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78)
회귀해서 건물주-178화(178/740)
178
“라면은 몇 단계로 드릴까요?”
현성이 물었다.
그러자 오상철이 메뉴판을 쓱 쳐다봤다. 메뉴판에는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하바네로라는 고추에 대한 설명이 간단히 적혀 있었다.
오상철은 주문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기 저건 뭔가?”
“뭐 말입니까?”
“저기 메뉴판 하단에 적혀있는 하바네로 말이네. 저게 그 맵다는 그 고춘가?”
“아, 저거요. 그러니까…….”
현성은 하바네로 고추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말이 설명이지 메뉴판에 적혀 있는 설명을 그대로 읽는 정도였다.
그러자 오상철이 다시 말했다.
“아니, 그 내용은 저기 다 적혀 있는 거고 그거 말고 다른 정보는 뭐 없는가?”
“그 이상은 저도 영업상 비밀이라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영업비밀인가? 그리고 동종업종끼리 그 정도 정보는 다 공유하고 그러는 거라네. 자네가 아직 어려서 몰라서 그러는 거지.”
오상철의 궤변은 계속됐다.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그런 소리에 신경 쓸 현성이 아니었다.
“됐고요, 라면 어떻게 드릴까요?”
“정말 말 안 할 텐가?”
“지금 보다시피 저 바쁘거든요. 빨리 주문 부탁드립니다.”“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구매는 어디서 하는가?”
집요한 오상철이었다.
그만큼 오상철에게도 지금으로선 절박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분명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여기 가게의 소문은 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매운맛의 비밀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궁금했을 것이고.
오늘 이곳에 온 이유도 그 맛이 궁금해서 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건 오상철의 뇌 구조다.
어찌 됐건 경쟁 업소다. 그런데 쉽게, 그것도 당당하게 이렇게 찾아온다는 것이 정상적인 뇌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는 거다.
하긴, 10년을 넘게 장사하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내쫓은 사람이다. 처음부터 이 사람에게 정상적인 인성을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그래, 라면이나 팔자.’
더 이상 뭘 기대한단 말인가.
현성이 오상철을 보며 다시 말했다.
“얼른 주문하시죠?”
“끝까지 안 가르쳐 주겠다는 거네?”
“말씀드렸잖아요, 그건 비밀이라고. 그리고 세상에 어떤 미친놈이 아무리 동종업종이라 해도 그런 정보를 공유한답니까?”
현성은 일부러 ‘미친놈’이란 단어에 힘을 줬다.
요즘이야 궁금하면 검색창에 물어보면 되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던 시대다.
정보의 가치가 그만큼 높다는 얘기다.
물론 현성은 전생의 도움으로 쉽게 얻은 정보였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한 오상철에게만큼은 어떤 정보도 주고 싶지 않은 현성이었다.
“허, 이 친구가 이젠 대놓고…….”
어이가 없는지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오상철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민성이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말했다.
“3단계로 두 개.”
“처음 드시는 분들은 좀 매울 텐데 괜찮겠습니까?”
혹시라도 나중에 딴소리할까 봐 현성은 한 번 더 주의를 시켰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라도 뒷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자 최민성이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어차피 초등학생들도 먹는다면서?”
“물론이죠. 요즘은 열에 일곱은 먹습니다.”
“혹시 3단계보다 더 높은 건 없는가?”
현성은 최민성을 힐끔 쳐다봤다.
사람은 자고로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오상철의 똘마니 노릇을 하는 최민성이라 그런지 여기서 또 허세를 부릴 줄은 몰랐다.
빙긋.
현성이 누구인가. 그런 거에 그냥 넘어갈 위인이 아니었다.
“왜 더 높은 단계를 원하십니까?”
“이왕 먹는 거 화끈하게 먹어보게.”
“얼마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까짓것 동종업종인데 그 정도 못 해 드리겠습니까?”
현성은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가증스러울 정도였다. 말하는 목적이 너무도 불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신명순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명분을 찾는 현성이었다.
그때 최민성이 호기롭게 말했다.
“그럼 4단계로 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도착한 현성은 신명순을 보며 손가락 4개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신명순이 물었다.
“4단계요?”
“네, 오늘 저 두 사람 여기서 걸어 나가기 힘들 겁니다.”
“호호, 설마요?”
“제가 서비스도 팍팍 넣어 줄 거거든요.”
그렇지 않아도 처음 오상철을 본 순간 작정을 한 현성이었다. 그런데 메뉴판에도 없는 4단계를 주문했다.
오상철과 최민성은 어차피 하바네로를 오늘 처음 맛본다. 그 말은 1단계를 먹든 4단계를 먹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매운맛이기에 몇 스푼이 들어갔는지 그 자체를 모를 것이라는 거다.
다시 말하면 4단계에 추가로 고춧가루 양념을 더 넣어도 모를 것이라는 얘기다.
현성은 냄비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곤 바로 가스 불을 켰다. 그러자 채 5초도 안 돼 물이 끓기 시작했다.
라면과 스프를 넣고 마지막으로 양념장을 여섯 스푼 넣었다. 물론 두 스푼은 현성의 특별 서비스였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신명순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을까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오늘 서비스 팍팍 줄 거라고.”
“사장님도 은근…….”
신명순은 뒷말을 흐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 듯싶었다.
현성은 대답 대신 피식 웃고 말았다.
잠시 후.
“라면 나왔습니다.”
“어, 그래. 근데 라면을 매번 이렇게 직접 끓이는가?”
