 봐서 알겠지만 우리 인혜가 고집이 좀 세네.
“헤헤, 좀 그렇죠.”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나로서도 말릴 방법이 없구먼. 그래서 말인데…….
이세희는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뭔가를 망설이는 듯싶었다.
현성은 바로 말했다.
“전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 그럼 미안하지만 내가 부탁을 좀 함세. 우리 인혜가 어려서부터 아빠 없이 크다 보니까 그 빈자리가 좀 크네.
“아, 네 아무래도 그럴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좀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인혜를 그냥 내버려 두자고 했던 것도 그 이유였습니다.”
– 정말이야?
“몇 번 만나다 보니까 느끼겠더라고요.”
– 그랬군.
사람이 살면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그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부모, 엄마와 아버지다. 둘 중에 한 사람만 빠져도 그 빈자리는 어느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되는 것이다.
서인혜의 경우가 그랬다.
말은 안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빈자리가 느껴졌었다.
물론 현성이 회귀했기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인혜한테 이성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빠로서 그 부족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채워 줄 수만 있다면 채워주고 싶습니다.”
– 그 말 진심인 거지?
“당연하지요.”
– 그럼 됐네.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그거였거든. 나로서는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
“네, 알겠습니다.”
– 그리고 저기…….
“뭐 다른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 ……고맙네.
뚝.
이세희는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현성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역시 어머니의 마음이라 이건가.
현성이 떠난 후에도 이세희는 마음이 안 놓였던 것이다. 결국 고민 끝에 전화를 했을 테고.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고집을 피우는 딸내미.
그런 딸내미를 위해서 다시 전화를 하는 어머니다. 전화를 한다는 자체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잠시 후.
현성이 자리에서 막 일어나려 할 때였다.
따르릉.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누구지?”
그렇다고 다시 이세희는 아닐 테고, 궁금한 현성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나다.
목소리 하나로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 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 내일 일요일인데 혹시 집에 왔다 갈 수 있겠냐?
이미 전화로 이번 주에는 집에 못 간다고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오라는 데는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일 것이다.
“무슨 일 있어요?”
– 무슨 일은 아니고, 네 고모가 내일 온다고 해서 시간 되면 잠시라도 왔다 가라고.
“고모가요?”
고모라는 말에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서 고모에 대한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응, 조금 전에 우리도 전화를 받았어.
“네, 알았어요. 점심 전까지 갈게요.”
–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뚝.
전화를 끊고도 현성은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현성의 머릿속에서 예전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추석이 지난 어는 일요일이었다. 삼척에 사는 고모가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잔소리하던 기억밖에 없다.
왜 이리 가난하냐?
옷이 그게 뭐냐?
앞으로 애들은 어찌할 것이냐? 등등.
아버지와 어머니는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괜히 주눅이 들어 머리를 조아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물론 현성도 그때는 아무 소리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세월이 그렇게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 알 수 있을 듯싶었다.
“그랬단 말이지.”
현성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현성은 우선 정육점에 들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어서 와, 김 사장. 요즘 장사 잘된다는 소문이 아주 자자해.”
현성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아는 정육점 사장은 언젠가부터 이름 대신 김 사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 동네 분들 덕분이죠, 뭐.”
“어린 친구가 예의도 바르고 대단해. 개업하는 날에는 노인정 어르신들도 초대했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
“헤헤, 라면 한 그릇씩 들였을 뿐인데요.”
“무슨 소릴, 막걸리까지 잘 먹었다고 하던데. 하여간 젊은 친구가 대단해. 그건 그렇고 고기는 뭐로 줄까?”
“구워 먹을 거니까 목삼겹살로 두툼하게 썰어 주세요.”
화롯불에 소금구이를 할 참이다. 어제저녁에 전화 왔다는 얘기는 어머니가 미처 반찬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다.
잠시 후.
“여기 있네. 생고기라 숯불에 구우면 맛이 아주 기가 막힐 걸세.”
“그렇겠죠.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현성이 막 정육점을 나올 때였다.
“김 사장!”
“네?”
현성이 돌아보자 정육점 사장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화이팅일세.”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대박 나십시오. 저는 그럼 진짜 물러갑니다.”
정육점을 나온 현성은 집을 향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집에 도착하니 입구에 승용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이미 고모는 왔다는 얘기다.
방으로 들어가 큰절부터 올렸다.
“고모님 절부터 받으세요.”
“네가 현성이냐? 안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절을 끝낸 후 자리에 앉자마자 고모 김선영이 물었다.
“가게를 한다고?”
“네, 그렇게 됐습니다.”
현성의 말이 끝나자 김선영은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오빠, 학생이 무슨 장사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래도 다행히 잘 된다고 하니 다행이지 뭐니?”
“오빠 정신이 있어요?”
“…….”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말했다.
“고모,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니, 언니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 이제 고등학생인 애한테 장사를 시킬 생각을 해요? 그렇게 집이 어려워요? 아니, 아무리 어려워도 그렇지 이건 아니죠.”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란 거예요? 지금 상황이 뻔한데.”
김선영은 막무가내였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뭔가 착각을 하나 본데…….”
“착각이요? 오빤 지금 내가 착각하는 거로 보여요?”
“가게도 우리가 시킨 게 아니고 현성이가 원해서…….”
아버지는 끝까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선영이 아버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기 때문이다.
“오빠,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 현성이 고2라면서요? 그런 애가 무슨 장사를 한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본인이 원해서 그런 거라니까.”
“오빠, 진짜 자꾸 이상한 소리만 할 거예요?”
김선영은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현성이 낮은 목소리로 김선영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