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80)
회귀해서 건물주-180화(180/740)
180
“내가 그동안 너무 새장 속에서만 산 거 같다.”
“그 말은…….”
“지금부터라도 그 새장에서 나와 보려고. 물론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겠지만, 천천히 시도해 보려고. 그래서 말인데, 네가 나 좀 도와주라.”
말하는 이수혁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평상시에 느끼던 그런 이수혁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현성은 이수혁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앞치마를 달라고?”
“응, 여기서부터 시작하려고. 나 오늘부터 여기서 일 좀 하려고 그러는데 괜찮겠냐?”
“여기서 일을 한다고?”
“응, 그리고 혹시나 해서 미리 말하는데 알바비는 걱정하지 마라. 당연히 안 받을 테니까. 내가 아쉬워서 부탁하는 건데 그거까지 받을 순 없지.”
당당한 이수혁이었다. 당혹스러운 건 오히려 현성이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얘기했잖아. 이제부턴 나 스스로가 그 새장에서 나오겠다고. 지금까지는 그 새장 속 세상이 다인 줄 알았는데 이젠 그게 아니란 걸 알았거든.”
이수혁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며칠 전까지도 아무 이상 없이 학교에 잘 다니던 이수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에 안 간다고 하면서부터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곤 자살 소동까지. 물론 그건 약간의 오해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확실히 예전의 이수혁에 비하면 달라진 게 확실했다.
현성은 이수혁을 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이유가 뭐야?”
“이유?”
“그래, 너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학교 잘 다니고 있었잖아. 단순히 어머니 때문에 갑갑하다는 이유 말고 진짜 원초적인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잠시 말이 없는 이수혁이었다.
현성은 더 묻지 않고 이수혁이 생각할 수 있도록 말없이 기다렸다.
그러기를 잠깐.
이수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뭐라고?”
“나를 찾고 싶었어. 어느 날부턴가 느낀 건데 내가 없더라고. 매일 엄마가 짜준 스케줄대로 움직이다 보니까 마치 꼭두각시 인형 같은 거야. 그래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수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항상 조용히 있기에 당연히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
사람은 역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던 거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사실은 그동안 엄마가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던 거고. 그런데 그날 옥상에서 엄마랑 얘기하면서 알게 됐어.”
“뭘 알게 됐는데?”
“그날 네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기억하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수혁이 다시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날 용기를 내어 엄마한테 내 진심을 얘기했던 거고. 그랬더니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더라고.”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그런 말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찌 됐건 이수혁이 원하는 대로 과외수업도 당분간은 중단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현성이 이해가 안 가는 건 그거하고 지금 여기서 알바를 하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현성은 이수혁을 보며 물었다.
“야, 그거하고 알바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는 건데?”
“내가 변하기 위해선 많은 경험보다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거든.”
현성으로선 쉽게 이해가 안 가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알다시피 내가 그동안 엄마의 새장 속에서만 살았잖아.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기서 일하는 거야. 장사만큼 경험을 하기에 좋은 건 없을 거 같아서 말이야.”
“말은 복잡했지만 결국, 결론은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거네?”
“그렇지. 바로 그거야.”
피식.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엉뚱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겠다는 이수혁의 모습이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현성은 이수혁을 보며 물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물론 쉽지는 않겠지. 그리고 솔직히 두렵기도 하고. 하지만 언제까지 새장 속의 새처럼 살 수는 없는 거잖아. 그러니까 네가 좀 도와줘!”
이수혁의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이수혁을 보며 현성이 말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자.”
“뭔데?”
“만약 여기서 일을 하게 되면 그 시간만큼 공부 시간을 뺏기게 될 거야. 그렇다 하더라도 시험 성적이 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어?”
이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수혁의 어머니 유수민 때문이다. 시험 성적에 있어서만큼은 조금의 빈틈도 허용을 하지 않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물론이지. 내가 옥상에서 엄마하고 약속한 부분도 그 부분이었거든. 내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학교 성적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지하는 조건, 바로 그거였으니까.”
“좋아, 네가 그런 각오라면 나도 더 이상은 안 말리겠어.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다.”
“조건?”
“그래, 어디까지나 사람을 한사람 더 쓰는 거니까 무조건 쓸 수는 없지.”당연한 얘기다. 친구라는 이유로 아무 조건도 없이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조건이 뭐야?”
“한번 시작하면 이유 불문하고 최소 3개월은 일할 것.”
“3개월?”
“그래, 장난으로 시작하지 말란 얘기야. 물론 알바이긴 하지만 엄연히 직장이 되는 거거든. 그리고 여기는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한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하루 이틀 나오다가 안 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진단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았어, 그 정도야 당연히 지켜야지.”
이수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그리고 알바비 문젠데, 너는 필요 없다고 하지만 그건 그럴 수 없는 거고 알바비는 당연히 계산해서 줄 거야.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게.”
“아니, 내가 필요해서 부탁한 건데 알바비까지 받으면 내가 너무 미안하잖아.”
“야, 어찌 됐건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됐고, 내일부턴 7시까지 나오면 돼. 이제 조금 있으면 학생들 몰려올 거야. 우리도 준비하자.”
