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the building owner RAW novel - Chapter (186)
회귀해서 건물주-186화(186/740)
186
그날 저녁.
일을 마친 김지숙은 장미다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미다방에 도착하니 이미 최민성이 김지숙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민성이 물었다.
“이제 끝난 겁니까?”
“네, 7시에 영업 마치고 설거지하고 마무리하다 보면 이 시간쯤 끝납니다.”
“그건 그렇고 물건은?”
“아저씨도 참 너무 하시네. 사람이 왔으면 커피라도 한 잔 주고 얘기를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게 뭡니까?”
김지숙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분위기로만 봐서는 누가 봐도 김지숙이 갑의 위치였다. 하지만 최민성의 태도는 그게 아니었다.
피식.
최민성은 가소롭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그러자 김지숙이 바로 물었다.
“지금 그 웃음은 뭡니까?”
“김지숙 씨, 뭔가 착각을 하시나 본데…….”
최민성은 다리를 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곤 바로 말을 이었다.
“우리 위아래는 확실히 하고 갑시다.”
“네? 그게 무슨…….”
당황한 건 김지숙이었다. 아쉬운 쪽은 최민성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하는 투로 봐서는 그게 아니었다.
최민성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이런 일이나 하니까 우습게 보여요?”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말투가 그렇잖아요. 커피를 마실 거면 공손하게 말을 할 것이지 어디 아랫사람한테 하듯이 그렇게 말합니까?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내가 지숙 씨보다 열세 살이나 많은 거 알아요?”
최민성은 갑자기 나이를 끄집어냈다.
황당한 건 여전히 김지숙이었다.
“갑자기 나이는 뭐고, 그리고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다고 그래요? 난 그저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얘기하자는 거였는데…….”
“아니요, 아까 말은 그런 투가 아니었습니다. 마치 아랫사람한테 하는 그런 말투였어요. 원래 말이라는 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결정되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들었다면 그렇게 들은 겁니다.”
“…….”
김지숙은 할 말이 없었다. 최민성이 한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말이 틀린 건 아니지요?”
“그렇게 들으셨다면……, 제가 죄송하지요. 하지만 아저씨를 무시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럼, 됐어요. 그리고 이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앞으론 말 놔도 되지요?”
“네? 아, 네…….”
분위기가 어째 이상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뭐라 반항할 수도 없는 분위기였기에 김지숙은 최민성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최민성이 나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었고 자기를 고용한 것도 최민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최민성이 장미다방 종업원을 불러 커피를 시켰다.
잠시 후.
“물건은?”
“네? 아, 여기요.”
김지숙은 가방에서 작은 반찬통을 꺼내 최민성에게 건넸다.
“뭐가 이렇게 작아?”
“그것도 억지로 뺀 거예요.”
“이만큼에 만 원을 달라고? 아무리 돈이 좋지만 너무 한 거 아니야?”
김지숙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지만 말하는 싸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툭.
김지숙은 반찬통을 다시 빼앗았다.
그러자 놀란 건 최민성이었다.
“뭐 하는 거야?”
“싫으면 관둬요. 나는 그거 훔치느라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알아요?”
“아니, 그렇다고 그걸 도로 가져가면 어쩌자는 거야?”
최민성의 표정에서 김지숙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아쉬운 건 자신이 아니라 최민성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고용주라 하더라도 어차피 거래는 아쉬운 놈이 고개를 숙이게 돼 있다. 괜히 얼떨결에 상대의 분위기에 넘어갔다는 게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싫으면 거래 안 하는 거죠. 누가 치사하게 그 만 원 때문에 그런 소리까지 듣고 이런 일 하겠어요?”
“만 원이 적어서?”
“물론 적은 건 아닌데, 그래도 그 정도에 자존심을 팔고 싶지는 않네요.”
“허…, 자존심? 아직 덜 급하다는 얘기네.”
“아저씨!”
김지숙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최민성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김지숙을 바라봤다.
“뭐 하는 거야?”
