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82)
회귀해서 건물주-182화(182/740)
182
“이수혁, 어떻게 된 거야?”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두 시간 전에 혼자서 공부를 하겠다고 가게를 나갔던 이수혁이었다.
현성의 질문에 이수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집에 갔는데……, 공부가 안되더라.”
이수혁 자신조차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다. 누군가 때문에 공부하는 데 방해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늘 혼자였고 그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현성이 같이 공부하자는 말에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늘 하던 대로 혼자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의 공부습관 때문이었다. 항상 혼자 공부하던 버릇 때문에 누군가와 같이 공부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함께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현성의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할 때였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이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라 말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시험이 며칠 안 남았기에 그런 거에 연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조금은 불편한 감정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별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책은 눈에 안 들어오고 불편한 마음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시간이 지나도 그 묘한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이 지날 때쯤이었다.
여전히 집중은 안 되고 불편한 마음은 점점 더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건 바로 조금 전에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이었다.
–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겠다고.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그토록 마음이 불편했는지.
친구들 앞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살겠다고 말을 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말뿐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작 어떤 상황이 벌어지자 다시 예전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변하지 못한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그토록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현성은 확인이라도 하듯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집에 갔는데 공부가 안돼서 다시 왔다는 거지?”
“응.”
이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성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혼자서 공부하던 녀석이다. 그런 그가 갑자기 집에서 공부가 안된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현성은 다시 물었다.
“늘 해오던 거잖아. 그런데 갑자기 이유가 뭐야?”
“말하긴 좀 부끄러운데 내가 아까 한 말 때문에…….”
이수혁은 말끝을 흐렸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현성이었다.
“아까 한 말? 그게 뭔데?”
“응, 그게……, 지금까지 살던 새장에서 벗어나 새롭게 살겠다는 말. 집에 가서 생각하니까 그 말이 걸리더라고.”
“아, 새장…….”
현성은 그제야 이수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때 이수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더라고. 나도 모르게 예전의 나로 돌아와 있는 거야.”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다른 것도 아니고 시험이잖아. 더군다나 이번엔 어머니하고 약속도 했다면서?”
“물론 그렇기는 한데 이런저런 핑계를 찾다가는 백날이 가도 바뀌지 않을 거 같았어. 그래서 이번 기회에 확실히 도전해 보려고!”
이수혁의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였다.
“괜찮겠어?”
“네가 그랬잖아.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어차피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좋다. 네가 그렇게까지 결심을 했다니 더 이상은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아둬.”
이수혁이 현성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현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물론 결과가 중요하지. 하지만 그 과정 또한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가치도 소중한 거거든. 지금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알지?”
“응, 어쩌면 엄마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렇게 너희들과의 소중한 추억은 지금 아니면 영원히 만들 수 없는 거잖아. 적어도 내가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그 정도면 됐어. 그리고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좋게 돼 있어. 어쩌면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지도 몰라.”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앞으로 3일 동안 진짜 열심히 해보자.”
이수혁의 눈빛이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툭.
현성은 그런 이수혁의 어깨를 살짝 쳤다. 그러자 이수혁은 현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김일수와 이정우 그리고 이수혁, 전생에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었던 조합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성은 보고 말았다. 어딘가 불안해하는 이수혁의 눈빛을.
그때 조용히 있던 김일수가 이수혁을 보며 물었다.
“수혁아, 우리 지금 라면 먹을 건데 너도 라면 먹을 거지?”
“라면?”
“응, 공부하다 보니까 배가 고파서. 그리고 이런 맛에 같이 모여서 공부하는 거 아니겠냐?”
“어? 어. 그래, 좋지…….”
아직은 이런 상황이 처음인 듯 어색한 이수혁이었다.
***
아직 10월 초순임에도 제법 쌀쌀한 새벽.
그 쌀쌀한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어슬렁거리는 두 사람.
오상철이 최민성을 보며 물었다.
“지금 몇 시야?”
“새벽 세 시 조금 넘었습니다.”
“설마 이 시간에도 그 꼬맹이가 깨어 있는 건 아니겠지?”
“제가 아까 새벽 두 시에 친구들하고 헤어지는 거까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홀에 불이 꺼지는 것도 확인했고요. 아마 지금쯤이면 틀림없이 꿈나라에 가 있을 겁니다.”
최민성은 대답을 하면서 무슨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그러자 오상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제 슬슬 준비해볼까.”