현성은 그 말을 끝으로 주방으로 들어가 앞치마를 하나 들고나와 이수혁에게 내밀었다.
“수혁아, 이거.”
“현성아 고맙다. 이번에 내가 옥상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너한테 신세를 많이 진다.”
“자식, 별소릴 다 한다. 그나저나 뜨거운 음식 다루는 일이니까 진짜 조심해야 한다.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야, 알았지?”
“응, 알았어. 조심할게. 그런데 나 은근 떨린다.”
현성은 그런 이수혁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현성은 이수혁을 보며 턱짓을 했다. 손님을 받으라는 의미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이수혁이 입을 열었다.
“어서…….”
이수혁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처음이라 긴장한 나머지 인사말이 더 이상 안 나온 것이다.
툭.
현성은 이수혁의 어깨를 살짝 쳤다.
“긴장되냐?”
“말이 안 나와. 나 어떡해?”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입을 크게 벌리고 힘차게 자, 다시 해 봐.”
이수혁은 몇 번 입을 달싹이더니 결심이라도 한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어서 오세요!”
그런 이수혁을 바라보며 현성은 다시 한번 빙긋 웃었다.
이수혁은 안채를 담당했다. 처음엔 쑥스러워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이수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목소리도 커졌다.
첫날치고는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는 이수혁이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듯하던 이수혁이 사고를 친 건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콰당 탕.
안채에서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성은 직감적으로 사고임을 알아챘다.
“무슨 일이야?”
현성은 안채로 뛰어 들어갔다.
안채 마당에는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라면 파편들이 사방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혀, 현성아…….”
이수혁은 바닥에 넘어진 채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괜찮은데, 이 라면들은…….”
“지금 라면이 문제야? 어디 다친 데는 없고”
현성은 이수혁을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도 어디 다치거나 데인 곳은 없는 듯했다.
뛰어오면서도 가장 먼저 걱정했던 것이 뜨거운 라면이라 화상의 위험이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주섬주섬.
이수혁은 바닥에 떨어진 면발을 손으로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성이 말했다.
“야, 그건 내가 할 테니까 너는 얼른 가서 씻어.”
“아니야, 내가 사고 친 건데 내가 치워야지. 미안하다, 현성아.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데, 서두르다가 그만…….”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서두르다가 그만 실수로 그런 거잖아. 그리고 어디 안 다쳤으니까 됐어. 라면이야 다시 끓이면 되는 거고.”
잠시 후.
이수혁은 화장실로 향했다.
끼릭.
수돗물을 틀어 손을 씻은 다음 세수를 했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봤다.
“휴우.”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서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어떡하든 보란 듯이 빨리 인정받고 싶었다. 처음엔 인사말도 입에서 잘 안 나왔지만 그 문제는 금방 해결했다.
처음이 어려웠지 몇 번 하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인사말이 입에 붙었다.
그다음 문제는 주문을 받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낯가림이 있다 보니 처음엔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또래 여학생들 앞에서 주문을 받기가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문제도 시간이 약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그다음이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보다 빠른 시간에 손님들께 라면을 갖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하면 일하는 아주머니는 물론이고 현성까지도 빨리 적응했다고 칭찬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평상시에 한 번도 하지 않던 일이다. 그런데 제 주제도 모르고 라면을 여섯 개씩이나 쟁반에 올려놓고 설쳐댔으니 사고가 안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 발이 꼬이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후회했을 땐 이미 자신은 마당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굳이 서두를 필요가 있었는가?
잠깐 고민에 빠지던 이수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욕심.
결국은 쓸데없는 욕심이 부른 결과였다. 오늘은 첫날인 만큼 실수만 안 했어도 잘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그게 아니라 좀 더 빨리 인정받고 싶었던 과욕이 가져온 대가였다.
화장실을 나온 이수혁은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신명순과 김지숙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아주머니들을 번거롭게 만들었습니다. 다음부터는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이수혁의 말이 끝나자 신명순이 말했다.
“안 다쳤으니 됐네. 처음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김지숙이 말했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네. 그리고 사장님한테 고맙다고 하고. 다른 사장님 같았으면 월급에서 라면값부터 제한다고 했을 거야. 아무리 친구 사이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그리고 참, 여기 식당 내에서는 사장님한테 존댓말 쓰는 거 잊지 말고.”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존댓말은 뭡니까?”
“그러니까…….”
김지숙은 왜 현성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김지숙의 설명이 끝나자 이수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씀이 맞는 거 같습니다.”
이수혁은 주방을 나와 현성에게 다가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다음부턴 더욱더 주의하겠습니다.”
“갑자기 웬 존댓말?”
“아주머니한테 식당 내에서는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생각해보니까 그게 맞는 거 같고요.”
“하여간……, 알았고 진짜 조심해야 해. 뜨거운 음식이라 더욱더 조심하고.”
“네, 사장님.”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학생 3명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이수혁이 현성보다 빨리 큰소리로 인사를 한 후 손님을 데리고 안채로 사라졌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인사도 제대로 못 하던 이수혁이었다.
현성은 사라진 이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제 딴에는 빨리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둘렀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이수혁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