“아저씨야말로 뭐 하는 겁니까? 지금 돈 만 원 가지고 이렇게 사람을 농락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막말로 그 돈이 아저씨 돈입니까? 어차피 같은 주제에…….”
“뭐, 같은 주제?”
“제 말이 틀렸어요? 아저씨나 나나 오 사장님한테 붙어서 기생하는 거머리 아닌가요?”
“뭐, 거머리?”
최민성은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김지숙의 말이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김지숙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리고 저는 이제 이거 만 원에 못 넘겨줘요.”
“뭐라고? 그 말은 지금 돈을 더 올려달라는 거야?”
“이렇게까지 자존심이 깎였는데 돈이나 더 받아야겠네요. 싫으면 말고요.”
김지숙은 배짱이었다.
어차피 깎인 자존심이고 그럴 바에야 돈이나 더 받자는 계산이었다.
반면, 최민성은 죽을 맛이었다.
양념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오상철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무슨 수를 쓰든 양념장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다. 김지숙은 추가로 더 달라고 했지만 상황을 모르는 오상철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결국 그 추가 비용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휴우.
한숨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그 추가 비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 보니 목소리가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 지숙 씨…….”
“뭡니까? 그 말투는?”
“그러지 말고 처음 얘기했던 대로 만 원에 하자고. 우리가 앞으로 하루 이틀 볼 것도 아니고 말이야…….”
“아니요,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제 자존심을 먼저 짓밟은 건 아저씨예요. 지금은 비록 남편이 아파서 이 짓도 하지만 저도 마지막 자존심은 있단 말입니다. 그걸 아저씨는 무시한 거고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아까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말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결정되는 거라고. 아저씨는 별생각 없이 말했을지 몰라도 듣는 저로서는 치욕이었거든요.”
“…….”
할 말이 없는 최민성이었다.
최민성은 어쩔 수 없이 조용히 물었다.
“그럼 얼마나 더 주면 되겠는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천 원은 더 받아야겠네요. 자존심 팔아서 남편 영양제라도 한 대 맞히렵니다.”
“오천 원……?”
최민성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주머니에는 이천 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때 김지숙의 말이 이어졌다.
“설마 오천 원이 없는 건 아니죠?”
“그게…….”
“그게 뭐요? 혹시 아저씨…….”
“저기 미안한데……, 삼천 원은 나중에 주면 안 될까?”
“…….”
할 말이 없는 김지숙이었다. 어쩌면 최민성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말한다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김지숙은 가방에서 다시 반찬통을 끄집어냈다.
“여기요.”
“돈은……?”
“그냥 만 원만 줘요. 그리고 힘냅시다. 최민성 씨!”
“어? 어…….”
김지숙은 아무 말도 못 하는 최민성을 뒤로한 채 장미다방을 나왔다.
혼자 남은 최민성.
“휴우!”
깊은 한숨만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
오상철은 한 손에 반찬통을 들고 최민성에게 물었다.
“이게 그 양념장이야?”
“네, 그렇답니다.”
“그런데 양이 이거밖에 안 돼? 이 한 통에 만 원을 받았다고?”
“네…….”
최민성은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오상철이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냥요, 오늘은 저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요.”
오상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생 오상미를 불렀다.
“상미야.”
“네, 오빠.”
주방에 있던 오상미가 홀로 나왔다.
“이게 그 꼬맹이가 만든 양념장인데 이거랑 똑같이 만들 수 있겠어?”
“이거를 똑같이 만들라고?”
“응, 요즘 이 맛에 학생들이 난리라잖아. 난 너무 매워서 싫은데 학생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잖아.”
오상미는 반찬통을 열고 새끼손가락으로 양념장을 찍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물오물.
“켁.”
오상미는 양념장을 입에 넣자마자 도로 뱉어냈다.
이유야 간단했다. 아무리 양념장이라지만 자신의 입으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빠 이걸 어떻게 먹어?”
“왜?”
“내 입맛에는 도저히 못 먹겠어. 맵기만 하고 다른 맛은 느낄 수가 없는데.”
“아니야, 처음이라 그럴 거야. 그러지 말고 천천히 다시 먹어 봐.”
