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84)
회귀해서 건물주-184화(184/740)
184
지금 시각, 아침 6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루루루…….”
현성은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앓던 이가 빠진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쓰레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나흘 동안을 연속으로 밤샘을 했을까.
그런데 어이가 없는 건 범인이 오상철과 최민성이라는 것이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그 사람들이 범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이나 적으면…….”
박희철과 동갑이니 오상철이 내년이면 환갑이다. 그 나이에 그 새벽에 그 짓을 하고 있었다는 게 한심스러울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중요한 건 앞으로는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거다. 그럼 된 거다.
후룩.
현성은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비록 봉지 커피이지만 입안에 퍼지는 커피 향이 오늘따라 기분 탓인지 짙게 느껴졌다.
그때였다.
딸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아직은 누군가 들어오기엔 너무 이른 시간. 현성의 시선이 빠르게 문 쪽으로 향했다.
“아니, 아버님?”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이수혁의 아버지 이만수 조합장이었다.
“허허, 내가 너무 일찍 왔지?”
“그거야 상관없습니다만,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하고 할 얘기가 있어서 일부러 집에서 일찍 나왔네. 혹시나 문이 안 열려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렇게 열려있어 다행이지 뭔가.”
“아, 그러셨습니까. 이쪽으로 앉으시죠. 참, 커피 한잔하시겠습니까?”
“한잔 줄 텐가?”
이만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현성이 앉은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수혁의 어머니 유수민과는 다르게 이만수의 표정에서는 푸근함이 느껴졌다.
현성은 커피를 이만수에게 내밀었다.
“아버님, 커피 여기 있습니다.”
“어, 고맙네. 자네를 보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얼굴이 참 밝아. 그래서 같이 있다 보면 기분이 참 좋단 말이야.”
“하하, 아버님도 참…….”
현성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언제부터였을까.
현성 스스로도 느끼는 감정이다. 전생과 비교하면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로 자신의 표정이 변화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예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학교생활도 재미가 없었고, 암담한 미래에 불우한 가정형편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으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학교면 학교, 가정이면 가정, 어느 곳 하나 부족할 게 없다. 게다가 오픈한 라면 가게까지 하루하루 지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밝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긴 두 번째 삶이 아니던가 말이다.
이만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혹시 자네 칭찬이 자자하다는 거 알고 있는가?”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노인정 어르신들이 자네를 그렇게 칭찬하더구먼. 어린 학생이 아주 예의도 바르고 싹싹하다고 말이야. 좁은 동네 아닌가. 농협에 앉아 있다 보면 금방 소문이 들려온다네.”
“아, 네…….”
현성은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별것도 아니었다. 그저 개업 날에 라면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잔 드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고맙다며 칭찬을 하고 있다. 그만큼 정에 굶주렸다는 것일 것이다.
이번엔 현성이 먼저 물었다.
“참, 아까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그렇지 않아도 그 얘길 할 참이었네. 다름이 아니고 우리 수혁이 얘기일세.”
“수혁이요?”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수혁 때문에 이만수가 여기에 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이수혁에게 변화가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아침에 이곳에서 알바를 하기로 한 것과 또 하나는 장사가 끝난 후 이곳에서 공부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이만수가 여기에 온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이만수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우리 수혁이가 여기서 아침 시간에 일을 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그게 어떤 문제라도…….”
“아니 문제 될 건 없는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야, 용돈이 필요해서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왜 그러는지 불안해서 이렇게 자네한테 찾아왔네.”
“아, 네…….”
현성은 그제야 이만수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듯싶었다.
이만수로서는 지금 불안한 것이다. 이번뿐이겠는가. 지난번 가출에 이어 자살소동까지, 요즘 들어 이수혁의 행동으로만 봐서는 불안한 게 당연할 것이다.
이만수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우리 수혁이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서 일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혹시 수혁이한테 물어보셨어요?”
“아니, 물어보지는 않았네. 아들하고 대화한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 말이야. 이상하게 아들 녀석하고는 대화하기가 힘들더라고.”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현성도 전생에서는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다.
지금이야 아버지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지만, 전생에서는 거의 대화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대화가 없으니 나이를 먹어서도 그 버릇은 고치기 힘든 게 사실이었다.
어느 한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세상의 많은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일 것이다.
현성이 말했다.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 수혁이가 말인가?”
“네, 제가 볼 때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현성은 뒷말을 다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만수가 바로 물었다.
“그리고 뭔가? 어떤 말이든 상관없으니 편하게 말해보게.”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어머니의 품 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비유를 새장으로 들긴 했지만 결론은 그거였습니다.”
“새장이라…….”
이만수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말이 없던 이만수가 남은 커피를 마신 후 현성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보기엔 우리 수혁이 이대로 괜찮겠는가?”
“물론 아버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겠지만 제가 볼 때는 아무 문제가 없을 거 같습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괜찮단 얘기지?”