“아니요, 평상시엔 아주머니가 끓이는데 오늘은 특별히 제가 직접 끓였습니다. 다른 분들도 아니고 동종업종인 사장님들인데 그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그렇게 깊은 뜻이. 어쨌건 고맙네.”
현성은 순간적으로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기 때문이다.
현성이 물러가자 오상철이 코를 실룩거리기 시작했다.
킁킁.
“이거 냄새가 장난이 아닌데…….”
“그러게요.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매운 향은 처음인데요. 이거 먹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최민성은 겁먹은 표정으로 먹지는 못하고 젓가락만 빨고 있었다.
그때 오상철이 최민성을 보며 말했다.
“먹어 봐.”
“네? 제가 말입니까?”
“먼저 먹어 보라고. 어서!”
“아니, 그게, 저…….”
최민성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버텨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모를 리 없는 최민성이 젓가락으로 면발을 조심스럽게 한 가닥 건져 올렸다.
그때였다.
오상철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거 말고.”
“그게 무슨……?”
“라면은 자고로 국물이 진국 아닌가? 면은 내려놓고 국물부터 맛보게.”
“형님……!”
최민성은 오상철을 빤히 바라봤다. 그런데 그 표정이 가관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하지만 오상철이 누구인가. 그런 거에 자비를 베풀 위인이 아니었다.
“어서!”
“……네.”
억지로 대답을 한 최민성이 숟가락을 들었다.
후룹.
“켁!”
최민성은 국물을 먹자마자 기침을 해댔다.
“혀, 형님 이거…….”
“그 정도야?”
“아! 저는 이거 도저히…….”
“무슨 소리야? 기껏 시켜놓고. 누가 그러게 메뉴판에도 없는 4단계를 시키라고 그랬어? 그냥 3단계만 시켰어도 이 정도는 아닐 거 아냐?”
현성이 특별 서비스를 추가한 줄 모르는 오상철은 주문한 최민성만 탓하고 있었다.
그러자 최민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죄 없는 라면 냄비만 노려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상철의 말에 틀린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상철이 다시 말했다.
“먹자고.”
“괜찮겠습니까?”
“초등학생들도 먹는다는데 설마 아무리 매워도 우리가 못 먹겠는가? 그리고 장사를 하려면 우리는 무조건 먹어야 돼.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무조건 먹어.”
“형님…….”
울고 싶은 최민성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민성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오상철이 결심이라도 한 듯 호기롭게 라면을 젓가락으로 집었다.
후루룩.
면발을 삼키던 오상철.
“켁.”
입에 들어갔던 면발이 다시 튀어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풉.”
하지만 대놓고 웃을 수는 없기에 얼른 입을 가렸다.
그러자 신명순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저 모습을 보니 그동안 막혔던 체증이 확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저 양반들 위라도 잘못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호호, 그러게요.”
신명순은 입을 가린 채 웃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소심한 복수는 성공리에 끝나가고 있었다.
그 후로도 20분 넘게 켁켁 거리는 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라면 한 그릇을 먹는 데 20분 이상이나 걸린 것이다.
***
며칠 후.
“이상하네.”
현성은 밤을 꼬박 새웠다. 오늘로 3일째다.
3일 전부터 쓰레기 때문에 범인을 잡고자 한잠도 안 자고 홀에서 밤을 새웠다. 그런데 문제는 3일 동안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하루걸러 한 번씩 쓰레기를 버리곤 했었다. 그래서 현성이 생각했던 방법이 3일을 연속으로 밤새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최소한 3일 중에 한 번은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실패로 돌아갔다.
잠시 생각하던 현성은 씩 웃었다.
‘이대로 끝난 건가…….’
현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김지숙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네,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직 영업 시작하려면 30분이나 남았는데.”
“오늘은 왠지 일찍 나오고 싶더라고요.”
“그래요? 그러면 일찍 나오신 기념으로 커피 한잔할까요?”
현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김지숙은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작은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김지숙은 쟁반에 커피 두 잔을 들고 나왔다.
“사장님, 여기요.”
“네, 고맙습니다. 참, 아저씨는 요즘 어떠세요?”
“여전히 누워만 있습니다. 어린 사장님한테 이런 소리 하기 부끄럽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솔직히 많이 힘드네요.”
“아, 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벌써 3년째 투병 중이라고 했다. 그것도 특별한 병명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병원에서도 아직 모르는 희소병이라고만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렇게 사장님이 저를 고용해 주시는 바람에 아이하고 먹고 살 수는 있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저야 어차피 사람이 필요했던 거고 그래서 그랬던 거니까 그 부분은 괘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아닙니다. 이 은혜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겁니다.”
김지숙은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이번 주는 다음 주가 시험이라 안 되고, 시험 끝나고 날 잡아서 한번 병원에 들르겠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아니요, 제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아, 네…….”
주방으로 향하려던 김지숙이 돌아서며 물었다.
“참, 사장님. 오늘도 쓰레기는 없었지요?”
“네, 이상하게 없더라고요. 벌써 3일짼데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누군지…….”
말을 하던 현성은 말을 멈췄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김지숙을 보며 바로 물었다.
“아니, 아주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전 아직 쓰레기 얘기는 말씀 안 드렸는데…….”
“네? 아, 그게…….”
말을 잊지 못하는 김지숙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성은 김지숙을 보며 다시 물었다.
“아주머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요? 안 그렇습니까?”
현성의 질문에 잠깐 생각하던 김지숙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