갑갑한 건 오상철이었다. 장사를 위해서는 어떡하든 양념장의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을 알아내야 할 사람이 한 번 맛보고는 못 먹겠다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것이다.
오상철의 시선이 이번엔 다른 쪽으로 향했다.
“이리 와 봐.”
“네? 저 말입니까?”
최민성은 당황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김지숙이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터라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오상철이 자신을 부른 것이다.
부른 이유야 뻔할 뻔 자고. 양념장을 맛보라는 것일 텐데, 그 맛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미 며칠 전에 오상철과 함께 그 맛을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상철이 누구인가?
그런 사정을 봐줄 인간이 아니었다.
“이거 맛 좀 봐.”
“아니, 형님 이건 아니죠. 며칠 전에 이미 맛본 거 아닙니까?”
“그거야 자네가 주문을 메뉴판에도 없는 4단계로 하는 바람에 너무 매웠던 거고 이건 그거와는 다르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최민성은 한 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오상철이 아니었다.
“정말 이럴 텐가?”
“아, 형님 제발…….”
“알았네, 나도 같이 맛을 보겠네. 그럼 됐지?”
최민성도 어쩔 수 없었다. 혼자만 먹이는 것도 아니고 같이 먹겠다는데 거기서 안 된다고 할 용기는 차마 없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반찬통에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두려움 때문일까. 그 감촉이 좋을 리는 없었다.
쏙.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손가락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최민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매운맛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며칠 전에 먹었던 그 매운맛이 아니었다.
“생각보단 덜 매운데요?”
“정말인가?”
“형님은 어떠세요?”
“나? 나는 아직…….”
최민성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오상철의 새끼손가락으로 향했다.
“헉! 형님?”
“미, 미안하네. 내가 좀 겁이 많아서 그만…….”
오상철의 새끼손가락에는 여전히 빨간 양념장이 묻어 있었다. 그 순간에도 잔머리를 굴려 새끼손가락이 아닌 네 번째 손가락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바라본 오상미.
“오빠, 그러고 싶냐?”
“알다시피 내가 겁이 많잖아?”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어떻게…….”
오상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오상철은 그때서야 빙긋 웃으며 양념장 맛을 보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어? 진짜 확실히 며칠 전에 먹었던 그 매운맛하고는 다르네.”
“그렇죠, 형님?”
“그땐 역시 4단계가 문제였어. 그런데 매운맛 뒤에 느껴지는 이 끝 맛은 뭐야?”
“그러게요,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그게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아니겠습니까?”
오상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상미가 물었다.
“끝 맛?”
“응, 매운맛 다음에 느껴지는 묘한 맛이 있거든. 우리는 지금부터 밤을 새워서라도 그 맛의 비밀을 찾아야 해.”
“난 아까 맵기만 하던데.”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먹어 봐. 분명히 뭔가 있다니까.”
오상미는 어쩔 수 없이 양념장을 다시 맛보기 시작했다.
오물오물.
분명한 건 처음 먹었을 때보단 덜 매웠다. 하지만 아직 끝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빠, 이걸로는 모르겠는데.”
“그럼 어떡해?”
“이걸 끓여보면 어떨까? 라면 넣지 말고 이 양념만 순수하게 끓여보면 그 특유의 끝 맛이 나오지 않을까?”
“그러기엔 양념이 너무 적은데…….”
오상철은 나름 심각했다.
물론 끓이는 방법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양념장이 너무 적었다. 만약에라도 끓였다가 그 맛을 못 찾는다면 양념장만 다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양념장을 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상철은 최민성을 바라봤다.
그러자 최민성이 물었다.
“왜요? 형님?”
“혹시 말이야……, 그 양념장 더 구할 수 있어?”
“양념장을 더 말입니까?”
“응, 아무래도 저걸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아니요, 저는 못 구합니다. 절대로 못 구합니다. 구하시려거든 이젠 형님이 직접 전화하십시오.”
최민성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 김지숙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삼천 원만 더 있었어도 그런 개망신은 안 당했을 것이다.