“네, 형님.”
두 사람은 리어카에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싣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그 시각.
친구들을 보내고 홀로 남은 현성.
“누가 이기나 해보자.”
현성은 오늘도 잠을 자지 않았다. 쓰레기를 버리는 범인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4일째이지만 아직까지는 체력적으로 버틸만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잠을 전혀 안 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짬짬이 책상에 엎드려 쪽잠을 자기는 했었다.
다행히도 그 정도로도 체력을 유지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현성은 시계를 확인했다.
새벽 3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범행을 저지른다면 가장 어두운 이 시간 때가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음……, 이 소리는?’
무슨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듣기에 리어카 바퀴 소리 같았다.
현성은 정신을 집중해 귀를 벽 쪽에 밀착시켰다. 그러자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어?’
가까워지던 소리가 어느 순간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은 리어카가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는 얘기가 된다.
현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출입문 쪽으로 다가갔다.
“읍.”
틈새로 밖을 내다보던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현성은 어이가 없었다.
리어카가 멈춘 곳은 바로 가게 앞이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리어카에 가득 실려 있는 쓰레기를 현성의 가게 앞에 내려놓고 있는 것이었다.
‘이놈들이었어?’
범인은 두 놈이었다. 어둠 속이라 겨우 형체만 보일 뿐 누구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딸각.
전기 스위치를 켰다. 그러자 가게 홀과 간판에 불이 들어오면서 밖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동시에 현성은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새끼들이야?”
현성의 입에서 욕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 당신들은…….”
현성은 황당 그 자체였다.
범인은 다름 아닌 오상철과 최민성이었다.
“어?”
“어?”
오상철과 최민성은 동시에 입을 벌렸다.
저승사자를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오상철은 오금이 저리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현성과 눈이 마주치자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현성이 말했다.
“당신들이었어?”
“그, 그게…….”
현장에서 딱 걸렸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오상철, 그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상철이 말이 없자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이게 지금 도대체 뭐 하는 짓입니까?”
“…….”
“남의 가게 앞에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고요? 네?”
현성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고요한 새벽이라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현성은 오상철을 바라봤다.
어쩔 줄 모르고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갈 거 같은 표정이었다.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오상철이 내년이면 환갑이다. 육십갑자의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환갑. 그만큼 살 만큼 살았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한다는 자체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였을까.
현성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아저씨!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이건 아니잖아요!”
“네?”
연거푸 쏟아내는 현성의 절규가 새벽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캄캄했던 골목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골목 양쪽으로 늘어선 집에서 전등이 켜지면서 불빛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현성의 절규가 동네 사람들을 다 깨운 것이다.
잠시 후.
웅성웅성.
동네 사람들이 현성의 가게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이 새벽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뭐야? 이 쓰레기들은?”
“저 양반은 오 사장이잖아? 이 새벽에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궁금증을 입으로 풀고 있었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오상철과 최민성의 표정은 더욱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반면, 현성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기 직전이었다.
그때 옆집 아저씨 이봉수가 현성을 보며 물었다.
“어이, 김 사장 새벽부터 무슨 일이야?”
현성은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이 인간들을 어떤 식으로 개망신을 줄 것인가 고민 중이었다.
처음엔 경찰을 부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경찰을 부른다고 하더라도 중대 범죄도 아니고 기껏해야 주의 정도로 끝날 것이다. 설사 경범죄로 처리가 되어 범칙금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법의 심판이 때로는 범인을 보호해주는 가림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현성이었다.
현성은 옆집 아저씨인 이봉수에게 큰 소리로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제 말 좀 들어보세요. 글쎄 이 아저씨들이…….”
현성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이봉수는 물론이고 모여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도 놀랍다는 듯 오상철과 최민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현성의 설명이 끝나자 이봉수가 오상철 앞으로 다가갔다.
“형님, 지금 여기 김 사장 말이 사실이유?”
“어? 그, 그게…….”
“말씀을 못 하시는 거 보니까 사실인가 보네요. 아니 어떻게 나이 드신 양반들이…….”
이봉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오상철과 최민성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때였다.
언제 나왔는지 전주인의 아들인 이우진이 오상철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오상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여기다 이 쓰레기를 버린 거예요?”
“…….”
오상철은 그저 머리만 긁적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이우진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짧게 쉬고는 다시 말했다.
“할아버지, 다시는 이러시면 안 돼요. 아셨죠?”
오상철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