“네, 제 판단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처음이라 어렵겠지만 아버님께서 수혁이한테 먼저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으면 좋겠습니다.”
“대화의 손길……?”
이만수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그러고 보니 이수혁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시면 될 겁니다. 요즘 수혁이가 예민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아버님의 관심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 말이야. 더군다나 그 녀석도 나한테는 말이 별로 없어서…….”
“아, 그렇군요. 혹시 수혁이랑 어렸을 때 운동 같은 거 같이해본 적 있으세요?”
“글쎄……, 그게 오래전 일이긴 한데,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가끔 산에 같이 가곤 했었는데,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공부 때문에 그것도 그만뒀지.”
“혹시 수혁이가 산을 좋아했었나요?”
이만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지, 주말에 산에라도 가는 날에는 그 전날부터 좋아했었으니까. 오죽했으면 어떤 날은 김밥도 직접 준비할 정도였으니 꽤나 좋아했을 거야.”
“그렇다면 답은 나왔네요.”
“그 말은 다시 산을 가라, 이거지?”
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어렸을 적 기억만큼 좋은 길라잡이가 없다. 더군다나 본인이 그토록 좋아했었다면 얘기는 또 달라질 것이다.
공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고로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했다. 지금 이수혁의 경우가 그렇다. 오죽했으면 갑갑하다고 도망까지 가려고 했던 녀석이 아니던가 말이다.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이제라도 안 늦었습니다.”
“이제 곧 고3인데 괜찮을까?”
“수혁이를 한번 믿어보세요. 제가 볼 땐 아버님이 조금만 도와주시면 수혁이 틀림없이 잘 해낼 겁니다.”
“음…….”
고민에 빠진 이만수.
왜 고민이 되지 않겠는가.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기에 현성은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기다리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잠시 후.
이만수가 현성을 보며 말했다.
“자네 말을 믿어 보겠네. 사실 지난번 옥상에서 그 일이 있고 난 뒤로는 나도 수혁이를 어찌 대해야 할지 솔직히 겁이 난다네. 그래도 지금으로선 자네가 수혁이를 가장 잘 아는 것 같아서 자네 말을 믿기로 했네.”
“네,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도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주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지난번 맹장 수술도 그렇고 며칠 전 옥상에서도 그렇고 그리고 이번 일까지, 여러 가지로 자네한테 도움을 받는구먼.”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친군데요, 뭐.”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성의 생각인 듯했다.
덥석.
이만수가 갑자기 현성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닐세. 내가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서 말을 못 했지만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만약 그날 옥상에서 우리 수혁이가 잘못되기라도 했더라면 어쩔 뻔했는가?”
파르르.
말하는 이만수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만큼 이만수의 입장에서는 충격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자식이 자살소동까지 벌였으니 그 놀람은 이루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이만수를 보며 현성이 다시 말했다.
“이번 중간고사 끝나고 수혁이랑 산에 한 번 다녀오세요. 이제라도 안 늦었으니까 예전 추억도 다시 찾으시고, 대화도 좀 나눠보시고, 그러다 보면 수혁이도 빨리 안정을 되찾을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에 보니까 수혁이가 참기 힘들었던 건 지나친 압박감이었더라고요.”
“나도 알고 있네. 애 엄마가 욕심이 좀 많다 보니…….”
이만수는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어차피 누군가를 탓할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혹시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수혁이가 이번 중간고사 준비를 저희랑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젯밤에 수혁이 엄마로부터 얘기는 들었네.”
“그래서 말씀인데요, 혹시라도 그 결과가 예전보다 안 좋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음…….”
이만수의 표정이 약간 어둡게 변했다.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는 현성.
잠깐 고민하던 현성이 말했다.
“역시, 아버님도 결과가 중요한 건가요?”
“물론 무시는 못 하겠지.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하네. 때로는 그 과정 또한 소중하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문제는 수혁이 엄마가…….”
역시 난관은 유수민이라 이건가.
현성은 다시 물었다.
“어머니는 그게 도저히 용납이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어머니를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요?”
“물론 방법이야 찾아보면 아예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이만수로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직 시험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닌데 너무 결과에 연연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현성이 말했다.
“수혁이가 지금 그 문제로 많이 힘들어 하거든요. 혹시라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압박감이요.”
“압박감?”
“네, 옆에서 지켜보기에 불안해서 그렇습니다. 지난번에도 압박감 때문에 그만…….”
현성이 걱정하는 건 한 가지다. 물론 지난번 자살 소동이 다행히도 아무 일 없이 끝났지만 현성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수혁의 눈빛.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지만, 그날의 섬뜩한 눈빛만큼은 결코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성의 마음이 전달이라도 된 걸까.
이만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 그 부분은 내가 수혁이 엄마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어 보겠네.”
두 사람은 이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오늘의 이 대화로 인해 앞으로 이수혁의 미래가 또 한 번 바뀌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